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 어둠의 동굴 (3)
슈르르륵…….
다크 코볼트들은 주변 어둠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성공이다!’
-도적 숙련도가 6%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7%++.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신규 스킬을 획득했다.
-도적 고유 스킬 [섀도 코볼트 소환]을 습득하셨습니다!
은혁은 스킬을 썼다.
“[섀도 코볼트 소환]!”
파앗!
슈르륵……!
그림자가 뭉치더니 다크 코볼트의 아종, 섀도 코볼트들이 탄생했다.
“크르르르.”
섀도 코볼트 수십 마리와 섀도 코볼트 대신관 한 마리는, 모두 줄 맞춰서 은혁의 앞에 부복했다.
“그림자의 주인이시여. 명령을…….”
은혁을 비웃던 경박함은 사라졌다.
혈관에 그림자가 흐르는 이들로 개조된 이들은 게릴라전에 특화된 존재로서 탈바꿈했고, 은혁을 그림자의 주인으로 섬기는 성전사로서 활약할 터였다.
‘제대로 쓰려면 [그림자 방출]로 미리 판을 깔아 주거나 밤에만 써야 할 거 같은데.’
자연광, 또는 인공 조명 불빛이 강한 곳에서는 소환하기가 어렵다.
-신종 소환수를 창조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섀도 코볼트의 창조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도적 패시브 스킬 [그림자의 주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뭐?!’
은혁은 깜짝 놀랐다.
업적과 연관된 적당한 고유 스킬을 얻겠거니 했는데, 그걸 뛰어넘는 엄청난 스킬을 얻었다.
‘이건 승급해야 얻을 수 있는 스킬 아닌가!’
현재 은혁의 도적 직업은 3차 각성으로 등급만 상승시킨 상태.
은혁이 직업을 승급을 택하여 ‘섀도 마스터’ 같은 쪽으로 승급을 했을 때 비로소 얻는 것이 [그림자의 주인]이다.
[그림자 지배]의 상위 호환은 아니지만, 사실상 상위 호환격이라 이해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그림자 지배]가 액티브 스킬로서 집중해서 쓰는 것이라면, [그림자의 주인]은 패시브 스킬로서,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보다 폭넓게 쓸 수 있었다.
‘이렇게 사기 스킬을 얻어도 되나?’
사실, 섀도 코볼트 창조는 반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이었다.
이미 은혁의 전투력은 소환수가 있건 없건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섀도 코볼트 소환을 노린 건, 2차 길드 대전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억지력 확보 차원에서, ‘게릴라 전용 병력이 생기면 좋고 아니면 말고’ 느낌이었을 뿐.
‘근데 업적이 달성되면서 한참 늦게 얻을 수 있는 승급 전용 스킬을 얻어 버렸네.’
은혁은 나르시즘이 아닌가 겁이 나면서도, ‘모든 직업의 가능성’의 사기성에 연신 감탄했다.
‘아, 이놈의 직업은 왜 이리 좋아서 탈이냐.’
잘난 척하던 은혁은 수많은 눈길을 마주했다.
“…….”
섀도 코볼트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림자의 주인이시여.”
섀도 코볼트 대신관은 얼른 예의 바르게 눈을 내리깔았지만, 나머지 섀도 코볼트들의 눈빛에는, ‘저것이 인간 특유의 자화자찬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 가득했다.
“크흠! 흠!”
은혁은 불편한 헛기침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은혁의 목소리는 진한 그림자처럼 검고 깊었다.
그리고 내리는 명령은 더욱 어두운 명령이었다.
“다크 코볼트들을 모조리 생포해 와.”
은혁은, 다크 코볼트들을 전부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전부 그림자의 권속으로 재구성할 뿐.
그렇게 되면 [섀도 코볼트 소환] 스킬의 힘도 강해지리라.
* * *
투다다다다다……!
수십 명의 석공과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어둠의 동굴 제30번 대기실 부근으로, 일명 ‘발굴 현장’이다.
품질 좋은 철광석은 물론이고, ‘올드 스톤’이라 불리는 귀한 돌이 자주 나는 곳이기에, 자유시장 길드는 지하 채굴장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길드원을 파견했다.
“야야, 발파 담당! 게으름 피우지 좀 말고! 그리고 거기 소환술사! 빛의 정령 쿨타임 끝나기 전에 미리미리 소환하라고 몇 번을 말해! 엉?! 조명 없이 발파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겠냐!!”
현장 감독, ‘하드록’이 소리쳤다.
