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 피에로 마스터의 보물 창고
블랙 드래곤은 추궁하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걸 내게 다오.”
“음, 돌려드리고는 싶은데 저도 이게 없으면 곤란한지라.”
염훈이 곤혹스러워했다.
범용성 높은 광역 스킬인 [홀리 웨이브]를 쓰려면 다자카우스의 파이크가 필요했다.
“돌려다오. 내가 불명예를 씻고 흑룡파로 돌아가려면, 그리하여 이름을 되찾으려면 갖고 갈 선물이 꼭 필요하다.”
피에로에게 조종당한 채 갇혀 있었던 블랙 드래곤인지라, 명예 회복은 절실했다.
“그럼 이건 어떻겠습니까.”
은혁이 슬쩍 끼어들어 말을 걸었다.
그러자 블랙 드래곤은 유황 냄새 나는 콧김을 뿜으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또 어떤 감언이설로 날 설득하려는 건가.”
“다자카우스의 꼬리를 돌려드릴 터이니, 작은 정보 하나만 주시죠.”
“정보라면?”
“가령, 교황제의 검에 관한 정보라든가.”
“뭐라……!”
블랙 드래곤은 즉각 한 발로 뛰어 뒤로 물러났다.
여차하면 브레스 공격을 뿜어낼 작정이었다.
“워우워우, 진정하시고.”
“그 사특한 검명을 입에 올리지 말라.”
“그럼…… ‘그 검’이라고 하죠. 그 검에 대한 정보 좀 주시죠.”
“그걸 내가 왜 알 거라 생각하지?”
“그야 흑룡파 소속 아니십니까.”
교황제의 검은, 100층탑 최초로 ‘황제’가 된 플레이어가 쓰던 검이다.
교황제는 100층탑에 처음 전송된 최초의 인류 3만 명 중 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물로, 본명은 불명.
7대 길드의 길드연합국 건설 이전의 존재라서 오늘날 플레이어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교황제를 죽이는 데 성공한 유일한 존재가 바로 최강의 블랙 드래곤, 헬카리우스다.
그 대가로 헬카리우스도 깊은 잠에 빠져 기력을 모으는 중이다.
헬카리우스가 깊은 잠에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이 바로…….
“그 검을 심연으로 던져 버리셨다죠.”
이것은 흑룡파의 명예로운 역사라서, 흑룡파 소속 블랙 드래곤들은 모두 이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알고 있군. 그 저주받아 마땅한 마검은 심연 어딘가에 존재할 뿐,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정말입니까? 알면서 모른 척하시는 건 아니죠?”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후후…….”
은혁은 웃음을 흘렸다.
‘됐다. 교황제의 검이 심연에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아냈다.’
회귀자인 은혁으로서는, 이것만 해도 확실한 단서를 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겠습니다. 훗날 심연에 가게 되면 찾아봐야겠군요.”
은혁의 이 말은 블랙 드래곤에게 완전히 농담처럼 들렸다.
만약 심연이 그토록 가기 쉽고 안전한 곳이라면, 애초에 헬카리우스는 교황제의 검을 그런 곳에 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염훈. 미안하지만 그 무기 좀 이분한테 돌려줘야겠는데.”
“음.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염훈으로서는 아쉬움이 컸지만.
“자요.”
다자카우스의 꼬리로 만든 파이크를 선뜻 돌려줬다.
블랙 드래곤은 크게 기뻐했다.
“고맙군, 명예를 아는 성기사여! 이제 나는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명예를 회복하고 이름을 되찾을 것이다!!”
블랙 드래곤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자 은혁이 얼른 한마디 했다.
“아, 한 가지만 더 조언해도 될까요?”
“또 뭐냐?”
“아마 흑룡파로 돌아가시면, 오키니움과 전쟁 중인 일행이 있을 겁니다.”
“음? 무슨 소리지? 그리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
‘그야 오크의 신 오키니움과 직접 대화를 나눠봤으니까 알지.’
은혁은 속으로만 답하고 씨익 웃었다.
“자세한 건 묻지 마시고 해피를 주의하라 전해주십시오.”
“해피? 행복을 주의하라고?”
“그렇게 전해주면 됩니다. 아마 고마워할 겁니다.”
“내가 갇혀 있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나 보구나! 기회가 되면 전하지. 그럼!”
화악!
블랙 드래곤은 더 남아 있다간 은혁에게 발목이 잡히기라도 할 것처럼, 얼른 높이 날아가, 권능을 발현해 흑룡파의 차원으로 떠나갔다.
“휴, 가버렸네.”
염훈은 막 정이 들려고 한 무기를 잃은 성기사답게, 조금 아쉬워했다.
