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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97화 (197/434)

197화 : 아이리스의 중재와 테일러와의 협상 (3)

‘게다가 얼마든지 뻔뻔해지고 비굴해질 수도 있어.’

시간을 되감으면 그 뻔뻔함과 비굴함도 되감겨지므로.

협상에 유리하다 싶으면 뻔뻔함과 비굴함을 그냥 감내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되감으면 그만이다.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

아이리스는 이제야 테일러의 힘과 민낯을 깊게 들여다본 것 같았다.

“하는 수 없군요.”

은혁이 고민 끝에 말했다.

“제가 내건 조건은 철회하겠습니다.”

은혁의 어조는 담담했다.

“괜찮으시겠어요? 합의로 중재되면 나중에 불공정하다고 항의해도 소용없습니다.”

아이리스가 경고했지만.

“뭐, 이대로 계속하면 시간 낭비니까요. 나만 손해면 괜찮지만 아이리스 님까지 뭔 고생입니까.”

은혁은 아이리스의 편의를 걱정해서 자기가 참겠다는 티를 팍팍 냈다.

테일러를 향한 작은 도발이었지만, 도발은 실패했다.

‘……휴우.’

테일러는 내심 안도했기 때문이다.

‘이게 최선이다. 시간을 더 되감아도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으니…….’

그동안 은혁과 아이리스가 미션 목표 밑에 제한 조건을 새로 썼다.

-관리국 중재에 의해 만들어진 미션 제한 조건 :

첫째. 미션 제한 시간은 5분으로 한다.

둘째. 중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간 순간부터 미션은 즉각 시작되며, 제한 시간은 마찬가지로 5분이다.

셋째. 다크 마켓은 본 미션에 참가할 수 없다.

……

……

여섯째. 강은혁은 미션이 끝날 때까지 절대로 다차원 금고 내부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일곱째. 강은혁이 만든 미션이 실패하는 경우, 강은혁은 죽는다.

“뭐 빠진 거 있는지 보시죠.”

“다 맞는 것 같군.”

그렇게, 은혁과 테일러는,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악수를 나눴다.

“좋아요. 관리국의 이름으로, 이 중재는 지금부터 효력을 가집니다.”

-미션 조건 수정에 대한 합의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럼 두 분, 모두 원래 있던 장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이리스가 말했다.

그러고는 즉시 두 사람을 돌려보냈다.

* * *

푸슝!

은혁은 팻말을 꽂은 자세로 다시 돌아왔다.

“앗?!”

“오옷?!”

염훈과 쥐 떼 두목이 깜짝 놀라 했다.

“야, 어디 갔었냐!”

“잠깐 관리국 중재 좀 받으러.”

은혁은 팻말을 살펴봤다.

‘합의한 내용 그대로군.’

-남은 제한 시간 : 4분 57초.

-남은 제한 시간 : 4분 56초.

-남은 제한 시간 : 4분 55초.

팻말에 적힌 숫자가 줄고 있었다.

“야, 이거…….”

염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대체 뭔 중재를 했기에 이렇게 된 거냐?”

“어쩔 수 없었어.”

은혁은 중재 과정 중에 있던 일들을 대충 설명했다.

“테일러 이 인간이 아주 뻔뻔한 인간이네.”

“뭐, 그렇지.”

협상과 [시간 되감기]를 오랜 세월 사용해 왔으니, 테일러로서는 오히려 그 뻔뻔함이 보통이리라.

“쥐 떼 두목? 들었다시피, 쥐 떼 두목은 잠시 [그림자 감옥] 속에 들어가 계셔야겠습니다.”

“에? 아아, 이번 미션에 아예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지, 참.”

“네. 나와도 될 때만 잠깐씩 꺼내드릴 테니, 갑갑해도 좀 참으시길.”

슈욱!

쥐 떼 두목은 그림자 감옥 속으로 사라졌다.

[그림자의 주인] 패시브 스킬을 얻었기에, 이제 은혁은 [그림자 감옥]을 발동한 채 이동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동안 염훈은 미션 팻말을 찬찬히 다시 읽고 있었다.

“어디, 미션 팻말 좀 다시 읽어보……고……?”

그제야 염훈은 미션 실패 시 은혁이 죽는다는 걸 깨달았다.

“으악!! 은혁아!!”

“왜.”

“실패하면 죽는다는데?!”

“실패 안 하면 그만이지.”

“야!!! 지금 4분도 안 남았어!!!”

“걱정할 거 없대도 그러네. 내 성격 모르냐? 할 만하니까 조용히 좀 해봐. 일단 정신 좀 집중하자.”

“지금 걱정이 안 되겠냐!! 아악!!”

염훈이 발을 동동 굴렀다.

“어휴, 일단 이거나 좀 먹고 있어라.”

은혁이 인벤토리 속에 넣어 둔 사이다를 따서 염훈의 입에 억지로 먹였다.

“우읍? 미지근한 것 가지고, 읍읍, 꿀꺽꿀꺽……!”

미지근하다고 욕하면서도 잘 받아먹었다.

“[그림자 방출].”

화악!

은혁은 그림자를 잔뜩 생성했다.

“그리고 [그림자 터널].”

슈우욱……!

은혁의 발 앞에 [그림자 터널]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림자 터널]의 끝은…….

“그림자 씨앗이여. 여기로 오라.”

꾸물꾸물……!

은혁이 28.5층의 부길드장실에 심은 그림자 씨앗이, 이곳으로 전송되었다.

