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 다크 마켓 (2)
쥐 떼 두목의 방 전체에 막대한 돈이 쌓여 있었지만, 쥐 떼 두목은 공허함만을 느꼈다.
돈을 그득 쌓아뒀으니 개인적인 만족감이야 있겠지만, 돈 자랑의 만족감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 기회에 돈 자랑 좀 하시죠.”
“호오?”
“정보료를 받는 게 원칙이지만, 돈 자랑 차원에서 돈을 받지 않는 겁니다.”
“하하하! 머리 쓰긴.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해.”
“그럼 원하시는 액수를 말해보시죠.”
“흠흠, 말했다시피 우린 돈은 많아.”
쥐 떼 두목은 좌우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이미 백금화와 수표가 가득 쌓여 있으니, 은혁이 돈을 제시하면 심드렁할 뿐.
“정보 교환은 어떻겠습니까?”
“정보 교환? 오! 그거 괜찮네. 하지만 날 만족시킬 만한 정보가 있을까?”
쥐 떼 두목은 정보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이미 5층 길드연합국에 잠입한 쥐만 해도 그 수를 셀 수 없으며, 그중 일부는 무려 ‘평화의 감옥’ 간수 휴게실 밑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러니 쥐 떼 두목은 은혁을 상대로 반쯤 놀고 있었다.
쥐 떼 두목이 보이는 여유에는, ‘네가 알아봐야 뭘 알겠냐’라는 태도가 드러났다.
“물론, 자네가 현재 지닌 최강의 정보는, 다크 마켓이 버젓이 살아서 여기 있다는 정보겠지. 그러니, 자네가 여기 찾아올 정도의 격이 없는 것으로 판정되면, 자네들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네.”
사사사삭!
은혁과 염훈 뒤에서 쥐 떼들이 위협적으로 소리를 냈다.
물론, 은혁과 염훈이 작정하고 탈출하려 들면 탈출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다크 마켓은 불패불굴 길드를 적대시할 터.
쥐 떼 두목은 속으로 웃었다.
‘흐흐흐! 어떠냐, 요놈들아. 안전 수칙 힌트를 보고 무식하게 스킬의 힘으로 뚫고 들어올 때는 통쾌했지? 하지만 반쯤은 일부러 침입하게 내버려 둔 거다.’
쥐 떼 두목은 영원히 들키지 않을 생각으로 지하 깊은 곳에 세력을 구축한 게 아니었다.
관리국이 갖다 붙인 안전 수칙이 있건 없건, 언젠가 똑똑하고 생존력 있는 길드연합국 측 침입자에게 들킬 것을 예견하고 세력을 구축했다.
‘너희 놈들이 여기서 죽으면 그걸로 그만이지. 시체도 찾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만약에 너희가 살아서 탈출하면? 그때부터는 너희를 추적하는 걸 명분으로 길드연합국에 본격 진출하겠다.’
지하에 숨어 살던 자신들을 길드연합국 소속 플레이어인 은혁과 염훈이 공격한 것이므로, 복수라는 명분이 생긴다…… 라는 것이 쥐 떼 두목의 생각이다.
‘물론, 길드연합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아직 세력의 규모가 1,000분의 1도 안 되지만, 어차피 우리는 지하 세력 구축이 특기인 데다가, 게릴라전이라면 자신 있지.’
그렇게 길드연합국에 장기적으로 피해를 주다 보면, 제8의 길드로 승격시켜달라는 협상도 가능할 터.
쥐 떼 두목은 말 그대로 검은 조직의 두목처럼 생각했다.
‘필요하다면 너희를 제물로 삼아, 다시 양지로 머리를 들이밀 수도 있다. 그러니 내 영역에서 너무 잘난 척하지 마라.’
쥐 떼 두목은 작은 쥐의 몸체로, 턱을 스윽 들어 올리며 생각을 마무리했다.
두목다운 배짱과 지력이었지만, 쥐 떼 두목은 다른 이들과 비슷한 실수를 범했다.
담판의 상대가 회귀자 은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었다.
‘어이구, 귀엽다, 귀여워.’
은혁은 너무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생각했다.
‘판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돌려야겠군.’
은혁은 빙긋 웃으며 생각했고, 과감하게 나가기로 했다.
“뭐, 좋습니다. 참고로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이겁니다. 자유시장 길드 부길드장 테일러의 진정한 목적과 약점.”
“뭣?!”
쥐 떼 두목이 앉은 채 펄쩍 뛰었다.
은혁은 히죽 웃었다.
“어때요? 꽤 큰 정보죠?”
“으음. 뭐, 보통.”
“보통이라고요? 보통일 리가 없는데?”
“뭐어, 누구나 진정한 목적 하나쯤은 다 숨기고 살잖나? 그리고 약점 없는 사람이란 없으니까.”
“제 생각과는 다르군요. 자유시장 길드에 불만은 없습니까?”
“…….”
쥐 떼 두목이 입을 닫았다.
