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 놀이공원의 마스터키
퍼억!
[강탈] 스킬의 타격음과 동시에, 피에로 마스터의 가장 귀한 아이템 하나를 뺏었다.
시스템적으로 일반 플레이어가 얻기 힘든, 정상적으로는 절대 획득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앗, 그것은!”
열쇠였다.
‘놀이공원의 마스터키.’
놀이공원의 모든 놀이 기구는 물론, 게이트조차 조작하는 절대적인 물건이다.
26층~29층에 영향력을 행사 중인 행복 길드조차도 이것만은 갖지 못했다.
하지만 은혁은 [그림자의 꼭두각시]로 피에로 마스터의 신체 지배권에 간섭한 뒤, [강탈] 스킬까지 동원하여 놀이공원의 마스터키마저 뺏은 것이다.
“그건! 그건 내게 귀속된 것이라 죽어도 뺏을 수 없는 건데!!”
단순 귀속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스스로 몰락시킨 지고의 위상으로서의 권능과 희생, 그리고 스테이지를 총괄하는 관리국의 허락이 맞아떨어져서 만들어진 것.
사실상 피에로 마스터의 영혼의 반쪽이나 마찬가지인 아이템이다.
그래서 피에로 마스터가 죽어도, 그 사체에서 마정석을 뺏을지언정, 저 놀이공원의 마스터키만은 못 뺏는다.
“원래는 절대 못 뺏는 게 맞지.”
은혁은 히죽 웃었다.
“하지만 히든 이펙트가 겹치면 시스템 법칙도 일부 우회할 수 있다는 거지. 이건 잘 가질게.”
은혁은 허공에 열쇠를 꽂는 시늉을 하며, ‘놀이공원의 마스터키’의 권능을 발동했다.
“신규 사용자 인증!”
파앗!
-새로운 놀이공원 마스터, 강은혁 님을 확인하였습니다.
-경고! 플레이어는 놀이공원 마스터가 될 수 없습니다! 사용 권한이 대폭 축소됩니다!
-통합층 중 지배 영역을 골라주십시오!
-A. 26층.
-B. 27층.
-C. 28층.
-D. 29층.
“C. 28층의 해피 팜랜드 전역을 지배한다!”
-28층의 주인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광기의 놀이공원의 일부 지역을 장악하셨습니다!
-해피 팜랜드의 지배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맙소사. 인간이 어찌……!”
블랙 드래곤은 자기가 본 것을 믿지 못하고 경악했다.
“한낱 인간이 층 하나를, 이런 식으로 지배한다고?! 이게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7대 길드의 길드장급이 아니고서야 층 하나를 통째로, 그것도 시스템 인증까지 받아가며 지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적어도 이 순간 은혁이 이룬 위업만큼은, 길드연합국을 건국할 때 당시의 7대 길드의 길드장이 이룩한 업적 못지않았다.
‘도박이었는데 잘됐군.’
사실, 은혁은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농장주의 채찍’을 이미 얻었다.
지금 마스터키를 뺏음으로 인해, 계획을 더 확실하게, 더 깊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마스터키의 권능 발동!”
파앗!
“이곳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의 조이 포인트를 151점으로 설정한다!!”
미션 조건을 단번에 달성하려 했다.
150점을 채우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는 모든 부하들과 아직도 곳곳에 숨어 있는 소수의 플레이어들까지 살리는 권능.
-명령 확인!
-모든 플레이어의 조이 포인트가 151점으로 변경됩니다!
“크하하하!”
은혁은 웃었다.
‘아, 미리 웃어서 더 크게 웃기 힘드네.’
은혁은 이미 27층에서 플랜 B를 구상하며 광포하게 웃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또 웃으려니 웃음이 잘 안 나와서 아쉬울 지경이었다.
“끄아아아아아……!!”
피에로 마스터가 절규했다.
절규의 호흡이 빠져나갈 때마다 얼굴이 쭈글쭈글하게 변하고, 팔다리는 앙상하게 가늘어졌다.
투툭.
차원의 낚싯대의 낚싯바늘이, 가느다랗게 변한 피에로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이런.”
은혁도 조금 놀랐는지 얼른 무기를 헤비 체인 소드로 변환시켰다.
“그것만은 못 준다!!!”
피에로 마스터는 페인트 묻은 붓을 자기 얼굴에 덧씌웠다.
파앗!
피에로 마스터에게 새로운 정체성이 생성되었다.
끼기긱.
끼기기긱.
가느다란 팔다리에서 금속성이 나더니, 스스로 비틀려 스프링처럼 변했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 변화합니다!
-피에로 마스터는 이제, 지고의 위상, 스프링 피에로로 변화했습니다!
