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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57화 (157/434)

157화 : 용사의 시험 (2)

플레이어들은 북쪽, 남쪽, 서쪽 중에 어디가 답일까 토론했다.

사실, 셋 다 답이 맞았다.

북쪽과 남쪽 통로는 상대적으로 짧은 대신 함정과 갈림길이 더 많고, 서쪽 통로는 길게 돌아가는 대신 상대적으로 함정과 갈림길이 적다.

은혁은 위험 요소를 최대한 적게, 다소 어중간하게 클리어하는 것이 이번 스테이지에서의 목표였기에 서쪽으로 향한 것이다.

저벅저벅…….

다른 이들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서쪽으로 나아갔다.

“뛰지 말고 빠른 걸음으로 가자, 염훈. 그리고 무조건 내 뒤에 서.”

“오케이.”

“그리고 내가 멈추면서 네 이름을 부르면, 지체 없이 [2초 무적] 써. 난 괜찮으니까.”

“알았어.”

은혁과 염훈은 침착하게 서쪽 통로를 걸었다.

도적 스킬을 지닌 은혁이 [함정 탐지] 스킬을 쓴 채 신중히 걷고, 뒤에서 날아오는 수면 화살 함정 따위는 염훈이 [2초 무적]으로 버티면 그만이었다.

“저기요!”

한 명이 두 사람을 쫓아왔다.

파란 머리의 플레이어, 블루종이었다.

“저도 데려가 주십쇼!”

“음? 당신은 아까…….”

“넵! 성기사 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죠! 저는 블루종이라고 합니다! 두 분을 따르고 싶습니다. 받아주세요!”

파란 머리 청년은 매우 진솔한 어조로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연기력이 진짜 대단하긴 하다.’

은혁은 쳐다보지도 않고, 염훈만 보고 있었다.

마치 구원받은 사람처럼.

은혁이 웃음을 참는 동안 염훈이 말했다.

“따라오는 건 괜찮긴 한데, 당신 능력은 뭡니까?”

“아, 저는 화염과 관련된 스킬에 자신이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근데 아까는 왜…….”

“네?”

“아까 땅 밑에서 줄기가 덮칠 때는 왜 스킬 안 쓰고 당한 겁니까? 화염 속성이니까 통했을 텐데?”

“아, 그게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서요…….”

블루종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랬던 거군요. 이해합니다.”

염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러시면 일단 이번 미션은 포기하고 5층 길드연합국으로 귀환하심이 어떨까요?”

“에?”

“아까 그게 첫 번째 테스트였는데 크게 당황하셨잖아요?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으신 모양인데, 메인 미션 정보만 얻고 오늘은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네 의견은 어떠냐, 은혁아?”

“네 말이 백번 옳지.”

은혁은 속으로 꿀잼이라 생각하며 얼른 맞장구쳤다.

은혁이야 블루종이 행복 길드 소속임을 알고 있었지만, 염훈은 모른다.

그런데도 염훈이 알아서 철벽을 쳐주니 솔직히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블루종 또한, 연기력에는 흔들림이 없어도 내심 당황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패불굴 길드 내부에 이미 잠입한 행복 길드 스파이로부터 은혁과 염훈이 오늘 도전하는 걸 듣고 맞춰서 왔는데,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분이라면 미션 클리어 정도는 쉽게 가능하지 않습니까? 방해는 안 할 테니 따라만 가게 해주시면……!”

“우리가 요즘 길드도 차리고 실력도 나름 쌓인 건 맞지만, 모르는 분을 함께 데리고 갈 정도의 실력은 안 됩니다.”

길드장이 된 염훈은 나름 관록이 붙어서, 모르는 사람, 특히 도와달라고 초장부터 말하는 사람에게는 철벽을 칠 줄 알았다.

은혁은 염훈을 내심 대견스러워하며 나섰다.

“아쉽지만 블루종 님과 함께하는 건 다음에 하죠.”

그리고 은혁은 염훈과 길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잠시만요! 그럼 제 실력을 봐주십쇼!”

“거, 끈질기시군요.”

은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염훈. 어떻게 할래? 일단 실력이라도 봐볼까?”

“시간 없지 않아? 그냥 같이 가자.”

“맹세 같은 건 안 받아도 될까?”

“충성 맹세?”

