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 용사의 증표
“어?”
염훈이 깜짝 놀랐다.
-회복율 80%…….
-회복율 90%…….
-회복율 100%…….
-폭포 유니콘의, 부러졌던 뿔이 완치되었습니다!
-폭포 유니콘의 뿔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파앗!
폭포 유니콘의 뿔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폭포 유니콘 자체도 조금 성장했다.
폭포에 맞게 작고 날렵한 체형의 유니콘이 아닌, 이야기 속의 기사가 탈법한 준마에 가까운 형상으로 커졌다.
-폭포 유니콘이 주인을 받아들입니다!
“히히히힝!”
회복된 폭포 유니콘이 염훈에게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오오, 이제 다 나았구나?”
염훈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아직 잘 이해를 못 했지만.
꾸욱.
폭포 유니콘이 뿔로 염훈의 손바닥을 살짝 찔렀다.
“아?”
-신성한 영수의 각인이 이뤄졌습니다!
-[영수 소환]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대단한데?”
은혁이 솔직히 감탄했다.
스테이지에 귀속된 신성한 영수가, 스스로 자신의 주인을 찾아 인정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이유는 알 것도 같군.’
첫째. 그만큼 은혁에게 당한 고통이 컸다.
둘째. 염훈의 인성이 우수하다.
셋째. 염훈의 직업이 성기사다.
‘마지막 넷째는 아마도…….’
넷째. 염훈에게서 진정한 용사의 가능성을 보았다.
스탯창에는 ‘본성’이라는 부분이 있다.
스탯창은 기본적으로 당사자에게만 보이며, 공개하는 경우에도 일부는 제삼자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본성’은 특별한 항목이었다.
‘염훈의 본성에는, 어쩌면 진정한 용사의 가능성이 적혀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아직은 은혁의 추측이었다.
어쨌거나 폭포 유니콘은 염훈의 소유가 되었다.
“히히힝!”
폭포 유니콘이 염훈에게 재촉했다.
“어? 올라타라고?”
“히히힝!!”
“그, 안장도 없이 타도 되려나?”
염훈이 머뭇거리며 유니콘 위에 올라탔다.
염훈은 의외로 승마감이 우수해서 놀랐다.
“오오! 이 정도면 되겠다. 은혁아! 너도 뒤에 타!”
“푸르릉!”
폭포 유니콘이 고개를 저었다.
염훈은 되도 은혁은 안 된다는 식이었다.
은혁은 피식 웃으며 폭포 유니콘에게 다가갔다.
“때려서 미안하다. 사과하지.”
“……푸르릉.”
폭포 유니콘은 앞으로 두고 보겠다는 듯이, 타도 좋다는 태도를 취했다.
“고맙다! 차핫!”
은혁도 올라탔다.
염훈이 폭포 유니콘의 목을 툭툭 쳐줬다.
“좋아, 유니콘! 늦었으니 달리자!!”
“히히힝!!”
타앗!
폭포 유니콘은 염훈과 은혁을 태운 채로 단 두 번 도약해서 폭포의 꼭대기까지 도달했다.
* * *
꽤 많은 플레이어들이 폭포 오르기를 끝낸 직후 미션을 포기했다.
폭포만 오르면 될 거라고 생각했더니, 막상 그다음은 더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너무 어렵잖아!!”
폭포 너머의 평원을 질주하면, 활쏘기 장소가 나온다.
탁 트인 초원이 있고, 곳곳에 활과 화살이 놓여 있다.
누구나 활과 화살을 자유롭게 집을 수 있으며, 화살은 1인당 20개, 활은 1인당 1개씩만 지급된다.
완성도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급되는 활은 모두 훌륭한 엘프제 활이었고, 화살도 우수했다.
활을 집어 들면, 플레이어에게는 개별 표적이 소환된다.
1인당 표적은 1개이며, 타인의 표적은 쏠 수 없게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자기 표적에만 집중해서 쏘아 맞히면 클리어다.
문제는 딱 하나…….
“이걸 어떻게 맞춰!”
문제는 표적이 작은 꿀벌 크기였다는 점이다.
부웅!
붕! 붕!
꿀벌 표적들은 플레이어들을 조롱하듯 곡예비행을 했다.
그것을 정확히 노려 쏘는 건 직업이 궁술사인 플레이어들도 힘겨웠다.
“흐응. 다들 활쏘기 실력은 엉망이군요. 참으로 실망입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라다스트가 비아냥거렸다.
“그게 아니라 표적이 너무 작잖아!”
“난 직업이 궁술사인데도 솔직히 어려워요!”
