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144화 (144/434)

144화 : 악어의 강 (4)

‘하지만 그뿐이다.’

악어 왕은 냉정하게 평가했다.

‘발판을 마련했다 해도 나와 대등하게 싸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머전시 보트]조차도 결국은 강물 위에 떠 있는 것일 뿐.

“한 번 더 날려주지.”

스으윽.

악어 왕은 위협적으로 양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양손으로 쳐서 네놈들을 출발점까지 날려 보내주마.”

악어 왕은 양손으로 수면을 쳐서, 그 충격파로 모조리 날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덜컥.

“음?”

어느새 작은 낚싯바늘이 악어 왕의 팔꿈치 뒤편에 걸려 있었다.

“눈치챘나?”

은혁이 히죽 웃었다.

[이머전시 보트] 위에 있는 은혁은 [그림자 분신 3.0]으로 만든 가짜였다.

[이머전시 보트]를 연속 발동하는 모습을 악어 왕에게 보여준 것은 단지 시선을 끌기 위해서였고, 진짜 목적은 [그림자 도약]으로 단숨에 악어 왕의 바로 뒤편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몰래 차원의 낚싯대의 바늘을, 악어 왕의 비늘 틈에 꽂는 데 성공했다.

“간다! [그림자의 꼭두각시]!!”

근거리의 그림자를 자유롭게 조종하는 [그림자 지배].

특정 플레이어나 몬스터의 그림자를 귀속시켜 그 힘을 뺏어 쓰는 [그림자 결속].

그리고 차원을 일부 왜곡하거나 연결하는 차원의 낚싯대.

이것들을 융합한 퓨전 스킬이 [그림자의 꼭두각시] 스킬이었다.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5%…….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7%…….

악어 왕의 덩치가 무척 크다 보니 동기화율에 걸리는 시간이 무척 길었다.

“이까짓……!”

악어 왕이 낚싯바늘을 뽑아내려 한 순간.

“얍!”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를 조작해서 낚싯줄을 줄어들게 했다.

낚싯대를 잡고 있는 은혁이 낚싯바늘 쪽으로 끌려갔다.

키유웅!

은혁은 낚싯대를 잡고 단숨에 악어 왕의 등 뒤로 올라탈 수 있었다.

“덩치가 크니 패기도 좋네. 넌 이미 반쯤 죽었다.”

“뭐?”

은혁은 주먹으로 대답했다.

“[무아연환격]. 오른손만!”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의 좌우 연타를 자랑하는 [무아연환격]이지만, 이 경우에는 왼손이 낚싯대를 잡고 있어서 오른손만 썼다.

뻐억! 뻐억! 뻐억! 뻐억!

연타 속도는 절반으로 줄었지만 한 방 한 방이 악어 왕의 등 비늘을 뚫고 깊이 박혔다.

“윽……?”

악어 왕은 수백 년간 살아왔지만, 자기 등짝에 올라타서 주먹을 갈기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문제는 그 주먹에 맞는 횟수가 쌓일수록, 의외로 아프다는 점이었다.

“으와아아아아!!!”

은혁의 주먹이 악어 왕의 등 비늘에 찢어졌다.

연타 횟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만큼, 한 발 한 발에 필살의 의지를 담았다.

퍼버버버버벅……!!

투투툭……!

자기 주먹에서 튄 피가 얼굴에 튀었지만,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뚫는다!! 뚫는다!! 뚫는다!!”

자신의 주먹이 악어 왕의 등가죽을 능히 뚫을 수 있다는 자기 확신만이 충만했다.

“이, 이 미친놈!!”

악어 왕은 오른 주먹으로 자기 등짝을 후려치려 했다.

은혁은 타이밍을 예측하고 몸을 날렸다.

광전사처럼 싸우다가도, 피할 때가 되면 냉철하게 타이밍 재고 피하는 게 은혁의 특기였다.

끼기긱!

차원의 낚싯대를 잡고 타잔처럼 크게 스윙바이해서, 이번에는 악어 왕의 가슴 쪽으로 올라탔다.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16%…….

-[그림자의 꼭두각시] 동기화율 20%…….

동기화율이 빨라졌다.

[그림자 결속]은 이해도가 높을수록 발동 위력과 속도가 상승한다.

그리고 은혁은 회귀 지식을 지닌 데다가, 적과 싸우면서 이해도를 높이는 타입이라 극단적으로 동기화율의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큭!”

악어 왕은 왼팔에 박힌 낚싯바늘을 먼저 빼거나 은혁을 먼저 죽이거나, 어느 쪽이건 빨리 해야 했다.

