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 어둠의 동굴 (2)
[이도류 숙련] 같은 패시브 스킬이 없는 이상 당연한 일이다.
은혁 같은 경우에는 직업에 전사와 무투가가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인지 따로 패시브 스킬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양손 활용이 가능했다.
전사와 마법사 직업만 있었을 때도, 한 손으로 칼 휘두르고, 다른 손으로 화염 스킬을 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진짜 모든 직업의 가능성은 사기야.’
“또또, 자기 자신에게 감탄하는 표정이네.”
염훈이 핀잔을 줬다.
“크흠. 됐고, 문 연다.”
은혁은 바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미션창이 떴다.
<39층 메인 미션 : 어둠의 동굴 탐사>
-목표 : 다음의 탐사 목표 중 하나를 완료한 뒤, 동굴을 탈출할 것.
A. 거대 박쥐 6마리 처치.
B. 다크 코볼트 20마리 처치.
C. 숨겨진 히든 루트 모두 찾기.
-성공 시 보너스 : 달성한 탐사 목표에 따라 다름.
-실패 시 페널티 : 3개월간 재도전 금지.
-제한 시간 : 4시간.
“적당히 하나 고르는 건가. C가 가장 쉬워 보이긴 하는데.”
“음. 일단 동쪽으로 가자.”
“뭐? 여기 안전 수칙 적혀 있는 거 보면 동쪽이 위험해 보이는데?”
안전 수칙 다섯 번째를 보면 동쪽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나온다고 적혀 있다.
염훈이 보기에는 그게 더 수상했다.
“상관없어. 탐사 목표들을 전부 달성할 계획이니까.”
“전부?”
“그래. 그러니까 동대문의 아래로 가는 게 먼저야.”
“동대문의 아래? 그런 건 안 적혀 있던데?”
“순서대로 맨 앞 글자만 읽어봐.”
은혁은 그렇게만 말하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고오오오오…….
진득한 어둠이 깔린 동굴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은혁은 [화염 지배] 스킬로 간단한 불빛 무리를 허공에 띄웠고, 염훈은 프리즘 랜스를 들고 [신성한 오러]를 써서 형광등 같은 불빛을 내뿜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어둠은 너무나도 짙어서, 주변만 보이고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가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들겠네.”
염훈이 중얼거렸다.
몬스터랑 싸우는 일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라고 해도, 빛이 전혀 없는 곳에서는 또 이야기가 다르다.
“시간이 없으니 지름길로 가자. 드루이드 스킬 [암석 탐지].”
파앗!
은혁은 주변의 암석 상태와 위치를 파악했다.
은혁은 우측에 있는 넓은 벽에 손을 얹었다.
“음…… 좋아! 이렇게 가면 되겠군. [돌 부수기].”
파칵!
우측의 벽이 부서졌다.
“[돌 합치기].”
파앗!
부서진 돌이 계단처럼 만들어졌다.
“[돌 부수기]. [돌 합치기].”
파칵! 파앗!
파칵! 파앗!
은혁은 스킬을 연속으로 써서 계단을 만들어냈다.
“음? 은혁아. 뭔가 접근해 오는데?”
푸드득! 푸드득!
박쥐 떼였다.
“아, 그래? [메탈 레인저 소환].”
파앗!
보우건으로 무장한 20구의 장거리 유닛이 소환됐다.
“사격.”
투투투투투……!
보우건에서 금속 화살이 쏘아져 나가자 박쥐 떼는 빠르게 도망쳤다.
“올라가자.”
“오케이.”
두 사람은 계단을 빠르게 올랐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은혁은 돌계단을 만들어야 했다.
“은혁아. 이거 끝이 없을 것 같은데?”
“염려 마. [암석 탐지] 스킬로 확인했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
은혁과 염훈은 더 빠르게 올라갔다.
“빛이 너무 없어서 기분이 이상하네.”
염훈이 연신 투덜거렸다.
느릿느릿 올라가려니 짜증이 나기도 했다.
“[신성한 날개]를 써보지 그래?”
은혁이 슬쩍 웃으며 권했지만.
“으으, 무서워서 못 함.”
워낙 캄캄하다 보니, 천장과 허공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어두운 공간을 빠르게 올라갔더니 갑자기 천장이 나와서 충돌할 수 있었기에, 염훈은 은혁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5분 정도 더 올라간 순간.
-히든 루트, ‘높은 길’에 도달했습니다!
“오오! 이런 길이 있었구나!”
염훈이 아이처럼 기뻐했다.
도착한 곳 앞에는 폭 10미터 정도 되는 높은 길이 있었다.