그는 실제 자유시장 길드 1군 감독관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땀을 닦으며 서로 뒷담화를 깠다.
“어휴, 감독 스트레스 오늘도 쩌네.”
“왜 아니겠냐.”
“어? 감독이 짜증 내는 이유 알아?”
“여기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짜증의 이유지. 사실, 너도 그랬잖아.”
“아, 그랬지.”
자유시장 길드는 7대 길드 중, 공식적으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길드다.
부길드장의 비서 정도만 되어도 길드연합국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와 빌딩을 한 채씩 보유하고 있을 정도.
정식 길드원들은 럭셔리한 삶을 살고 있다.
단, 하드록은 그런 사치를 누리지 못했다.
1군 감독관 정도면 공식 서열은 부길드장 바로 밑인데도, 테일러는 하드록과 1군 공략대에 힘든 채굴 업무를 맡겼다.
덕분에 쉬지도 못하고 분진 가득한 채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제길, 제길!”
하드록은 괜히 돌을 걷어찼다.
현재 테일러 부길드장은 40층의 다차원 은행에 있다.
그곳에서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인지 거들먹거림인지 애매한 일을 하며 유유자적 즐기고 있다.
‘자유시장 길드 1군 감독관이면 뭐 하냐고. 실력 발휘할 기회가 없는데!’
하드록은 언젠가 테일러 부길드장에게 요청한 바 있다.
‘1군 감독관 직위는 필요 없으니, 다른 곳으로 배정해 주십쇼. 더 높은 곳에서 좀 더 활약하고 싶단 말입니다!’
그때, 테일러는 차갑게 말했다.
‘내가 놀랄 만한 실력 발휘를 한 번 해봐. 그럼 고려해 보지.’
“크아아! 제기랄!!”
뻐억!!
하드록은 누가 놓고 간 곡괭이로 돌벽을 후려쳤다.
콰직!
콰두두두두!!
하드록은 ‘충격파를 복사하는 전사’였다.
곡괭이를 한 번만 휘둘러도, 충격파를 마치 메아리치듯 증폭시켜서 커다란 바위 하나를 부수는 것도 가능했다.
발굴 작업이건 전투건, 양쪽 모두 압도적인 효율을 자랑한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테일러는 그런 하드록에게, 지시인지 조언인지 애매한 말투로 말한 적이 있다.
‘머리를 써서, 좀 더 효율적으로 해보는 게 어떨까?’
그 목소리가 떠오르자 하드록은 발칵 화를 냈다.
“효율?! 여기서 어떻게 더 효율을 보이란 말인가!!”
빛이 없는 곳에서, 하드록은 최선을 다했다.
전임자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양의 채굴 작업을 해냈음에도, 테일러는 하드록을 크게 인정해 주지 않았다.
“저어, 감독관님. 진정하십쇼. 또 다크 코볼트 놈들이 소리 듣고 몰려옵니다.”
다크 코볼트는 위험하다기보다는 성가실 뿐인 적이지만, 놈들 상대하다간 일처리가 늦어진다.
“다크 코볼트 놈들이 있건 없건! 할당량을 채우건 말건! 부길드장은 아무 반응도 없잖나!!”
오늘따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하드록은 부하에게 역정을 냈다.
그때였다.
캬악……!
크오옥……!
다크 코볼트들의 외침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캬악……!
캬아아……!!
동서남북으로 뚫린 길 곳곳, 높은 토굴에서도 절규 같은 고함이 메아리쳤다.
“읏……!”
“설마 놈들이 대규모 침공을?”
다크 코볼트들이 분견대 단위로 와서는 광물을 훔쳐 가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렇게 사방에서 울부짖는 건 처음이었다.
“조용! 조용히!”
하드록이 소리쳤다.
듣자 하니, 고함은 사실 비명에 가까웠다.
캬악……!!
캬아아……!
캬아…… 아아…….
그리고 그 비명들 대부분은 뚝뚝 끊어지고 사라졌다.
“저기, 벽 뒤편에 뭔가…….”
[스캔] 담당 마법사가 가리킨 순간.
“키히이익! 살려 달라! 아악!”
꽤 가까이서 다크 코볼트의 비명이 들리는가 싶더니.
두 종류의 코볼트가 나타났다.
하나는 일반적인 다크 코볼트.
다른 하나는 그림자로 된 피가 흐르는 섀도 코볼트였다.
“크르르.”
섀도 코볼트는 다크 코볼트를 못 도망치게 붙잡기만 할 뿐.
