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 36시간 고강도 훈련
-건방진 놈……!
대포 묶음이 한마디 하려는 순간.
“차원의 낚싯대. 저격 모드.”
철컹!
차원의 낚싯대가 거대화되는가 싶더니.
“흐읍!”
화악!
휘두르는 순간 낚싯바늘만이 차원의 문을 열고 날아가, 대포 묶음에 걸렸다.
덜컥!
“[거대화].”
파앗!
사람 하나 통과할 정도의 크기인 차원의 문이 커졌다.
“흐아압!!”
그리고 힘으로 당겼다.
-뭐……!!
둥실둥실 낮게 떠 있던 대포 묶음은, 차원의 문을 통과하여, 그대로 스테이지 안쪽으로 달려왔다.
“스테이지 밖으로 못 나가면, 끌고 들어오면 그만이지.”
은혁은 가볍게 어깨를 풀었다.
하지만 은혁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대포 묶음이 자포자기식으로 피난민들에게 포탄을 뿜어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끼기기긱.
대포 묶음을 이루는 200개의 작은 대포들이 좌우로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커다란 대포가 나왔다.
그 대포 위에는 녹슨 금속 얼굴이 나왔다.
그 금속 얼굴은 은혁을 보더니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강한 자로군.
약자를 대량 학살하는 힘을 갖춘 몰락한 지고의 위상답게, 자기보다 강한 존재는 빠르게 알아봤다.
-쿠쿠쿠.
대포 묶음의 얼굴이 씨익 웃었다.
-너만 빼고 모두 죽여주마.
상황 파악이 빨랐다.
어차피 은혁을 이길 수 없으니 최대한 많이 죽이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은혁이라는 점이었다.
“예상했고, 그렇게 놔둘 리가 없지.”
타앗!
은혁은 [도약]으로 접근했다.
공중에 뜨면 원거리 공격의 표적이 될 뿐이지만.
“[광풍흡성기류장] + [화염 방사] 융합.”
은혁은 도약하면서 만든 바람과 화염을 융합시켜 퓨전 스킬을 발동시켰다.
-히든 이펙트 발동!
“[인페르노 볼텍스]!!”
화르르르르륵!!!
시작과 동시에 필살기급 스킬을 쓰니, 대포 묶음의 구름 몸체는 순식간에 전부 타버렸다.
-키에에에에엑!!!
원거리 공격력이 우수한 데 비해 방어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숨겨진 캐논이 있었다.
철컹!
숨겨진 캐논이 은혁을 노리고 겨눠졌지만.
“듀얼 체인 소드에 [거대화]!!!”
키이이잉!
마력이 집중되더니.
“커져라! 듀얼 체인 소드여!!!”
파앗!!
[거대화]의 힘으로, 듀얼 체인 소드의 크기가 단숨에 4배로 커졌다.
“차하앗!!”
키유우우우웅!!
콰콰콰콰콰콰콱!!!
거대해진 듀얼 체인 소드는, 숨겨진 캐논을 통째로 절단해 버렸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더니.
터텅!
숨겨진 캐논은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키에에에에에……!!
고통과 슬픔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큭.”
그리고 이내 [거대화]가 해제됐다.
‘예상대로 오래 유지하긴 어렵군.’
작은 단검이나 화살이라면 몰라도, 가뜩이나 거대한 듀얼 체인 소드를 추가로 거대화시키는 건 매우 어려웠다.
‘휘두르기 직전에만 써야겠다.’
그래도 듀얼 체인 소드 위력 시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럼 마무리를 해볼까!”
은혁은 대포 묶음에 달려들어 막타를 먹였다.
콰직!!
대포 묶음은 그렇게 죽었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 ‘대포 묶음’을 처치하셨습니다!
와르르르!
대포 묶음은 녹슨 대포로 변해서 바닥에 어질러졌다.
“뭐, 네임드 주제에 마정석 하나 없군.”
폭식의 시대 때 패배한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면서도, 자기 자신을 너무 갉아 먹은 탓이다.
만약 몰락한 시점에서 스스로를 봉인하는 식으로 힘을 비축했다면 이보다는 강했을 터.
“그렇게 자기 자신을 깎아내면서까지 NPC들을 양학하고 싶었나? 뭐, 그러니까 몰락한 지고의 위상인가.”
은혁이 투덜거린 순간.
-축하드립니다! 38층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오, 염훈이 잘 인솔했군.”
염훈과 메탈 서전트가 피난민들을 100명 이상 인솔했다.
