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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74화 (174/434)

174화 : 그린 드래곤 살라키오스 (2)

“그러니 그만 물러나시오, 성좌여. 성직자와 성좌의 관계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방적인 게 아닐 것이오.”

-감히……!

성좌의 목소리가 육신을 넘어 흘러나왔다.

츠즈즈즈즈…….

블루종의 몸체 전체가 파랗게 불타 승화하기 시작했다.

블루종의 육신이 타버리고, 화신(火神)이, 진정한 화신(化神)의 형태로 섰다.

화르르르……!!

아브러스 플레임은 성직자의 몸을 뺏는 것으로 모자라, 그걸 연료 삼아 푸른 불꽃의 화신이 되었다.

본체 강림에 비하면 많이 약하지만, 적어도 구속된 살라키오스보다는 훨씬 강했다.

-드래곤 주제에 성좌의 일을 가르치려 드는가!

아브러스 플레임은 허공에 뜬 채 그린 드래곤에게 일갈했다.

하지만 그린 드래곤 살라키오스는 두려워하는 대신 허허 웃었다.

“허허. 내 말이 그렇게 분노할 말이었소? 그렇다면 그대는 아직 그대의 운명에 휘둘리는 존재라는 거요.”

-구속구에 갇혀 있는 주제에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비록 나는 구속된 상태이나, 나는 내 처지를 인정하오. 나는 올마스크와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구속된 상태요.”

살라키오스는 매우 담담한 어조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욕망에 구속된 상태요. 화염의 차원을 지배하는 자치고는 매우 옹졸하고 비겁하군. 자신을 섬겨온 성직자의 몸을 그렇게 뺏어 봤자, 장기적으로는 그대의 신성력만 줄어들 터인데.”

살라키오스는 얄미울 정도로 사실만 지적했다.

성좌, 아브러스 플레임은 말 그대로 눈에 불을 켜며 살라키오스를 노려봤지만, 살라키오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대는, 가면의 용사가 가르쳐 준 표현대로라면 ‘강약약강’의 존재요. 뇌신이 전성기일 때는 정면 승부를 걸지 못한 주제에, 막상 뇌신이 약해지자 그의 영역을 뺏고자 하다니. 나 또한 탐욕과 변덕을 지닌 드래곤이지만, 그대와 함께하진 못하겠군.”

-정말로 죽여야겠군! 각오하라!

기이이잉……!!

푸른 불꽃이 화신의 양손에 모였다.

어차피 살라키오스는 구속구에 의해 몸 움직임이 불편하니, 화염을 최대 출력으로 모아 통째로 태워 죽이려는 계획이었다.

“바싹 타고 남은 사체에서 드래곤 하트만 꺼내주지. 네놈의 날개가 없어도, 그것만 흡수하면 훨씬 강해질 테니까!”

* * *

“갑자기 또 잠잠해졌네?”

염훈이 중얼거렸다.

블루종이 살라키오스의 방에 침입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당장이라도 큰일이 날 것 같아서 걱정했지만, 의외로 조용했던 것이다.

그 순간.

쿠궁……!

“말하자마자 땅이 흔들리냐? 젠장.”

염훈이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하필 구속구 교체가 90%인 이때 땅이 흔들리다니.”

안경녀 이미란이 말을 받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기술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구속구를 교체 중이었다.

-구속구 교체 과정 91% 완료…….

-구속구 교체 과정 94% 완료…….

-구속구 교체 과정 99% 완료…….

그리고 마침내.

-구속구 교체 과정 100% 완료!

-축하드립니다! 37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2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62.

염훈의 레벨은 물론, 이곳에 없는 은혁의 레벨도 같이 올랐다.

염훈과 은혁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고 파티 상태를 유지 중이었기에, 두 사람의 레벨은 같았다.

“좋아! 해냈다!!”

“탈출 준비!!”

엘프들은 프로들답게 짧게 기뻐하고 바로 탈출할 준비를 했다.

플레이어들도 미션 성공 메시지를 보고 기뻐했다.

메인 미션을 다 깼으니, 게이트까지 도망쳐서, 게이트를 타고 5층으로 귀환하든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든 하면 그만이었다.

“좋아. 레벨도 올랐군.”

염훈이 중얼거렸다.

염훈과 은혁은 파티를 맺은 상태이니, 은혁도 미션 클리어 판정을 받았으리라.

“이제 우린 탈출만 하면 되는 거네요. 그쵸?”

안경녀가 밝게 물었다.

