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 미스터리 극장 (2)
알렉스가 부들부들 손을 떨며 한 명을 가리키려 했다.
하지만 독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는지, 차마 한 명을 지명하지 못하고 그만 의식을 잃었다.
“맙소사! 스승님!!”
“오, 맙소사! 독살 사건이라니.”
“어서 119에 신고를!”
찰스가 전화기를 들었지만 전화선은 범인이 이미 끊어 둔 상태.
브릭스와 데니얼은 의식을 잃은 알렉스를 보살폈는데, 알렉스는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채 위태롭게 숨을 쉬고 있었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내 차로 가자!”
데니얼이 차 키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브릭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렇게 폭설이 내리는데 차를 타고 병원까지 가긴 무리야.”
“차 바퀴에 체인을 감아놨으니까 가능해.”
데니얼의 차는 사륜구동이었고, 폭설에 대비해서 미리 바퀴에 체인을 감아두었다.
데니얼의 차라면 환자를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중에 차가 멈추기라도 하면 어쩌려 그래?”
“그럼 어쩌자고!”
그때였다.
쾅쾅쾅!
누군가가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밖에 누구요?!”
“탐정과 조수입니다!”
염훈과 은혁이었다.
브릭스, 찰스, 데니얼은 어리둥절해하며 서로를 돌아보다가 문을 열었다.
벌컥.
“흐와아, 눈이 엄청나군요.”
갑옷 입은 염훈이 호들갑 떨며 들어왔다.
은혁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는데, ‘수상한 행동 하는 새끼가 범인임.’ 하는 눈빛이었다.
“어, 음, 당신들은?”
브릭스가 묻자 염훈이 자랑스레 말했다.
“저는 코스프레 탐정 염훈! 이쪽은 조수인 강은혁입니다.”
염훈은 어느새 탐정 역할에 빠졌는지, 자신을 자랑스레 소개했다.
“오오, 들어본 적 있습니다.”
“성기사 코스프레를 하는 명탐정이라죠?”
시나리오 속 세계에서는 염훈이 실제 성기사가 아니라, 성기사 콘셉트의 명탐정으로 알려져 있었다.
“흠흠. 그렇다고 치죠. 어, 음, 조수?”
“일단 피해자부터.”
조수가 된 은혁은 바닥에 누워 있는 알렉스 곁으로 갔다.
“조심하세요. 아직 살아 계시지만 위태롭습니다.”
“독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은혁은 그 말에 그린 링을 빼서 알렉스의 손가락에 끼워줬다.
“뭡니까, 그 반지는?”
“해독 기능이 있습니다.”
“풉! 말도 안 돼.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그런 게 있을 리가.”
미스터리 드라마 속 캐릭터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거, 좀 조용히 하시죠.”
그린 링을 착용시킨 지 1분이 지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알렉스는 의식을 회복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그린 링의 효과는 엄청 좋은 편인데…… 설마!’
은혁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장착 아이템은 특수한 시나리오 속 캐릭터에게는 안 통하는 건가.’
이곳은 100층탑이면서도, 설정이 완전히 다른 시나리오 속의 세계였다.
아이템이 효과가 다른 등장인물에게는 안 통할 수도 있었다.
‘좀 더 신중해야겠군.’
은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린 링을 일단 회수했다.
그때, 염훈이 물었다.
“가장 가까운 병원 위치는?!”
“그, 그야 남동쪽에 있는 세인트 헬레나 병원입니다.”
“그럼 다녀오죠. 하앗!”
염훈은 [신성한 날개]를 발동했다.
“엇?!”
그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경악했다.
심지어는 죽어가던 알렉스조차 눈을 크게 떴다.
“어, 어떻게?”
“지크리엘의 갑옷에 담긴 힘입니다. 안심하십쇼, 어르신.”
“아니, 그걸로 설명이 되진 않는 것 같은데.”
“자, 갑니다! 하앗!!”
파앗!
염훈은 알렉스를 둘러업고, [신성한 날개]의 힘으로 병원으로 날아갔다.
“…….”
“…….”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말을 잃었다.
“마법이라니.”
“그런 걸 인정하란 말인가.”
“오, 맙소사.”
세 사람은 현실을 받아들이느라 애를 썼다.
“그럼 그동안 추리는 제가 맡죠.”
은혁이 말했다.
“일단 정황부터 알아야겠습니다. 여러분도 혼란스러우시겠지만 저도 마찬가지이니, 시간 순서대로 가죠.”