이 높은 길은 동굴 천장 바로 아래에 놓인 길이었으므로, 구불구불한 동굴을 아래에 둔 채 위로 다닐 수 있었다.
“방향만 잘 잡으면 동굴에서 길 헤맬 거 없이 바로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겠는데!”
마치 슈퍼 마리오 게임 속 첫 번째 던전에서, 워프존으로 가는 높은 길을 확보한 것과 같다.
어둡고 낮은 곳에서, 몬스터와 싸우고 구불거리는 미로와 씨름할 필요가 없게 되자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하지만.
-어둠의 동굴 속 몬스터들이 당신의 존재를 인지하였습니다!
-모든 몬스터가 당신을 노립니다!
“엥?”
기뻐하던 염훈이 엉거주춤해했다.
“뭐, 히든 루트니까.”
히든 미션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다.
“캬라라라라!!”
“끼르륵! 끼르륵!”
-거대 박쥐들이 몰려옵니다!
-벽 속에 사는 다크 코볼트 부족이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친절히, 공포감을 자극하며 알려줬다.
“으악! 사방에서 오는데?!”
프리즘 랜스를 쥐고 있어서, 사악함을 더 잘 감지하게 된 염훈이 외쳤다.
“빨리 튀어야지?!”
“아니, 좀 더 기다려야지.”
은혁은 태연자약했다.
때때로 [플레어] 스킬을 전방에 날려서, 높은 길의 경로를 미리 표시해둘 뿐.
“그러면 놈들이 빛을 보고 더 몰려들지 않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덤벼드는 거대 박쥐나, 다크 코볼트는 두 사람보다 약했다.
다만 염훈이 불안한 이유는 너무 어둡고, 여차하면 쪽수에 밀려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 때문이다.
“염훈. 슬슬 준비해라.”
“준비? [홀리 썬더]?”
“[영수 소환] 말이야.”
“아, 맞다. 폭포 유니콘이 있었지!”
염훈은 정신을 집중하더니 소환했다.
“와라, 나의 충성스러운 폭포 유니콘이여! [영수 소환]!!”
파앗!
촤아아악!
차가운 폭포수와 함께 폭포 유니콘이 등장했다.
“히히히힝!”
소환된 폭포 유니콘은, 염훈을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염훈은 [신성한 오러]를 담은 손길로 폭포 유니콘을 빠르게 어루만져줬다.
“상황이 조금 다급해. 잘 부탁한다, 폭포 유니콘!”
“히히히힝!”
“하앗!”
염훈은 가뿐히 유니콘 위에 탑승했다.
“염훈! 왼손으로 [홀리 썬더]! 오른손으로는 [신성한 오러]를 두르고 돌진해!”
“아!”
그랬다.
염훈은 양손으로 스킬을 쓸 수 있었지만, 직접 이동하면서 쓰진 못했다.
‘하지만 유니콘 위에 탑승한 상태로 쓴다면?’
이동을 유니콘이 하므로 염훈은 좌우에 든 무기의 스킬 사용에만 집중할 수 있다.
“가자, 유니콘!! 돌진은 네게 맡긴다!!”
“히히히힝!”
폭포 유니콘이 정면으로 달려갔다.
발밑에서는 폭포수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뿜어졌고, 위에 탄 염훈은 스킬을 썼다.
꽈릉!!
콰콰쾅!!!
[홀리 썬더]의 충격음은, 위에서 덮치려던 거대 박쥐들을 공중에서 비틀거리게 했다.
음파를 통해 적을 낚아채는 능력이 뛰어난 거대 박쥐라 해도, 신성한 충격파가 요동치는 와중에는 비틀거릴 뿐이다.
“캬악!”
밑에서 다크 코볼트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번쩍!!
프리즘 랜스의 빛에 노출된 다크 코볼트들은 눈을 움켜쥐며 다시 아래로 후두둑 떨어졌다.
-다크 코볼트를 처치하셨습니다! (1/20)
-다크 코볼트를 처치하셨습니다! (2/20)
……
……
-다크 코볼트를 처치하셨습니다! (14/20)
-다크 코볼트를 처치하셨습니다! (15/20)
순식간에 다크 코볼트가 여럿 죽었다.
5마리만 더 처치하면 사실상 미션 클리어다.
그 순간.
-다크 코볼트가 부활했습니다! (15/20)
-다크 코볼트가 부활했습니다! (14/20)
-다크 코볼트가 부활했습니다! (13/20)
-다크 코볼트가 부활했습니다! (12/20)
다크 코볼트의 대사제가 쓰러진 다크 코볼트들을 부활시켰다.