-100명 이상의 생존자를 구출하였습니다!
-히든 미션 클리어 보상으로, 생존자 1인당 1%의 최대 체력이 증가합니다!
-현재 계산 중…….
시스템이 계산을 하는 와중에도 염훈이 계속 NPC들을 인솔하고 있었기에,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다.
-최대 체력이 159% 증가합니다!
“오오.”
스탯창에 표시된 체력은 ‘A’로 동일했지만, 실질 체력이 확 증가했다.
‘너무 가뿐한데?’
원래 몰락한 지고의 위상과 싸우면, 아무리 은혁이라도 어느 정도 숨이 차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네 산책 나온 것보다 호흡이 더 편했다.
“이대로 39층으로 가면 되겠군.”
은혁은 염훈이 있는 안전 구역으로 달려갔다.
안전 구역에 진입한 순간.
-축하드립니다! 38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모든 부상이 회복되고, 체력이 완전 회복되었습니다!
“…….”
이렇게 덤덤한 보상도 드물었다.
체력이 확 늘어난 상태이고, 부상도 입지 않고 클리어했기 때문이다.
입맛만 다시고 있는 은혁과 달리, 피난민 NPC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와아아아!!”
“살았다! 전부 살았어!”
“정말 고맙습니다! 흑흑…….”
스테이지를 위한 희생양이 될 뻔했던 피난민 NPC들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다.
그때마다 은혁이 지닌 전설급 용사의 증표와 염훈이 지닌 프리즘 랜스에 힘이 축적됐다.
-무고한 약자들을 다수 구원하였습니다!
-전설급 용사의 증표에 관련 업적이 기록됩니다!
-프리즘 랜스에 지도자의 역량이 축적되었습니다!
-성좌, 태양의 여왕이 프리즘 랜스의 내구도를 크게 강화시킵니다!
NPC들의 감사 인사를 듣기만 해도 자잘한 버프가 쌓였다.
그걸 보는 상주 플레이어들은 묘한 상대적 박탈감에 투덜거렸다.
“과연 압도적이군.”
“포격이 날아오는 걸 처리하다니.”
“게다가 피난민들을 한 명도 안 죽게 하고 구원하다니.”
“그나저나 우린 이제 뭐 먹고 사냐.”
“어? 그러게요. 여기 스테이지 강제 개변되겠네.”
“에휴, 피난민 NPC랑 당황한 플레이어들 돈 뜯어 먹는 재미로 살았는데.”
상주하며 돈을 벌던 플레이어들은 자기들끼리 투덜거리며, 일단 5층으로 떠났다.
그동안 염훈은 허공에 프리즘 랜스를 휘두르며 감탄했다.
“엄청 내구도가 강해졌어!”
내구도뿐만이 아니라, 약자를 도우면 도울수록 전반적인 위력과 성기사 스킬 감응성도 증가할 터였다.
“좋아, 일단 28.5층으로 돌아가자.”
“어? 바로 다음 층으로 안 가고?”
염훈은, 체력이 완전히 회복됐기에 당연히 39층으로 진출할 줄 알았다.
은혁도 원래는 그럴 계획이었지만.
“음, 여길 직접 보니 생각이 좀 바뀌네.”
불패불굴 길드원들 중에 약한 플레이어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은 플레이어라도, 갑자기 제한 시간이 짧은 층에 떨어지면 어이없이 죽을 수도 있다.
“좀 나중에 해도 되겠다 싶었지만…… 길드원들 중간 점검을 한 번 하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길드 본부에 설치 중인 훈련용 미니 차원을 이용할 때가 왔다.
* * *
불패불굴 길드는 길드원에 대해 크게 터치가 없는 길드였다.
정해진 ‘팀’이 있기는 하지만, 주간 할당량만 채우면 된다.
그리고 절대 무리하게 할당량을 요구하는 일이 없어서, 주4일 근무자의 기분으로 일해도 시간이 남았다.
남는 시간은 물론 자유 시간이었다.
“가입하긴 어렵지만, 참 좋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할 일 없는 길드원들은 콩나무 가지에 앉아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허허로운 여기 시간을 가졌다.
“근데 정말로, 길드가 이렇게 좋아도 됩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예전에 제가 속했던 길드는 회비며, 상납금을 따로 요구했었어요.”
“헐, 정말요? 여기랑은 정반대네요.”
“그러게요. 여긴 오히려 활동비를 넉넉하게 주는데.”
