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 워잭과의 진심 어린 대화 (1)
“크크크.”
내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며, 은혁은 길드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살펴봤다.
연금술용 핵심 재료인 버섯 포자는 이제 콩나무의 내부에서 자랄 것이다.
곳곳에서 [라이트] 스킬이나 횃불로 불을 밝히며 재배했다.
‘일일이 불을 밝히려니 불편하네. 부하들을 30층으로 보내서 야광 버섯이나 심으라고 해야겠다.’
농업팀 말고도 은혁이 꾸려둔 팀은 여럿 있었다.
28층 이하의, 반복 플레이가 용이한 스테이지의 사냥터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구상하는 반복사냥팀.
5층 길드연합국의 동향을 조사하는 정보팀.
콩나무에 상주하여 불패불굴 길드 본부를 방위하는 방위팀.
본부 바깥의 정화된 해피 라이스를 이용한 농경 재배와 굶주린 이들을 위한 구호 활동에 치중하게 될, 구휼팀이라는 별명을 붙인 농사 2팀.
실전성은 다소 낮지만 특정 상황에서만 활용 가능한 특수목적팀 등등.
팀 단위로 재편된 길드원들이 각자 대기하거나 활동 중에 있었다.
‘후, 이제야 좀 길드 같네.’
물론, 당분간은 7대 길드의 감시자들에게, 불패불굴 길드가 농사에 주력하는 모습을 강조하여 보여줄 필요는 있었다.
그래야 7대 길드가 28.5층의 존재를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농사팀이 무려 8팀까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농사팀의 규모가 유난히 큰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7대 길드를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 말고도, 식량을 확충한다는 실리적인 목적이다.
‘일단 제2차 길드 대전이 발생할 확률을 크게 줄여놨지만, 식량난이 발생할지도 모르니까.’
은혁이 7대 길드 세력을 약화시킨 데에는, 무식하지만 확실한 이유가 있다.
‘훗날 7대 길드가 전쟁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그럼 7대 길드를 약하게 만들지, 뭐. 약해지면 크게 전쟁 일으킬 힘도 없겠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은혁은 자신의 힘을 키움과 동시에 그 일을 해냈다.
제2차 길드 대전은 5층 한복판에서 터지는 일이기에, 편의점이고 상인 NPC고 다 휩쓸려 죽는다.
농사 관련 스테이지인 6층도 불지옥으로 변한다.
당연하게 여기던 식량 구매가 극도로 어려워진다.
‘피스메이커 놈, 구원 길드가 착한 척하면서 비축한 밀가루를 나눠줄 때, 자유시장 길드가 비싼 값에 비상식량을 팔 때, 그때도 식량에 바이러스를 뿌렸었지, 아마?’
그래서 평화 길드의 부길드장 페넬레시아조차 못 참고 반기를 들었지만, 금방 반기를 내리고 피스메이커 편을 든다.
그리고 페넬레시아는 죽을 때까지 피스메이커 편을 드는데…….
‘그 이유가 웃기지.’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쌀 비축은 미리미리 해두고, 묵은쌀은 배고픈 사람한테 공짜로 나눠주라 해야지.’
은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아, 난 너무 착해.”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순간.
“강은혁.”
염훈이 에스컬레이터 끝에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워잭도 있었다.
어째 분위기가 진지했다.
‘이런, 내 혼잣말을 들었나?’
그런 이유 때문에 분위기가 진지한 건 아니었다.
“여어, 염훈. 잘 쉬었냐?”
“여어, 할 때가 아니야. 지금 워잭은 7대 길드를 대표해서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따지러 온 거야.”
“이게 어찌 된 일이냐니?”
“이 콩나무 말이야.”
“아, 이 경이로운 농작물 말이지? 이렇게 크게 자랄 줄 누가 알았겠어?”
은혁이 평소처럼 능청스럽게 말했지만, 염훈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녀석이 자는 동안 몰래 지어서 화났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단 길드장 집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자.”
은혁이 안내했다.
염훈은, 자신이 자는 동안 집무실까지 마련한 은혁이 고맙고도 대단하다 싶었지만 그 말은 꺼내지 않았다.
