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 용사의 시험 (4)
“선발 기준을 조금 엄격하게 선정하기 위해, 평소의 절반인 20명만 뽑도록 하겠습니다!”
콜로세움의 한쪽 문 앞에 출발선이 그어졌다.
플레이어들이 그곳에 섰다.
“그럼 준비……! 시작!!”
라다스트가 빠르게 진행했다.
철컹!
콜로세움의 한쪽 문이 열렸다.
“와아아아!!”
“달려요, 용사님들! 숲으로 달려요!”
하이 엘프 관중들이 외쳤다.
“큿! [질주]!!”
“[헤이스트]!!”
“[자이언트 버드 소환]!!”
문 근처에 있던 도적, 마법사, 소환술사들이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앗, 소환술사분 실격!”
허공에 떠 있던 라다스트가 지적했다.
“뭐?! 왜요!!”
“숲 달리기는 ‘달리기’입니다. 하이 엘프 철인 3종 경기의 정신에 따라 반칙!”
“뭐야, 그게! 그럼 규칙 설명을 다 했어야지!”
“아, 하려고 했는데 네리콘 장군님께서 빨리하라고 해서요. 제 탓 아닙니다.”
라다스트와 소환술사가 실랑이를 벌였다.
그때, 다른 소환술사 플레이어가 스킬을 썼다.
“[사막 타조 소환]!”
파앗!
그 플레이어가 타조에 탑승한 채 달려나갔다.
“어이! 심판! 저건 왜 안 잡아?!”
“뭐가요?”
“저 인간도 소환수 소환해서 타고 가잖아!”
“아, 저건 타조가 달려서 가는 거니까요. 소환수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뛰어가는 거면 규칙 위반 아닙니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듣는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조심스럽게 달려갔다.
규칙이 애매한 부분이 있으므로 스킬을 잔뜩 쓰면서 달리기가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게다가 문이 작아서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너! 비켜!”
“너나 비켜!”
하필 갑옷 입은 전사 계열 플레이어들이 뒤엉킨 것이다.
“과도한 폭력은 금지입니다!”
비행 중인 라다스트가 얄밉게 소리쳤다.
그러자 안경녀가 갑옷과 신발을 벗어 인벤토리창에 넣었다.
그리고 외쳤다.
“제가 1등 할 겁니다!! 다치기 싫으면 비켜요!!”
“뭐야? 폭력은 금지다!”
“경고했어요! [튕기기]!!”
투타탕!!
안경녀는 전신, 특히 발바닥에 [튕기기] 스킬을 걸고 돌진했다.
맨몸일수록 오히려 강해지는 고유 스킬이다.
병목 현상을 일으킨 플레이어들은 황급히 피하려 했지만.
터터텅!!!
죄다 거칠게 튕겨 나갔다.
“으악!”
“우리가 무슨 탱탱볼이냐!”
아슬아슬하게 규칙 위반은 아니었다.
폭력을 위한 스킬이 아니라, 막힌 길을 뚫고 가기 위한 스킬이었으므로.
“훗! 미안해요! 하지만 1등은 양보 못 합니다!”
안경녀는 얄밉게 한마디 덧붙인 뒤 1등으로 달려갔다.
“그럼 저도.”
파란 머리 블루종은 [화신 강림] 스킬을 쓰더니, 맹렬한 속도로 질주했다.
뒤엉켜서 넘어진 플레이어들은 그걸 보고 경악했다.
“아앗! [화신 강림]이라니!”
“그건 거의 부길드장급……!”
“저 파랑 머리! 일부러 약한 척했던 거였나!!”
브라이언조차도 마음의 각오를 해야 쓸 수 있는 게 [뇌신 강림]이었다.
블루종은 [화신 강림]을 전투용이 아닌 달리기용으로만 쓸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게 사용했다.
“오, 맙소사!”
“저 정도라니……!”
플레이어들이 뒤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블루종은 피식 웃어 버렸다.
블루종이, 브라이언의 [뇌신 강림]에 버금가는 [화신 강림] 스킬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서는 매우 커다란 것을 희생해야 했다.
‘내 영혼을 아브러스 플레임에게 통째로 바쳤지.’
어지간히 미친 성직자들도 영혼의 소유권을 성좌에게 통째로 넘기진 않는다.
하지만 블루종은 막대한 힘을 얻기 위해 망설임 없이 그렇게 했다.
전체적인 역량은 부길드장인 브라이언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화신 강림] 스킬의 유지력과 응용력만큼은 블루종이 근소하게 위였다.
화르르륵!!
블루종이 관문 너머로 지나간 자리에는 파랗게 타오르는 불꽃이 남았다.
불길을 끄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데,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걸 쉽게 끄지도 못해서 당황해했다.
“누구 [워터볼] 스킬 아는 사람?!”
