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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30화 (130/434)

130화 : 버섯 마을을 향해서

기존 28층에 비해 미션 난이도가 매우 낮았고, 딱 일한 만큼만 클리어 보상을 얻을 수 있었기에 대부분 호평이었다.

“쉬면서 하세요!”

“레몬에이드 좀 드세요!”

불패불굴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돌아다니며 플레이어들에게 음료를 권했다.

길드원에게만 주는 아르바이트로, 금화 몇 개를 염훈에게서 선불로 받았다.

이 아르바이트생들은 특히 한때 피에로에게 당해서 강제로 몬스터로 변했던 이들이었기에, 속죄 의지가 강했다.

자연히 서비스가 좋았다.

“잘 마시겠소!”

“캬! 이렇게 좋은 층이 있다니.”

다른 곳에서 28층에 구경 온 플레이어들은, 28층 미션과 불패불굴 길드에 연신 감탄했다.

“일개 플레이어가 메인 미션을 통째로 개변하다니. 대단해.”

“어허, 이젠 강은혁이 일개 플레이어가 아니지. 이젠 불패불굴 길드의 부길드장이라고.”

“아. 그랬지.”

“우리도 열심히 해서 불패불굴 길드 못지않게 빠르게 탑을 오르자고.”

플레이어들은 느긋하게 잡담을 나누며 일을 했다.

더 빨리하라고 재촉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농사지으니까 갑자기 막 태평성대가 온 것 같군.”

“껄껄!”

사실, 5층 길드연합국은 막장 운영에 비하면 의외로 평화로운 편이었다.

다만 고인물이 썩는다는 말이 있듯, 7대 길드와 그 하청 길드 체제로 고정되다 보니 불평 부당한 사건 사고가 자잘하게 일어났을 뿐이다.

“그나저나 잠시 중단됐던 7대 길드의 60층 공략이 다시 시작된다지?”

“음. 이번에는 부길드장들이 나서는 대신 탐사대만 먼저 보낸다던데.”

“근데 60층 진출이 왜 이리 늦어진 거야?”

“그야…….”

말하려던 이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층을 사실상 지배하는 사람 탓이라고 대놓고 말할 만큼 담이 크지 않았다.

“커험, 험.”

“레몬에이드나 더 마시고 일하세.”

“음……. 근데 저 사람은 쉬질 않네.”

“누구?”

“저기 갑옷 입은 사람 말이야. 저편에서 너무 쉬지 않고 일하는데?”

“어? 정말이네?”

성기사 갑옷을 입은 한 청년은 쉬지도 않고 일했다.

“어어이! 좀 쉬면서 일해요.”

“앗, 저 사람은….”

“누군데?”

“저 사람이 여기 길드장이야. 염훈.”

“헉. 저 사람이었어?”

“그나저나 정말 체력이 엄청나네. 쉬지도 않고 일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염훈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후, 정말 좋군!”

호미를 들고 밭에 쪼그려 앉아 돌을 고르던 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상쾌한 웃음을 지었다.

“은혁이 녀석, 의외로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니까.”

지금의 염훈은 성기사 숙련도는 엄청났다.

3차 각성한 그는, [정화] 스킬을 손에 두르고 있을 수도 있었는데, 그 상태로 오염된 밭을 정리하니 숙련도도 오르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의외로 나에게는 이런 소탈한 삶이 어울릴지도.’

농사일에 푹 빠진 그는, 의외의 힐링 라이프를 누렸다.

“난나나나나나나나나~ 난난난난난난나~.”

대형 마트 노동요를 흥얼거리는 그때, 은혁이 나타났다.

“여기 있었냐.”

“오, 은혁.”

“이쪽은 다른 애들한테 맡기지.”

불패불굴 길드에 가입한 드루이드와 성직자가 무척 많았기에, 자잘한 [정화]나 [토양 활성화] 같은 것은 부하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길드장으로서 모범을 보이려고 열심히 일하는 거임.”

“네 말도 맞긴 한데…….”

은혁은 농장주의 채찍을 슬쩍 만졌다.

마스터키가 28층에 관한 지배권의 상징이라면, 농장주의 채찍은 보다 구체적으로 농경지를 분석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

“농경지 상태창.”

은혁이 농장주의 채찍을 쥔 채 중얼거린 순간.

-전체 농경지 면적의 15% : [오염된 농경지].

-전체 농경지 면적의 22% : [농경지 LV 1].

-전체 농경지 면적의 25% : [농경지 LV 2].

……

……

-전체 농경지 면적의 3% : [농경지 LV 5].

염훈이 방금까지 만지던 밭이 [농경지 LV 5]였다.

“음, 염훈 네 말이 맞네. 네가 직접 만진 농경지가 가장 레벨이 높네.”

