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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66화 (166/434)

166화 : 즐거운 아침 식사

첫째. 연구 길드의 레나.

그녀의 원본은 인간이었을지 몰라도, 은혁과 싸웠던 레나는 이미 몇 번이나 복제되고 인공 생명체로 제작된 존재였다.

그럼에도 부길드장급에 도달할 정도의 플레이어다.

둘째. 28층에 있던, 행복 길드 소속의 농장주였던 프리머.

그는 행복 길드의 행복 포션 원료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스스로 몬스터가 되었었다.

필요에 따라 플레이어가 되어 인벤토리창을 관리했다가 중간 보스급 몬스터가 되었다가를 반복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물론, 위와 같은 사례는 길드연합국 기준에서 많지 않았고,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불가능은 아니지. 네리콘은 순수 하이 엘프 NPC가 아니라, 정황상 인간 플레이어와 하이 엘프 NPC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 그를 플레이어로 바꿔주는 것도 행복 길드의 힘이면 가능해!’

그리고 블루종은 그걸 미끼로 네리콘을 첩자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뭐, 좋다. 확답 주지.”

블루종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내일,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강은혁을 죽여라. 전에 미리 이야기한 방법이면 가장 좋겠지.”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부자연스러워도 상관없어. 그 일을 완료하면 모레에 너를, 지금 같은 반쪽짜리가 아닌 온전한 플레이어로 변환시키고 5층 길드연합국으로 데려가 줄 테니까. 됐나?”

“[맹세]도 해라.”

“뭐?”

“날 바보로 아나? 너희 플레이어들은 힘을 측정하는 평가표의 일종인 스탯창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스탯창에 걸고 [맹세]를 하면 절대로 약속을 어기지 못한다고 들었다만?”

“새끼. 그동안 정보 수집을 열나게 했군?”

“말 돌리지 마라. [맹세]를 해라.”

“그럴 순 없지. 나만 일방적으로 스탯창 [맹세]를 해야 한다니……. 너는 NPC라서 스탯창 [맹세]를 못 하잖나.”

“……!”

“자기는 스탯창 [맹세]도 못하는 주제에 나에게만 [맹세]를 하라? 그야말로 주제를 모르는 소리 아니냐?”

“그……것도 그렇군. 오직 플레이어만이 스탯창 [맹세]가 가능했지.”

네리콘은 자조했다.

플레이어가 아니기에 [맹세]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운 듯이 웃었다.

“뭐, 안심해. 약속을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그걸 너라면 믿겠나?”

“믿을 수밖에 없잖아? 솔직히, 너는 어지간한 플레이어 궁술사보다 실력이 뛰어나니까. 과장 없이, 2차 각성한 궁술사보다 강하고, 3차 각성한 궁술사보다는 조금 약한 수준! 너 정도면 행복 길드가 영입할 가치가 있지. 무엇보다 ‘추적팀’이 얼마 전 전멸해서, 새로 인원을 뽑아야 하거든?”

“추적팀? 네가 말하는 행복 길드의 특수팀 중 하나 아닌가? 그게 전멸했다고?”

“그래. 우리가 내일 죽여야 할 강은혁 그놈의 계획에 휘말려 전멸됐다. 사실상 놈이 전멸시킨 셈이지.”

“흥미롭군.”

“크크큭. 이제 의욕이 생기나 보군.”

“…….”

“그럼 내일 보자고. 작전대로 해.”

블루종은 그 말만 남기고 휙 뒤돌아섰다.

네리콘 또한 떠났다.

‘잘했다. 메탈 서전트. 마지막으로, 동쪽 담장에 붙은 꽃을 채집한 뒤, 가져와라.’

메탈 서전트는 시키는 대로 꽃잎을 몇 개 채집했다.

그리고 은혁에게 돌아왔다.

“잘했다. 이제 쉬어라.”

은혁은 메탈 서전트를 해제시켰다.

그리고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민했다.

‘원래 계획은 방심한 척 놈들의 공격을 유도했다가 내가 반격해서 일격에 두 놈 다 쓸어버리는 거였는데…….’

네리콘과 블루종의 대화를 듣고 나니, 조금 더 재미있게 뽑아먹을 구석이 보였다.

‘오늘 엿들은 걸 어떻게 써먹어야 잘 써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은혁은 침대에 누워서 계략을 짜며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 * *

오전 6시.

“후아암.”

염훈은 자신의 객실에서 깼다.

“에구구.”