사실, 일반 코볼트의 먼 아종인, 다크 코볼트에게는 종족을 가호하는 신급 성좌가 없었다.
다크 코볼트의 신은, 3군주 중 하나인 카인의 손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다크 코볼트는 자신들의 대사제에게 목숨을 맡기고 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은혁아! 저놈들이 계속 부활하는데?”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 계속 달려가!”
타앗!
은혁은 높은 길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걸 본 염훈이 깜짝 놀랐다.
“으악! 은혁아!!”
“괜찮아! 동쪽 끝에서 보자!!”
은혁은 캄캄한 어둠 속으로 추락하며, 그림자가 온몸을 휘감는 걸 확인했다.
‘여기라면 새로운 스킬을 시험해 봐도 되겠지.’
어둠 속으로 자유 낙하하던 중, 차원의 낚싯대를 휘둘렀다.
콱!
낚싯바늘이 벽에 박혔다.
은혁은 낚싯대를 붙잡고 그대로 벽 쪽으로 날아가더니.
“[벽 타기].”
거의 쓸 일이 없던 도적 스킬을 발동했다.
타타탓!
그대로 벽을 타고 코볼트들의 소굴로 휙 들어가며 차원의 낚싯대의 바늘을 뽑았다.
처척!
가볍게 착지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캬악!”
“캬캭, 인간이 여긴 어떻게!”
코볼트들의 소굴 입구는 완전히 검은색 커튼으로 막혀 있었기에, 야간 시야를 지니고 있어도 찾아내기 어려웠다.
“어떻게 알긴, 여기로 도망치는 게 다 보이더만.”
그때, 코볼트 대사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슈욱.
슈욱.
이미 죽었던 다크 코볼트들이, 코볼트 대사제의 주술 덕분에 즉시 부활하고 있었다.
“크크큭. 네놈도 어둠의 제물이 되어라…….”
“어? 그거 내가 할 소리였는데.”
“뭐?”
은혁은 스킬을 발동했다.
“[그림자 방출].”
이미 존재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은혁이 방출하는 그림자가 빠르게 확산됐다.
“캬악?!”
다크 코볼트들이 당황했다.
어둠에 익숙한 존재들이었지만, 은혁이 내뿜는 그림자는, 어둠보다 더욱 검고 깊었다.
“[그림자 방출] + [그림자 감옥]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그림자 대감옥]!”
화아악……!!
[그림자 감옥]이 매우 거대한 규모로 생성됐다.
순식간에 다크 코볼트들과 다크 코볼트 대신관들이 휩쓸렸다.
“캬악……!”
비명조차 집어삼켜졌다.
꾸물꾸물…….
주변으로 방출된 그림자는 한밤중의 바다 표면처럼 출렁거렸고, 은혁은 거기에 추가로 스킬을 썼다.
“[그림자 대감옥] + [그림자 결속]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그림자 연옥].”
파앗!
[그림자 감옥]의 크기를 대폭 키운 것이 [그림자 대감옥]이라면, [그림자 연옥]은 질적으로 완전히 달랐다.
-죄의 개념을 모른 채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소형 몬스터가, [그림자 연옥] 속에서 변이를 일으킵니다!
‘변이.’
잡범들이 지옥 밑바닥에서 아귀로 변하듯이, [그림자 연옥] 속에서 다크 코볼트들은 변이되고 있었다.
‘큭! 힘들다.’
단순히 그림자로 죽이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초월 명상]을 섞어 쓰고 싶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마력 소모 효율이 높아지겠지만, [그림자 연옥] 도중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건 진짜 나도 잘 모르겠네. 실패하지 않고 잘할 수 있으려나?’
야외에서,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는 시험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었다.
유난히 빛이 없는 어둠의 동굴이기에, 스스로 깊은 지하를 택한 다크 코볼트이기에 시험해 볼 수 있었다.
-그림자 변이율 15%…….
-그림자 변이율 35%…….
-그림자 변이율 55%…….
‘된……다!’
은혁 자신도 반신반의했었다.
‘사실, 될 확률이 더 높았어.’
왜냐하면 회귀 전 본래 역사에서, 서영후가 제2차 길드대전 당시 이 스킬을 썼었기 때문이다.
‘그 새끼는 NPC들을 지하실에 가둔 다음 변이시켰었지.’
그럼에도, 서영후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하지 않았는데, 정말 죽을 정도로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큭……!”
지금의 은혁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림자 변이율 85%…….
-그림자 변이율 100%…….
-다크 코볼트의 그림자 변이가 완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