“허, 그런 것도 있냐?”

“레벨 5 농경지를 15% 비율까지 높여야 하는데…….”

은혁은 말끝을 흐리다가 표지판을 몇 개 뚝딱 만들었다.

‘농경지 개간 랭킹’

“어?”

“저게 뭐지?”

5층 광장의 랭킹 게시판처럼, 28층 농경지 전용 랭킹 게시판을 만들었다.

은혁은 농장주의 채찍에 담긴 권능으로 플레이어들의 기여도를 확인할 수 있었고, 1위부터 10위까지만 일단 적어뒀다.

그리고 옆에 표지판을 하나 더 만들어서 안내문을 적어뒀다.

‘농지 개간 기여도 1위 하신 분께는 돈을 드립니다. 마감 시간은 오후 10시.’

표지판에 그렇게 적어두자 다들 의욕을 품었다.

“오오!”

“일하면 일한 만큼 기여도라는 게 오르는 거였어?”

“난 몰랐는데……?”

“맞는 것 같은데?”

플레이어들이 술렁거렸고, 은혁은 길드원 중 하나인 퍼플을 불렀다.

겉과 속을 뒤집는 마법사인 퍼플은 당장 하는 일이 없었다.

“자, 당장 할 일 없지? 이 채찍 쥐고 있어. 그리고 기여도 순위가 바뀌면 고쳐 적어라.”

“아, 네!”

“그리고 정철 님과 화륜 님? 두 분은 퍼플 경호해주세요.”

“그러겠소.”

그렇게 일거리를 적당히 맡긴 은혁은 다시 염훈에게 다가갔다.

“네가 일하는 게 효율이 좋긴 한데, 계속 농사만 할 순 없지? 이제 슬슬 30층 올라가자.”

“아…….”

“왜 실망한 표정이야?”

“아니…… 아니다.”

순간적으로 평화로운 목가적 체험을 누리다가, 어려운 미션을 깨러 갈 생각을 하니 염훈의 마음이 무거웠다.

“30층은 평화로운 미션이야.”

“저기, 꼭 오늘 가야 함?”

“오늘 가야 함.”

“왜?”

“남들이 우리 28층에 관심을 보이는 이때, 빠르게 치고 올라가야 하거든.”

“설마?”

“그래. 30층부터 34층까지, 오늘 하루 만에 다 깬다!”

* * *

-30층 : 버섯 숲.

“음.”

버섯 특유의 향긋함과 곰팡이 특유의 퀴퀴함이 감도는 숲.

오두막 몇 채가 듬성듬성 있었고, 오두막 사이사이에는 늪 또는 호수가 있었다.

“음,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염훈이 중얼거린 순간.

<30층 메인 미션 : 버섯 마을의 버섯 채집>

-목표 : 제한 시간 이내에, 30층 스테이지 전역에 존재하는 버섯을 전용 바구니에 가득 채울 것. 플레이어 간의 폭력 행위는 금지되며, 그 경우에만 미션 실패로 간주.

-성공 시 보너스 : 채집한 버섯에 따라 다름.

-실패 시 페널티 : 5층으로 추방. 6개월간 30층 재도전 금지.

-제한 시간 : 30분.

“버섯 채집이라.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염훈이 중얼거린 순간.

토통!

어디선가 공 같은 게 날아왔다.

“웃, 적인가?!”

“안심해. 5의 배수인 층은 대부분 안전하니까.”

은혁의 말대로 공 같은 것은 NPC였다.

“어서 오시오, 플레이어분들! 나는 야생의 버섯 농원을 관리하는 버섯돌이라 하오!”

작은 체구의 하플링이었다.

“이것 받으시오!”

파팟!

버섯돌이가 넓적한 바구니 두 개를 은혁과 염훈에게 던졌다.

“버섯은 인벤토리에 넣지 말고, 반드시 그 바구니 안에 넣을 것!”

“호오.”

“제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채점 장소로 순간 이동 될 것이외다! 그때까지 버섯을 채집할 것! 질문 있으시오?”

“무슨 독버섯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지?”

염훈이 묻자 버섯돌이는 피식 웃었다.

“왜 없겠소? 허나 인간 기준에서 독극물인 버섯이 우리 하플링에게는 이로운 경우가 있으니, 너무 부담 갖진 마시구려!”

버섯돌이가 주변 오두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두막 안에는 수줍은 하플링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호기심과 조심성을 두루 갖춘 선량한 눈매였는데, 경계심 또한 확연했다.

성기사인 염훈은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성품을 대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주민들을 용서하시오. 외지인에 대해서는 워낙 수줍음이 많아서.”

“흠, 그렇군. 버섯을 좋아하는 평화로운 이들의 스테이지인가.”

