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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23화 (123/434)

123화 : 피에로의 서커스 천막

“아, 네. 어떤 일인가요?”

퍼플이 물었다.

“별건 아니고 힘을 합쳐서 스킬을 연계하는 건데…….”

겉과 속을 뒤집는 마법사와 대지를 지배하는 드루이드의 스킬 연계였다.

‘[지형지물 까뒤집기].’

스킬 명만 봐도 알 수 있듯 정상적인 융합 스킬은 아니었다.

“내가 뚫은 이 1미터짜리 구멍을 중심으로, 산의 정상을 까뒤집는 거다.”

“그, 그 말은……!”

“말하자면 산의 뚜껑을 통째로 까뒤집어서 벗겨 내는 거지. 그럼 드래곤이 있는 보스방이 직방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드래곤이 쉬고 있는 거처는 산의 정상에서 조금 아래였다.

산의 정상을 뚜껑 벗기듯 하면, 보스방의 천장 또한 같이 벗겨진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 그게 실제로 돼요?”

“모르지. 근데 해야 해.”

“아무리 융합 스킬이라 해도……!”

“워낙 희귀하고, 또 처음 시도되는 스킬이라 분명 히든 이펙트 판정이 뜰 거다. 일단 발동만 제대로 하면, 십중팔구 성공할 거야.”

은혁은 염훈에게 슬쩍 눈짓했고, 염훈은 퍼플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버프를 잔뜩 걸어줬다.

“그럼 간다!”

은혁은 [그림자 결속]으로 퍼플의 그림자와 자신을 연동시켰다.

그리고 퍼플의 고유 스킬을 자신이 끌어다 쓰며, 동시에 [돌 부수기]와 융합시켰다.

-히든 이펙트 발동!

“[지형지물 까뒤집기]!!”

드드드드드드……!

콰콰콰콰쾅!!!

1미터짜리 구멍을 중심으로, 산이 말 그대로 뒤집히기 시작했다.

“끄응……!”

스킬을 반강제로 빌려주게 된 퍼플은 마력과 체력이 빨려 기절했다.

“흐야아아압!!”

콰콰쾅!!!

은혁은 기어코 [지형지물 까뒤집기] 스킬을 완성해서, 산의 꼭대기 부분을 뒤집어냈다.

“컥! 맙소사!”

“이게 된다고?!”

정철과 화륜은 입을 벌린 채 경악했다.

화아악……!

태양광이 산의 내부로 들이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깊은 곳의 드래곤이 괴로워했다.

블랙 드래곤이라 갑자기 내리쬐는 태양광이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괴로운 이유는…….

‘수치심 때문이지.’

피에로 마스터 때문에, 블랙 드래곤의 얼굴에도 피에로 분장이 칠해져 있었다.

“명예 회복을 도와주지.”

은혁은 청염백광태도를 꺼내 들고, 구덩이 속으로 뛰어내렸다.

* * *

피에로의 서커스 천막.

단장의 방에서 피에로 마스터는 쉴 새 없이 명령을 내렸다.

“에이잇, 27층의 놀이 기구 따위 폐쇄해도 좋다! 모조리 생포해라! 28층에 있는 놈들을 생포하란 말이다!!”

호우호우 웃던 태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행복 포션도 다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 강은혁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불패불굴 길드가 농장 지역을 장악했다.

그러자 조바심이 났다.

이대로 강은혁이 29층까지 다 클리어하고 떠나 버리면, 행복 포션 제작에 필요한 지역을 영원히 뺏겨 버린다.

스테이지 개변으로 다시 28층의 농장 지역을 되찾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이미 무리해서 스테이지 개변을 이뤄서 운명치 회복에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해피 라이스 농장 지역의 권리에는 행복 길드와의 계약도 얽혀 있었다.

그 계약이 걸린 이상, 은혁이 지닌 농장주의 권한을 멋대로 박탈하고 되찾아 올 수도 없다.

‘그러니까 강은혁의 부하들을 생포해야 한다. 놈들을 인질로 강은혁과 협상해야 해!’

피에로는 은혁이 29층으로 떠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

단, 은혁도 그 사실을 예측했다는 게 문제였다.

은혁은 부하들을 농장 지역에 모여있게 하고, 경계 태세 상태로 두었다.

게다가 기습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27층에서 훨씬 미리 수를 써뒀다.

27층에서 시작되는 페스티벌에서 숨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 피에로 마스터의 부하 숫자를 확 줄인 것이다.

“단장님! 단장님!”

곡예 피에로들이 피에로 마스터에게 달려왔다.