비웃음과 삶의 어려움에 찌들어 늙어 버린, 강퍅한 피에로의 모습이었다.
“꺄하하이히히하하호!!”
입에서는 웃음이 쏟아져 나왔지만,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통토토토통토통통통……!
팔다리에 각각 하나씩, 총 4개의 스프링의 힘을 이용해 스프링 피에로는 사방으로 튀어 다녔다.
“으음.”
블랙 드래곤은 견제를 하려다 망설였다.
섣불리 브레스 공격을 했다간 은혁과 염훈이 휘말릴 수 있었다.
“너무 빠른데?”
염훈이 당황해하자, 은혁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메탈 서전트 소환]. [메탈 레인저 소환].”
메탈 서전트의 지휘를 받는 금속 사격병 분대가 생성됐다.
“명중을 노리지 말고, 화망을 짜서 한쪽으로 몰아라.”
“알겠습니다! 사격!”
콰콰콰콰!
보우건이 금속 쇠뇌를 연사했다.
“염훈!”
“알고 있어! [홀리 웨이브]!!”
염훈이 다자카우스의 파이크를 바닥에 찍으며 외쳤다.
파앗!
우뚝……!
스프링 피에로의 몸이 신성한 파동에 걸렸다.
“잡았습니다!”
메탈 서전트가 손뼉을 치며 기뻐한 순간.
타탁!
스프링 피에로는 특유의 탄성으로 신성력의 파장을 찢고 날아갔다.
“염훈! [홀리 웨이브]의 범위를 더 좁히는 대신 위력을 강화시켜 봐.”
은혁이 조언했지만,
“그, 그게, 에고.”
염훈은 애를 먹었다.
3차 각성을 한 상태였지만 [홀리 웨이브]의 힘을 주로 무기로부터 끌어내는 것이다 보니 정밀성은 조금 떨어졌다.
‘하긴. 다자카우스의 꼬리를 억지로 개조해서 만든 거니까.’
다자카우스의 꼬리에 깃든 악을 제거하는 그 과정에서, 악에 반발하듯 이식한 [홀리 웨이브] 스킬이다.
폭발하듯 광범위하게 뿜어내는 식으로는 사용하기 좋아도, 정밀성은 떨어졌다.
“그래도 일단 반복해! 놈이 도망치면 안 되니까!”
이대로 스프링 피에로가 스테이지를 탈출하게 되면, 그때는 어떤 식으로 변수가 생길지 은혁도 알지 못했다.
‘마스터키로 못 도망치게 막을 수 있기는 한데.’
그 경우에는 너무 권능을 많이 쓴 게 된다.
권능 남용이 마스터키를 망가뜨릴 수도 있었기에 주의해야 했다.
“염려 말라.”
블랙 드래곤이 중후한 목소리로 말하며, 천막 천장을 막았다.
일단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도망치는 것은 막았다.
“키에에에에에!!”
스프링 피에로는 천막의 뒤편, 자신의 개인 집무실로 일단 회피하려 했지만.
“[블레이징 러시].”
투쾅!!
화르르르르륵!!!
은혁의 방화 돌진 스킬이 도주 경로를 미리 차단했다.
돌진 경로에 따라 생긴 화염의 궤적은 스프링 피에로도 단숨에 튀어 넘어가기 어려웠다.
“지금이다, 염훈!!”
앞질러나간 은혁과 뒤편에 선 염훈이, 중간에서 멈칫한 스프링 피에로를 포위했다.
“[강타]!!”
은혁은 일부러 눈에 훤히 보여서 피할 수 있도록 [강타] 스킬을 날렸다.
부웅!!
“키익?!”
스프링 피에로는 몸을 던지듯 피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미리 그물을 준비한 어부처럼, 염훈이 [홀리 웨이브]를 준비하고 있었다.
“[홀리 웨이브]!!”
콰앙!
다자카우스의 파이크가 바닥을 찍고.
화아아악……!!
신성력의 파동이 스프링 피에로를 통째로 휘감았다.
“으윽.”
스프링 피에로는 다시 신성력의 파동을 찢고 나가려 했지만, 은혁의 [강타]를 피하느라 공중에 뜬 상태였다.
“스프링 움직임이 변칙적이면 뭐 하냐. 반드시 바닥에 한 번 튕겨야 하는데. 끝.”
“키이이이익……!”
은혁이 상황 종료 선언하고 블랙 드래곤을 올려다봤다.
“계약대로, 막타는 함께 치죠.”
“그 막타라는 것이 그 간악한 피에로에게 죽음을 안겨주는 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노라.”
