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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31화 (131/434)

131화 : 역대급 카레 요리

은혁은 손수 카레 버섯을 염훈에게 먹여줬다.

“음.”

혀끝을 톡 쏘는 맛이었는데, 카레 향이 나긴 했다.

“여기에 테인 버섯, 각행 버섯, 소금 버섯, 토마토 버섯…….”

재료를 손질하는 은혁의 손놀림이 점차 리듬을 탔다.

치이익……!

손질한 재료들을 올리브 오일에 볶기 시작했다.

“음, 향이 되게 좋다?”

염훈은 감탄했다.

“감탄만 하지 말고 물 좀 얻어 와.”

“얻어 와?”

“응. 의외로 깨끗하게 흐르는 물이 귀하거든. 하플링들한테 허락받고 얻어 와. 한 열 동이 정도, 잔뜩.”

은혁은 볶은 재료를 따로 두고, 또 다른 재료를 추가로 볶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수십 명 분량의 카레를 만들려는 것 같았다.

염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버섯 마을의 하플링들의 집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물 좀 주십시오.”

정중하게 요청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극도로 높아 보였다.

‘설마?’

염훈은 미션창을 다시 봤다.

‘플레이어 간의 폭력 행위는 금지.’

하지만 이 평화로운 마을에 피해를 주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다.

‘알 만하군.’

아마, 상식 없는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곳에서 멋대로 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플링들이 경계심을 품은 것.

인간이 하플링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쉽지 않을 터였다.

“흠흠.”

염훈은 은화를 몇 닢 문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스윽.

다시 은화가 밖으로 나왔다.

“돈은 필요 없어요. 저리 가요!”

하플링들이 소리쳤다.

‘아, 이게 아닌가.’

염훈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물을 얻을 수 없을까요? 요리를 하려는데.”

“……무슨 요리인데요?”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네. 30층 최고의 카레 요리입니다. 혹시 나눠 드시고 싶으시다면…….”

벌컥.

문이 열리고 물 한 동이가 나왔다.

“……감사합니다.”

염훈은 그렇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을 얻었다.

“카레?”

“카레라고?”

“카레 버섯이 있긴 한데, 그건 많이 먹으면 배탈 나는데.”

하플링들은 어느새 오두막 밖으로 나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를 은혁이 들었다.

“카레 버섯은 와인 버섯과 같이 볶으면 독성이 중화됩니다. 그리고 오래 끓이니까 괜찮습니다.”

은혁은 자신이 모은 버섯을 전부 카레 재료로 볶았다.

특히, 고기 맛이 나는 고기 버섯을 통째로 굽고, 그 육즙(?)에 따로 챙겨 온 양파도 함께 볶았다.

“카레에 다른 재료는 다 빼더라도 양파만은 못 뺀다.”

치이익…….

재료가 먹음직스럽게 볶였고, 가히 천상의 향기라 할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풍겼다.

“일단 냄비부터 꺼내고.”

은혁은 100명 분량의 냄비를 꺼냈다.

“얍.”

방금 구운 큼직한 고기 버섯 덩어리를 허공에 띄우더니.

슈슈슉!

청염백광태도를 승화시켜, 엄청난 열의 검기로 고기 버섯을 썰었다.

썰린 단면은 살짝 타서 바삭거렸고, 속은 부드러웠다.

터텅! 터텅!

재료가 텅 빈 냄비 속으로 들어갔다.

“여러분. 장작 좀 모아주세요.”

은혁이 손뼉을 짝짝 치자 하플링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요리용 모닥불을 만들어 줬다.

“읏차.”

덜컹.

커다란 냄비를 모닥불 좌우에 깔아 둔 돌 위에 얹었다.

“[화염 방사].”

화륵!

냄비 밑의 모닥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대로 두는 게 아니라 [화염 지배] 스킬로 화염의 온도와 크기를 조절했다.

“이대로 40분간 불 조절하면서 끓이면 끝!”

은혁은 만족스러워했다.

하플링들도 기대했다.

하지만 염훈은 걱정했다.

“은혁아. 미션 제한 시간이 30분인데? 이제 10분도 안 남았어.”

“음. 그래?”

“음 그래가 아니라, 바구니에 버섯을 채워야지? 40분 내내 요리만 만들 수는 없잖아?”

은혁은 요리를 만드느라 재료를 전부 썼다.

“하지만 너무 많이 채집하면 하플링들이 싫어하고, 시간도 어차피 부족해서.”

은혁이 그렇게 말한 순간.

“흠흠. 재미있는 일을 하시는군.”