염훈은 침대 위에서 가볍게 몸을 틀며 신음했다.

깨끗한 침대였지만, 동물의 털이나 스프링이 아닌, 밀짚과 솔잎으로 만든 침대였다.

엘프의 침대에서는 특유의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느낌이 들었는데, 솔직히 편한 침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밥 먹으러 내려가야지…….’

일어나서 옆방을 살펴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은혁이 녀석이 아직도 자나?”

중요한 날에는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은혁이었다.

그래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염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노크했다.

“은혁아? 일어나야지?”

똑똑!

똑똑!

영 대답이 없었다.

이래도 안 일어나면 겨울왕국식으로 노크해서 깨워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으음…….”

은혁이 한참 만에 일어나 나왔다.

“별일이네. 네가 늦잠을 자다니.”

“으음. 워낙 행복한 꿈을 꾸느라.”

두 사람은 식당으로 갔다.

역시 채식 식단이었다.

“많이 드십쇼, 용사님들! 오늘의 메인 메뉴는 땅콩 소스에 버무린 샐러드입니다!”

식당의 하이 엘프 요리사가 환하게 웃으며 권했다.

플레이어들은 감사히 배식받으면서도 표정이 어두웠다.

“일부러 우리 놀리는 건 아니겠지?”

“이 사람들 기준에서는 채식이 고급 요리일지도 모르죠…….”

“하아, 소고기 구워서 소금 찍어 먹고 싶다.”

그 순간.

덜그럭, 덜그럭.

은혁이 요리 재료들을 꺼냈다.

미리 인벤토리창에 각종 재료를 담아 온 것이다.

“잠시 주방 좀 빌립니다.”

은혁은 요리 만화 주인공처럼 성큼성큼 남의 주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각종 채소를 꺼냈다.

그걸 본 하이 엘프 요리사들이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을까요?”

“용사님들 입맛에는 우리 채소가 안 맞으실 텐데요…….”

“그나마 양상추 맛이 비슷해서 샐러드로 만든 건데.”

은혁은 그들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식칼을 들었다.

“[괴식 요리].”

은혁은, 이제는 불패불굴 길드의 요리사가 된 세콜리에게서 전수받은 스킬을 썼다.

파바바박!

재료를 빠르게 썰더니.

“흡!”

만찬 때가 아니면 잘 안 쓰는 열기구에 [화염 방사] 스킬로 불을 지졌다.

“와……!”

“이런 열기라니……!”

하지만 놀라긴 일렀다.

“하앗!!”

화르르륵!!

은혁은 [화염 방사]의 범위를 좁히고 출력을 높였다.

주방의 천장이 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화력이었지만, 절묘하게 냄비로 커버했다.

“흡!”

은혁은 미리 챙겨 온 기름을 냄비에 둘렀다.

주르륵……!

후우우우우우……!

기름을 붓는 단순 동작이었지만, 밝은 화염 덕분에 그림자가 춤을 췄다.

하이 엘프들은 불과 기름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잠시 넋을 잃었다.

그동안.

치이이익!

은혁은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하이 엘프들의 채소와 향신료를 볶았다.

“다음으로 향을 위해 올리브 오일을 살짝만 뿌리고, 챙겨 온 돼지고기 적당량, 굴 소스 약간, 간장 약간……!”

은혁은 인벤토리창에 국자를 뻗어서 재료만 휙휙 꺼내 담고 볶았다.

도적 숙련도와 무투가 숙련도가 높았기에, 플레이어들은 눈으로 보면서도 그 움직임을 좇지 못했다.

치이이이익……!!

“와아……!”

“무슨 중화 요리 기법인가?”

“하이 엘프 채소 냄새는 이상하다고 들었었는데, 아닌가 보네?”

향기만 맡아도 벌써 맛있었다.

‘역시 [괴식 요리] 스킬. 배워두길 잘했어.’

재료가 플레이어의 상식과 어긋날수록 더 맛있게 만드는 것이 [괴식 요리] 스킬의 힘이었다.

“마무리!”

터텅!

빠르게 불을 끄고 접시에 나누어 담았다.

그것을 하이 엘프식 향긋한 꽃빵과 함께 제공했다.

“다들 드셔보시죠. 플레이어분들, 그리고 요리사분들도.”

“와아……!”

“저, 저희도 먹어도 됩니까?”

다들 기대감 속에서 요리를 먹었다.

“와, 맛있다!”

“꽤 익숙하면서 맛있네. 어디서 먹었더라?”