“뭐, 배신하지 않겠다는 맹세라면 뭐든지.”

“그런 걸 받아야 할 정도야? 너무 의심 많네.”

의외로 염훈이 은혁을 나무랐다.

블루종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

“하지만 나도 이제는 길드장이니까 조심해야겠지.”

염훈은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블루종에게 손짓했다.

“충성 맹세 말고, 배신하지 않겠다는 스탯창의 [맹세] 정도는 해주셔야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블루종은 내심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블루종은 상태창을 열고, 선서 자세를 취했다.

“저, 블루종은 저의 이름을 걸고 결코 염훈 님과 강은혁 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저의 목숨을 걸고 맹세합…….”

“그거 말고.”

은혁이 끼어들었다.

“이름 걸고 하는 맹세 말고, 당신이 섬기는 성좌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시죠.”

“……!!”

블루종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어? 성좌?”

염훈도 고개를 갸웃했다.

“블루종 씨. 당신 직업 뭡니까?”

“……화염의 신을 섬기는 성직자입니다.”

“아하, 그러셨구나. 난 그냥 마법사인 줄 알았죠.”

염훈은 은혁의 요구를 납득했다.

“그럼 은혁의 요구대로, 성좌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주시죠. 그럼 함께 가죠.”

“그건…….”

블루종은 망설였다.

사실, 그냥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경우, 그 맹세를 무마할 방법이 있었다.

‘강은혁과 염훈을 제물로 바쳐서 무마하려고 했는데!’

스탯창에 대한 [맹세]를 어기면 죽겠다고 맹세해도 블루종은 상관없었다.

사실, 블루종은 이미 자기 영혼을 성좌에게 맡긴 상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제물을 바치면서 생명력을 충당하는 식으로 빠르게 성장해 온 존재.

그래서 만일 배신의 대가로 목숨을 잃어도, 즉사하지 않고 성좌가 일정 시간 블루종의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

그 틈에 강은혁과 염훈의 뒤통수를 치고 무력화시킨 뒤 산 채로 태워서 산 제물로 바치면 오히려 생명력이 늘어난다.

‘하지만 성좌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해버리면……!’

그때는 목숨 부지가 어려워짐은 물론이고, 이미 성좌에게 저당 잡힌 영혼마저 불타 없어지리라.

그것도, 화난 성좌의 손에서 무척 고통스럽게 타서 없어질 터.

‘이건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님도 모르는 진실인데! 어떻게 놈은 그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거지?!’

블루종이 마른침을 삼키자, 염훈과 은혁 모두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드러냈다.

“조금 이상하네요, 블루종 씨? 갑자기 막 달라붙는 것도 좀 미심쩍다 싶었는데, 왜 갑자기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겁니까?”

제법 사람 보는 눈이 좋아진 염훈이 지적했다.

“네 말이 맞아, 염훈.”

은혁은 청염백광단검을 꺼냈다.

“왜, 왜 무기를 꺼내십니까?”

블루종은 필사적으로 불쌍한 연기를 했지만.

“행복 길드가 요즘 제 뒤통수를 노리는 실정인지라, 이해해 주시길.”

“뭐, 뭘 이해하란 겁니까?”

“만약 아니라면 미안하지만, 죽이지 않고 팔다리 힘줄만 끊고 가겠습니다.”

잔인한 소리를 무척 인도주의적으로 말하는 은혁이었다.

“이 미친 새끼들.”

블루종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보세요. 미친 새끼들이라니. 그건 좀 억울…….”

염훈이 항의하려는 순간.

콰쾅!!!

화염 폭발이 일어났다.

“크악?!”

염훈이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는데도 튕겨 나갈 정도의 폭발력.

쉬익!

하지만 은혁은 예상했기에 바로 달려들었다.

“[강타].”

“[아지랑이의 춤].”

부웅!

휘릭!

은혁이 공격하고 블루종이 반격기를 날렸다.

둘 다 피해는 입지 않았다.

지금의 것은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한 일종의 탐색전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 추가 스킬을 날렸다.

“[메탈 워리어 소환].”

“[화염 장벽].”

파앗!

금속 병사들이 생겨나고.

화르르륵!!

바로 그 앞에 화염의 벽이 생겼다.

은혁은 메탈 워리어들을 뒤로 빼면서 의아해했다.

‘뭐지?’