피에로 마스터는 얼른 단장의 방에서 나가서 맞이했다.

부하들은 죄다 피투성이였다.

“읏. 실패했냐?”

“네.”

곡예 피에로들은 죄송해하는 기색도 없었다.

피에로 마스터는 발칵 화를 냈다.

“어째서! 어째서 실패했냐!!”

“놈들이 뭉쳐 있는데 어떻게 생포를 합니까.”

은혁이 데리고 온 13명만 해도, 100층탑 200위 안에 드는 랭커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다 이곳에서 영입한 이들까지 다 합치면 약 100명인데, 놀이 기구를 클리어하러 따로 움직이면 약해도 뭉쳐 있으면 강할 수밖에 없다.

특히 27층 광기의 페스티벌을 정면으로 견딜 때 집단 전투를 체험한 뒤라, 경험과 사기가 모두 높았다.

그런 이들을 서커스 직속 피에로들을 보내서 생포하려 했으니, 실패가 당연했다.

“이익! 쓸모없는 놈들!”

“저어, 보고할 게 하나 더 있는데요.”

“닥쳐! 이 실패자 놈들아!!”

“이건 꼭 보고해야 하는데…….”

“닥치라니까!!”

그때였다.

콰콰쾅!!!

천막의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아악!!”

피에로 마스터는 화상을 입으며 나동그라졌다.

그의 부하들도 전부 불을 뒤집어쓰고 울부짖었다.

“아악!”

“저걸 보고하려고 한 건데!”

피에로 마스터의 부하들은 모두 죽었다.

“뭐, 뭐지?”

구멍 뚫린 천장 위로 거대한 드래곤의 그림자가 있었다.

“오랜만이군.”

얼굴이 상처투성이인 거대한 블랙 드래곤의 목소리가 전역에 울려 퍼졌다.

“어, 어떻게 탈출한 거지?”

피에로 마스터는 이해할 수 없었다.

피에로 분장으로 지배한 상태이므로, 스스로 탈출은 불가능했다.

“그야 우리가 탈출시켜줬으니까.”

블랙 드래곤의 등 위에서 은혁이 말했다.

“당, 당신은……!”

“그가 누구인지는 네가 알 바 아니다.”

블랙 드래곤이 다시 우르릉거렸다.

“그는 내 얼굴에 묻은 사특한 물감을 지우는 법을 알고 있더군. 그는 날 구했고, 동시에 나도 그를 구하기로 했다.”

그랬다.

은혁은 피에로 드래곤을 ‘처치’했으나, 죽이지 않았다.

은혁은 피에로 분장만 기습적으로 노려서, 피에로 드래곤을 구성하는 요건인 피에로 분장을 지워 버렸다.

그 순간 피에로 드래곤 처치 조건이 달성되었고, 정철과 화륜과 함께 미션 클리어 보상을 받았다.

“미션 클리어 보상은 두 사람에게 넘기고, 나는 대화를 신청했다.”

은혁이 설명했다.

정신을 차린 블랙 드래곤은 은혁과의 대화에 응했다.

은혁이 협상하는 동안, 염훈은 정철, 화륜, 퍼플에게는 28층으로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무척 지친 데다가 차후에 있을 보스전에서는 큰 도움이 안 되므로.

그리고 블랙 드래곤과 은혁은 짧지만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은혁의 제안은 블랙 드래곤을 무척 만족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계약을 맺었다.”

블랙 드래곤이 입가를 말아 올리며 말했는데, 마치 인간이 미소 짓는 것 같았다.

피에로 마스터는 불안 속에서 되물었다.

“계약이라니……!”

드래곤, 특히 블랙 드래곤은 함부로 플레이어와 계약을 맺지 않는다.

도리어, 얼굴에 피에로 분장이 지워졌다면, 수치를 감추기 위해 은인을 죽이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는 것이 블랙 드래곤이다.

그럼에도 블랙 드래곤이 계약을 맺었다면, 정말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 있었다는 뜻.

“무슨 계약을 한 거냐!”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원래 말하면 안 되는 거지만…….”

블랙 드래곤은 히죽 웃었다.

“요약하자면, 네가 죽는 그 순간까지 동맹을 맺자는 계약. 즉, 함께 너를 쓰러뜨리는 거였다.”

블랙 드래곤은 말을 마친 뒤 다시 한번 브레스 공격을 가했다.

화아아아악!!

검은 유황과 화염의 구체를 토해내는가 싶더니.

콰콰콰콰쾅!!!

펑퍼짐한 피에로 마스터의 몸통에 직격했다.

쿠두두두둥……!