하플링 NPC 버섯돌이가 걸어왔다.

맨 처음 바구니를 나눠 준 메인 미션 담당자였다.

“요리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하다고?”

“40분이요.”

“미션 제한 시간에 걸리시겠구려?”

“안타깝게도.”

“요리는 넉넉해 보이는군.”

“네. 그래서 말인데.”

“뭘 부탁하려는 건지는 알겠소. 후후후.”

버섯돌이는 웃으며 주변의 하플링 NPC들을 돌아봤다.

다들 친구 아니면 친척이었다.

“사정은 다들 들었겠지? 역대급 버섯 카레가 만들어진다고 하는군.”

꼴깍.

꼴깍.

하플링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기대했다.

“게다가 저 두 사람은 버섯 채집 윤리를 잘 지키면서 채집했어. 어떤가? 기회를 주고 싶은데. 찬성하나?”

“찬성!”

“좋아요!”

하플링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럼 거수로 투표!”

버섯돌이가 외쳤다.

-10명의 하플링이 찬성했습니다!

-23명의 하플링이 찬성했습니다!

……

……

-88명의 하플링이 찬성했습니다!

-95명의 하플링이 찬성했습니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 찬성했다.

“플레이어분들도 동의하시오?”

은혁과 염훈이 동의했다.

구성원 전체와 플레이어, 스테이지 관리자가 모두 동의한 순간.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습니다.

-하플링을 가호하는 성좌, 하프투스가 축복을 보내옵니다!

-플레이어의 미션 제한 시간이 원하는 만큼 연장되었습니다!

“오옷! 요리로 대동단결!”

염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아, 그럼!”

화르르르륵!!

은혁은 화끈하게 불을 지폈다.

“와, 엄청난 열이다.”

“굉장한데?”

“이 정도면 굳이 제한 시간 연장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니었을까……?”

부글부글부글……!

모든 재료가 뭉근하게 끓었다.

“자, 완성! 밥 가져와! 찬밥으로!!”

은혁이 외치자 하플링들은 각자 보관해 뒀던 찬밥을 가져왔다.

이 층의 하플링 마을도 쌀 문화권에 속했기에 쌀밥은 여기저기 넉넉했다.

“자아, 그럼 큰 국자로 한 국자씩.”

은혁은 큼직한 국자에 재료가 넉넉히 들어가도록 해서 부어줬다.

주르륵.

붉은 기가 도는 황금빛 카레.

고급 카레 전문점에서 파는 와인 넣고 끓인 카레와 비슷한 색깔이었다.

그 뜨거운 고급 카레가 찬밥 위에 얹히자, 열 교환이 일어나며 딱 먹기 좋은 온도가 됐다.

“으음……!”

버섯돌이가 첫 시식을 맡게 됐다.

“냠.”

입에 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헉.”

“눈빛이 무시무시하게 변했어.”

“버섯돌이 님의 눈빛이 갑자기 왜?”

하플링들이 놀랐다.

“그거라면 내가 설명하지.”

마을의 장로급 하플링이 나섰다.

“저 버섯돌이 녀석은 어릴 때부터 정말로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눈빛을 번뜩이는 체질이었지. 그래서 ‘눈 번뜩이는 미식가’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네!”

“오오.”

“우린 그것도 모르고.”

다들 눈빛이 무서운 버섯돌이에게 한 번 감탄하고, 맛있는 요리에 두 번 감탄했다.

-하플링 주민들의 호감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히든 미션이 개방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NO.

“YES.”

-금지된 버섯의 길이 개방되었습니다!

먼 곳에서 철컹 소리가 들리더니 길이 열렸다.

<30층 히든 미션 : 부패한 버섯 마물>

-목표 : 부패한 버섯 마물을 처치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생장의 원천.

-실패 시 페널티 : 증식하는 버섯 마물의 제물이 된다.

-제한 시간 : 1시간.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 ‘방호복’이 제공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버프 [헤이스트]가 제공됩니다!

“가자, 염훈.”

은혁은 헤비 체인 소드를 들어 올렸다.

“아, 나도 카레…….”

“걱정 마. 원래 막 만든 카레보다, 남아서 식은 카레 다시 끓여 먹는 게 더 맛있어. 갔다 와서 먹자.”

은혁은 염훈을 달래서 이동했다.

* * *

평소에는 막혀 있는, 아름다운 버섯 마을의 뒷길.

하플링 마을로부터 강함과 선함을 모두 인정받아야만 자동으로 열리는 길이다.

은혁과 염훈은 그 길을 걸었다.

