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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93화 (193/434)

193화 : 테일러의 비밀스러운 목적

염훈은 은혁을 연신 말리려 했다.

“야! 왜 하필 자유시장 길드가 운영하는 길드에 돈을 맡기려는 건데!”

“거, 좀 믿어봐.”

“으윽, 돈이 걸린 일이라 그런가? 왜 이리 믿기가 힘들지?!”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은혁의 말을 무조건 믿는 염훈이지만, 은행에 오니까 막 의심이 들었다.

은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다, 염훈! 돈이 걸린 일에는 친구라고 해도 의심을 해야지. 네가 자랑스럽다!”

“그, 그럼 예금은 없던 일로?”

“그건 또 아니지. 그보다, 단순 예금인데 왜 이리 과민 반응 보이냐?”

“그, 그러게? 내가 왜 이러지?”

전체 자금을 넣는다는 게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은혁이 하려는 건 위험한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염훈은 왠지 조마조마했다.

안드로이드 또한 고개를 갸웃했다.

“길드의 전체 자본금을, 단순 예금으로 맡기시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꼭 말해야 합니까?”

물론, 다차원 은행은 고객의 목적을 묻지 않는다.

그럼에도 안드로이드는 잠시 머뭇거렸다.

“알겠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일반 예금 계좌 신설 양식을 내밀었다.

은혁은 염훈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빠르게 적었다.

사각, 사가각!

마지막으로 서명을 휘갈긴 순간.

-불패불굴 길드 전체 자본금이, 다차원 은행 계좌에 입금되었습니다!

염훈은 기가 막혀서 아무 말 못 했고, 은혁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차원 은행의 보안은 매우 우수하다지요?”

“물론입니다.”

“제가 알기로, 음, 잠시 불미스러운 예시를 들어도 될지요?”

“네. 부디.”

“막 사악하고 나쁘고 무시무시한 악당이 은행 강도를 하러 들어왔을 때 말입니다. 금고의 돈이 전부 은행 밖으로 털려 나간 경우라 해도, 일반 예금의 경우 무조건 전액 원금 보장이라고도 들었습니다.”

“네. 사실입니다.”

“정말 100% 보장되는 거지요?”

“네. 전액, 전부, 100% 보장되는 것이 맞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청난 자신감이었다.

그에 걸맞게, 다차원 은행은 최고의 보안을 자랑한다.

그동안 은행을 털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은행 강도 중에는 강력한 랭커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실패했고, 일부는 죽었으며, 대부분은 5층 길드연합국으로 연행되어 평화의 감옥에 갇혔다.

다차원 은행의 명성은 그렇게 커졌다.

“휴, 정말 다행이네요. 은행 강도들이 모조리 실패했다니. 참 다행입니다.”

은혁은 참으로 안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안드로이드는 빙긋 웃었다.

“이제 안심하셨는지요?”

“하하! 아뇨.”

“……?”

안드로이드는, 은혁이 참으로 어려운 대화 상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염훈은 은혁의 의도를 짐작해 봤다.

“은혁아. 혹시 길드 자금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어서 계좌 튼 거냐?”

“뭐, 그렇지. 이제 도적이 와서 우리에게 [소매치기] 스킬이나 [강탈] 스킬을 써도, 우리 자본은 안전해.”

“그럼 차라리 5층에 있는 길드연합국 중앙 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게 낫지 않아? 왜 하필 40층 다차원 은행에……?”

염훈의 의문은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잠자코 있던 쥐 떼 두목이 듣기에는 너무 태평한 소리였다.

“도저히 못 참겠군!”

얌전히 있던 쥐 떼 두목이 고개를 쳐들었다.

“어머?”

안드로이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쥐 떼 두목이 화를 냈다.

“이봐, 강은혁! 도대체 아까부터 뭐 하는 건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잖나!”

“어휴, 41층에 도착하자마자 아시게 될 겁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쥐 떼 두목은 연신 씩씩거렸다.

‘쳇! 40층~42층 통합층 구간에서 협조하기로 한 건, 네놈이 내게 테일러 부길드장의 약점을 알려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41층에 가서도 제멋대로 굴면,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네놈 눈알은 파먹고 죽겠다!’

속으로 그런 다짐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안드로이드가 손짓했다.

