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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45화 (145/434)

145화 : 악어의 강 클리어

“차마 그럴 수 없다는 거지? 그렇다면 묘안이 있다.”

은혁은 사악한 웃음을 감춘 채 말했다.

“난 농업을 할 생각이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들어봐. 네가 나한테 잊힌 강의 마정석을 주면, 그걸 농업용수로만 쓸 거다.”

“허…….”

악어 왕은 감탄하면서도, 이 위대한 마정석을 농사에 쓴다니 좀 실망한 것 같은 표정도 지었다.

“잊힌 강의 마정석의 힘으로 농업용수를 무한정 생산하고, 그것으로 농사를 지어 농작물을 적절한 가격에 팔면, 이를 사람들이 먹고 생명을 영위한다! 이 얼마나 위대한 생명의 순환인가!”

“으음!”

“위대한 잊힌 강의 신이 남긴 힘은, 사람들의 혈액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오오! 실로 그러하다!”

악어 왕은 당장 강 밑으로 내려가서 잊힌 강의 마정석을 갖고 올 기세였다.

하지만.

멈칫.

악어 왕은 은혁을 미심쩍게 바라봤다.

대화가 너무 부드럽게 이어지다 보니, 갑자기 경계심이 든 것이다.

“저, 정말 농업용으로만 쓸 건가?”

“현재로선 그렇다. 주로 연금술 재료로 쓰일 버섯을 재배하고, 진귀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도 심고…… 하여간 진귀한 나무를 키울 때도 쓸 건데, 근본적으로는 농사용인 게 맞아.”

“…….”

“맹세라도 할까? 농작물과 나무를 키우는 용도로 쓰겠다고 맹세하지. 스탯창 열고 이름 걸고 [맹세]까지 하면 믿겠나?”

“흐음, 그렇게 까진 할 필요 없고…….”

악어 왕은 염훈 쪽을 돌아봤다.

염훈은 은혁을 5초쯤 물끄러미 보더니 악어 왕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뭐, 맹세한다고 할 정도면 거짓말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염훈은 은혁을 한 번 더 5초쯤 쳐다봤다.

“뭔가 꼼수를 계획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농업용으로 쓴다는 것 자체는 진실 같아. 은혁아, 정말로 잊힌 강의 마정석 얻으면, 그 물은 농업용으로 쓸 거지?”

그 말에 은혁은 피식 웃었다.

“야, 염훈. 너는 농경지 레벨 올리는 걸 직접 했으면서 못 믿냐? 농업용이 아니면 왜 농경지 레벨을 키우라고 했겠냐?”

은혁이 지적하자, 염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염훈이 직접 농지를 개간한 장본인이므로 납득했다.

“농사를 짓겠다는 목적 자체는 틀림이 없는 거 같네. 악어 왕이여! 친구인 내가 그 사실만은 보장하지.”

악어 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믿겠다.”

악어 왕은 강물 밑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은혁은 [긴급 수리]로 뗏목을 제대로 다시 수리했다.

은혁과 염훈은 그 위에서 기다렸다.

잠시 뒤, 다시 강물 표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촤아아……!

거대 악어가 물을 흩뿌리며 올라왔다.

“가져가라.”

잊힌 강의 마정석은 악어 왕의 손바닥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소형차와 맞먹는 크기였다.

“인벤토리창에 겨우 들어가겠군. 끄응.”

은혁은 그것을 인벤토리창에 넣었다.

그 순간.

“오, 오오오오……!”

악어 왕은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하늘을 바라봤다.

“그분과 나의 마지막 유대가 지금 끊겼구나.”

악어 왕은 슬픔과 만족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아, 마지막 소유의 사슬까지 벗어났으니, 이제 나는 떠난다!”

기이이잉……!

악어 왕의 몸이 떨리더니.

-악어 왕이 드래곤으로 각성합니다!

-악어 왕이 드래곤 컬트의 초대를 받습니다!

-악어 왕의 소속이 ‘언티피컬 그룹’에 속하게 됩니다!

강력한 힘과 오랜 세월, 그리고 기묘한 경험을 마친 악어 왕은 특수한 드래곤으로 변한 것이다.

-으하하하하! 잘 있거라, 인간들아! 나는 떠난다!!

단순 육성이 아닌, 보다 격이 높은 존재답게 시스템 메시지와 결합된 목소리로 선언했다.

촤악!

그리고 승천했다.

“허.”

“이런 경우도 있네.”

은혁과 염훈은 감탄 반 어이없음 반으로, 멀리 떠나는 악어 왕을 바라봤다.