“으음, 그러시죠.”
약 3시간 전.
브릭스, 찰스, 데니얼이 각자의 차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눈발은 약했다고 한다.
“잠깐, 왜 모인 거죠?”
“아, 알렉스 선생님으로부터 비전의 요리법을 전수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저희들의 요리 선생님이거든요.”
브릭스, 찰스, 데니얼은 모두 요리사였다.
그리고 알렉스가 스승이었다.
노쇠한 알렉스는 공식적인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정하기로 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요리 비법과 함께 후계자를 발표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아하, 그런데 식사 도중 이런 일이…….”
은혁은 납득했다.
“여러분은 동료이면서 서로 경쟁자인 관계이시겠군요?”
은혁이 묻자, 브릭스, 찰스, 데니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습니다.”
브릭스가 말했다.
“하지만 저희들 사이는 좋습니다.”
찰스가 말했다.
“…….”
딱 한 사람, 데니얼만은 입을 다물었다.
“데니얼 님? 왜 답이 없으신지요?”
“솔직히, 저희들은 사이가 그리 좋진 않습니다.”
데니얼이 말했다.
“그러나 저희들이 사이가 안 좋은 건, 전부 스승님, 알렉스 때문입니다.”
데니얼이 말하자 브릭스와 찰스가 펄쩍 뛰었다.
“데니얼! 그걸 말하면……!”
“이분은 탐정의 조수야. 다 알고 오셨을 거다. 그렇죠, 조수님?”
“음. 물론입니다.”
물론, 은혁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브릭스와 찰스도 사실을 털어놨다.
“사실, 알렉스 스승님은 우리를 경쟁시키고 이간질하며, 싼값에 부려먹었습니다.”
“맞습니다. 후계자 자리를 미끼로, 우리끼리 서로 경쟁하게 만든 거죠. 솔직히,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브릭스와 찰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렉스 님의 인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라고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은혁이 묻자, 다들 무언의 긍정을 표했다.
“잘 알겠습니다. 이제 알리바이에 대해 묻죠.”
놀랍게도, 알리바이는 모두에게 있었다.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했고, 다 함께 요리를 만들었다.
“독은 와인에 들어 있었죠?”
“그렇습니다. 와인을 드시고 피를 토하셨죠.”
“그전에 다른 음식을 먹은 것은?”
“애피타이저를 드셨는데, 다 함께 먹었습니다. 애피타이저에는 절대 독이 없었습니다.”
“와인을 가져온 사람은?”
“스승님의 와인 셀러에서, 스승님께서 직접 꺼내오셨습니다.”
“여러분도 다 와인을 드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럼 독은 와인병이 아닌, 알렉스 님의 와인 ‘잔’ 속에 있었다고 봐야겠군요.”
은혁은 그렇게 말하더니 알렉스의 와인 잔을 들었다.
그리고 알렉스의 잔에 남은 와인을 눈으로 보는가 싶더니.
꿀꺽!
단숨에 원샷했다.
“으악?!”
“무슨 짓입니까!!”
다들 놀라서 한마디 했지만 은혁은 태연했다.
그 상태로 1분간 있었다.
“음. 과연 그렇군. 여기도 독이 없습니다.”
사실, 은혁은 그린 링을 해제한 상태로 와인을 마셨다.
설령 독이 있다 해도, 다시 그린 링을 장착하면 금방 해독될 것이니 괜찮을 터였으므로.
하지만 그래도 중독되지 않았다.
“와인 잔에도 독이 없다면, 이상하군요.”
세 사람은 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답은 하나입니다. 알렉스 님의 방이 어디죠?”
“2층입니다.”
“다 같이 갑시다.”
은혁은 알렉스의 방으로 들어갔다.
간소한 노인의 방에 눈에 띄는 금고가 하나 있었다.
“저 금고 안에 비전의 요리법이 담겨 있습니다.”
“흠.”
은혁은 금고를 통째로 들었다.
“앗, 무슨 짓을.”
“이런 짓.”
계단으로 들고 가더니 힘껏 던져 버렸다.
빠칵!!
작은 금고는 박살 났다.
근력 스탯이 상당한 은혁이었기에 별다른 스킬이 없어도 잘 던지면 부수는 게 가능했다.
“아아, 그런!”
“금고를 부수다니!”
“이건 용서 못 할 짓이야!”