“귀엽고 멋진 햄스터군요.”

워낙 깨끗한 은행에서만 일해서 그런지, 안드로이드는 햄스터와 쥐를 구분하지 못하고 귀여워했다.

“나는 햄스터가 아니다! 나는 다크 마켓의 쥐 떼 두목이다!”

“정말 사람 말을 잘하는 햄스터로군요.”

안드로이드 아비프는 쥐 떼 두목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어줬다.

* * *

은혁과 염훈, 쥐 떼 두목은 다차원 은행 밖으로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40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다차원 은행 건립 기념주화를 획득했습니다!

펑!

기념주화는, 자유시장 길드의 길드장 슬레이버의 얼굴이 찍힌 금화였다.

손바닥만 한 금화였고, 좀 쓸데없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일반 금화의 10배 가치를 지니며, 금화와 동일한 용도로 쓸 수도 있지만 수집가에게 팔면 더 많이 벌 수도 있었다.

은혁과 염훈은 기념주화를 혹시 모르니 인벤토리창에 넣어뒀다.

“이제 어쩔 건가?”

쥐 떼 두목이 은혁에게 질문했다.

안드로이드에게 쓰다듬을 당한 뒤로, 신경질이 좀 가라앉은 것 같기도 했다.

“일단 41층으로 바로 가죠.”

그들이 번화가를 지나 한참을 걷자, 자동으로 41층 경계면을 넘어섰다.

-41층 : 다차원 광장

“와, 쩐다…….”

염훈이 하늘을 보며 감탄했다.

광장은 오목한 꽃봉오리와 같은 형상이었다.

중력이 수직뿐만 아니라, 오목한 바닥을 따라서도 가해지기에, ‘벽’ 위치에 있는 광장 타일 바닥을 평지처럼 밟고 이동할 수도 있었다.

“하늘도 봐라, 염훈.”

벽을 밟고 그대로 올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42층과 연결된다.

42층, 즉 다차원 교차로는 무수히 교차하는 ‘길’들로 이뤄진 층이었다.

각 길의 끝에는 행성이 있었다.

물론, 실제 행성은 아니고, 다른 차원의 상징물로서 존재하는 행성 모양의 구체였다.

다차원 교차로를 타고 한없이 가다 보면 실제로 다른 차원에 도달하게 되지만, 일반 플레이어에게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엄청난데!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이렇게 오는 거구나……. 그나저나 이거 원근감이 이상해지는 것 같네.”

“다차원 교차로는 좀 있다가 직접 걸어 볼 거야. 그전에 미션부터 깨자고.”

“미션?”

다차원 광장 중심에 게시판이 수천 개 꽂혀 있었다.

41층의 광장은 5층의 광장과 비슷했지만, 좀 더 넓었고, 게시판이 훨씬 크고 많았다.

광장 앞에 도달한 순간, 메인 미션이 시작됐다.

<41층 메인 미션 : 미션 게시판 설치>

-목표 : 다른 플레이어 또는 NPC가 수행 가능한 미션 게시판을 설치할 것. 미션 게시판을 설치한 당사자는 자신이 만든 미션을 수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성공 시 보너스 : 미션 게시판의 난이도에 따라 다름.

-실패 시 페널티 : 미션 게시판의 난이도에 따라 다름.

-제한 시간 : 7일.

다차원 광장에서는 누구나 미션을 만들 수 있다.

플레이어의 경우에는 딱 1회, 무료로 미션 게시판 설치 가능했다.

-플레이어용 미션 게시판이 지급되었습니다!

파앗!

은혁과 염훈에게 팻말 형태의 미션 게시판이 주어졌다.

자신의 미션 게시판에 미션 내용을 적은 뒤, 광장 바닥에 꽂으면 자동으로 설치된다.

자신의 미션 게시판에는 원하는 글을 아무거나 쓸 수 있으나, 반드시 미션 형식을 띠어야 했다.

“기분이 묘한데?”

염훈은 왠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는 미션을 받기만 했는데, 이제는 남들한테 주는 거 아냐?”

“맞아. 하지만 메인 미션 양식에 따라 만들어야 하니까 너무 이상하게 쓰진 말자고.”

“은혁이 넌 어떤 미션으로 쓸 거냐?”

“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

“…….”