하지만 염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염훈!”

“알고 있다! [홀리 라이트닝]!!”

빠지지지직!!

신성력과 번개의 힘이 악어 왕을 강타했다.

“크우욱……!!”

악어 왕의 가죽은 두꺼웠지만, 그래도 몸을 강물에 담그고 있었다.

따라서 [홀리 라이트닝]이 신성력에 기반한 전기 공격이니만큼 깊게 통했다.

‘이 두 놈 다 보통이 아니군.’

악어 왕은 내심 이 둘을 인정하게 됐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크와아악!!”

악어 왕은 포효를 내지르더니.

첨벙!!

아예 강 밑으로 도주하려 했다.

“큭?!”

낚싯대를 쥔 은혁은 [이머전시 보트] 중 하나 위에 착지한 뒤, 서둘러서 낚싯줄을 길게 늘였다.

차원의 낚싯대에 담긴 힘을 발동하면 낚싯바늘이 차원 하나를 뛰어넘게 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강물 밑은 악어 왕의 영역인 데다가, 악어 왕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물을 흩트리기 때문에 쉽진 않았다.

“크하하하!! 분하면 밑으로 내려와 봐라!!”

악어 왕이 물속에서 외쳤다.

강물 아래에서 외친 건데도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염훈! [2초 무적] 잠깐 빌린다!”

“좋을 대로!”

은혁은 [그림자 결속]으로 염훈의 [2초 무적]을 빌렸다.

“[2초 무적]과 차원의 낚싯대의 힘을 융합시킨다!!”

-히든 이펙트 발동!

“[2초 무적 낚싯대]!!”

번쩍!!

이제 은혁의 낚싯대는 한 번 정한 낚시 대상을 절대 놓치지 않고, 절대 끌려가지 않는 무적의 낚싯대가 됐다.

딱 2초 동안이었지만.

콰직!!

악어 왕이 물속에서 급정지당했다.

빠르게 강물로 내려가던 도중 당한 거라 충격은 엄청났다.

찌지지지직……!!

“……!!”

악어 왕은 비명도 못 질렀다.

왼팔이 통째로 찢겨 나갔다.

그리고 낚싯바늘은 악랄하게도 상처를 넓히면서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악어 왕의 뼈에까지 닿았다.

“크하하!! 역시 물가에서 싸울 때는 낚싯대가 제일이군!!”

투지에 불이 붙은 은혁은 광포하게 웃더니 [그림자 분신 3.0]을 다수 소환했다.

파바밧!!

“나의 분신들이여! 나를 도와라!!”

은혁은 악어 왕이 멈칫한 동안 차원의 낚싯대를 저격 모드로 전환했고, 분신들이 달려와서 힘을 보탰다.

뜨드드드드……!

왼팔이 길게 찢긴 악어 왕은 속수무책으로 끌려 올라왔다.

“크윽……!”

악어 왕의 왼팔과 상체가 끌려 올라왔다.

“지금이다, 염훈! [홀리 라이트닝]을 놈의 상처에 때려 박아!!”

쇄애액!

염훈이 급강하해서 다가갔지만.

멈칫.

염훈은 상처를 공격하지 않았다.

“[신성한 일격].”

그나마도 낚싯바늘만 노려서 올려 쳤다.

툭!

낚싯바늘이 악어 왕의 상처에서 빠진 순간.

“[상급 치유].”

파앗!!

상처를 빠르게 치료해줬다.

첨벙!!!

악어 왕은 얼른 거리를 벌렸다.

“뭐냐. 왜 날 회복시킨 건가.”

악어 왕이 묻자, 염훈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염훈은 악어 왕 대신 은혁을 돌아보며 답했다.

“말이 안 통하는 놈도 아니고, 함부로 사람 죽이는 괴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죽이지 않았는데.”

“흠.”

은혁은 스킬을 해제하며 입맛을 다셨다.

사실 죽이지 않고 설득하는 게 은혁의 본래 계획이긴 했다.

악어 왕이 자신을 깔보는 태도 때문에 반쯤 죽이거나 완전히 죽이거나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꿨을 뿐.

“뭐, 대화로 해결되면 그게 가장 좋긴 하지. 잘했다.”

은혁은 염훈에게 말한 뒤 악어 왕을 돌아봤다.

“어때? 더 싸울래? 아니면 우리 실력을 인정할 건가?”

“……인정하겠다.”

악어 왕의 오만한 목소리도 조금 누그러졌다.

“무력과 명예를 겸비한 자들이여. 그대들의 용력에 경의를 표한다.”

