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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91화 (191/434)

191화 : 다차원 은행 (1)

쥐 떼 두목의 고백을 들은 염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플레이어와의 거래와 인벤토리창 활성화 등등은 가능하면서, 진실의 돌만은 사용 못 한다고요?”

“그렇다.”

네즈카미는 쥐를 가호하는 신이면서, 사기와 기만, 약탈과 훔치기를 옹호하는 성좌이기도 하다.

다크 마켓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성좌이지만, 그 대신 진실의 돌만큼은 쓸 수 없게 된다.

사실을 고백한 쥐 떼 두목은 왠지 침울해져서 고개를 푸욱 숙였다.

“상심하지 마십쇼, 쥐 떼 두목님. 저도 쥐 떼 두목님이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은혁이 말하자 쥐 떼 두목이 고개를 들었다.

“오오! 믿어주는 건가!”

“아뇨.”

“에?”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믿는다고 말할 수도 없죠.”

“그, 그렇군.”

“단, 정보 교환은 가능합니다.”

“에? 이미 다 하지 않았나? 혹시 더 원하는 정보가 있어? 그보다, 내가 정보를 더 줘도 믿지 않을 텐데?”

“맞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준 정보에 대한 급부로서 용역을 제공해 주십시오.”

“용역……?”

“40층~42층 구간에서 저는 시리우스를 만나야 합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다크 마켓의, 정확히는 쥐 떼 두목의 도움을 받고 싶군요.”

“흐음.”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테일러의 계획과 비밀을 알고 싶으시다면.”

“정말 궁금하게 하네.”

“40층~42층 구간에서 용역을 제공하겠다고, 스탯창 열고 [맹세]하십시오.”

“허참.”

쥐 떼 두목은 고뇌했다.

‘하필 내가 가장 원하는 유일한 걸 제시하다니.’

그랬다.

쥐 떼 두목은 때때로 3군주와도 가끔 거래할 정도의 거물이다.

길드연합국 법에 따라 합법적인 거래만 하는 자유시장 길드를 은근히 무시하기도 했다.

쥐 떼 두목은 때때로 자유시장 길드를 향해, ‘네가 버린 우리는 여기 지하에 살아서 잘살고 있다!’라고 외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은혁이 와서 자유시장 길드의 부길드장 테일러의 약점과 계획을 말했다.

복수를 제외하면 이미 원하는 것을 거의 다 이룬 다크 마켓의 쥐 떼 두목은 그 유혹을 떨쳐 버리기 힘들었다.

그리고 평소답지 않게, 유혹에 굴복했다.

“좋다. 네가 말한 그 조건대로 하겠다고, [맹세]한다.”

-쥐 떼 두목은 강은혁에게, 40층~42층 구간에서 돕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맹세]를 어기는 경우, 쥐 떼 두목은 사망합니다!

‘후후후.’

은혁은 안 들키게 속으로 웃었다.

‘복수심이 사람의 판단력을 흐려 놓았군.’

쥐 떼 두목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섣부른 맹세였다.

쥐 떼 두목이 멍청해졌다기보다는, 은혁이 살살 제시하는 테일러의 약점에 관한 떡밥 때문이리라.

“바로 40층으로 가죠.”

“에? 지금 바로?”

“네. 시리우스 잡으러 가야 할 거 아닙니까.”

정보가 없었다면 몰라도, 정보를 얻었으니 미룰 거 없다.

게다가 시리우스는, 자발적인 가택연금 상태에서 길드연합국을 멋대로 탈주했다.

게다가 부길드장이면서 3군주의 부하로 들어가려는 목적으로, 더 나아가 제2차 길드대전을 일으키려는 목적으로 3군주 측과 접선하려 했으니 그 죄가 크다.

‘즉, 내가 무력으로 제압하러 가도 문제될 게 없다는 거지.’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 40층~42층 구간 중에서 특히 40층은 자유시장 길드의 힘이 강하게 미치는 곳이라는 건데…….

‘보자, 테일러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문제인데.’

40층에 가자마자 테일러가 적대적으로 나오느냐, 신중하게 나오느냐에 따라 전략의 방향이 달라질 터.

‘이 부분만은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겠군.’

“갑시다.”

은혁은 쥐 떼 두목에게 휙 손을 뻗었다.

“읏?! 뭐 하는 거냐!”

“방금 맹세했잖습니까. 저를 돕겠다고.”

“그, 그렇긴 한데.”

“영차.”