궁술사 중에서도 숙련도가 높은 이들만이 그나마 성공했다.
테스트 내내 1등으로 달리던 안경녀조차도 결국 여기서 막혀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궁술사가 아닌 플레이어 중에서는 오직 블루종만이 가뿐히 성공했다.
[화염 기둥] 스킬로 꿀벌을 가두고, [추적의 불꽃] 스킬로 반쯤 익혀 죽인 다음 화살로 쏴 죽인 것이다.
그리고 홀로 유유히 콜로세움의 도착점으로 귀환했다.
-블루종 플레이어가 1위로 테스트에 합격하였습니다!
모두 보란 듯이 시스템 메시지가 퍼졌다.
“아, 결국!”
“부럽다…….”
다들 부러워하는 순간.
“꺄아아악!!!”
안경녀는 히스테리를 못 견디고 비명을 내질렀다.
“짜증 나! 이거 너무 짜증 나요!!”
뭔가를 튕겨내는 스킬의 소유자인 그녀는, 작은 표적 하나만 명중시키는 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뭐, 포기하시고 그냥 콜로세움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숲 달리기와 폭포 오르기 점수 아주 높은 분들은 여기서 0점을 받으셔도 평균 정도는 나오겠지요? 뭐, 태도 평가에서 추가로 점수가 깎이겠지만.”
라다스트는 얄미운 소리를 해댔다.
“크윽.”
“우린 포기하지 않아!”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외치고 다시 활을 들었다.
하지만.
“으으, 손이 떨려…….”
“덫에 걸렸다가 치료받은 부위가 아파…….”
그랬다.
숲 달리기, 폭포 오르기는 모두 활쏘기 테스트를 어렵게 만들기 위한 요소들이었다.
그때였다.
투두두……!
투두두……!
저 멀리서 폭포 유니콘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헉! 뭐임!”
“저, 저거……!”
폭포 유니콘 위에는 염훈과 은혁이 있었다.
“저거 폭포 유니콘이잖아!”
“말도 안 돼. 저걸 길들여서 타고 다닌다고?!”
플레이어들은 경악했고, 라다스트조차 놀라서 아무 말 못 했다.
은혁과 염훈은 놀라는 이들을 무시하고 활과 화살을 향해 달렸다.
“흡!”
“차핫!”
두 사람은 하마하지도 않고 바로 활과 화살을 딱 1개씩만 낚아챘다.
-표적이 생성되었습니다!
-표적이 생성되었습니다!
작은 꿀벌 두 마리가 생겨났다.
두 사람의 눈에만 작은 꿀벌 두 마리가 각각 표시되었다.
두 마리의 꿀벌은 각각 좌우로 흩어졌다.
“염훈! 일단 흩어지자!”
“그래!”
“잘해라!”
“너도!”
타앗!
은혁은 [도약]으로 달리는 유니콘에서 뛰어내렸고, 염훈은 그대로 달려갔다.
꿀벌은 그런 둘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도망쳐 다녔다.
은혁과 염훈은 각자의 꿀벌을 추적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어이없어했다.
“설마 저 인간들, 뛰면서 표적을 쏘려고?”
“게다가 화살은 각자 하나씩만 챙겨?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자만하는 거 아냐?”
똑바로 서서 [저격] 스킬을 쓴 궁술사에게도 꿀벌을 명중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은혁은 자신의 힘을, 염훈은 새로 얻은 신성한 영수를 믿었다.
“달려라, 유니콘! 난 너를 믿는다!!”
성기사 염훈이 독려했다.
투두두두두두……!!
폭포 유니콘이 급가속했다.
“아!”
“저걸 봐!”
유니콘의 발굽 밑에서 폭포수가 분사됐는데, 폭포 유니콘은 마음만 먹으면 주변 환경을 폭포와 유사하게 만들 수 있었다.
평지에서도 훌륭한 준마인 데다가, 주변 환경을 유리하게 변화시킬 수 있었기에, 유니콘은 달리기 속도로 꿀벌 표적에게 근접했다.
당황한 꿀벌이 높이 날아오르려는 순간.
“하앗!”
퉁!
염훈이 어설픈 솜씨로 기마 궁술을 선보였다.
화살은 형편없이 날아갔지만 상관없었다.
꿀벌과 유니콘의 거리는 15센티미터도 되지 않았으므로.
즉, 폭포 유니콘이 내는 순간 가속도가 꿀벌의 비행 속도를 우습게 압도한 것이다.
툭!
꿀벌이 살짝 화살 끝에 스쳤고.