스프링 피에로의 절반은 은혁의 헤비 체인 소드가, 나머지 절반은 블랙 드래곤의 송곳니가 물어뜯을 터였다.
“아, 안 돼. 기다려라!”
스프링 피에로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나, 날 죽여 봤자 이득이 없을 터! 너희는 이미 메인 미션을 다 깼잖나!”
실제로 그랬다.
26층부터 29층까지 메인 미션을 다 클리어했으므로 이대로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미 싸움에서 이긴 은혁과 블랙 드래곤이 항복을 받아 줄 이유가 없었다.
“이유는 둘째치고…….”
“우리는 자비를 모른다.”
은혁과 블랙 드래곤은 가차 없었다.
콰악!!
블랙 드래곤이 스프링 피에로의 절반을 물어뜯고.
“얍.”
철컹!
은혁은 헤비 체인 소드로 베어 버렸다.
처치한 순간, 막대한 양의 조이 포인트가 은혁에게 쏟아졌다.
-스테이지 통합 보스를 처치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56.
-600,000 조이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통합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이번 통합 메인 미션은 조이 포인트 보유량에 따라 성과가 달랐다.
-막대한 양의 조이 포인트를 확인하였습니다!
-성공 시 보너스 계산 중…….
“마스터키의 권능 재발현.”
파앗!
“60만 점의 조이 포인트 보상을 소모하여, 28층 지배를 공고히 한다.”
즉, 횟수 제한 없이, 28층만은 제대로 지배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경우, 어떤 추가 보상도 얻을 수 없습니다!
“상관없어. 단, 막대한 조이 포인트 보상을 거부한 대신, 28층에 대한 지배 권한을 영구불변히 하는 것임을 확실히 시스템에 기록할 것.”
-보상 포기 및 스테이지 귀속 재확인!
-28층 소유권은 강은혁 님께 귀속되었습니다!
-영구 지배 의지가 시스템에 기록되었습니다!
“크크크.”
은혁은 마치 소유권 등기 이전을 마친 악덕 부동산업자처럼 사악하게 웃었다.
‘사실, 피에로 마스터가 죽은 뒤라서 조이 포인트 보상은 의외로 싱겁기만 하지. 미션 커트라인만 통과할 정도만 있으면 돼. 게다가 마스터키까지 꼼수로 미리 훔치는 데 성공했으니…….’
게다가 은혁은 조이 포인트 보상을 충당할 추가 보물 창고의 위치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직후, 밀렸던 숙련도가 약간 올랐다.
-전사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현재 전사 숙련도 : 4%++.
-소환술사 숙련도가 10% 증가했습니다!
-현재 소환술사 숙련도 : 85%.
-소환술사 스킬 [장거리 교신]을 습득하셨습니다!
-도적 숙련도가 6%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75%+.
은혁은 재빨리 메시지를 모두 치워버리고, 헤비 체인 소드를 차원의 낚싯대로 순간 변신시켜서 피에로 마스터의 마정석을 회수했다.
-지고의 위상, 스프링 피에로의 마정석을 획득하셨습니다!
‘좋았어!’
피에로 마스터였을 때가 오히려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었고, 스프링 피에로로 변신했을 때가 오히려 격이 높아진 지고의 위상이었다.
물론, 전투력은 후자가 훨씬 약했지만, 보스 몬스터로서의 격은 후자가 더 높았다.
즉, 은혁은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 지닌 네임드 마정석이 아닌, 몰락하지 않은 지고의 위상이 지닌 마정석을 얻었다.
‘피에로 녀석을 열 받게 한 덕분에 더 이득이 커졌군.’
피에로 마스터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재각성했고, 그 상태로 죽었다.
은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얼른 마정석을 인벤토리창에 넣었다.
기분 탓인지 인벤토리창 들어가면서 마정석이 통통 튄 것 같았다.
“훗. 약았군.”
피에로의 사체를 질겅질겅 씹으며 블랙 드래곤은 말했다.
“공정하게 막타를 나눠 치기로 한 주제에, 가장 귀한 부분만 챙기다니.”
블랙 드래곤은 힐난하듯 말했지만 화가 난 기색은 아니었다.
“이제 흑룡파로 돌아가실 겁니까?”
흑룡파는 블랙 드래곤들로 구성된 파벌이며, 그들의 차원명이기도 했다.
“아는 게 많군, 플레이어여. 그건 네가 알 바 아니다.”
블랙 드래곤은 오만한 어조로 말하더니, 염훈을 바라봤다.
“그보다 성기사여. 그 무기는 내 동족의 꼬리로 만든 것 같군. 안 그런가?”
“어음…….”
염훈은 잠시 머뭇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