“마침 오늘 여길 방문한 플레이어는 두 분뿐이군.”

은혁이 28층을 새로운 화제의 장소로 만든 탓에, 상대적으로 30층이 텅텅 비었다.

“너무 남획하지 마시고, 즐겁게 채집하시길. 그럼 버섯 채집 시작!”

토통!

하플링 NPC 버섯돌이는 다시 튕기듯 사라졌다.

“강은혁!!!”

염훈이 갑자기 소리쳤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버섯 숲에 울려 퍼졌다.

“깜짝이야. 왜 소리 질러?”

“미리 말해두는데!”

염훈은 굳은 얼굴로 엄포를 놓았다.

“괜히 히든 미션 얻는답시고 갑자기 버섯밭을 황폐화시키거나! 버섯나무에 불을 지르거나 하지 마라!!”

“안 해. 어차피 그런다고 히든 미션 안 나와.”

“또! 땅속에 숨은 히든 버섯을 찾아낸답시고 멋대로 땅을 파헤쳐서 오두막을 망가뜨리거나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금지다!! 길드장으로서 분명히 말했다!!!”

“그런 거 안 한다니까? 소리 좀 낮추지?”

은혁이 그동안 한 짓을 봐온 염훈은 큰 소리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평화로운 버섯 마을을 은혁이 망가뜨릴까 봐 미리 엄포를 놓은 것이다.

“야, 그렇게 친구를 못 믿냐?”

은혁이 슬쩍 화난 척 묻자, 염훈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친구 강은혁은 무조건 믿지. 하지만 동료 강은혁은 좀.”

“허참.”

은혁은 웃어 버리고 말았다.

“자, 평화롭게 버섯 채집이나 하자고.”

은혁이 먼저 커다란 나무 밑으로 가더니, 버섯을 조심스레 채집하기 시작했다.

투툭.

투툭.

경쾌하고 평화로운 버섯 채집.

“음…….”

염훈은 은혁의 뒷모습을 보더니 안심하고 버섯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짹짹짹…….

찌르르찌르르…….

새 소리, 벌레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간만에 찾아온 평화를 축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음, 향 좋다. 이건 천연 송이버섯 같네.”

염훈은 성기사 특유의 신성력 감지 능력으로, 독극물이 없는 버섯을 빠르게 찾아냈다.

“이거, 바구니가 금방 다 채워지겠는데? 하하핫!”

숲속에서 웃던 염훈은, 문득 은혁이 걱정됐다.

“이 녀석 안 보이네. 어디서 또 뭘 하려고.”

구석구석을 걷던 염훈.

“어?”

금지 구역을 발견했다.

‘위험! 이 너머로 가지 마시오!’

팻말이 여러 개 바닥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버섯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녹슨 쇠로 된 바리케이드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뭘 기웃거리냐, 염훈.”

“으왓, 깜짝이야.”

“얼른 와. 여기 있으면 하플링들이 싫어해.”

아닌 게 아니라 곳곳에서 훔쳐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거기 넘어가시면 안 돼요…….”

작은 목소리도 들려왔다.

성기사 갑옷을 철그럭거리는 염훈이 다가가니, 아무래도 하플링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자자, 그럼 시선도 끌었겠다.”

은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인벤토리창에서 요리 도구를 꺼냈다.

“그건?”

“세콜리한테 빌렸어.”

세콜리는 요리장 피에로였던 여성 플레이어다.

세콜리는 요리장 피에로라는 몬스터로서 오랫동안 시달렸고, 몬스터였을 때의 기억이 머리에 남아 있었다.

“네가 밭농사하는 며칠 동안, 그녀에게 요리를 잔뜩 배웠지.”

플레이어의 기본 모험 직업 12개 중에는 요리사라는 직업이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세콜리는 기존의 직업에 더불어 요리사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정체성이 몬스터인 채로 오래 있었던 탓에, 평범하게는 얻기 힘든 요리 스킬을 잔뜩 얻은 것이다.

‘[괴식 요리] 스킬.’

은혁은 마스터키의 힘, 부길드장의 권한을 쓴 데다 세콜리와 여러 날 합숙 훈련을 하며 그 스킬을 전수받았다.

또한, 세콜리는 은혁과의 치열한 합숙 훈련으로 몸이 괴로워진 덕분에, 괴로운 과거의 죄책감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

“오늘의 요리는 버섯 카레다.”

은혁은 냄비에 올리브 오일을 둘렀다.

“카레에는 보통 양파나 당근, 고기 등이 들어가야 하지만, 순수 버섯으로만 만든다.”

“버섯으로만?”

“응.”

은혁은 바구니에 든 노란 버섯을 꺼냈다.

“카레 버섯이라고 하지. 먹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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