은혁은 쥐 떼 두목을 붙잡더니, 대뜸 자기 어깨에 얹었다.

영락없이 애완동물 같았다.

“갑시다, 40층으로!”

* * *

-40층 : 다차원 은행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커다란 동그라미처럼 보이는 은행이 있다.

은행의 면적은 월드컵 경기장 1.5배 크기.

층수는 지상 2층, 지하 1층이지만, 1층의 천장이 매우 높게 설계되어서 실제로는 4층 높이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은행을 중심으로 번화가가 펼쳐져 있었다.

번화가는 널찍했음에도 보행객들이 무척 많았기에 좁게 느껴졌다.

그 보행객들에는 다양한 이종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간, 엘프, 드워프, 하플링은 물론, 고양이 형태의 수인들부터, 키가 10미터가 넘고 수염이 황금색인 골드 자이언트까지.

온갖 이들이 바쁘게 걸어 다녔다.

저벅저벅……!!

두두두두……!!

말소리는 거의 없는 대신 발소리가 무척 컸다.

“왜 이리 이종족들이 많지?”

“다른 차원에서 거래하러 온 이들이지.”

일단 이종족들 또한 NPC로 분류되지만, 다차원 광장과 다차원 교차로를 이용해 이동할 정도의 힘과 뒷배를 지닌 자들이다.

“일단 이쪽으로.”

은혁이 염훈을 데리고, 플레이어를 위한 안내판으로 갔다.

안내판에는 40층, 41층, 42층 통합층에 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처음 오신 플레이어 분들께 :

40층부터 42층까지의 3개 층은, 100층탑의 다양한 이차원과 얽힌 장소입니다. 각 층의 메인 미션 난이도는 매우 낮은 편이므로, 안심하시고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대부분의 통합층이 그러하듯, 40층~42층 구간은 자유롭게 오가실 수 있습니다.

부디, 차원이 교차하는 신비로움 속에서 보람 있는 교류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40층 : 다차원 은행

41층 : 다차원 광장

42층 : 다차원 교차로

감사합니다.

관리국 요원 아이리스 올림.

아이리스가 자필로 쓴 우아한 안내판이었다.

안내판을 읽은 순간 40층 미션창이 떴다.

<40층 메인 미션 : 다차원 은행 관람>

-목표 : 다차원 은행의 내부를 관람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다차원 은행 건립 기념주화.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없음.

“역시 5의 배수 층이라 그런지 편하네.”

염훈이 중얼거렸다.

“방심하지 말게!”

쥐 떼 두목이 황급히 외쳤다.

여전히 은혁의 어깨에 얹힌 채였는데, 끊임없이 수염을 떨었다.

“은행 내부는 자유시장 길드의 영역이나 다름없어!”

“일단 들어가죠.”

“으으, 잠깐. 난 좀 숨고…….”

쥐 떼 두목은 은혁의 인슈어런스 아머에 달린 안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갔다.

은혁은 염훈과 함께 다차원 은행 정문으로 향했다.

다차원 은행 건물을 야트막한 담장이 빙 두르고 있었다.

그 담장에는 단 하나의 정문이 있었는데…….

“야, 은혁아. 이거 꼭 게이트처럼 생기지 않았냐?”

“게이트 맞아.”

“엥?”

“자유시장 길드의 기념비지.”

자유시장 길드가 진출하기 이전의 40층 이름은 ‘다차원 전쟁터’였다고 한다.

그리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중소 규모의 이차원 생명체들이, 하나의 층을 장악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터.

의외로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위험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관리국이 내건 미션은,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싸우는 모습을 안전한 곳에서 관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유시장 길드의 길드장, 슬레이버가 등장하여, 여러 종족의 싸움을 강제로 멈추게 한 뒤 모두를 설득했다.

‘쌈박질보다 더 나은 걸 제공해드리겠소. 그건 은행 이자라는 거요.’

자유시장 길드가 다른 종족들의 전쟁 자금을 모조리 관리했다.

그제야 전쟁이 중단되었다.

“어어, 돈 욕심 때문에 다들 전쟁을 그만뒀다는 거야?”

염훈이 어이없어하며 묻자, 은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신뢰 가능한 강력한 중재자의 존재 때문에 전쟁을 그만둔 거지.”

만약 슬레이버가 나약한 존재였고, 단순히 금품을 미끼로 얄팍한 설득을 했다면 오히려 가장 먼저 죽었으리라.