“안 매운 제육볶음? 간장 떡볶이?”

“차이나 타운에서 파는 야채 볶음 맛 같은데?”

“아냐, 편의점에서 파는 뿌리채소 볶음 맛이야.”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먹은 친숙한 맛과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맛에 연신 감탄했다.

반면에 하이 엘프들은 생전 처음 느끼는 맛에 감탄사도 제대로 터뜨리지 못했다.

“세상에, 고기가 맛있는 요리였어요?!”

“상식이 파괴되는 맛이군요.”

“엄밀히 말하면 저희 기준에서는 괴식이긴 한데……!”

“그래도 맛있어요!”

모두가 왁자지껄 감탄하며 먹었다.

“사기가 오르는 걸 보니 좋군. 안 그러냐, 염훈?”

“음. 그러게.”

방금까지만 해도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하지만 염훈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이었는데…….

‘후후. 내가 먼저 나서야지.’

은혁은 염훈이 말을 꺼내기 전에 나섰다.

달칵.

은혁은 주방에서 접시와 국자를 챙겼다.

스윽…….

손수 요리를 접시에 담아 블루종에게 갖다 줬다.

“블루종 플레이어? 차가운 샐러드만 드시지 말고, 이 뜨거운 요리 좀 드시죠.”

은혁이 블루종에게 요리를 주자, 염훈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사실 염훈은 블루종이 싫었다.

상황만 놓고 봐도 사실상 적이었다.

그래서 놈에게 요리를 권하기 싫었다.

하지만 먹을 거 가지고 한 명만 차별하는 건, 염훈의 자존심이 허락 하지 않았다.

게다가 적에게, 은혁이 힘들게 만든 요리를 주는 건 은혁이 싫어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염훈은 즉시 행동 못 하고 고민했는데, 은혁이 먼저 나선 것이다.

“저에게도 주는 겁니까?”

블루종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네. 어차피 다 같이 37층 미션 깨야 하는데, 다 같이 든든히 먹어야죠.”

“후…….”

블루종은 미소를 지으며 접시를 들더니.

와장창!

바닥에 패대기쳐 깨트렸다.

“아……?”

“저, 저 무슨……!”

하이 엘프와 플레이어들 모두 경악했다.

“실례. 손이 미끄러졌군요.”

블루종은 그 말을 남기고 일어나더니.

꾸깃……!

일부러 요리를 한 차례 밟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지, 지금 고의였죠?”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담?”

“먹기 싫으면 싫다고 말로 할 것이지, 인성 왜 저래?”

“허참, 저런 인간이 1위로 테스트를 클리어하다니.”

다들 블루종을 험담했다.

“괜찮냐, 은혁아?”

염훈은 은혁을 걱정했다.

“아니…….”

은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염훈은 자기 가슴이 다 아팠다.

“괜찮아, 은혁아.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이긴 거야. 저런 놈한테도 공평하게 음식을 대접했으니까. 네 명예는 손상된 거 1도 없어. 신경 쓰지 마.”

“그리 말해주니 고맙다, 염훈.”

그러자 다른 이들도 블루종의 편협함을 비판하는 것에 동참하고, 은혁을 위로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새끼.’

은혁은 속으로 블루종을 욕함으로써 칭찬했다.

사실, 은혁은 블루종의 접시에만 독을 넣었다.

지난밤, 은혁은 블루종과 네리콘의 대화를 메탈 서전트를 통해 엿들은 뒤, 메탈 서전트를 시켜서 담장에 붙은 꽃을 채집했다.

‘백사의 꽃.’

잡다한 벌레와 짐승이 꼬이지 못하게 하는 은은한 독기를 품은 새하얀 꽃이다.

이 꽃과 비슷한 이름의 뱀인 백사가 특히 싫어하는 꽃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재미있게도, 뜨거운 올리브 오일과 섞이면 독성이 강해지는 꽃이지.’

은혁은 요리는 안전하게 만들고, 블루종의 접시에만 덜어줄 때 그 꽃의 즙만 조금 섞었다.

‘어떻게 눈치를 챘을까?’

[열 감지] 스킬을 쓴 것일 수도 있다.

‘뜨거운 요리에 차가운 독액을 넣는 순간, 닿은 부분의 요리 온도가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그걸 빠르게 캐치한 거겠지.’

즉, 안 보는 척하면서도 자기 근처의 위협은 다 체크하고 있었다는 뜻.

‘재밌어.’

은혁은 블루종의 실력을 좀 더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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