“조용하군.”

새 소리, 벌레 소리조차 없었다.

위험한 곳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만이 고조됐다.

“그나저나 이 방호복 엄청 갑갑하네.”

염훈이 투덜거렸고, 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린 없어도 되는데.”

은혁이야 그린 링이 있었고, 염훈도 어지간한 독성 공기에는 꿈쩍도 안 한다.

그래도 상대해야 할 존재는 위험한 존재였기에 두 사람은 방호복을 입었다.

멈칫.

앞서가던 은혁이 멈췄다.

“왜 멈춰?”

“다 왔어.”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다.

썩은 낙엽이 조금 쌓여 있다는 것이 특이할 뿐.

“일어나라.”

은혁이 오만한 어조로 명령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귀찮네.”

은혁은 만능 사전을 꺼냈다.

“만능 사전에 담긴 힘을 공유하겠다.”

간단한 선언을 한 뒤 염훈에게 건넸다.

그러자 만능 사전에 담긴 권능이 염훈에게도 전달됐다.

만능 사전의 주인인 은혁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염훈도 고대어를 듣고 이해하는 게 가능해졌다.

“거기 적힌 고대어로 ‘일어나라’라고 말해줘.”

“내가?”

“길드장인 네가 말하는 게 상대의 위엄을 존중하는 거니까.”

“그냥 적힌 대로 말하면 돼?”

“그냥 말해보고, 안 되면 귀찮지만 빅 썬더로 [홀리 썬더]를 써서 신성력 방출하면서 말해.”

“음. 그럼.”

염훈은 위엄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헛기침을 좀 했다.

-거 시끄럽군.

그때,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 고대어로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부글부글…….

공터처럼 보인 건 매우 긴 과거에 부패한 부엽토였고, 악취조차 더 이상 나지 않는 깊은 늪으로 변해 있었다.

그 밑에서 부패한 버섯 마물이 몸을 일으켰다.

오두막 5, 6채를 합친 것과 같은 크기의 몸체를 지닌 존재는 괴물 그 자체였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 부패한 버섯 마물이 나타났습니다!

“읏.”

염훈은 자기도 모르게 무기를 움켜쥐었다.

지금까지 상대해 온 몰락한 지고의 위상 중 가장 강한 적이었다.

-무엇을 원하나?

“대화.”

-대화 좋지. 했으니까 이제 꺼져.

“좀 더 긴 대화.”

그러자 부패한 버섯 마물이 불쾌한 날숨을 내뱉었다.

오래된 송로 버섯 냄새가 났다.

-네놈들은 내가 원하는 걸 갖고 있지 않아. 대화할 바에 자는 게 낫지.

“천만에! 우린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안다!”

-호오?

부패한 버섯 마물이 흥미를 보였다.

-여기까지 온 자들 중, 내가 정말 원하는 걸 아는 자는 없었다.

거의 자부심마저 느껴질 정도의 목소리였다.

그걸 들은 염훈도 동의했다.

“하긴, 그렇겠지. 엄청난 존재이니, 원하는 것도 엄청난 거겠지.”

-흐흐. 그러하다.

“만약 네가 정말 원하는 걸 맞추면, 우리와 진지하게 거래를 할 건가?”

-흐음. 재밌군. 만약 맞추지 못하면?

“그때는 스스로 내 몸을 이 늪에 던지겠다.”

-좋다. 그럼 묻겠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셋을 셀 동안 맞춰라.

은혁은 지체 없이 답했다.

“돈.”

-…….

“더 정확히는 금화. 아주 많은 금화를 원하지. 정답 아닌가?”

“야, 은혁아. 지고의 위상이 몰락했다지만 한낱 돈 같은 걸 바랄 리가 없…….”

-정답이다.

“…….”

염훈은 어이없어했고 은혁은 히죽 웃었다.

-어떻게 알았지?

“글쎄. 여긴 100층탑이니까.”

놀랍게도, 황금은 인간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고위급 존재에게도 얼마간 쓸모가 있었다.

드래곤 같은 경우는, 사람이 영양제 삼키듯이 황금을 씹어 삼켜서 자신을 강화시킨다.

지고의 위상이나 성좌의 경우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황금을 소재로 이적을 일으키거나 관리국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

-나는 과거에 큰 전쟁에서 지고, 이곳에 몸을 숨겼다. 회복을 위해 자다가 깨어 보니, 내 몸에 버섯이 피어 있더군. 그대로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내 몸 전체가 버섯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본명마저 잊어버리고, ‘부패한 버섯 마물’이라고만 불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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