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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28화 (128/434)

128화 : 황금 궁전의 회의 (3)

“잠까안!!”

시리우스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잘 다듬어진 콧수염은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아직입니다! 이건 증거가 아닙니다.”

“원본까지 제시했는데? 그래도 발뺌을 할 셈이오?”

워잭이 묻자 시리우스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부길드장 자격의 일시 정지라니.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최소한 변호할 기회는 주셔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빌 길드장님?”

“흠.”

빌은 턱을 긁으며 ‘그럼 그럴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은혁은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다.

“그럼 서류의 요약본과 원본보다 훨씬 더 확실한 증거를 내밀어야겠군요.”

“뭣?!”

“마약 농장을 운영한 당사자, 즉 현장 책임자를 증거품으로 제출합니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범행 당사자를? 그럼 증거품이 아니라 증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빌이 묻자, 은혁은 피식 웃었다.

“직접 보시죠.”

은혁은 해피 팜랜드의 농장주 피에로였던, 프리머의 머리통을 인벤토리창에서 꺼내어 내밀었다.

불패불굴 길드 소속 사령술사들을 시켜서, 프리머의 머리통을 죽지 않게 아이템화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 * *

“자아, 빨리 청소합시다!”

28층.

은혁이 소환한 메탈 서전트는 주로 청소 지휘를 하고 있었다.

피에로를 비롯한 각종 몬스터들의 사체를 한곳에 모으는 일이었다.

은혁은 28층뿐만 아니라 27층과 29층의 몬스터 사체도 전부 회수하라고 지시해둔 상태다.

“깨끗이 치웁시다! 특히 28층! 여기가 불패불굴 길드의 영역이 될 테니까!”

메탈 서전트는 작은 몸을 이끌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청소를 지시했다.

한편, 불패불굴 길드장 염훈은 다른 성직자와 성기사들을 이끌고 플레이어 구조에 힘썼다.

“길드장님! 여기도 있어요!”

“음, 정말 많군요.”

26층~29층 통합층 곳곳에는 강제로 피에로로 변한 플레이어들이 의식을 잃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피에로 마스터가 죽은 덕분인지 얼굴의 피에로 분장은 지워진 뒤였다.

“으으…….”

만약 스테이지가 관리국에 의해 즉각 개변되었다면, 의식을 잃은 채 갈려 나갔으리라.

“일단 성직자분들이 회복시키고, 성기사분들은 안심시켜 주세요. 길드 가입 권유는 나중에 합니다.”

“옛, 길드장님!”

부하들이 깍듯이 대답했다.

염훈은 손수 플레이어들을 구조했는데, 구조된 플레이어들은 흑흑 눈물을 흘렸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어서 추스르고 일어나세요.”

“흐흑. 몬스터로 변한 상태의 기억이 떠올라요. 괴물이 된 저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걸 탓할 수는 없죠. 그분들 몫까지 힘냅시다.”

“제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음.”

염훈은 고뇌했다.

은혁이라면 웃으며 적당히 듣기 좋은 소리를 늘어놨겠지만, 염훈은 진지했다.

“죽은 자들의 몫까지 살 자격이란…… 스스로 만들어가야겠죠. 죄를 잊지 말고, 그렇다고 속죄에 자기 삶을 모조리 희생하지도 말고…… 그 중간의 좁은 길을 걷는 것. 무척 힘든 길이겠지만…….”

“아아, 흑흑! 저는 그럴 용기가 없어요.”

“음…… 그렇다면 저희 길드에 일단 들어오시는 게 어떨까요?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키우시는 겁니다.”

염훈은 진심으로, 마음이 다친 이들을 거두겠다는 마음으로 말했다.

머릿수를 늘리기 위해 하는 소리가 아니었기에 플레이어들은 더욱 깊게 감화되었다.

“아……!”

그렇게 구조된 플레이어들의 과반수가 새로운 불패불굴 길드원이 되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염훈 길드장님.”

“염훈 길드장 만세!”

염훈은 은혁이 가르쳐 준 대로, 단순 길드장에 대한 충성 맹세가 아닌 군주로서의 충성 맹세도 겸하도록 유도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저의 피와 살입니다. 자아, 어서 다른 사람들을 도우세요! 그게 속죄의 길입니다!”