피에로 마스터는 폭발을 못 이기고 뒤로 몇 바퀴나 구르더니 불이 붙은 채 꿈틀거렸다.

“이겼나?”

블랙 드래곤 등 위에 선 염훈이 은혁에게 물었다.

“아니.”

은혁이 답한 순간.

“키이익!!”

홀쭉한 피에로가, 피에로 마스터의 몸을 찢고 튀어 나왔다.

“저게 본체지.”

-몰락한 지고의 위상, 기만하는 피에로 마스터가 나타났습니다!

홀쭉한 피에로 마스터는 마치 미술 도구를 살 돈이 없어서 밥값을 아낀 청년을 연상시켰다.

양손에는 물감이 묻은 붓을 들고 있었다.

“모두 주의하라!”

블랙 드래곤이 엄숙한 어조로 외쳤다.

“저 물감은 방어력을 무시하고 칠해진다!! 얼굴에 묻으면……!”

“키이에이이이익!!”

피에로 마스터는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이리저리 뛰었다.

“염훈. 역시 너랑 내가 가야겠다.”

“물론!”

은혁과 염훈이 돌진했다.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를 이용한 중거리 공격으로 피에로 마스터의 이동을 견제했다.

염훈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다자카우스의 파이크를 바닥에 찍고, [홀리 웨이브]를 생성해냈다.

우우우우우웅……!

순수한 신성력으로 효율이 높은 [홀리 웨이브]는 다크 드워프들을 단체로 일시 정지시켰던 적도 있었다.

“키이익!”

피에로 마스터는 당장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잡았지만.

타앗!

이내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 공격이 더 빨랐다.

화르륵!!

콰콰쾅!!!

“커흑!!”

피에로 마스터는 크게 위로 튕겼다.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를 휘둘러, 피에로 마스터의 한쪽 팔을 꿰었다.

“끝이다! [그림자의 꼭두각시]!!”

-히든 이펙트 발동!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5%…….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15%…….

“크윽?!”

피에로 마스터로서는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피에로 마스터는 팔에 박힌 낚싯바늘을 뽑으려 했지만.

“어딜! [파이어 볼]!”

콰쾅!!

화르륵!!

간단히 화염구를 날려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움직임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은혁으로서도 낚싯대를 잡고 있느라 한 손이 막힌 상태지만, 피에로 마스터도 한 팔이 낚싯바늘에 꿰인 상태라 방어가 어려웠다.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25%…….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49%…….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88%…….

악랄하게도, 은혁이 피에로 마스터를 공격하면 공격할수록 동기화율이 빠르게 올라갔다.

‘그런 스킬이니까.’

[그림자 지배] + [그림자 결속] + 차원의 낚싯대의 힘을 모두 융합한 퓨전 스킬이 [그림자의 꼭두각시]였다.

그 스킬의 효과는…….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99%…….

“크아아악!! 제기라아아알!!!”

뚜둑!

찌지직!

피에로 마스터는 과감히 자신의 팔을 자르려 했다.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이 100%에 도달하게 둬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안. [상급 치유]!!”

파앗!

염훈이 강제로 피에로 마스터의 팔을 치유시켜서 팔을 붙여 버렸다.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100% 달성!

“큭?!”

피에로 마스터는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음?”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게 만든 순간!”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를 가볍게 휘둘렀다.

휘릭!

낚싯줄이 조금 팽팽해졌을 뿐이지만.

우드득!

“커헉?!”

피에로 마스터의 몸이 통째로 뒤틀렸다.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될 정도의 기이한 뒤틀림이었다.

“으윽, 어떻게?!”

“글쎄.”

이것이 바로 [그림자의 꼭두각시]의 힘.

은혁은 피에로 마스터의 그림자를, 그리고 그 그림자와 맞닿은 인접 차원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즉,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를 조종 장치 삼아 피에로 마스터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정밀 조종은 어렵지만.”

우두둑!

간단히 낚싯대를 까딱인 것만으로 피에로 마스터의 팔다리가 뒤틀리게 했다.

“끄아아아!”

“팔다리를 역방향으로 꺾는 것 정도는 간단하지.”

정신 자체를 조작하진 못해도, 사지말단은 통제할 수 있었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팔다리의 그림자와 그 주변 차원을 왜곡하여 비트는 것에 가깝다.

“남들을 강제로 조종할 때는 재밌었잖나? 막상 강제로 꼭두각시처럼 괴롭힘당하니 기분이 어때?”

피에로 마스터의 팔다리가 좌우로 꺾였다.

그 틈에 은혁은 거리를 좁히며 스킬을 썼다.

“[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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