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 포격 지대
마법사 중에는 드래곤 하트를 섭취해서 급성장을 노리는 자들도 있지만, 현시점의 은혁에게는 그런 게 필요 없었다.
꾸준히 숙련도를 올리는 게 더 나았으므로.
제인은 은혁이 꺼낸 재료들을 보고 경악했다.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갑옷을 만들려는 거야? 응? 응?”
“아, 자세한 건 나중에요. 어차피 재료가 더 필요하거든요.”
은혁은 그렇게 분위기만 띄운 뒤, 종이에 프리 드로우 방식으로 설계도를 그렸다.
스팀펑크 메카닉으로 승급한 은혁이었기에 [재해석]과 [초월 설계]가 가능했다.
파바박!
은혁은 설계도를 그렸다.
“으음!”
“오오!”
염훈과 제인은 모두 감탄했다.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군!”
“정말 대단해! 천재적이야!”
감탄의 이유는 정반대였지만, 어쨌거나 감탄사는 끊이지 않았다.
“흠흠, 자랑할 생각은 없었지만 뭐, 궁금해하니까 가르쳐 준 겁니다.”
사실은 미리 자랑하고 싶었다.
‘좀 이른 감이 있긴 한데.’
지금 보여준 이 설계조차도 완성과는 거리가 멀고, 콘셉트 디자인에 가깝다.
‘드래곤의 비늘과 뼈, 그리고 다른 몬스터 부산물과 네임드 마정석이 한참 더 필요해!’
그야말로 은혁과 제인의 모든 역량을 갈아 넣는 초호화 프로젝트가 될 예정이었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가자.’
은혁은 설계도를 조심스레 둘둘 말아서 인벤토리창에 넣었다.
“그나저나, 염훈. 길드원들 탑 공략은 어때?”
“뭐, 우리보다는 느리지만 다들 꾸준히 오르고 있지.”
염훈은 주요 길드원들의 탑 공략 수준을 말해줬다.
“흠, 과연.”
크게 성장이 느린 길드원은 없었다.
‘약한 길드원은 애초에 뽑지 않았으니까.’
부길드장으로서 부하들을 지도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염훈. 우린 바로 38층으로 가자.”
* * *
-38층 : 포격 지대.
콰콰쾅!!!
도착하자마자 사방에서 폭음이 터졌다.
“으악!”
“꺄아! 도와주세요!”
전송된 곳은 곳곳에서 포격 당하고 있는 피난민 캠프였다.
곳곳에 피난민 NPC들이 가득했다.
피난민 NPC들은 ‘다차원 교차로’를 이용하다가 실수로, 길을 잃어서, 또는 누군가의 속임수로 인해 이곳에 전송된 이들이다.
대부분이 인간형 NPC들이었다.
<38층 메인 미션 : 안전 지대로 탈출>
-목표 : 포격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포격 지대를 탈출하여, 안전지대에 도착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부상 및 체력의 완전 회복.
-실패 시 페널티 : 죽음.
-제한 시간 : 10분.
지금까지 추세와 달리 제한 시간이 상당히 팍팍한 스테이지였다.
콰쾅!!
콰콰쾅!!!
사방에서 포탄이 떨어졌고, 피난민 캠프 NPC들이 방어 주문을 펼치고 있었다.
“고개 내밀지 마!”
“천막 안으로 숨어!”
그나마 천막 근처에는 수호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이, 이게 뭐야?”
“갑자기 전쟁터?!”
“젠장, 제한 시간이 10분이라니!”
38층 이후부터는 정보가 매우 부족했다.
그래서 길드에 가입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사전 지식이 부족한 탓에 당혹스러워했다.
게다가 제한 시간이 갑자기 짧은 미션이 나왔기에 산전수전 겪은 플레이어들도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 거기 플레이어들인가! 여기로 와!”
“아냐아냐, 여기야, 여기!”
클리어 경험이 있는 이들이 공략대를 자처하며 플레이어들을 불러 모았다.
“교통호 밖으로 머리 내밀지 마, 병신들아!”
“전 재산의 반만 내놓으면 안전한 루트로 안내해 주지!”
“제한 시간이 짧으니 서두르는 게 좋을걸!”
공략대는 플레이어건 NPC건 가리지 않고, 돈을 내면 안전 지대로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안전 지대에 도달하면 플레이어는 미션을 클리어하여 다음 층에 갈 수 있게 되고, 피난민 NPC들은 보다 안전한 ‘다차원 교차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은혁아. 우리한테는 쉬운 미션 같은데?”
“뭐, 그렇지.”
포격 하나하나의 위력은 은혁의 초창기 [파이어볼] 위력과 비슷했다.