“옛!!”

후다닥!

새로 생긴 부하들의 뒷모습을 보며, 염훈은 보람찬 기분이 들었다.

“역시 은혁이 녀석은 대단해.”

염훈은 합심하여 일하는 부하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주인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어느새 메탈 서전트가 가까이 와서 말을 받았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28층을 장악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장악한 거였어.”

“맞습니다. 금속 차원에서 온 저도 정말 주인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은혁이 녀석, 지금쯤 열심히 7대 길드의 높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겠지?”

염훈과 메탈 서전트는, 은혁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악의와 광기 가득했던 26층~29층 통합층에 평화가 찾아왔다.

* * *

황금 궁전 회의실에는 악의와 광기가 휘몰아쳤다.

은혁이 꺼낸 프리머의 머리통은, 불패불굴 길드 소속 사령술사 4인에 의해 진실만 말하도록 되어 있었다.

“진실은 다 말했으니…… 죽……여…… 줘요……!”

프리머는 그렇게 애원했다.

서류 원본에 이어 증거품 당사자의 목소리까지 나오자, 저항하던 시리우스도 더 이상 반론을 내지 못했다.

“시리우스의 부길드장 자격 제한에는 나도 동의. 수사가 이뤄질 동안은 5층을 떠나지 말고 자택에 머물 것.”

그렇게 빌도 동의했다.

4인 중 3인이 동의했으니, 즉각 적용된다.

“이, 정말……로……!”

시리우스가 기막혀하자, 워잭이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부길드장 자격을 일시 정지시킨다고 해도, 사실 강제력은 없소.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의 직위를 완전히 해제시킬 수 있는 건 행복 길드의 길드장뿐! 그러니 당신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있지. 사실 우리의 의견은 명령이 아니라, 경고이자 의사 표명에 가깝소.”

길드연합국의 행정이 막장인 이유를 워잭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즉, 당신이 수사를 거부하고 다른 곳으로 도피한다면, 정의 길드와 경비대가 무력을 행사할 것이며, 다른 길드 또한 지원에 가세할 것임을 알리는 거요. 우리 의견은 확실히 전달됐으리라 믿소.”

“첨언하자면, 우리 자유시장 길드는 정의 길드에 적극 협조할 것임을 강하게 밝히는 바요.”

테일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을 약 올리던 행복 길드의 시리우스가, 은혁이 가져온 여러 증거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기가 살았다.

시리우스가 도와달라는 식으로 빌을 바라보자, 빌은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조건부로 행복 길드에 협조하지. 만약 행복 포션의 제작 과정을 하나의 비밀도 없이 연구 길드에 전부 공개한다면, 적어도 강압적인 체포권 발동에는 반대해 주는 걸로. 단, 자택에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까지 양보해주긴 어렵겠어.”

빌이 대놓고 실리주의적 답변을 했지만, 워잭, 테일러, 시리우스 누구도 뭐라 하지 못했다.

“허…….”

시리우스는 나락에 떨어지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쾌락 속에서 탄식했다.

그 모습을 본 테일러는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수사관의 감시가 붙으면 더 이상 좀도둑질이나 행복 포션 유통을 지휘할 수 없겠군?”

테일러가 대놓고 놀리자, 시리우스도 결국 화를 냈다.

“테일러! 당신은 내가 우습겠지? 강은혁은 이런 식으로 우릴 분열시키는 거요!”

시리우스가 외쳤다.

외치고 나니, 모든 게 분명해졌다.

“강은혁 저 인간이 갑자기 자신만의 길드를 세운 이유가 뭐겠소! 왜 스테이지를 장악해서 근거지를 마련하려는 것이겠소! 갑자기 여기서 내게 불리한 증거를 내세워서 여론을 바꾼 그 이유! 왜 거기에 대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이런 식으로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거라고!!”

시리우스의 외침은 사실 새로울 게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바보는 아니었으므로.

‘확실히, 어? 어? 하다가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됐군.’

워잭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리우스의 범죄 행위를 무마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 당신들도 내 입장이 될 거다!!”

예지에 가까운 저주였지만, 테일러는 더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게까지 강은혁을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고 싶은가? 껄껄!!”