쥐 떼 두목이 원한을 품은 사람을 둘만 고르라면, 자유시장 길드의 부길드장과,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이다.
쥐들의 왕은 그들에게 토사구팽당한 입장이므로.
그리고 은혁은 그중 하나인 테일러의 약점을 입에 올리고 있는데…….
“불만 정도가 아니라 원한이라 해도 될 겁니다.”
“흠…… 그럼 테일러의 약점이 뭔지 일단 들어볼까.”
“그쪽부터 먼저 알려주시죠. 시리우스는 여러분이 죽인 겁니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구체적으로 답해 주시죠.”
“우리가 시리우스의 집을 통째로 가라앉히고, 시리우스의 목을 자른 건 맞아. 하지만 그건 전부 그의 의뢰를 받고 한 일이야.”
“의뢰요?”
은혁은 생소한 걸 들은 기분이었다.
“그래. 비록 우린 시리우스와 테일러 모두를 증오하지만…… 시리우스는 우리가 정말로 갖고 싶어 하는 걸 제안하더군.”
“그게 뭡니까? 그리고 그 의뢰는 구체적으로?”
“어허, 그 이상을 알려면 그쪽도 손패를 까야지? 테일러의 약점이 뭔지 말해.”
“그럼 말씀드리죠. 테일러의 약점은…….”
은혁은 손가락 하나를 들더니, 자기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바로 저입니다.”
“어이. 그게 뭔 정보야? 허세지!”
쥐들의 왕이 수염을 파르르 떨며 화를 냈다.
“어허, 더 들어보시죠.”
“쓸모없는 궤변으로 날 농락하려는 거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사사사사삭!
등 뒤에 있던 쥐 떼거리는 더욱 몰려들어서, 어느새 수천 마리가 도열해 있었다.
“웃?”
염훈은 예상보다 강한 살기에 흠칫했다.
겉보기에는 단순히 작은 쥐 떼거리 다수지만, 하나하나가 사실은 플레이어다.
그것도, 39층 속에 본거지를 숨기고, 위험한 족속들과만 거래를 하며 살아남은 존재들.
게다가 쥐 떼 특유의, ‘뭉치면 뭉칠수록 강해지는 특성’이 있기에, 솔직히 방심할 수 없었다.
염훈은 긴장하며 무기를 꺼내려 했지만, 은혁은 괜찮다고 손짓했다.
“부하들이 잔뜩 있어야 안심이 되시나 보군요.”
은혁은 특유의 예의 바르게 비아냥거리기를 날린 뒤 말을 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테일러의 약점과 비밀리에 추진 중인 비밀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7대 길드 모두를 발밑에 두는 것이 저의 목적임을 이미 천명한 상태.”
은혁은 자기 말이 자기가 생각해도 다 맞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니, 모든 걸 알고 있고, 테일러와 조만간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존재는 저 하나뿐. 즉, 저의 존재 자체가 테일러의 약점이라 칭하는 것도 아주 궤변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증명을! 그게 궤변이 아니란 걸 증명을 해 보라고!!”
쥐 떼 두목이 성을 냈다.
사실, 이게 쥐 떼 두목의 실착이었다.
만약 쥐 떼 두목이 흥분을 감추고 허허 웃으며 넘어갔다면, 그때는 오히려 은혁이 말을 풀어나가기가 더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쥐 떼 두목은 잘난 척하는 은혁에게 말빨로 한 방 먹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 탓에, 언성을 높이고 증명을 요구하며 추궁했다.
그래서 은혁은 생각했다.
‘이겼다.’
은혁은 이 순간, 말로 진행되는 승부가 이미 끝났음을 확신했다.
“내가 힘들게 얻은 물건으로 진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게 억울하긴 하지만.”
와르르!
은혁은 인벤토리창에서 암석 무더기를 쏟아냈다.
여기 오기 전, 자유시장 길드의 발굴팀이 채산성 낮음을 이유로 건드리지 않았던 돌을 부숴서 챙긴 것이었다.
“진실의 돌을 쓰죠.”
“뭣……!”
은혁이 챙긴 암석 무더기 속에는 진실의 돌이 함유되어 있다.
‘그때, [광물 탐지]로 진실의 돌이 다량 함유된 걸 알아냈지.’
발굴 작업을 하던 자유시장 길드 1군 중에도 [광물 탐지]나 [스캔] 스킬을 가진 이들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은혁이 챙긴 돌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는, 채산성이 낮기 때문.
하지만 은혁에게는 인위적으로 채산성을 높일 수단이 있었다.
은혁과 염훈을 포위하던 쥐 떼들이 수군거렸다.
“말도 안 돼. 진실의 돌이라니.”
“그건 우리도 쉽게 못 훔치는 건데.”
“쉿. 목소리가 커……!”
쥐 떼 부하들이 당황 반, 감탄 반의 태도를 드러내며 사사삭거렸다.