염훈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 잠시 남겠습니다.”

“네?!”

“플레이어랑 엘프들 인솔해서 먼저 나가요.”

“잠깐만요. 그쪽은요?”

“전 나중에. 친구랑 같이 나갈 테니까.”

은혁을 찾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었다.

“무리예요! 당장이라도 무너질 가능성이…….”

“제 한 몸 정도는 간수할 수 있습니다.”

염훈은 [무적 돌진]을 써서, 자기 몸을 굴착기 삼는 한이 있어도 은혁을 찾아서 함께 탈출할 각오를 했다.

‘벽 같은 구조물은 [무적 돌진]으로 쉽게 부술 수 있는데, 흙더미 같은 건 뚫기 어려워.’

조금 버거울 수도 있겠다고, 염훈은 생각했다.

“잠깐만요. 지금 무슨 생각을…….”

안경녀가 염훈을 걱정한 순간.

쿠르릉……!

또다시 진동이 일어났다.

쩌저적……!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꺄……!”

안경녀가 비틀거렸고, 염훈이 잡아줬다.

화르르……!

갈라진 바닥의 틈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그걸 본 염훈은 짐작했다.

“보아하니 아래쪽에서 드래곤이 뭔가랑 싸우는 것 같습니다.”

그 여파로 산 내부가 흔들린다고 보면 말이 된다.

“잠시만요! 구속 장치는 제대로 설치됐다고 나오는데 드래곤이 어떻게 날뛴다는 건지……!”

“정확한 일은 저도 모릅니다.”

염훈은 그 말만 남기고 바닥을 살펴봤다.

갈라진 바닥에서는 열기와 푸른 불꽃까지 올라왔다.

콰쾅!!

콰르르……!!

그러자 엘프 기술자들도 깜짝 놀랐다.

“이, 이건 심상치 않네요.”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염훈은 거의 확신했다.

‘왠지 이 밑에 은혁이 녀석이 있을 거 같은데.’

염훈은 균열 근처에 서서 잠시 사태를 관망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바닥을 부수고 뛰어드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때, 소리가 들려왔다.

* * *

또다시 푸른 화염이 살라키오스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아무리 드래곤의 비늘이 대부분의 화염에 저항력을 보인다고 하지만, 끝없이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살라키오스라 해도 성치 못할 터였다.

하지만.

“왜냐! 왜 화염을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한 거냐!!”

아브러스 플레임은 화를 못 이기고 외쳤다.

“하하하……!”

살라키오스는 푸른 불꽃의 격류 속에서도 웃었다.

“화기에 취한 성좌여. 잘 들어보시오. 시스템 메시지라는 것을.”

“뭐?”

실제로 살라키오스와 아브러스 플레임의 눈앞에는 시스템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과도한 위협 확인!

-구속 장치가 화염을 억제합니다!

“뭐……!”

아브러스 플레임은 화염을 방출하느라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 못 했던 것이다.

“하하하! 어리석은 성좌여! 봉인된 나를 죽이려고 시도한 이가 그대가 처음인 줄 알았소?”

살라키오스는 너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비웃었다.

하이 엘프 왕가도 바보가 아니니만큼, 이전부터 구속구에 봉인된 사이에 드래곤을 깔끔하게 죽여 없애자는 의견이 있어 왔다.

하지만 구속구가 일방적으로 살라키오스를 억제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살라키오스가 봉인된 자신을 인정하는 경우 방어력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살라키오스를 죽이려면 봉인 장치를 해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봉인 장치가 잠깐이라도 해제되면 드래곤이 날뛸 터였다.

그래서 구속구를 교체하여 봉인을 이어가는 것으로 만족한 것이다.

“이 구속 장치는 100층탑 관리국, 구원 길드의 길드장이 합심하여 만든 회심의 구속 장치요. 내가 패배하고 구속된 나 자신을 인정하는 한, 누구도 날 죽일 수 없소.”

즉, 살라키오스가 얌전히 구속구를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그편이 자신에게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살라키오스는 그 대신 성좌를 말로 능멸하면서 즐겼다.

“크아아아아!!!”

아브러스 플레임은 분노를 못 참고 울부짖었다.

“그렇다면 네놈과 연결된 구속의 사슬을 모두 끊어주마!!”

살라키오스의 몸에 연결된 사슬 4개는 천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사슬과 구속 장치가 연결된 것이므로, 천장의 사슬만 끊어도 구속 장치는 해제되리라.

타앗!