“이익……!”

시리우스는 더 오래 있어 봐야 조롱만 당할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시리우스는 허리에 찬 ‘확률의 마검’에 손을 얹은 채, 은혁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죠! 하지만 이 일은 기억해 두겠습니다, 강은혁 플레이어!”

“음. 그 기억이라는 게 반성을 위한 기억이라면 좋겠군요. 원한을 품기 위한 기억을 하시려 든다면, 그것이 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은혁은 이 상황에서도 당당히 답했다.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은혁은 공익제보자이기도 했으니 당당할 만도 했다.

뿌드득……!

시리우스는 이를 갈며 떠났다.

쾅!

문 닫히는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은혁은 남은 이들에게 말했다.

“아! 행복과 쾌락만을 추구한 자의 몰락이란 저런 것이군요. 일단 다시 본래 의제로 돌아오지요.”

정작 본래 의제에서 멀어지게 해놓은 장본인은 은혁이었지만, 멋대로 다시 본론으로 돌려놨다.

“저는 행복 길드가 관리하던, 28층의 농장 지역, 이곳만 장악할 수 있다면 다른 곳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은혁은 조악한 수준의 사업계획서를 내밀었다.

‘28층의 팜 랜드 지역의 농지를 정상화한 뒤, 농사를 짓는다.’

무척 무해해 보이는 사업계획서였다.

“여기서 말하는 농사란 게 구체적으로 뭔지 말해볼래?”

빌이 요구했다.

“저렴하고 일반적인 식용 농작물, 비싼 연금술 재료용 약초나 버섯 등등. 그리고 열매가 나는 나무 정도? 저도 여기 급히 불려오느라…….”

“흐음.”

“더 나아가, 저희 활동이 의심스럽다면, 길드연합국 측에서 감시인을 파견해도 좋습니다. 28층에 한해서라면, 저를 졸졸 따라다녀도 좋습니다.”

매우 대담한 제안이었다.

그 정도로 ‘우리 농사 사업에는 수상한 거 없음!’이라는 걸 강하게 어필하려는 의도였다.

테일러는 손을 들었다.

“감시인을 일부 파견해도 좋은 조건이라면 난 찬성.”

사실, 테일러는 은혁이 마약 농사를 이어받으려는 게 아닌가 의심했었지만, 그럴 의도가 없는 게 분명해 보였다.

“28층 일부 지역에 한정한 사업 허가를 내주고, 그 일부 지역에 대한 실효 지배를 인정합시다.”

테일러가 말했다.

은혁이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에게 제대로 엿을 먹인 시점부터, 테일러의 마음은 이미 은혁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경제적 관점에서도 테일러의 기준에 충족되었다.

“감사합니다. 나머지 두 분은?”

테일러가 적극적인 찬성표를 던지고, 시리우스는 이 자리를 떠나서 기권처리 됐으니, 워잭과 빌 중 한 사람만 찬성을 표해도 된다.

그러면 3분의 2가 되므로.

‘으음.’

워잭은 은혁의 눈치를 봤다.

워잭은 원칙주의자였기에, 은혁이 특정 층을 관리하는 것에 반대를 표하고 싶었다.

그것이 7대 길드가 정한 원칙이므로.

하지만 은혁은 생명의 은인이었다.

지금은 은혁이 워잭 쪽을 바라보지 않고 있지만, 만일 ‘생명의 은인이니 내게 찬성표를 주시죠’라고 대놓고 요구한다면…….

‘내가 그걸 거절할 수 있을까?’

워잭이 고뇌하는 동안 빌은 은혁과 대화 중이었다.

“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불패불굴 길드는 길드연합국의 여덟 번째 길드가 되고 싶은 건가?”

“조금 다릅니다. 길드연합국 내에서의 제 목표는, 7대 길드를 모두 대통합시키는 겁니다. 그러니…… 제 목표가 달성되면 거대한 1대 길드만 남겠죠.”

무척 오만한 선언이었지만 빌은 그러려니 했다.

“아, 그랬지. 하지만 그건 힘들 거야. 행복 길드를 적으로 돌렸으니.”

“대신에 여러분이 있잖습니까.”

“음? 무슨 의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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