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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51화 (151/434)

151화 : 길드 내부 관리

28층과 28.5층의 태양은 거의 동시에 뜬다.

염훈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어라?’

분명 집무실에서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집무실과 연결된 침실이었다.

혹시나 해서 집무실로 나가봤더니.

투다다다다……!

컴퓨터의 자판기를 미친 듯이 치고 있는 은혁이 있었다.

컴퓨터 옆에는 마정석으로 돌아가는 발전기가 있었는데, 중고로 샀는지 5분마다 털털털 소리를 냈다.

“오, 일어났냐.”

은혁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손으로 인사했다.

염훈도 목을 긁적이며 인사했다.

“워잭은?”

“갔지.”

은혁은 간략하게 답했다.

염훈은 은혁이 완만하게 일 처리를 했으리라 믿었다.

“지금 뭐 하냐?”

“일하지.”

염훈은 들어 봐야 자신이 모를 게 뻔했지만 그래도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일단 사냥 3팀을 7층에 보냈다. 길드원 발굴 목적보다는, 불패불굴 길드의 이미지 메이킹 작업이지.”

7층의 레벨 낮은 플레이어들을 도우면서 불패불굴 길드의 평가를 높인다.

그밖에도 사냥팀들의 활약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불패불굴 길드가 하루에 처치하는 몬스터의 숫자는 무지막지했다.

하급 몬스터의 가죽과 마정석 시세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될 정도였다.

“몬스터 도축은 물론 5층에 있는 낸시에게 맡기기로 했지.”

낸시는 여전히, 은혁의 자금으로 증축된 NJ 미래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여전히 대형 몬스터 도축 전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제인과 같이 여기로 이사 오라고 하고 싶은데, 몬스터 도축은 이미지가 아무래도 농업이랑 거리가 좀 있고, 내부 공간이 부족해서 안 그러기로 했다.”

“그렇군.”

“사냥 성과의 5%는 길드가 길드 유지비 명목으로 가져가기로 개정하는 대신, 희귀 아이템의 소유권은 발견자에게 귀속한다는 것도 명시해뒀지.”

성과의 5%를 제하는 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길드 유지비로 쓸 정도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34층 이하에 존재하는 희귀 아이템의 경우, 은혁이 이미 전부 획득한 상태였기에 상관없었다.

“또, 농업팀의 일부는 6층으로 공개 견학 보냈다.”

“응. 다 적절한 거 같네.”

“자, 여기 서명해라.”

은혁은 길드장의 서명이 필요한 종이를 내밀었다.

염훈은 대충 눈으로 훑어보고 다 서명했는데.

“어라? 이건 좀 특이하네?”

감옥과 관련된 사업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 그거? 인권 차원에서 정화된 해피 라이스를 선물로 보내려고.”

“잠깐, 설명 좀 자세히 해봐. 이건 들어봐야겠네.”

“그러지. 5층에는 감옥이 몇 개가 있는데, 특수 감옥 중에 ‘평화의 감옥’이라는 게 있어. 좀 위험한 자들이 들어가는 감옥이지.”

평화의 감옥은 평화의 미궁과 이름이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장소다.

평화의 미궁은 25층에 숨겨진 장소라면, 평화의 감옥은 5층에 존재하는 특수 감옥이었다.

“평화 길드가 관리하는 거야?”

“아니, 7대 길드 전체가 관리해. 그, 알지? 길드 대전. 그게 무조건 평화로 끝났다는 거 기억해?”

“아, 그랬지. 아무도 책임진 사람이 없다고.”

“맞아. 그런데 당시 부길드장들이 멋쩍었는지, 자금을 모아서 평화의 감옥을 만들었어. 물론, 전쟁 범죄자가 갇히진 않았지만, 그런 기념비적인 의미가 부여된 특수 감옥이지.”

“허참. 마음에 안 드네. 그런데 왜 평화의 감옥에 쌀을 보낸다는 거야?”

“다들 관심이 없지만 평화의 감옥은 인권이 좀…… 막장이거든?”

“음.”

염훈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함부로 사람 죽이거나 괴롭히는 걸 싫어하는 염훈이지만, 죄를 짓고 들어간 죄인은 좀 아파도 싸다는 쪽이었다.

“그 평화의 감옥에는 트윈스 원도 들어가 있어.”

“아, 그 구원 길드의 부길드장 말이지? 손등에 트윈스 투가 붙어 있고…….”

“맞아. 그 사람.”

“난 그 여자 싫던데.”