아주 멀리서 날아온다는 점과 여러 발이 떨어진다는 게 위협적이었지만, 냉정하게 대처하면 안 죽고 안전 지대까지 가는 게 가능했다.
다만 일반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러운 포격과 짧은 제한 시간 때문에 크게 당황한 것일 뿐, 객관적으로 보면 어렵지 않은 미션이다.
“[메탈 서전트 소환].”
은혁은 메탈 서전트와의 시야 공유를 통해 안전 지대의 위치도 파악했다.
안전 지대는 동쪽과 서쪽에 하나씩 있었고, 어느 쪽으로 가건 도달하면 클리어였다.
양쪽 모두 뛰어가면 4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으으! 도와주시오!”
인간 NPC 노인이 애원했다.
“제발! 저희도 데려가 주세요!”
하플링 NPC 여인들이 다가왔다.
그밖에도 다양한 종족의 파난민들이 모두 도움을 청해왔다.
여기서 안전 지대에 도달하면 정말로 안전한 차원으로 비로소 떠날 수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영원히 이곳에 갇히거나 죽게 될 터였다.
“은혁아. 어쩌지?”
“어쩌긴, 답은 나와 있잖아?”
은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전부 구하는 거지.”
“역시.”
염훈은 씨익 웃었다.
“조금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NPC들까지 모두 다 구해보자고!”
그 순간, 히든 미션창이 떴다.
<38층 히든 미션 : 피난민 보호>
-목표 : 안전 구역까지 50명 이상의 피난민을 안전히 보호하여 옮길 것.
-성공 시 보너스 : 피난민 숫자당 1%씩 최대 체력 증가.
-실패 시 페널티 : 피난민 숫자당 1%만큼 최대 체력 감소.
-제한 시간 : 20분. (기존의 제한 시간을 대체함.)
-히든 미션 전용 버프 [고속 재생]이 제공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 ‘인솔자의 깃발’이 제공됩니다!
“헉, 히든 미션이 뜨네?”
염훈이 놀랐다.
피난민들을 전부 구하겠다고 다짐한 채, 그걸 소리 내어 말하면 히든 미션이 떴다.
염훈은 미션 내용을 보고 의욕을 더욱 불태웠다.
“좋아! 히든 미션이 뜨니까 제한 시간이 확 늘었군! 작전은?”
“일단 프리즘 랜스부터 꺼내.”
“아, 프리즘 랜스 말인데.”
염훈이 조심스럽게 인벤토리창에서 프리즘 랜스를 꺼냈다.
“내구도가 너무 약하던데?”
내구도는 일반 크리스탈 술잔보다 조금 더 튼튼한 수준이다.
실전에서 마구 휘두르다간 어이없이 깨질 터였다.
“빛의 힘을 받으면 내구도가 강해져.”
“응, 그건 아는데.”
빛이 일시적으로라도 약해지면, 내구도 또한 확 약해진다.
그래서 염훈은 프리즘 랜스를 주력 무기로 쓰기가 주저됐다.
“신성력의 빛을 주입해 봐.”
염훈은 은혁의 조언대로 [신성한 오러] 스킬을 썼다.
파앗!
그러자 프리즘 랜스는 신성한 빛을 빨아들여서 강화됐다.
“아!”
“저 빛은……?”
NPC들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뒤이어 플레이어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
호객 행위를 하던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정작 염훈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어어, 으음.”
“뭔가 말 좀 해 봐.”
“말?”
“사람들 앞에서 격려사 좀 풀어 보라고.”
“아, 그래. 그래야지, 음.”
[광역 축복] 스킬과 [신성한 지휘] 스킬을 연달아 발동했다.
그 순간.
파앗!!
파앗!!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위력으로 스킬이 발동했다.
“헉!”
스킬 발동한 당사자인 염훈이 깜짝 놀랄 정도였고, 포격마저 일시 중지됐다.
“크흠, 여러분. 저는 성기사 염훈이라고 합니다.”
염훈이 프리즘 랜스의 광휘를 조금 낮추고,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인 ‘인솔자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NPC들은 염훈 곁으로 모여서 필사적으로 경청할 준비를 했고, 플레이어들은 그제야 염훈을 알아봤다.
“불패불굴 길드의 길드장……!”
“저런 거물이 이제야 38층 미션을 깨러 왔다고?”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염훈은 플레이어들이 수군거리는 말들이 좀 멋쩍은지, 헛기침을 여러 번 하고 이어서 말했다.
“미션 제한 시간이 촉박하니 빨리 말하죠. 저와 제 동료 강은혁은 최대한 많은 이들을 살리는 게 목표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한 플레이어가 질문했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고마워요.”
염훈은 진심으로 말했다.
“어떻게 모두를 구해낼 것인가……. 그 부분을 지금부터 제 동료 강은혁이 설명할 겁니다. 어어, 은혁아?”