은혁의 웃음소리는, 고장 난 상담용 안드로이드가 낼 법한 웃음소리였다.

“이 인간이 고장 났나?”

쥐 떼 두목이 중얼거린 순간.

휙!

은혁의 고개가 마치 기계처럼 쥐 떼 두목을 향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쥐 떼 두목. 제가 답을 줄 것 같으면서도 안 주니까 속이 많이 타셨죠? 여기까지 왔으니 제 계획은 물론, 테일러의 계획과 그 약점까지 전부 말씀드리죠.”

“오, 오오?!”

“자유시장 길드의 부길드장 테일러의 약점부터 짚고 가죠. 그것은 다차원 은행에 있는 돈입니다.”

“하? 그걸 누가 몰라?”

자유시장 길드의 자금은 5층 길드연합국에 있는 본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테일러의 개인적인 돈을 비롯한 길드 지부의 돈은 40층에 위치한 다차원 은행이 관리한다.

그리고 그 금고 속에 막대한 금이 있다.

“거기까진 아시는군요. 그럼 이런 의문을 가져보신 적 있습니까? 테일러가 왜 하필 금고에 돈을 쌓아 두는지 말입니다.”

“음?”

“테일러가 금화를 인벤토리에 넣지 않고 금고에 모아두는 이유 말입니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

“흠.”

“이미 돈이 많은 테일러가 따로 개인적으로 금화를 모으는 이유도 수상쩍지 않습니까? 다차원 은행은 통합층으로서, 다차원 교차로를 통해 위험한 자들이 언제라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5층의 은행이 아니라 40층의 다차원 은행에 금화를 모으는 이유는?”

“듣고 보니 다 이상하네.”

“테일러의 진짜 목적을 알려드리죠. 그의 목적은 시간 여행입니다.”

그랬다.

테일러는 금화를 소모시켜 시간을 조작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다만 시간 조작의 권능은 너무나도 사기적인 일인 만큼, 금화와 마력이 모두 다량 필요했다.

지금도 밀실의 시간을 되감는 식의 권능은 가볍게 쓸 수 있지만, 100층탑 전체의 시간을 되감는 식의 권능은 아니다.

100층탑 전체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과거로 가는 것.

그것이 테일러의 목적이다.

하여, 테일러는 각종 영약으로 자신의 마력을 강화시키는 한편, ‘금고’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금고를 일종의…….

“막대한 금화를 연료로 삼는 타임머신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테일러의 계획입니다. 테일러가 40층의 다차원 은행 금고에 금을 쌓아 두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뭐라고……!”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튀어나와서인지, 쥐 떼 두목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쥐 떼 두목은 부자였다.

부자의 이성과 감성으로 반추해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 말이 되는 것 같은데?”

현재 자유시장 길드는, 그리고 테일러는 7대 길드 중에서도 가장 돈이 많다.

가장 돈이 많은 자가 원하는 것?

부자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딱 3개만 고르라면 다음과 같다.

더 많은 돈.

영원한 젊음.

완전한 자아실현.

부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위의 3가지가 많이 중첩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타임머신은 위의 3가지 일부, 또는 전부를 실현시켜 줄 수 있다.

바깥 세계라면 말도 안 되지만, 100층탑이라면 타임머신 제작이 진지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다 말이 되네?”

염훈도 납득했다.

“자유시장 길드는 그동안 돈만 모으고, 막 대외적으로 크게 활동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맞아. 대부분 사람들은, ‘자유시장 길드니까 돈을 모으기만 하는 게 당연하지’ 하고 넘어가지. 하지만 ‘100층탑에서 그렇게까지 돈 모아서 뭘 하려고?’라는 쪽으로 의심을 하다 보면…… 자유시장 길드의 행보가 좀 의심스럽게 보이기 시작할 거야.”

“과연! 그게 테일러의 진정한 목적이었군.”

그때, 쥐 떼 두목이 다시 딴지를 걸었다.

“잠, 잠깐. 일단 말 자체는 되지만, 증거는?”

“증거요?”

“그래! 테일러가 다차원 은행 금고를 타임머신으로 쓰려 한다는 증거가 있나?”

“사실, 없습니다.”

“엥?”

은혁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내가 아는 거라곤 테일러가 실패한다는 사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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