아브러스 플레임은 자신의 몸에 두른 푸른 화염을 양손에 모았다.

그리고 4개의 사슬을 단숨에 끊으려 한 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 플레이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격].”

투쾅!!!

사슬을 파괴하려는 순간을 노려, 누군가가 저격을 날렸다.

“뭐?!”

퍼억!!!

아브러스 플레임의 화신의 목덜미에, 압축된 화염의 탄환이 꽂혔다.

그 화염의 탄환은 마치 청염백광단검 같았다.

“……!!”

콰쾅!!!

목덜미에 꽂힌 화염의 탄환이 폭발했다.

“……!!”

화염의 차원을 지배하는 화신이었지만, 블루종의 몸체를 상당 부분 빌리고 있는 상태였다.

목덜미 깊은 곳에서 폭발하는 빛과 화염은 이길 수 없었다.

털썩!

아브러스 플레임의 화신은 앞으로 거꾸러졌다.

“흠.”

살라키오스는 반쯤은 의외라는 듯, 반쯤은 예상대로라는 듯이 소리를 냈다.

“거기 숨어 있는 사람, 나오시오.”

그러자, 숨어 있던 은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의 여파로 무너진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은혁은 [돌 부수기] 스킬을 최대한 살살 써서 저격용 은엄폐 장소를 만들어 뒀었다.

그 상태로 저격 준비만 완료한 채 대기했고, 계획대로 잘 되었다.

“읏차.”

구멍 밖으로 나온 은혁의 뒤에는 부상당한 네리콘이 있었는데, 워낙 취약해진 상태라 그런지 드래곤을 마주하자마자 의식을 잃고 말았다.

성큼성큼.

은혁은 눈앞의 드래곤이나, 등 뒤의 기절한 네리콘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쓰러진 아브러스 플레임의 화신을 내려다봤다.

“성공이군.”

-궁술사 숙련도가 5% 증가했습니다!

-현재 궁술사 숙련도 : 89%.

-궁술사 패시브 스킬 [투창 숙련]을 획득하셨습니다!

-궁술사 패시브 스킬 [가죽 갑옷 숙련]을 획득하셨습니다!

-궁술사 스킬 [관통 사격]을 획득하셨습니다!

-궁술사 스킬 [영거리 사격]을 획득하셨습니다!

“좋아. 숙련도가 확 오르는군.”

은혁은 지옥에 떨어져도 자기 숙련도가 올랐는지 확인할 인간인지라, 다른 일 다 제쳐 두고 숙련도 상승부터 확인하고 기뻐했다.

-으…… 으윽……!

화신으로서는 최악의 굴욕이었다.

화신이므로 기절 같은 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몸을 뺏은 화신이었기에, 인간의 한계는 온전히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죽지도, 기절하지도 못한 채 뻣뻣하게 굳어 엎드린 자세로 쓰러진 것이다.

-네놈은……!

“준비 끝날 때까지 더 엎드려 있으쇼.”

은혁은 저격할 때 썼던 선즈 크로스보우를 들어 올렸다.

“호오, 그건.”

살라키오스는 눈에 익은 물건을 보고 감탄했다.

“가면의 용사가 날 쓰러뜨릴 때 빌려 썼던, 먼 옛날 태양의 여왕이 쓰던 무기로군?”

“잘 아시는군요.”

은혁은 그 한마디만 하고는 청염백광단검을 선즈 크로스보우 충전구에서 빼냈다.

“흡!!”

콰악!!

이번에는 청염백광단검을 화신의 등짝에 냅다 쑤셔 박았다.

“[그림자 결속] + [화염 지배]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화염 귀속]!!!”

화악!!

은혁은 아브러스 플레임을 통해 연결된 화염의 차원의 화염을 통째로 흡수하려 했다.

기이이잉……!

청염백광단검이 백열하며 진동했다.

-경고! 비정상적인 차원 연결 감지!

-단말기가 곧 파괴됩니다!

즉, 청염백광단검이 파괴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은혁에게는 선즈 크로스보우가 있었다.

‘열기를 흡수한다.’

기이이잉……!

열기를 선즈 크로스보우의 충전구로 빨아들였다.

그러자 청염백광단검이 안정화되고, 계속해서 [화염 귀속]을 유지할 수 있었다.

-뭐냐! 지금 뭘 하는 것이냐!!

아브러스 플레임이 몸부림을 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팔다리에서 힘이 점점 빠졌다.

“뭐긴, 네 힘을 흡수하는 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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