“네가 [냉기의 정령]이라도 좀 소환해 보든가!”
“뭐야, 이 파란 불꽃은! 물을 끼얹어도 자꾸 타오르는데?!”
신성력이 담긴 화염이므로 한 번에 막대한 물로 끄건, 강력한 마력으로 중화를 시키건 해야 했다.
플레이어들이 우왕좌왕하자, 선량한 하이 엘프 관중들도 안타까워했다.
“아, 저런! 어떻게 하죠?”
“아아, 우리가 도와줄 수만 있다면.”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소리였다.
용사 후보자 소릴 듣던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비켜주시죠.”
은혁이 [화염 방패]와 [화염 방사]를 왼손, 오른손으로 시전했다.
그리고 이제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염열파]를 준비했다.
“퓨전 스킬 [염열파].”
-히든 이펙트 발동!
화르르륵!!
퓨전 스킬의 강력한 화염이 신성력을 머금은 푸른 불꽃을 꺼트렸다.
“와아아아!!”
콜로세움의 관중들이 환호했다.
관중석의 엘프들은 누구 한 사람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용사의 출현을 기대하고 온 것이기에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었다.
“가자, 염훈.”
은혁이 염훈을 데리고 달렸다.
두 사람은 빠르게 달렸지만.
철컹, 철컹.
“젠장. 갑옷이 걸리적거리네.”
염훈이 장착한 지크리엘의 갑옷은 보기에 비해 가볍지만, 그래도 성기사용 중갑옷 형태였다.
아무래도 달리는 데 방해될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 빨리 간다고 무조건 이기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다른 플레이어들이 치고 나왔다.
“[헤이스트]!”
“[질주]!”
“[황소의 돌진]!”
한발 늦은 플레이어들이 이를 악물고 달렸다.
“하하! 먼저 갑니다!”
“1등은 무리더라도 3위 안에 들어 보이겠어!”
“용사가 되는 건 나다!!”
엘프들의 환호성과 탄식을 들은 탓인지,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의욕을 보였다.
“앗! 은혁아, 우리 뒤처진다!”
“음.”
거의 꼴찌 그룹으로 뒤처졌다.
앞서 나가는 몇몇 플레이어는 악의적으로 뒤를 보며 웃었다.
“와! 우리가 저 두 인간보다 빨라!”
“길드 세웠다더니, 길드 신경 쓰느라 실전 감각이 둔해지셨나 봐?”
“하하하!!”
자기들은 블루종이 푸른 불꽃을 일으켰을 때 당황한 주제에, 유명한 은혁과 염훈보다 조금 앞선 게 기쁜 모양이었다.
놀리는 소릴 듣자 염훈의 마음이 괴로워졌다.
“으으, 미안하다, 은혁아. 나 없으면 너 혼자 [광풍돌진권]으로 다 튕겨내면서 질주할 수 있는데.”
염훈은 자기 때문에 은혁이 같이 느려진 것 같아서 무척 미안했다.
“전혀 미안할 거 없어. 언제 우리가 남들 속도 신경 쓰면서 살았냐?”
“그래도…….”
의기소침해하는 염훈을 보며, 은혁은 따뜻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잖아? 우리는 앞서간 놈들이 우릴 비웃거나 방심할 때마다 가뿐히 짓밟으면서 올라왔어.”
“아……!”
“그러니 당황하지 말고, 앞으로도 그렇게만 가자.”
“그래……!”
그때, 저편에 숲이 보였다.
“오오! 슬슬 숲에 진입하시는군요!”
라다스트가 따라서 비행하며 해설을 해댔다.
“숲은 보기보다 위험한 곳이니 주의하십시오!”
아닌 게 아니라 함정이 있었다.
철컹! 철컹!
곰덫이 대표적이었다.
은혁과 염훈을 놀리느라 뒤를 돌아본 이들이 특히 함정에 잘 걸렸다.
“으악?!”
“뭐야, 이거!”
“전혀 엘프스럽지 않은 함정이다!!”
엘프라면 좀 자연적인 함정을 쓸 거라 예상한 이들은, 엘프 장인들이 만든 잔혹한 함정에 정신을 못 차렸다.
악랄하게도, 곰덫에 달린 스파이크는 크기와 각도가 다양해서, 해제하려고 몸부림치면 더 고통을 유발했다.
“진짜 너무하네요.”
앞서가던 안경녀 정도가 그나마 스킬의 힘으로 통통 튀면서 곰덫을 피했다.
그 와중에도 더 많은 이들이 덫에 걸렸다.
철컹!
철컹!
그때마다 은혁과 염훈을 비웃던 많은 플레이어들이 발목을 부여잡으며 자지러졌다.
그걸 보며 은혁이 와하하 웃었다.