“크크크. 가버렸지.”
은혁은 블랙 드래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적외선 시야].’
눈에 이식한 렌즈 아이템의 패시브 스킬을 발동했다.
‘여기 어디 숨겨져 있는데.’
어두침침한 서커스 천막에는 비밀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 문을 열기 위해서는 찾아야 하는 게 있었다.
‘찾았다.’
바닥과 벽이 연결되는 지점에 작은 버튼이 있었다.
꾸욱.
눌러도 잘 안 눌렸다.
“버튼이 되게 빡빡하네. 염훈. 같이 누르자.”
“어? 그런 곳에 버튼이 있었네?”
은혁과 염훈은 엄지를 모아 버튼을 눌렀다.
꾸욱……!
달칵!
드르륵……!
문이 열렸다.
“히든 던전이야?”
“아니. 숨겨진 보물창고야.”
피에로 마스터는 행복 길드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지만, 완전한 동맹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피에로 마스터는 진귀한 돈과 물품들을 이 안쪽에 꼭꼭 숨겨뒀다.
“잠시만.”
은혁은 [함정 탐지] 스킬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염훈에게 들어가 보라 손짓했다.
“네가 길드장이니까 먼저 들어가서 고르고 싶은 거 골라라. 나는 부하들 불러오지.”
* * *
염훈은 고지식하게도, 보물창고에 먼저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버티고 있었다.
보물 분배처럼 기쁘고 중요한 일은 다 함께 하고 싶다는, 훌륭한 길드장다운 처신이었다.
“자, 들어갑시다!”
그리고 부하들이 오자 비로소 다 함께 들어갔다.
“와……!”
“세상에……!”
“꼴깍…….”
불패불굴 길드원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26층~29층을 클리어했으니, 이젠 5층으로 돌아가며 길드 탈퇴해 버릴까 하고 머리를 굴리던 일부 플레이어들도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질 정도였다.
“염훈. [기여도 정산] 스킬을 써라.”
“어? 그런 것도 되네?”
길드장이라면 쓸 수 있는 전용 스킬이었다.
은혁이 압도적인 1위, 염훈이 약간의 차이로 2위.
나머지는 도토리 키재기였다.
“그럼 너랑 내가 가장 먼저 아이템을 하나씩 챙기지.”
염훈도 동의했다.
기여도가 공개적으로 정산됐으니, 부하들보다 먼저 챙기는 일은 매우 양심적이었으므로.
“난 이거.”
은혁은 낡은 책 한 권만 골랐다.
‘만능 사전.’
-만능 사전 :
5성급 아이템 :
100층탑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 특히 고대의 언어와 지고의 위상들만이 쓰는 괴이어, 관리국이 사용하는 시스템 관리 언어까지 적힌 사전이다.
마법적인 아이템이므로, 지니고 있으면 [자동 통역]과 [자동 번역] 스킬이 패시브 스킬로 지정된다.
내구도가 매우 약한 낡은 책이므로 취급에 주의할 것.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특히 심연에 떨어지면, ‘심연어’ 같은 기이한 언어를 써야 하는데, 그것도 만능 사전 속에 있었다.
“흠. 그럼 나는…….”
염훈은 신중하게 보물의 산을 노려봤다.
염훈은 따로 [신성력 탐지] 스킬을 쓰지 않아도, 3차 각성한 이후부터는 신성력을 민감하게 느끼는 체질이 되었다.
“이건가……?”
쑤욱.
그는 금 더미 밑에 파묻힌 채 숨겨져 있던 거대한 양손 망치를 뽑았다.
“이건……!”
“좋은 걸 골랐네.”
-빅 썬더 :
6성급 아이템.
몰락한 천둥의 신의 힘이 담긴 망치.
번개와 충격파와 관련된 고유 스킬이 생성되며, 기존의 스킬은 효율이 증가한다.
순수 전사보다는, 성직자나 성기사가 장착했을 때 효율이 더 높다.
내구도는 무제한.
“와…….”
염훈이 감탄하며 거대한 망치를 머리 위로 올린 순간.
쿠르릉……!
염훈의 머리 위로 뇌우가 생성됐다.
그걸 본 마법사, 드루이드, 성직자 플레이어들은 감탄했다.
“저건 그냥 마법으로 만든 게 아닌데?”
“실제 자연 현상도 아니고.”
“순수 신성력도 아니네.”
마법사의 마법, 드루이드의 비술, 성직자의 신성, 기적의 삼박자가 복합되어 생긴 뇌력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스킬 속성이 하나가 아니므로 막는 쪽에서는 골치가 아프다.