진실의 돌은 거짓말을 간파해내는 돌이다.
손에 들고 하나의 주장을 하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시스템이 답을 말해준다.
당연히 매우 귀한 돌이다.
3군주 세력조차도 가끔 다크 마켓을 통해 구하려 할 정도.
한때 다크 마켓의 쥐들은, 자유시장 길드의 채굴팀이 채굴한 진실의 돌이 함유된 암석만 골라서 훔쳐낸 적이 있다.
어찌나 교묘하게 훔쳤는지, 자유시장 길드의 39층 채굴팀은 도난당한 줄도 모른다.
오직 한 명, 자유시장 길드의 부길드장인 테일러만이 희귀한 진실의 돌 함유량이 높은 암석만 싹 사라진 걸 눈치챘다.
[시간 궤적 탐지] 스킬을 쓰면, 과거에 어떤 도둑이 훔쳐 간 건지 간파할 수 있으므로.
테일러는 39층에 있는 1군 감독관에게 더 나은 효율을 주문했지만, 1군 감독관 하드록은 현재 자신의 문제가 뭔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단, 다크 마켓도 더 이상은 훔쳐내지 못했는데, 사실 훔쳐 갈 만큼 진실의 돌 함유량이 높으면서 작은 돌은 이미 다 훔쳐 갔기 때문이다.
남은 건 진실의 돌 함량이 낮은 커다란 바위벽뿐…….
‘……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쥐 떼 두목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저 바윗덩어리 속에 진실의 돌이 있다는 보장은 없어.’
쥐 떼 두목이 그렇게 생각할 때 은혁이 과시하듯 말했다.
“어떻습니까? 여기서 진실의 돌을 꺼낸 다음 저 자신에게 쓰면 되겠죠?”
“그, 허세 부리긴.”
쥐 떼 두목이 말했다.
목소리에 깃들어 있던 화난 기색은 줄어들었다.
“진실의 돌이 그렇게 흔한 줄 아는가? 보아하니 자유시장 길드의 영역인 채굴장에서 몰래 가져온 모양인데, 자유시장 길드도 바보는 아니야. 1톤의 돌을 정제해도 겨우 한 개의 진실의 돌이 나오는 법인데 어디서 허세를……!”
“[암석 변환]!! 진실의 돌 함량을 2배로 늘린다!!!”
파앗!
-암석 무더기 속, 진실의 돌 함량이 증가했습니다!
-암석 무더기 속 내부에, 완성된 진실의 돌이 자리 잡습니다!
“뭐, 뭐라고?!”
쥐 떼 두목이 경악성을 냈다.
은혁은 무시하고 마저 스킬을 썼다.
“얍, [돌 부수기].”
쩌억!
암석 덩어리가 절반으로 쪼개지더니.
쿠르릉!
후두둑…….
내부에서 진실의 돌덩어리 하나가 과일의 씨처럼 나왔다.
-드루이드 숙련도가 5% 증가했습니다!
-현재 드루이드 숙련도 : 8%+.
은혁이 숙련도 메시지를 치우는 동안, 쥐 떼들은 일제히 호들갑을 떨었다.
“와, 저건 진짜다!”
“세상에, 저건 무슨 스킬이지?”
“암석에 포함된 광물의 양 자체를 2배로 늘리다니.”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은혁은 그 진실의 돌덩어리를 향해 추가로 궁술사 스킬을 썼다.
“[거대화].”
파앗!
진실의 돌이 2배로 커졌다.
-궁술사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현재 궁술사 숙련도 : 102%.
“오.”
정작 활을 다룬 적은 없는데도, 직업의 고유 수식어 관련 스킬을 자주 쓰다 보니 숙련도가 올랐다.
-축하드립니다! 궁술사 숙련도가 100%를 초과했습니다!
-2차 각성 선택지를 선택해 주십시오!
-A. 직업의 등급을 올린다.
-B. 직업을 승급한다.
“당연히 A지. 등급을 올린다!”
-축하드립니다! 2차 각성하셨습니다!
-2차 각성 선택지로, 등급을 올리셨습니다!
-B+급 직업 도구를 거대화하는 궁술사 → A-급 직업 도구를 거대화하는 궁술사
-모든 스탯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모든 스킬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근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근력 : A- → A
-축하드립니다! 속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속력 : S- → S
-궁술사 스킬 [안정된 거대화]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궁술사 숙련도 : 2%+.
‘휴우, 다행이다.’
마침 2차 각성과 동시에 [안정된 거대화]를 얻은 덕분에, 진실의 돌이 커진 채로 유지됐다.
‘물론 진실의 돌은 말 그대로 단단한 고체라서, 그냥 [거대화]를 했어도 마력만 유지하면 안정적으로 있었겠지만, 훨씬 편하고 안전해졌어.’
은혁은 내심 안도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진실의 돌을 들어 보였다.
그걸 본 쥐 떼들은 더 이상 감탄조차 하지 못하고 입만 떡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