“오오! 클리어! 염훈 플레이어! 엄청난 방식으로 클리어했습니다!!”
라다스트가 열광하며 외쳤다.
그걸 본 다른 플레이어들도 열광했다.
“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젠장, 고지식하게 활만 붙잡고 할 게 아니었어!”
사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 정도면, 대부분이 스킬의 힘으로 꿀벌 하나쯤은 안 죽이고 제압 가능했다.
하지만 숲 달리기와 폭포 오르기로 지친 데다가, 활과 화살이라는 고정관념에 잠시 속아 넘어간 탓에 제대로 하지 못한 것뿐.
파악!
화르륵!
쩌저적……!
공간 도약, 화염술, 냉기 주문 등등이 곳곳에서 터졌다.
플레이어들이 잠시 활을 내려놓고 꿀벌들을 우선 제압하기로 하자 효율이 급증했다.
물론, 지나친 경우도 있었다.
“셉템버 플레이어! 실격!”
“에?! 왜요!”
“표적을 화살이 아닌 방식으로 죽였으니 실격! 아, 거기 지 슈안 플레이어도 실격! 꿀벌을 통째로 얼려 죽였으니 실격입니다!”
실격자들도 속출했다.
결국, 스킬의 정밀성이 문제였다.
‘슬슬 내 차례군.’
은혁은 [질주] 스킬로 자신의 꿀벌 표적을 쫓고 있었다.
충분히 속도가 붙은 순간, [광풍돌진권]의 특수 파생기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촤악!
급정거를 함과 동시에 손바닥을 뻗었다.
“[광풍흡성기류장]!”
콰오오오오……!!
평소에 쓰던 [광풍돌진권]에 역회전을 걸고 운동량과 방향성을 정반대로 했다.
그러자 뻗은 주먹의 끝에서 광풍이 뿜어져 나가는 게 아니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스킬이 발동됐다.
휘오오오오오!!
꿀벌은 은혁의 손아귀에 빨려 들어갔다.
덥석!
은혁은 꿀벌을 손바닥으로 생포했다.
파들파들 떠는 꿀벌에게 은혁이 말했다.
“지금부터 화살을 쏠 거다. 도망치지 않는다면 살살 쏴주마.”
은혁의 말을 알아들은 꿀벌은 얌전히 있었다.
툭.
은혁은 화살을 살살 쏴서 맞혔다.
“오오! 여기서도 합격자가 나오는군요! 대단합니다!”
라다스트가 어느새 다가와 호들갑을 떨었다.
은혁은 얼른 손을 들고 질문했다.
“저기, 질문이 있는데요.”
“음? 뭡니까?”
“시끄러운데 좀 닥쳐주면 안 됩니까?”
“…….”
벙찐 라다스트를 두고, 은혁은 앞서 달려간 염훈을 쫓아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콜로세움으로 돌아갔다.
* * *
이런저런 고생 끝에, 용사 선발에 관한 테스트가 끝이 났다.
합격자는 총 20명.
은혁, 염훈, 그리고 기타 통과자들은 콜로세움을 가로질러, 용사 대기실로 이동했다.
-축하드립니다! 36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용사의 증표를 획득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60.
용사의 증표를 받는 것만으로도 레벨이 하나 올랐다.
-용사의 증표 :
하이 엘프 왕국 폴링스트가 주최한 용사 선발 시험에 통과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증표.
왕국 내의 어느 장소로나 갈 수 있는 프리패스 허가증 역할을 한다.
유사시 하이 엘프 병사들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여기서 둘 중 하나겠군.’
곧바로 37층 메인 미션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대기하거나.
36층 메인 미션인 용사 선발 통과자가 너무 적으면 몇 날 며칠씩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원수가 적네.’
은혁의 회귀 전 본래 역사에서는 45명 정도였었다.
‘왜 이리 숫자가 줄었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도전자 풀 자체가 크게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거, 내가 상승 길드와 행복 길드를 약화시켜서 생긴 나비 효과인가?’
그러고 보니 회귀 전에는 조직적으로 용사 선발 시험을 클리어하는 이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도전했다.
은혁과 염훈처럼 서로 아는 사이가 오히려 드물 정도.
도전자 숫자 자체가 확 줄다 보니, 합격자의 숫자도 확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것 또한 회귀자인 은혁이 바꾼 역사라 할 수 있었다.
‘흠. 이게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어떨지…….’
은혁은 솔직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어휴, 저 재수 없는 놈.”
염훈은 멀리 있는 블루종을 흘깃거리며 연신 욕을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