염훈은 은혁이 있던 곳을 돌아봤다.
두리번두리번.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여깁니다!”
은혁이 있던 곳에는 똘망똘망하게 생긴 메탈 서전트가 있었다.
“거기서부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장난감 같은 메탈 서전트가 척 거수경례를 붙였다.
“와아!”
“귀엽다아.”
피난민 NPC들 중 어린아이들이 메탈 서전트 곁으로 다가갔다.
“급합니다! 다들 물러나 주세요!”
메탈 서전트가 엄격하게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아이들의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여러분! 저의 강은혁 주인님이 포격을 유인하러 떠나셨습니다! 포격이 저희 주인님께 집중되면, 그때부터 염훈 님을 따라서 가시면 됩니다!”
“엥?”
염훈은 어이가 없었다.
은혁이 안 보인다 싶었는데 설마 포격을 유인하러 떠나다니.
“이런! 나도 도우러 가야……!”
“안 됩니다, 염훈 님!”
메탈 서전트가 엄하게 말했다.
“포격은 ‘신성’ 속성이 있는 포격이라, 성기사이신 염훈 님도 집중 포화를 받으면 무사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신성?”
화염 폭발의 포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신성 속성이라니 염훈은 의아했다.
“그럼 은혁이 녀석도 위험한 거 아냐?”
“그에 대한 대비를 다 해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콰콰쾅……!
멀리서 폭음이 이어졌다.
“이런, 지금입니다! 여러분, 저기 탑승하십쇼!”
메탈 서전트가 가리킨 곳에는 메탈 스랜스포터가 있었다.
[메탈 트랜스포터 소환] 스킬로 만든 금속 수송 차량이었다.
“어린아이와 노약자는 저기 탑승! 나머지 분들은 염훈 님의 인솔 하에 모두 도망치세요!”
“좋아, 해보자.”
염훈은 책임감을 불태웠다.
무작정 도망치라고 외치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 다친다.
염훈은 인솔자의 깃발을 휘둘렀다.
“다들 나를 따르라!!”
피난민, 플레이어 모두 염훈을 따랐다.
* * *
맑은 날씨에, 유난히 큰 먹구름 한 조각이 둥둥 떠 있는 하늘.
그곳에서 포탄이 날아왔다.
쿠구궁……!!
200개의 작은 포탄.
하지만 은혁은 200발 가까이 되는 포탄을 전부 피했다.
콰콰쾅!!!
은혁은 폭발을 뒤로한 채 먹구름으로 다가갔다.
‘역시 예상대로군.’
멀리서 보면 평범한 먹구름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비정상적으로 지표면에 가까이 떠 있었다.
구름 몸체는 일종의 위장.
그 구름 내부에는 녹슨 대포 200여 개가, 쇠사슬에 칭칭 묶여 있었다.
포격을 발사할 때만 대포를 구름 몸체 바깥으로 내밀어 포격을 가한다.
-쿠쿠쿠쿠……!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 시스템 메시지를 빌려 비웃음을 날렸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 ‘대포 묶음’이 나타났습니다!
이 기이한 외모의 몰락한 지고의 위상은 ‘폭식의 시대’ 당시 패배하여 몰락한 존재였다.
관리국이 배정해준 미션을 담당함으로써 깊은 잠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이 ‘대포 묶음’의 성향에 걸맞은 일이기도 했다.
-경고! 몰락한 지고의 위상, ‘대포 묶음’은 스테이지 경계면 바깥에 존재합니다!
-일반 플레이어는 스테이지 경계면 밖에 갈 수 없습니다!
“알아.”
은혁은 시스템 메시지를 향해 냉소적으로 답해줬다.
끼릭끼릭.
끼리릭끼릭.
대포 묶음은 일부러 몸에서 쇳소리를 내며, 스테이지 경계면 밖과 안을 들락날락하며 은혁을 조롱했다.
일부 과감한 플레이어들이 대포 묶음을 처치하러 이곳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스테이지 경계면에 부딪히고 좌절하곤 했다.
대포 묶음은 그걸 구경하는 걸 즐겼기에 기이한 쇳소리 나는 몸짓으로 은혁을 약 올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은혁은 그 몸짓을 보며 뭐 어쩌라는 거냐는 표정을 지어줬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답게 처절한 모습이군.”
물론, 은혁은 겁에 질린 기색도 없이 품평해줬다.
대포 묶음은 끼긱 소리만 냈고, 은혁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미션 제한 시간이 짧으니 딱 한 번만 권한다. 즉각 스스로를 봉인해서 깊은 잠에 빠져라. 그럼 안 죽이고 봐줄 수도 있다.”
은혁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철컹 철컹!
세븐 칼리버를 제4형태, 차원의 낚싯대로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