“캬악! 놔라! 놔라!”
처절하게 발버둥 쳤지만 섀도 코볼트는 대답도 안 하고 가만히 붙잡고 있었다.
“뭐,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자유시장 길드원들은 사태 파악을 잘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때, 섀도 코볼트의 그림자가 조금 길어지더니.
“누가 죽인대?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잖아.”
늪 속의 귀신같은 목소리만 그림자에서 흘러나왔다.
화악!
섀도 코볼트 자체가 그림자로 변하더니, 다크 코볼트를 집어삼켰다.
꾸물꾸물…….
슈욱.
그러더니 이윽고 두 마리의 섀도 코볼트로 재탄생해서 나타났다.
그 방출된 그림자에 닿은 자유시장 길드의 조명 장치며 발전기가 멋대로 꺼졌다.
“뭐?!”
“말도 안 돼! 마정석으로 돌아가는 최신식 발전기가……!”
그때, 그림자가 걷히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아.”
은혁은 여기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가장 앞에 있는 하드록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어딥니까?”
“에?”
“몇 번 대기실 근처냐고요.”
“30번 대기실. 자유시장 길드가 관리하는…….”
“이런, 너무 서쪽으로 왔네.”
은혁이 혀를 찼다.
은혁은 모든 다크 코볼트를 섀도 코볼트로 바꾸는 일을 진행 중이었고, 이젠 남은 다크 코볼트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직접 [그림자 도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다들 채굴 일하는 중이시죠?”
“그, 그런데요.”
“일하시는데 방해했으니, 제가 여러분 작업을 좀 도와드리죠.”
은혁은 채산성이 없음으로 판정된 돌벽으로 다가갔다.
올드 스톤 비중이 거의 없어서 채굴이 의미 없다는 결론이 난 곳이었다.
‘있다……!’
은혁은 쓸모없어 보이는 돌의 벽 안쪽에 든 것을 간파했지만 태연히 스킬을 썼다.
“[광물 감지]! 그리고 [돌 부수기]!”
빠칵! 빠칵!
은혁은 돌만 큼직하게 잘라냈다.
“쓸모없는 돌이니까 저도 좀 챙겨가겠습니다. 아, 공짜로 가져가는 건 아니고요.”
촤르륵!
은혁은 금화와 은화를 몇 움큼 바닥에 내려놓았다.
꽤 공정한 도매 가격이었다.
그리고 은혁은 돌을 거의 1톤 가까이 챙겨서 대충 인벤토리창에 던져 넣었다.
“자아, 그럼 저는 이만! 수고!!”
타앗!
그리고 은혁은 떠났다.
“……지금 우리가 뭘 본 거야?”
대부분의 자유시장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눈만 껌뻑였다.
그나마 강자인 1군 감독관, 하드록만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깨달았다.
‘우린 다크 코볼트랑 싸우랴, 일하랴 바빴는데, 아예 종족을 통째로 뒤바꾼다고? 그리고 하는 김에 멋대로 채굴까지 하고 떠나는 건가……!’
작업 효율의 차원이 달랐다.
‘저것이…… 소문 속의 강은혁……!’
하드록은 진정한 힘의 격차를 느끼며, 더 이상 자기 처지에 대해 투덜거리지 않으며 살기로 했다.
* * *
은혁은 마침내 마지막 다크 코볼트마저 섀도 코볼트로 변이시켰다.
“좋아! 마무리!”
밀렸던 도적 숙련도가 확 올랐다.
-도적 숙련도가 19%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26%++.
-도적 고유 스킬 [그림자 터널]을 획득하셨습니다!
“와, [그림자 터널]까지……!”
엄밀히 말하면 [그림자 터널]도 승급해야 얻을 수 있는 스킬이다.
기존의 [그림자 도약]은 매우 빠르고 효과적인 대신, 반드시 목표 위치를 눈으로 보거나 정확히 알아야 하고, 반드시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반면에 [그림자 터널]에는 그런 제약이 없었다.
[그림자 터널] 발동 과정 중에, 출구 쪽에 자동으로 [그림자 방출] 효과가 발현되기에.
다만 [그림자 터널]은 [그림자 도약]에 비해 조금 느리고 마력 소모도 큰 게 사실이다.
그야말로, ‘그림자를 지배하는 도적’에서 ‘섀도 마스터’로 승급한 자에게 어울리는 스킬.
은혁은 과감한 시도와 기연, 어둠으로 가득한 환경의 힘으로, [그림자 터널] 스킬을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