하지만 슬레이버는 강력한 플레이어였고, 그가 이끄는 자유시장 길드는 전쟁을 멈췄을 때 모두에게 돌아갈 보다 나은 미래의 비전을 보여줬다.

그렇게, 싸움은 끝이 났다.

관리국마저 자유시장 길드의 공로를 인정하여, 40층에 다차원 은행을 건립하도록 허락했다.

“이 게이트는 그 당시 쓰던 낡은 게이트야. 작동은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일단 기념으로 남겨 둔 거지.”

“헤에, 그렇구만. 근데 은혁아. 우리도 맘만 먹으면 미션을 막 바꿀 수 있으려나?”

“일시적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영구적으로 바꾸는 거라면…… 엄청 무리한다면 가능하겠지.”

실제로 불패불굴 길드가 장악하는 28층과, 콩나무 길드 본부가 있는 28.5층이 바로 그 예시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다차원 은행의 정문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과 달리 경비원 같은 건 없었다.

“엄청 크네?”

염훈이 감탄했다.

인천 공항을 연상시킬 정도로 천장이 높았다.

다만 일반 예금을 담당하는 창구는 전혀 없었고, 전부 ‘상담실’이라고 적힌 작은 방들이 있었다.

“여러 차원의 경제 거물들만 받는 곳인가 봐.”

염훈이 중얼거리자 은혁이 고개를 저었다.

“일반인들도 상담실 안에 들어갈 수 있어.”

“와, 진짜? 가면 무슨 상담을 하는 걸까?”

“특히, 우리 같은 플레이어에게는 무척 친절한 상담을 하지.”

피, 눈알, 운명치, 인연, 친동생의 시체, 레벨, 직업 그 자체 등등의 온갖 것들을 담보로 골드를 빌릴 수 있다.

특히, 수수료만 크게 지불하면 성좌와 직접 거래를 트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은혁은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극단적이지만, 염훈이 자기 수명을 200년 정도 바칠 테니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구원해 달라고 성좌랑 계약하러 나설 수도 있으니까.’

은혁은, 염훈의 수명이 늘어났다는 것에 안심하지 않고 더 조심하기로 했다.

염훈은 그런 쪽으로는 알지 못했기에 건물 내부 구조만 구경했다.

“흠, 크게 뭐 볼 건 없는 거 같은데.”

염훈은 이곳에서 관람할 만한 요소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미션 내용이 은행 관람인 건지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간.

스윽.

검은 양복을 입은 오우거 대여섯 마리가 은혁과 염훈을 포위했다.

“실례합니다, 플레이어 여러분.”

목소리는 걸걸했지만 말투는 매우 예의 발랐다.

“두 분, 강은혁 님과 염훈 님 맞으신가요?”

“그런데요? 무슨 용건이신지?”

염훈이 되묻자, 검은 양복 오우거가 공손히 두 손을 배꼽 앞에 모았다.

“은행장님께서 뵙기를 원하십니다.”

“은행장님?”

“잘 아시겠지요. 자유시장 길드의 부길드장을 겸하고 계신 테일러 님이십니다.”

* * *

은혁과 염훈은 검은 양복 오우거들의 호위, 또는 포위를 받은 채 이동했다.

염훈은 묘하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여기 은행장이 테일러였다니. 플레이어가 메인 미션과 연관된 장소의 지배자여도 되는 거야?”

“뭐, 크게 놀랄 건 없어. 10층을 떠올려봐.”

10층은 자유 연구의 층인데, 그곳에 있던 가장 커다란 연구소가 연구 길드의 지부였다.

“메인 미션 내용을 중간에 일방적으로 멋대로 바꾸거나 하진 못하니까 걱정하지 마.”

은혁은 염훈을 안심시키듯 말했고, 안내하던 검은 양복 오우거 하나가 피식 웃었다.

“염려 마십시오, 두 분. 은행장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자비롭고 신사적인 분이십니다.”

물론, 은혁과 염훈은 믿지 않았다.

믿지 않는 티를 내자 검은 양복 오우거는 한마디 더 했다.

“저희 검은 바위 오우거 부족의 야만성을 가져가시는 대신, 충성을 이식해 주셨습니다. 저희 부족은 영원히 그 거래에 감사할 겁니다.”

“어휴, 안 듣느니만 못한 소리 하시네.”

염훈이 대놓고 투덜거렸다.

그렇게 5분을 더 걷고, 한참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추가로 5분을 더 걷고서야 은행장실 앞에 도달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달칵.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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