* * *
콩나무 꼭대기의 궁전 형태의 건물이 있었다.
그곳이 불패불굴 길드 본부 건물이었다.
그 안쪽에 길드장 집무실이 있었다.
테이블을 두고 염훈이 상석에, 워잭과 은혁이 마주 보고 앉았다.
염훈은 평소와 달리 팔짱을 턱 하니 낀 채 무게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일단 어떻게 된 건지 듣겠다는 거로군.’
은혁은, 염훈은 잠시 상석에 앉혀두고, 워잭과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잡담으로 대화를 좀 풀어가려 했지만, 워잭은 ‘으음.’ ‘과연.’ ‘그렇구려.’ 같은 식으로만 반응했다.
은혁은 조금 다른 질문을 하기로 했다.
“다른 분이 아니라 워잭 님이 오신 이유부터 여쭤봐도 될까요?”
“다들 엄청 바쁘니까.”
7대 길드에는 7대 길드로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특히, 60층과 그 이후가 5층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걸 안 뒤로 더욱 그랬다.
문제는, 활동 가능한 부길드장이나 길드장이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온 거요. 5층의 치안 문제는 일단 안정화됐으니까.”
60층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좌절한 이들이 있긴 했지만, 행복 길드가 위축된 덕분인지 향락과 마약으로 자신을 망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하면 은혁 덕분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수 있기에 워잭은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기로 했다.
“툭 터놓고 이야기해봅시다. 처음부터 속일 생각이었소?”
“속이다뇨?”
“28층에서 농사만 짓는다고 하지 않았소?”
“…….”
은혁은 잠시 침묵했다.
평소의 은혁이라면, ‘속이다니. 뭘 말입니까?’라고 되물었을 것이다.
그럼 워잭은 또 농사만 짓겠다 하지 않았냐, 28층만 지배하기로 했으면서 28.5층을 뚫다니 이건 약속과 다르지 않느냐고 재차 추궁할 것이다.
그 경우에도 은혁은 할 말이 있었고, 사실 염훈이 이미 워잭에게 몇 마디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뻔뻔하게 굴면, 워잭을 너무 모욕하는 일이겠지.’
60층 탐사대가 전멸한 지금, 워잭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워잭이 일부러 찾아와서 힐문하려 든다는 건, 진심이 담겼다는 뜻.
“…….”
염훈이 말없이 지켜보기로 하고 있는 것도, 은혁의 말 내용보다는 태도를 보겠다는 것 같았다.
‘만약 여기서 너무 노골적으로 말장난을 하면 염훈 녀석이 먼저 화를 내겠지.’
염훈은 격의 없는 친구이지만, 길드장의 집무실에서는 길드장이었다.
은혁은 염훈과 워잭 모두에게 존중의 뜻을 보이기로 했다.
‘일단 안심을 시켜야겠군.’
“뭐가 문제인지 알 것 같습니다, 워잭 부길드장님. 여기서 군사를 길러 5층 길드연합국을 칠까 봐 우려된다, 이거 아닙니까?”
“아니오.”
“아니라고요?”
“내가 알고 싶은 건, 강은혁 부길드장 당신이 내게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요. 다른 식으로 확장해서 해석하지 말고 그것만 대답해 보시오.”
‘……무섭군.’
앞으로의 일이건 뭐건 중요치 않고, 은혁이 황금 궁전에서 워잭을 속였는지만 확실히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워잭답군.’
“에두르는 변명이 아닌, 진심을 듣고 싶은 것이겠지요?”
“진심과 진실 둘 다 원하오.”
“그렇군요.”
스윽.
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저는 속이진 않았습니다.”
우드득.
워잭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당장 일어나려는 순간.
“왜냐하면, 진심과 진실 모두 진작 당신에게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언제 당신이 진심과 진실을 털어놨다는 거요! 가장 기만적인 주제에……!”
“처음 워잭 부길드장님 자택에 초대해 주셨을 때 기억납니까? 염훈이랑 제가 막 쿠키 잔뜩 먹고 소파에 누워서 자려고 했던 그때 말입니다.”
브라이언이 시비를 건 날이기도 했다.