-역대 최초로, 비드래곤을 드래곤으로 각성시키는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괴수의 인도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괴수 친화력]을 획득하셨습니다!

‘이거 좋네.’

보스 몬스터 중에는 말이 통하는 존재가 때때로 있는데, 그래도 대화가 쉽지 않다.

대화하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찍어 죽이려는 보스 몬스터가 대다수니까.

하지만 업적 달성으로 [괴수 친화력] 패시브 스킬이 생겼으니, 다음부터는 대화 시작이 좀 더 편해지리라.

“은혁아. 그럼 저 악어 왕은 드래곤 컬트인가 하는 쪽으로 들어가는 건가?”

이제, 염훈은 은혁이 모르는 게 거의 없다는 걸 무의식중에 받아들여서인지 태연하게 질문했다.

하지만 은혁은 방심하지 않고 적당히 넘겼다.

“음. 나야 잘 모르지만 아마 그렇겠지.”

국어책 읽기 같은 목소리였지만 염훈은 넘어갔다.

“자, 그럼 가볼까!”

[긴급 수리]로 재구성한 뗏목은, 추적팀의 뗏목 잔해와 은혁의 뗏목 잔해가 뒤섞인 것이었는데, 그게 묘하게 시너지 효과를 내서 더 빨라졌다.

은혁이 노를 잡으려는 순간, 염훈이 대신 잡았다.

“물에 빠졌다 올라와서 그런지 덜 무섭네. 도착점까지는 내가 운행할게.”

“나야 좋지. 그럼 가는 김에 저기 악어 사체들 쪽에 들렀다 가자.”

은혁이 가리킨 곳에는 악어 좀비가 되었다가 다시 좀비화가 풀리고 죽은 악어 사체가 잔뜩 떠 있었다.

은혁은 염훈을 시켜서 근처로 가더니.

“[재료 적출]!”

파앗!

네임드 마정석에 비하면 작고 순도도 떨어지는 악어의 마정석을 잔뜩 채집했다.

-대장장이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대장장이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대장장이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대장장이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대장장이 숙련도 : 84%.

“후후. 악어가죽은 한 번 좀비화가 됐다가 풀린지라 상품성이 없군. 버리고 가자. 출발!”

촤악!

촤아악……!

빠르게 강을 통과하니 도착지가 보였다.

도착지는 수상 마을의 뒤편이었다.

“오호라! 강물이 산 하나를 끼고 돌아서 다시 수상 마을로 되돌아오는 식의 구조였나.”

염훈은 납득하고 더 열심히 운행했다.

그리고 도착했다.

-축하드립니다! 34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도착 시간 측정 중…….

꽤 걸렸다.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34층 메인 미션 클리어 플레이어 중 상위 23%에 해당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힐링 포션 5개와 마나 포션 5개가 제공됩니다!

“뭐, 나쁘진 않군.”

도중에 추적팀의 방해도 받고, 악어 왕이랑 대화며 싸움이며 다 했는데 상위 23%면, 꽤 빠른 편이었다.

은혁이 작은 만족감을 느낀 순간.

“으와아아!! 해냈다아아아!!!”

염훈은 두 주먹을 높이 쥐고 외쳤다.

“엥?”

염훈이 이렇게 기뻐하는 걸 본 적 없는 은혁은 좀 당황했다.

“으아아! 이젠 쉴 수 있어!! 긴 하루의 노동은 이제 끝이다!!!”

사실 염훈은 농사를 짓느라 이미 기분 좋게 땀을 흘린 상태였고, 거미 사냥을 할 때 즈음에는 체력이 쭉 빠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은혁이 오늘 해가 떠 있는 동안에 꼭 34층까지 클리어해야만 한다고 재촉을 해서 왔을 뿐.

“음.”

그걸 본 은혁은 자신이 너무 밀어붙였나 싶었다.

‘사실 아직 할 일이 더 남았는데.’

사실 오늘 해온 모든 건 28층에서 저지를 어떤 일 때문이었다.

즉, 28층에 돌아가서 마무리할 일이 있는데…….

‘이건 나 혼자 처리하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

휙!

염훈이 은혁을 뒤돌아봤다.

은혁이 깜짝 놀랐다.

“왜, 왜?”

“왠지 묘한 느낌이 들어서.”

염훈이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은혁을 봤다.

“너, 막상 28층으로 돌아가서 아직 할 일 더 남았음~ 이러려는 거 아니겠지?”

하도 은혁에게 당한(?) 염훈인지라 무척 예리해졌다.

“아, 아냐.”