브릭스, 찰스, 데니얼이 화를 냈지만 은혁은 태연하게 금고 내용물을 꺼내 보였다.
낡은 요리 비법이 담긴 노트였다.
“이게 여러분이 말하는 비전의 요리법입니까?”
파라락.
은혁이 노트를 넘기며 보여줬다.
“앗!”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다.
“이게 진실입니다.”
은혁이 설명했다.
“알렉스는 그동안 비전을 미끼로 여러분을 부려 먹었을 뿐, 실제로 여러분에게 비전을 전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비전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럼 오늘의 독살 소동은 무슨 뜻입니까?”
“아마 이런 거겠지요. 그분은 실제로 죽을 생각도 없었을 겁니다. 자작극을 벌여서 죽을 뻔한 다음, 병원에 가기 전에 기적적으로 스스로 회복한 척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는 거죠.”
은혁이 노인의 말투로 말했다.
“너희들 중에 날 독살하려는 자가 있다. 눈이 그치기 전까지 범인이 나오지 않으면 누구도 비전을 얻지 못하고 후계자가 되지 못하리라. 만약 눈이 그쳐서 길이 열려도 범인이 안 나오면? 비전의 요리법을 불태우고 너희 모두를 파문하리라!”
“아아……!”
“물론, 여러분 중에는 실제로 범인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서로 의심에 빠지겠지요? 아마 여러분들은 서로를 증오하게 된 끝에, 어쩌면…….”
은혁은 성큼성큼 브릭스, 찰스, 데니얼의 침실을 뒤졌다.
“이런 것들이 숨겨져 있군요.”
“앗!”
객실 곳곳에는 흉기가 숨겨져 있었다.
단검, 밧줄, 활과 화살 등등.
“이, 이건?!”
“난 이런 걸 갖고 온 적 없어!”
“나도! 그런데 이런 게 우리 객실에 숨겨져 있었다는 건……!”
세 사람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고, 은혁이 대신 말해줬다.
“서로의 갈등을 부추긴 뒤, 서로를 죽이도록 하는 것…… 그것이 알렉스의 본래 계획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그 정도가 아니라면? 이곳에 흉기를 일일이 배치한 게 누구란 말입니까?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이곳의 주인인 알렉스 말곤 없죠.”
털썩!
세 사람은 주저앉고 말았다.
“이해가 안 갑니다. 알렉스 스승님은 왜 이런 짓을……?”
“그것은 알 수 없지요. 다만 광기 넘치는 동기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광기 넘치는 동기……?”
“여러분에 대한 미움과 질투겠지요.”
“설마요. 저희들은 알렉스 스승님의 원한을 살 짓은 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실력 면에서도 알렉스 스승님이 저희들보다 위인데요.”
“현시점에서는 그렇겠지요. 하지만 알렉스 님은 재능 있는 여러분이 알렉스를 뛰어넘는 최고의 요리사가 될 것임을 미리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미리 제자로 거둔 뒤, 서로 경쟁하게 만들어서 여러분의 재능을 깎아내려 했겠지요. 실제로, 그분은 여러분에게 무리한 경쟁을 유도하지 않았습니까?”
“…….”
“알렉스의 본래 계획은 그렇게 여러분을 경쟁시켜서 망가뜨리는 것이었겠지요. 여러분이 망가지면? ‘내 비전의 요리법을 배울 자격이 없다!’라면서 쫓아냈을 겁니다. 하지만 알렉스 님조차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경쟁을 통해 더더욱 실력이 발전해 버렸고, 서로를 증오하지 않는 선의의 경쟁자가 된 겁니다.”
“아……!”
“그러자 알렉스는 절박함을 느꼈을 겁니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비전으로 제자 셋을 유인해서, 경쟁시키고, 서로를 망가뜨리려 했는데 셋 모두 우수한 요리사로 거듭나 버린 겁니다. 이제 와서 하찮은 요리법을 전수해 주면, 여러분 셋은 알렉스에게 크게 화를 내고 알렉스를 사기꾼으로 규정했을 겁니다.”
실제로 그랬다.
이 세 사람이, 백지로 된 비전 요리책을 봤을 때의 실망과 분노는 진심이었다.
“절박함을 느낀 알렉스는 그리하여 독살 자작극을 벌여, 절박함을 해소하고, 본래 계획대로 여러분을 서로 경쟁시켜 망가뜨리려 한 겁니다. 그게 범행 동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