워잭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풀었다.
“후, 그걸 어찌 잊겠소?”
“그때 저는 제 진심과 진실을 거의 다 털어놓은 거 같군요. 7대 길드를 통합시켜서 발판, 점프대로 삼겠다고 말입니다.”
“…….”
워잭은 그때를 떠올리고 혀를 찼다.
그때까지만 해도 은혁은 신규 플레이어 1, 2위 수준일 뿐이었다.
그래서 7대 길드를 통합한다느니 하는 은혁의 큰 소리는, 그저 오만한 큰 소리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를 차린 은혁은, 자기 길드의 집무실에서 워잭과 옛이야기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그때 이미 모든 계획을 털어놓았었다, 라는 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7대 길드를 통합시켜 점프대 삼는 것은 지독히 오만한 발언일지라도, 가장 확실한 돌파구임을 선언합니다. 60층 말입니다.”
“……!”
“지금처럼 7대 길드가 따로 찢어진 상태에서 탐사대를 만들면? 불완전한 탐사대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부길드장급이 직접 탐사에 나서면 어떨까요? 쉽지 않죠. 통합되지 않은 나머지 6대 길드가 잠재적 경쟁자이니 내부 문제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죠. 다 아시잖습니까?”
워잭은 자주적으로 주도해서, 테일러, 레나, 브라이언을 설득한 적 있다.
그렇게 59층 메인 미션에 도전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 또다시 59층 게이트 미션을 뚫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걸렸고, 60층에 도전해야 할 시점에는 또 각자 바쁜 사정이 생겨 부길드장이 탐사대를 지휘하지 못하게 됐다.
‘어느 정도는 내 책임이지만 그건 말할 필요 없겠지.’
은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워잭은 재차 반박했다.
“허! 결국 당신 변명은, 미리 말했다, 7대 길드를 통합하기 위해 이렇게 길드 본부를 만든 것이다,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이거요?”
“요약하면 그렇지요.”
은혁은 조금 뻔뻔하게 대답했는데, 더 어떻게 포장해서 좋게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양심을 걸고 말하지만, 황금 궁전에서 약속한 것에서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똑똑!
하필 대화가 과열되려는 순간에 누가 노크를 했다.
“누군가?”
“저희들입니다.”
새로 길드에 가입한 장각과 장보였다.
은혁은 워잭에게 고개 숙여 양해를 구한 뒤, 들어오라 했다.
“짧게 말해. 무슨 일이야?”
“기우제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거, 실제로 효과가 있는 거야?”
장각과 장보는 고유 스킬 [태평요술]이라는 걸 익혔는데, 치료와 농업, 사기 증가 등에 자잘한 도움을 준다.
“시험 삼아, 28층 전체 농업 구역의 10%만 범위에 놓도록 해.”
전체 범위가 아니라 좀 아쉬운 듯했으나, 장각과 장보는 포권했다.
“알겠습니다!”
“꼭 성과를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후다닥 떠났다.
“보셨지요? 농사 위주의 사업 중입니다.”
은혁은 내심 타이밍 좋게 장각과 장보가 와줘서 잘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워잭은 추궁을 이어갔다.
“그럼 감시인들을 두는 문제는?”
“그거야 계속 두시죠. 단, 28층에.”
그리고 이곳은 28.5층이다.
즉, 감시인을 콩나무 쪽에 둘 수는 없다.
“결국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다는 거 아니오!!”
워잭이 다시 그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미리 진심을 말했다는 소리로 넘어갈 생각 마시오! 당신 한 사람이 이렇게 한다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소?!”
“와, 대단하다, 생각하겠죠. 아, 혹시 남들이 우리 따라 할까 봐 걱정하는 겁니까?”
“그렇소!”
그 말에 은혁은 빙긋 웃었다.
은혁이 한 짓을 따라 하려면, 역량이 7대 길드의 부길드장 이상, 길드장 이하 수준은 되어야 할 것이다.
은혁의 표정을 본 워잭은 또 소리쳤다.
“똑같이 따라 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오! 질서가 깨지는 것 자체가 문제란 말이오!”
정의 길드의 부길드장다운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