“미리 말해두는데, 난 28층 돌아가면 무조건 잘 거다! 아무것도 안 하고, 다른 길드원들이 비웃건 말건 큰대자로 뻗어서 잘 거다!”

“그렇게 해. 아니면 아예 5층으로 돌아가서 비싼 호텔에서 혼자 자도 되고.”

“어? 그래도 돼?”

사실 28층에는 아직 길드장 전용 사무실조차 없었다.

농장주 피에로가 사용하던 건물은 은혁이 지정해 둔 불패불굴 길드 소속 조장들의 사무실로 개조해 둔 상태.

그나마 있는 건물들은 피에로 마스터의 권능으로 만든 것인지라, 피에로 마스터의 사망과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건물도 거의 없는, 놀라울 정도로 넓고 텅 빈 공터에 논밭만 있는 게 28층의 현재 상황.

“그래. 하루쯤 쉬어라. 스스로에게 휴가 주고 5층 내려가서 쉬어.”

“음, 그래도 28층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기가 미안한데.”

“어허! 네가 길드장이야. 그들이 네 눈치를 봐야지, 왜 네가 그들 눈치 봐?”

“그치만…….”

“그리고 길드장으로서 휴가 내리는 것도 미리 연습해 봐야지. 게다가 부하들 일하는 동안 쉰다고 해서 전혀 부끄러워할 거 없어. 길드 규약에 따르면, 모든 길드원의 휴가와 길드장의 휴가는 동일한 일수만큼 쉬도록 되어 있으니까. 오늘 네가 쉬고 부하들이 내일 쉬면 되지. 안 그래?”

“어, 그런가?”

길드 규약은 물론, 5층에서 길드 신청할 때 은혁이 혼자서 설정해 뒀으니 염훈으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하지만 은혁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네가 쉬는 동안에는 내가 눈을 뜨고 있을 테니 걱정 마. 길드장이 휴가를 쓴 동안 부길드장이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는 게 길드의 정석 아니겠냐. 안심하고 자신에게 휴가를 주라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하는 수 없지. 그럼 사양 않고!”

염훈은 NPC로부터 휴식용 편한 옷을 구매하더니, 정말 오랜만에 갑주고 뭐고 다 벗어 던지고 갈아입었다.

“으아아! 나는 자유인이다!!”

그러고는 게이트로 간 뒤, 5층으로 바로 쉬러 갔다.

파앗!

그리고 남은 은혁은…….

“크크크크큭. 잘 쉬다 와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태양의 위치를 가늠하며 말했다.

약간 늦은 오후이긴 하지만, 저녁노을이 지려면 아직 멀었다.

최소한의 태양광만 있어도 충분했다.

이제 염훈은 하루 푹 쉬고, 내일 28층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염훈. 네가 알던 28층은, 없어진 뒤일 거다.”

* * *

14층.

11층부터 14층은 콩나무가 존재하는 통합층이다.

11층부터 14층으로 묶여 있었으나, 14층 꼭대기의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 처치된 이후로, 전반적인 미션 난이도가 매우 낮아졌다.

특히 꼭대기인 14층이 매우 쉬운 미션으로 변화했다.

“어머, 귀여워라.”

“자자, 한 줄로 서렴.”

“아! 오리 돌보기 미션은 매일 하고 싶어!”

14층의 메인 미션은 새끼 오리를 돌봐주는 미션으로 변했다.

“거, 새끼 오리들의 응석을 너무 받아주진 마시오!”

한 덩치 큰 오리가 외쳤다.

은혁에게 인질(?)로 잡혔던 그 오리다.

은혁이 떠난 뒤로, 14층 미션의 감독관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오리 님! 오리 님!”

휴식 중이던 새끼 오리들이 그 오리를 향해 뛰어갔다.

“음? 뭐냐?”

“오리 님! 여기에 탐욕스러운 클라우드 자이언트들이 살았던 게 사실인가요?”

“흠…… 글쎄.”

오리가 점잔을 빼자 새끼 오리들은 더 열광했다.

“들려주세요, 옛날이야기!”

“들려줘요! 들려줘!”

“안 들려주면 메인 미션 보이콧해 버릴 거예요!”

새끼 오리들이 거부하면, 플레이어들이 14층을 클리어 못 하고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그게 심해지면 관리국이 출동해서 어떤 식으로 14층을 개변해 버릴지 모른다.

“크흠! 녀석들. 하는 수 없지.”

오리는 자신이 은혁에게 붙잡혀서 겪은 일들을, 엄청 과장 섞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새끼 오리들은 혼이 쏙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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