하지만 화염이 걷힌 순간 깨달았다.

“새끼, 튀었구만.”

은혁은 웃고 말았다.

* * *

‘생각보다 두 놈 다 강해.’

블루종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며 생각했다.

‘이래서야 추적팀이 실패하는 것도 당연하지.’

처음에 추적팀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블루종은 비웃었었다.

‘방심하고 있을 때 기습해서 죽이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염훈이라는 놈은 방심하고 있어도 단단한 놈이고, 강은혁 놈은 소문대로 방심 자체를 잘 하지 않아.’

게다가 블루종이 염훈을 공격한 직후, 은혁은 놀라거나 걱정하는 대신, 냅다 [강타] 스킬로 반격을 가했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지만, 마치 내가 본색을 드러내고 공격해오기를 은근히 기다린 것처럼.’

그렇게 생각한 블루종은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아니겠지. 내 얼굴은 행복 길드 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블루종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동쪽 출구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슬슬 열릴 때가 됐는데.”

-동쪽 출구가 다시 열립니다!

“훗.”

블루종은 함정 구조를 다 외우고 있었다.

동쪽 통로가 함정 같지만, 사실 30분 동안만 잠길 뿐, 30분 뒤에는 다시 열린다.

그 뒤로는 함정도 거의 없어서, 빠르게 클리어할 수 있다.

‘이건 실제로 체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사실 블루종은 36층 메인 미션을 이미 클리어했다.

반복 가능한 메인 미션이거나, 스테이지 개변으로 재도전이 가능한 경우를 제외하면, 메인 미션은 1인당 1회가 원칙이다.

하지만.

‘뭐든지 예외는 있지. 크크크.’

블루종은 내부에 커넥션이 있었다.

특유의 연기력과 화염 스킬, 거기에 하이 엘프 왕국의 고위 내부자와의 협약까지.

블루종은 행복 길드에서 오직 자신만이 은혁을 확실히 죽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설마 강은혁 놈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까지는 예상 못 했을 거다.’

블루종에게 남은 문제는 딱 하나뿐이었다.

단, 그 문제 하나가 꽤 심각했으며, 정작 블루종은 인식하고 있지 못했다.

그 문제란, 강은혁은 이 상황도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 *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염훈은 조금 전 블루종의 기습 공격에 기가 찼다.

환골탈퇴에, 3차 각성으로 불패불굴 특성이 강해질 대로 강해진 염훈이었기에 별 피해는 없었지만 놀란 건 사실이었다.

“지금은 무시하자. 복수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은혁이 염훈을 다독였다.

“어우, 열 받아. 이렇게 열 받긴 또 오랜만이네.”

“스트레스 좀 풀래? 여기.”

은혁이 벽을 가리켰다.

“벽 부수고 가자고? 마법으로 보호되는 거 같던데.”

염훈의 말 대로였다.

일반 석벽처럼 보이지만, 모든 미로의 벽은 하이 엘프가 용사를 검증하기 위해 일류 석공을 고용하여 만든 벽이었다.

은혁의 [돌 부수기] 스킬을 써도, 곧 다시 복구될 터.

“맞아. 부수면 일시적으로만 부서지고, 다시 알아서 수복되지.”

생물이 아닌 물질에 고속 재생력을 부여하는 힘이 담겨 있으나, 파훼법은 존재했다.

“이것도 무적은 아니라서, 스킬 조합만 잘하면 의외로 부술 수 있거든? 어떻게 할래? 정상적으로 미로를 깰래? 아니면 다 때려 부수고 오르막길을 만들래?”

“다 때려 부수고 오르막길을 만들래.”

염훈은 빅 썬더를 허공에 몇 번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스트레스 좀 풀겠다는 심산이었다.

“좋아. 내가 [돌 부수기]를 쓸 테니, 위로 비스듬하게 [홀리 라이트닝]을 써.”

“음? 저번에 그 드릴은 안 쓰고?”

“어? 말 안 했던가? 세븐 칼리버는 제인한테 업그레이드 맡기고 왔거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제인은 연구 중이었다.

칼날은 단순히 2개 부착하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조정 중인 듯했다.

“엥? 그럼 너 지금 세븐 칼리버 없냐?”

“응.”

은혁은 청염백광단검만 들어 보였다.

그제야 염훈은 은혁이 거의 맨몸으로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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