“나도 싫어. 하지만 그 여자가 평화의 감옥에서 ‘구원의 가르침’이라는 걸 퍼뜨리고 있어. 거의 신흥 종교로 만들어지기 직전이지.”

“그게 뭐야?”

“한 마디로 구원 길드를 믿고 따르면 감옥에서 구원받고 나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지.”

“어? 그럼 갑자기 막 감옥에서 반란 일어나는 거 아냐?”

“가능성은 있지.”

“그렇구나. 그럼 혹시!”

염훈이 벌떡 일어났다.

“맞아. 아마 그걸 위해 일부러 감옥에 간 거겠지.”

“그 여자도 정상이 아니네. 그렇다고 직접 감옥에 가다니.”

염훈은 상상이 잘 안 가는 모양이지만, 평화의 감옥 밑바닥에는 길드연합국 건국 이전의 막장 범죄자들도 있었다.

그들을 모조리 포섭할 수 있다면 길드연합국을 정복은 못 해도 전복은 시킬 수 있다.

“은혁아, 근데 그거 확실한 정보야?”

“물론, 확실하진 않지.”

‘사실, 거의 확실하지.’

회귀자인 은혁도 미세한 역사의 변동을 일일이 예측하긴 어렵지만, 트윈스 원이 감옥에 갇혔다는 큰 틀은 고정되었으니, 예상치 못할 뒤틀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 어쩌지? 죄를 인정하고 감옥에 알아서 들어간 인간을 어떻게 견제하지?”

“내부자를 써야지.”

“내부자?”

“이미 박병철을 심어뒀지. 기억나?”

“박병철?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콩나무 통합 미션 때, 상승 길드 소속이던 늑대인간 놈 말이야.”

“아하, 그놈! 그놈이 평화의 감옥에 들어가 있었어?”

“응. 아마 심심하겠지. 하지만 그놈 성격에 구원의 가르침 따위를 따를 리가 없지.”

“놈을 포섭해서 우리 길드원으로 만들고 스파이로 쓰자?”

“캬, 잘 아네.”

“그놈이 우리말을 들을까?”

“듣는다.”

은혁은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놈은 콩나무를 오르려다 우리한테 처발렸지.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아예 콩나무를 만들어냈다.”

“아……!”

“그러니 불패불굴 길드장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하면? 아마 놈도 자존심이 있으니 즉각 충성을 맹세하진 않겠지.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뭘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해서 미칠 거다. 그다음은 놈을 적당히 도발하고, 때로는 추켜세우면서 위문품을 주거나 해야겠지. 그리고 영입. 길게 말했지만 길어야 3일이면 충분하고, 하루 만에 성공할 자신도 있다.”

훗날 지급할 ‘위문품’ 중에는 포자 버섯으로 만든 연금술 약이 포함된다.

맛을 보거나 겉으로만 보면 쑥으로 만든 음료처럼 보이지만, 빛을 보지 않고 부자유한 상태에 있는 자를 강화시키는 희귀 포션, ‘암굴왕의 포션’이다.

아마도 은혁이 박병철에게 근황을 보내면 놈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괴로워할 텐데, 그 이유는 압도적인 격차 때문일 터.

그런 그에게 염훈의 이름으로 암굴왕의 포션까지 주면?

‘99% 확률로 박병철은 염훈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은혁에게 충성을 다하는 게 아니라 염훈에게 맹세하는 것이므로.

“그러니 서명이나 빨리하라고.”

“응!”

비서는 따로 뽑지 않아서, 28층에 있는 우편함에 편지를 직접 넣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 하루 치 길드 업무는 끝이 났다.

“염훈. 내가 선택지를 줄게. 둘 중 하나를 해야 해.”

“음, 뭔데?”

“첫째는, 길드장으로서의 연설이야.”

“연설?”

“28.5층을 뚫고, 거기에 콩나무 형태의 길드 본부를 지은 거, 길드연합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거든?”

“음. 그렇지.”

“다 너의 인덕과 빅 픽처 덕분이지?”

“에? 그건 아니지. 사실 거의 다 네가 한 거잖아.”

이 모든 건 은혁의 넓은 지식과 과감한 꼼수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그래도 네가 한 걸로 해야 해. 왜냐하면 네가 길드장이니까. 난 널 돕기만 한 거고.”

“거참, 그거 자랑하는 연설을 하라고?”

“음. 연설로 큰 소리를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우리 길드원을 한곳에 모은다는 거지.”