원래 팀 활동비는 사적으로 운용하면 곤란하지만, 사용 내역을 영수증 첨부해서 보고서로 제출하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즉, 불패불굴 길드는 시간적, 경제적 지원을 넉넉하게 해주는 좋은 길드인 셈이다.
하지만.
“전원 집합.”
길드장 염훈이 길드장의 권능을 이용하여 짧은 메시지를 보내 왔다.
28.5층에 위치한 모든 길드원들이, 콩나무 본부 내부로 집합했다.
그곳의 1층 홀에 못 보던 게이트가 있었다.
바로 훈련용 미니 차원용 게이트였다.
은혁은 그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저희 길드도 훈련용 미니 차원을 따로 보유하게 됐습니다!”
“와아아아!”
길드원들은 기뻐했다.
“우리 길드 진짜 쩐다.”
“우리 길드도 자체적인 미니 차원을 갖고 있구나.”
“7대 길드 부럽지 않네.”
길드원들은 감탄했다.
미니 차원을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마정석이 필요한데, 이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길드 재정이 상당히 튼튼하다는 의미였다.
“자자, 들어가세요. 다 들어가도 될 만큼 넓습니다.”
길드원들은 은혁의 말대로 들어갔다.
파앗!
파앗!
파앗……!
그렇게 훈련소에 들어간 길드원들에게 메시지가 떴다.
-불패불굴 길드의 미니 차원 : 36시간 연속 훈련소
“어?”
“36시간 훈련……?!”
길드원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지옥 훈련장에 끌려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혁과 염훈은, 36시간 동안 거의 휴식이 없는 방식으로 훈련시켰다.
훈련 방식은 오직 하나.
‘모의 전투 기반 훈련.’
불패불굴 길드원들은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
7대 길드의 1군과 비교해서 결코 꿀리지 않는다.
즉, 한 명 한 명 붙잡고 직업별 기초 훈련을 할 단계는 진작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은혁은 길드원들이 지닌 한계의 껍질을 깨 주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고, 가장 확실한 전투 위주의 훈련을 했다.
팀별 대련, 개인 대련, 가상 지형 집단전, 돌발 상황 훈련 등등.
길드원들은 처음에는 그동안 배운 방식대로, 상식대로 훈련에 대처하려 했다.
하지만 한계는 집단 모의 전투에서 찾아왔다.
팀 단위 배틀로얄 방식의 집단 모의 전투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허억, 허억.”
“나, 죽겠다. 힐러 어디 갔냐.”
“전사님들! 님들이 전방에서 막아줘야죠!”
“사방에서 몰아치는데 전후방이 어딨냐!”
그제야 길드원들은 이 집단 모의 전투가, 일부러 대처하기 어렵도록 만들어졌음을 깨달았다.
“안 되겠다, 각자 직업대로만 싸워서는 안 되겠어!”
“그럼 어쩌자고?”
“직업에 얽매이지 말고 상황에 맞춰서 싸워!”
“미친! 그게 말처럼 쉽겠냐?!”
“혼자서는 당연히 무리죠! 하지만 힘을 합쳐서 해봐요!”
길드원들은 점차 자신이 지니던 새로운 가능성을 느꼈다.
‘좋아. 다들 깨닫고 있군.’
은혁은 집단전에 나선 부하들을 관찰했다.
빠악!
‘고속으로 치유하는 성직자’가 고속 니킥으로 무투가의 앞니를 깼다.
파앗!
‘겉과 속을 뒤집는 마법사’가 응급 수술과 봉합 치료를 도왔다.
화악……!
‘약화시키는 사령술사’는 적에게 디버프 저주를 거는 대신, 아군 도적과 궁술사의 부교감신경을 적당히 낮춰줬다.
그렇게 아군이 냉정하게 싸우도록 전투 능률을 향상시켰다.
키융!
‘레이저를 쏘는 마법사’는 레이저를 공격용으로 쓰지 않고, 날아오는 발사체를 요격해서 아군을 보호하는 용도로 썼다.
이렇듯, 자신의 직업과 고유 수식어가 지닌 고정 관념을 깨고 특성은 더 살려, 상황에 맞춰 활약하는 법을 체득했다.
“바로 그거다!!”
은혁이 격려했다.
“직업에 얽매이지 마! 억지로 직업에 자기 역량을 맞추지 마! 힐러도 적을 패 죽일 수 있고, 근거리 딜러도 같은 편을 회복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으와아아아!!!”
겨우 36시간짜리 훈련이었지만, 훈련 강도가 엄청났기에 효과가 좋았다.
“좋아, 훈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