“크하하!! 내가 이 맛에 산다!!!”
평소에 쿨하던 은혁이지만, 이번 따라 본심을 크게 드러냈다.
남들이 놀리면서 앞서갈 때는 쿨한 은혁이다.
하지만 막상 그 남들이 빨리 가다 넘어지면?
그때는 치밀어오르는 기쁨을 전혀 감추지 않는 것이 은혁의 성품이었다.
“와하하!! 봐라, 염훈! 지뢰 제거 작전 성공!!”
은혁이 손가락을 딱 튕기며 외쳤다.
“으으! 은혁아. 방금 너 엄청 사악해 보인 거 아냐?”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야. 내가 앞장설게. 내가 밟은 자리만 안전하게 밟고 따라와라.”
“오, 오케이!”
은혁은 안전하게도, 바닥에 쓰러진 플레이어들의 등짝만 밟으며 이동했다.
퍽!
퍽!
“악!”
“이봐! 덫에 걸린 거 안 보여요?!”
플레이어들이 괴로워하며 비명을 지를 때마다 은혁은 더 세게 밟았다.
퍼억!
퍼억!
“폭행이다!”
“반칙이네, 반칙!!”
플레이어들이 외치자 라다스트가 날아왔다.
“아, 반칙은 아니네요. 함정 피하려고 밟는 거니까 인정!”
아닌 게 아니라 이미 함정에 걸린 자들의 몸을 징검다리 밟듯 이동하면 꽤 안전했다.
“뭐 하냐, 염훈! 빨리 따라와.”
“…….”
그나마 양심적인 염훈은 차마 고통받는 이들을 밟지 못했다.
“은혁아, 먼저 가라.”
염훈은 덫에 걸린 이들의 덫을 손수 뜯어내고, [상급 치유] 스킬을 살짝살짝 걸어주면서 이동했다.
그러자 평소보다 성기사 숙련도가 빠르게 올랐다.
-성기사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성기사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성기사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성기사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현재 성기사 숙련도 : 14%++.
“아……?”
“놀리고 간 우릴 치료해주는 거?”
“고맙습니다. 흑흑.”
덫에 걸린 것도 서러운데 은혁에게 밟혔던 이들이었다.
그와 대비되게 염훈이 와서 치료를 해주니, 감동을 크게 받았고, 이들의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성기사 숙련도를 빠르게 높여주는 것이다.
‘잘하고 있군.’
앞서간 은혁은 또다시 염훈을 대견스러워하며, 숲의 중간 부근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화르르…….
숲에는 이미 불이 크게 붙어 있었다.
‘블루종 이 새끼, 일부러 불 지르면서 달리고 있군.’
숲이고 함정이고 싹 다 태워 버리는 방식이므로 전략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은혁은 넘실거리는 푸른 불꽃에 [염열파]를 써서 깨끗이 소멸시켰다.
마법사 숙련도가 빠르게 올랐다.
-마법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마법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마법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마법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마법사 숙련도 : 5%++.
주변의 푸른 불꽃을 붉은 불꽃으로 지우는 일을 마무리한 은혁은 지체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마음에 안 들어.’
가장 먼저 그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모든 걸 불태우며 앞서서 달려가는 건 은혁이 평소에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에는 블루종과 정면 대결을 펼친 적이 없었지.’
블루종은 2차 길드 대전에서도 활약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행복 길드 부길드장인 시리우스의 손에 숙청당한다.
그 모종의 이유가 뭔지는 은혁도 잘 모른다.
‘결정했다.’
은혁은 숲의 끝자락으로 나아가며 생각했다.
‘블루종 이 새끼는 오늘 바로 죽이지 않고, 좀 더 정보를 수집한 다음에 꺾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타다다다…….
플레이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덫이나 다른 함정에 걸렸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은혁을 흘끔 보고 달려갔다.
“흠흠.”
“미안합니다.”
그들은 일종의 참교육(?)을 체험한 직후였기에, 앞서 달려가되 은혁을 비웃진 않았다.
“흠.”
은혁은 조금 더 기다렸다.
철컹철컹…….
염훈이 힘겹게 달려오고 있었다.
“다 치료해줬냐?”
“미안하다. 좀 걸렸지?”
“아아, 괜찮아. 숙련도는 잔뜩 빨았지?”
“그건 그런데…….”
“그러면 됐어.”
염훈도 어느새 3차 각성한 성기사였다.
각성해서 등급을 올릴수록 숙련도 상승률이 감소하는 것은 상식이다.
특수한 상황에서의 치료가 아니면 숙련도도 잘 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마침 특수한 상황에서 다수의 플레이어를 치유해 줬으니 숙련도가 꽤 쌓였을 터.
“자, 그럼 또 가자!”
그렇게 두 사람은 숲의 바깥 지점까지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