“그게 중요해?”

“배신자 색출 선글라스로 배신자 색출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거 1회용이니까, 연설을 빌미로 모두 한자리에 모으는 게 중요해.”

“아, 맞다. 배신자 색출 선글라스가 있었지.”

염훈은, 설마 우리 중에 정말 배신자가 있겠느냐는 식으로 중얼거렸지만, 은혁은 100% 확신했다.

‘이미 내가 얼굴을 아는 새끼들이 몇 명 있어.’

행복 길드 소속의 스파이만 있으면 오히려 다행인데, 드물게 구원 길드 소속 스파이와 3군주 측 누군가의 소속으로 보이는 스파이도 있었다.

‘나도 완전히 기억 못 하고 어렴풋이 아는 얼굴들이라 더 거슬리네.’

그래서 염훈이 배신자 색출에 나서줬으면 싶었다.

“음, 다른 선택지는?”

“35층 바로 올라가서 클리어하는 거지.”

“흠.”

염훈은 잠시 고민했다.

“그거, 순서만 다르고 결국 둘 다 해야 하는 거지?”

“뭐, 그렇지.”

“그럼 35층부터 가자. 대신에, 공지 사항을 하나 붙여 놓고 가자.”

“어떤 공지 사항?”

“만약 스파이나 배신자가 있다면, 스스로 길드를 탈퇴하거나, 마음을 고쳐먹고 진심으로 우리 편이 되라고.”

그 말에 은혁은 기가 막혔다.

“야, 그게 통할 리가 있냐? 게다가 그런 공지 사항을 밝히면 우리가 스파이를 경계하고 있다는 게 놈들에게 전해지잖아?”

“그래도 되지 않나? 그런 공지 사항을 보면 스파이들이 조금은 더 조심스러워지거나, 아니면 눈에 띄는 짓을 하지 않을까?”

“그건 그렇긴 한데…….”

“게다가 어차피 우리에게는 배신자 색출 선글라스가 있지. 우리가 그걸 갖고 있다는 것까지는 놈들도 모르잖아?”

“흠…….”

은혁은 인정하기로 했다.

‘대범한 계획이긴 한데……?’

은혁은 집무실에 도청 장치 따위가 없는지 직접 확인하고, 소환수를 소환해서 확인하고, 오리를 시켜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그림자 분신들을 소환해서 한 번 더 확인했다.

즉, 적어도 길드장의 집무실에는 어떤 물리적, 마법적 도청 장치도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 네 말대로 하자.”

“오, 예스! 공지 사항은 내가 쓴다?”

“써 봐.”

염훈은 방금 은혁에게 말한 것을 그대로 썼다.

그리고 맨 마지막 문장에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크으! 내가 봐도 너무 감동적이다.”

“음…….”

은혁은, 차라리 내가 쓸 걸, 하고 생각했다.

“저기, 내가 문장을 조금만 다듬어 볼…….”

“안 됨!”

염훈은 길드장으로서 내리는 첫 공지 사항에 애착이 가는지, 서명까지 해서 복사했다.

“자, 붙이러 가자!”

“부하들 시키지? 아니면 내가 소환수 시켜도…….”

“첫 공지 사항이니까! 길드장과 부길드장이 직접 하자고!”

“…….”

그렇게 두 사람은 접착제를 들고, 콩나무 내부 공간을 다니며 공지 사항을 곳곳에 붙였다.

인근 길드원들은 그걸 보고 금방 반응을 보였다.

“허어, 스파이라.”

“우리 길드에도 스파이가 있다고?”

“근데 다들 충성을 맹세했는데 스파이가 있을 수 있나?”

“충성 맹세를 어기면 보통 죽지만, 죽어도 된다는 각오로 스파이가 된 거라면 뭐…….”

“거, 독한 놈들이네.”

“아니면 이미 자기네 보스한테 생명을 저당 잡힌 상태로 와서 충성 맹세를 한 경우거나.”

“넌 왜 그리 잘 아냐? 혹시……?”

“이 새끼 보소? 왜 의심이냐.”

“자자, 다들 그만둬. 조만간 길드장님이 직접 연설을 하신다잖아?”

공지 사항 맨 밑에는 이와 관련하여, 수일 이내에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염훈. 너도 알겠지?”

“음. 의심 때문에 좀 술렁거리겠지.”

염훈의 공지 사항에는 ‘나는 여러분을 믿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문장 자체가 이미 스파이가 내부에 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쓴 거지?”

“응. 다 생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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