단순히 고무 방패 같은 걸로 절연시킨다고 해봐야 3분의 1 정도만 막아내는 게 가능한 것이다.
“염훈. [홀리 웨이브]는 가능해?”
“해봐야지.”
염훈은 다자카우스의 파이크로 [홀리 웨이브] 스킬을 쓸 때는 바닥을 찍어서 충격파를 만드는 식으로 썼지만.
“흡!”
콰쾅!!!
빅 썬더를 사용하니 신성한 충격파와 뇌격이 원하는 지점으로 정확히 뿜어져 나갔다.
“보아하니, [홀리 웨이브]를 잃은 대신 [홀리 썬더]랑 [홀리 라이트닝]을 얻은 것 같네.”
염훈이 스스로를 분석하며 말했다.
광범위하고 범용성 높은 파동 형태의 스킬을 잃은 대신, 범위가 조금 좁고 정밀성과 위력이 더 강해진 [홀리 썬더].
그리고 순수 단일 공격용으로 쓸 수 있는 [홀리 라이트닝]을 얻은 셈이다.
“와, 쩐다.”
“부럽네.”
“우리도 무기 고르게 해줘요!”
불패불굴 길드원들이 성화를 부렸다.
“물론! 기여도만큼 가져가도 좋다.”
은혁이 말했다.
그러자 불패불굴 길드원들은 멈칫했다.
은혁과 염훈의 기여도가 너무 과도하게 높은 탓에, 나머지 인원의 기여도는 그저 그랬다.
그나마도 개인 단위가 아닌 조 단위의 기여도인지라, 개개인으로 따지면 금화 약간 챙기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으음…….”
“엄청 아쉽네…….”
길드원들은 소곤소곤 아쉬움을 표했는데, 그걸 본 은혁은 오히려 그런 모습을 높이 평가했다.
‘기여도고 뭐고 우리 몫을 달라!’라는 식으로 억지를 부릴 정도로 멍청하고 염치없는 이들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여도대로만 칼같이 나눠 먹으면, 여러분 몫이 너무 적지? 그래서 제안할 게 있다.”
은혁이 말하자 다들 솔깃했다.
“여기 있는 염훈을 단순한 길드장이 아닌, 군주로 인정하고 맹세하면, 길드 운영 자금을 제외한 나머지 보물은 N분의 1로 공평하게 나눠주지!”
그러자 다들 염훈에게 앞다투어 충성을 맹세했다.
“맹세합니다!”
“불패불굴 길드의 길드장이시여!”
“길드장 염훈 만세!”
염훈은 맹세를 일일이 받아주면서, 은혁에게 슬쩍 물었다.
“은혁아. 질문 타이밍이 좀 늦은 것 같지만, 군주랑 길드장이랑 다르냐?”
“조금 다르지.”
“어떻게?”
“후후후.”
은혁은 길드연합국의 7대 길드장과 3군주에 관한 긴 역사와 칭호의 의미를 설명하는 대신 웃음만 흘렸는데, 염훈은 안 듣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은혁은 평소처럼 ‘하여간’으로 요약해줬다.
“하여간 길드연합국에서 인정하는 네 공식 지위는 불패불굴 길드의 길드장이다. 하지만 5층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언제든 군주의 직위를 내세울 수 있다고만 기억해 둬.”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부하들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 건데?”
“별거 없어. 어느 쪽으로 보건 그냥 부하들이지. 단, 길드 가입은 탈퇴가 가능하지만 충성 맹세는 그렇지 않다는 거?”
즉, 충성을 맹세한 이들은 죽든 살든 염훈의 부하로 살아가야 한다.
“……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 알아?”
“잘 알고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상관없어. 왜냐고 물어봐.”
“왜?”
“불패불굴 길드의 길드장은 그들에게 힘과 돈, 그리고 승리의 영광을 줄 테니까. 그것이 충족되는 한 저들은 탈퇴 같은 걸 생각도 안 하겠지.”
“간단하네. 문제는…… 그 불패불굴 길드의 길드장이…….”
“너라는 거지. 음. 참 힘들겠구나.”
“네가 날 그렇게 만들어 놓고선! 읍읍.”
염훈이 소리치려는 걸 은혁은 오키니움의 건틀릿을 낀 손으로 막았다.
“자, 그럼 가볼까.”
“읍읍, 어디로?”
“관리국 대사관.”
“엥?”
“[메탈 서전트 소환].”
파앗!
은혁은 메탈 서전트를 두고 가기로 했다.
“둘이 사이좋게 잘 지키고 있어.”
“네, 주인님!”
메탈 서전트가 올려다보며 거수경례를 척 붙였다.
“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데!”
염훈이 물었지만 은혁은 게이트를 통해 5층으로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