악어 왕은 염훈과 은혁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그리고 은혁에게 질문했다.

“아까 말하려던 두 번째 제안이 무엇인가? 열린 마음으로 듣겠노라.”

“흠흠. 이 부탁이 좀 센 부탁인데.”

“말해보라.”

“잊힌 강의 마정석.”

“뭣?!”

첨벙!!

악어 왕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으로 강물을 쳤다.

은혁은 물을 좀 뒤집어썼지만 화를 내진 않았다.

‘갑자기 풀엑셀을 밟는 요구였으니까 하는 수 없지.’

“다시 말하지. ‘잊힌 강의 마정석’을 줘라. 그럼 떠나지.”

사실 이 강은, 지금은 이름도 잊힌 강의 신의 유해다.

지고의 위상과 성좌의 모호한 경계에 위치한 강의 신은 스스로 삶을 매듭짓기로 했고, 이곳에 몸을 뉘었던 것이다.

그 강대한 존재의 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강이 되었다.

그 존재는 반쯤은 지고의 위상이었기에 체내에 강대한 네임드 마정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름 잊힌 그 존재의 이름을 따서, ‘잊힌 강의 마정석’이라고만 불린다.

“그게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지?”

“소문이랑 뭐 그런 거지.”

은혁이 강 전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잊힌 강의 마정석에 담긴 힘이 이따금 흘러나오기 때문에 악어는 몇 배로 커졌고, 일반적인 급류는 살인적인 급류가 된 것이다.

그에 관한 소문은 은혁이 회귀하기 전에도 있었고, 사실 소문보다는, 스테이지에 얽힌 전설이나 민담 같은 것이었다.

“으음…….”

또한 지금 이 강을 지키는 악어 왕은 그 존재의 부하였다.

악어 왕은 깊은 강물 속에 잠든 채, 자신이 섬기던 존재가 남긴 유일한 물질인 ‘잊힌 강의 마정석’을 수호하기로 한 존재다.

“내 말 안 들리냐? 잊힌 강의 마정석 달라고.”

“기가 막혀서 대답을 못 했을 뿐이다. 절대 못 준다.”

“왜?”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이름 없는 강의 신의 부하였다.”

“뭐, 그랬겠지.”

“그걸 알면서도, 나보고 그분의 마정석을 네놈에게 그냥 주라고? 아무리 인간이 강해질수록 오만해지는 족속들이라 하지만, 너무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은혁은 그 질문에 즉답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돌려줬다.

“네가 섬기던 그분의 이름은?”

“모른다. 안다고 해도 알려줄 수 없다. 그분께서는 참된 무소유의 깨달음을 얻고 몸을 뉘셨다.”

그 깨달음의 힘으로, 강의 신의 유해는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로 변화한 것이다.

즉, 이 스테이지 자체가 그의 묘지이며, 그 가운데 길게 이어지는 빠른 강물이 그의 유해다.

“굉장하네…….”

조용히 있던 염훈이 감탄했다.

“모든 소유를 끊고서 그 자신이 끝없이 흐르는 강이 되어 버린 건가. 그건 확실히 좀 위대하게 느껴지네.”

염훈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악어 왕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표정에 우쭐함이 조금 드러났다.

은혁은 얼른 말했다.

“악어 왕이여.”

“뭔가?”

“네가 섬기던 존재는, 꺾일 줄 모르는 인간 성기사마저 감탄시키는 존재가 되었지. 자기 존재를 포함한 모든 것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말이야.”

“나도 그것이 그분의 위대함이라 생각한다.”

“그러하다면, 그분이 남기고 간 마지막 물건을 왜 수호하는 거냐?”

“뭐……!”

“그야 공경심으로 섬기는 거겠지. 하지만 그게 오히려 그분의 위대함의 완성을, 그 마지막 한 걸음을 네가 멋대로 막아서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으음……!”

사실, 악어 왕이 보이는 딜레마는 위인을 추종하는 자들 대부분이 보이는 딜레마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위대한 위인들 대다수는 자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 시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이므로.

하지만 얄궂게도, 그 사실을 온전히 인정한 철학자, 종교인, 지도자가 오히려 후손들에게 대대로 섬겨지곤 한다.

악어 왕 또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악어 왕이여. 지금 네가 보이는 태도는 전형적인 인간이 보이는 태도다. 지금이 그분이 마지막으로 남긴 걸 놓아 버려야 할 때야.”

“하지만….”

악어 왕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절절한 어조로 말했다.

“어찌 그분의 마지막 흔적마저 넘기라는 것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