그림자를 지배하는 은혁과의 감응성이 매우 뛰어났기에, 차원의 벽을 가볍게 뛰어 넘어왔다.

“[그림자 감옥].”

은혁은 전송된 그림자 씨앗을 잠시 [그림자 감옥]에 넣더니.

“꽃을 피워라.”

-그림자 씨앗이 고속으로 생장합니다!

그림자 씨앗은 그림자 속에서, 특히 일반 물질계가 아닌 곳에서 더 빨리 자란다.

과거에 미카엘의 차원에서 고속으로 자란 것도, 미카엘의 차원이 일반적인 차원이 아니라 성좌가 기거하는 차원이었기 때문이다.

이곳, 다차원 광장 또한 다양한 물질계와 비물질계가 혼재된 공간이기에, 그곳에서 [그림자 감옥]을 발동하면 그림자 씨앗은 1분 안에 꽃을 피울 터였다.

“크으! 역시 [그림자 터널]은 개사기다, 진짜.”

은혁이 기다리며 자화자찬했다.

승급한 이후에만 얻을 수 있는 사기급 스킬 [그림자 터널].

그것을 승급하지 않은 시점에서 능숙하게 쓰는 자신이 무척 감탄스러웠다.

혼자 감탄하기 아까워서 염훈을 툭툭 쳤다.

“야, 염훈. 봤냐? 스테이지를 뛰어넘어서 불러온 거?”

그랬다.

[그림자 터널]은 [그림자 도약]보다 느린 대신, 스테이지의 한계인 차원의 벽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었다.

‘그림자를 지배하는 도적’이 처음부터 S급인 이유는,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한계가 없어지는 무제한의 범용성 덕분이다.

“어때, 굉장하지?”

“아니, 굉장하긴 한데 지금은…….”

“후후. 사실 나는 이게 가능할 거라고 6층에서부터 확신했었지.”

은혁의 자화자찬은 끝을 몰랐다.

“6층 논밭 스테이지 기억 나냐? 고블린 습격대장이 농작물을 훔치고 스테이지 경계면 밖으로 갔을 때 말이야, 나는 그때 이미 칼날을 그림자로 전송해서 스테이지의 한계인 차원의 벽을 일부 뛰어넘었었지…….”

“야!!!”

“알았다, 알았어.”

사실 은혁이 자화자찬을 하며 시간을 끈 대는 이유가 있었다.

“염훈. 내가 하는 거 보고 화내지 마라?”

“이미 화났거든!! 답답해 죽겠다!!!”

“거봐. 네가 화낼 줄 알고 미리 성질 좀 돋운 거다.”

“……!!!”

염훈이 뒷목을 부여잡으며 피꺼솟 포즈를 취하는 순간.

-그림자 꽃이 생장했습니다!

“좋아!”

은혁은 그림자 꽃을 입 안에 넣었다.

우물우물우물……!

“크으, 쓰다.”

“오, 그거 설마! 제한 시간을 연장해 주는 건가!”

“이것만으로는 무리야.”

그림자 꽃의 힘은 이면의 힘을 끌어내는 연금술 촉매로 쓰인다.

그림자 꽃만으로는 미션 제한 시간을 연장할 수 없다.

아주 귀한 아이템을 융합하기 전까지는.

“읏차.”

은혁은 39층에서 얻은 수명 연장 포션을 함께 삼켰다.

“앗?!”

-히든 이펙트 발동!

-미션 제한 시간이 5시간 연장됩니다!

-그 대가로 수명이 5년 감소합니다!

-오늘 밤 자정까지, 그림자 관련 스킬의 효율이 5% 감소합니다!

“뭐, 그럭저럭이네.”

은혁은 태연히 여겼지만.

“야!! 지금 네 수명!!”

“뭐, 5년 줄었을 뿐이야.”

“5년이면 긴 시간 아니냐?! 똑똑한 초딩이 조기 졸업 해서 중딩 될 시간이잖아!!”

“풉, 웃기는 비유네.”

은혁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염훈은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진정해라, 염훈. 5시간 이내에 미션 클리어 못 하면 그때는 나 진짜 죽으니까.”

“으그그극……!”

염훈은 은혁에게, 수명 연장 포션을 먹은 척만 했던 거냐부터 시작해서, 자기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는 자가 어찌 동료에게 자기 목숨을 맡길 수 있겠는가, 소중하지 않은 걸 동료에게 맡기겠다는 건가까지, 온갖 훈계를 하고 싶었다.

“자자, 바쁘니까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너도 좀 도와줘야 해.”

훈계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젠장, 정말 자신 있는 거냐?”

“5시간이면 넉넉하지, 뭐.”

은혁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생각했다.

‘아마도.’

* * *

은혁이 팻말 미션을 꽂은 뒤 1시간이 지났다.

소문이 퍼졌다.

다양한 플레이어, 다양한 NPC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했다.

“금고털이 미션이라.”

“이런 미친 미션을 만든 게 사실 강은혁이 처음은 아니지.”

“어? 진짜로?”

“2, 3년에 한 번씩, 다차원 은행을 건드려보는 놈들이 꼭 있어.”

“성공한 자가 있나?”

“있을 리가 있나. 내가 알기로는…… 그나마 성공에 근접했던 자들이 있긴 한데.”

“오오, 예를 들면?”

그나마 다차원 은행 강도의 성공에 근접했던 자는 다섯 명 정도 있다.

첫째. 1만 마리의 스켈레톤을 데리고 은행을 습격한 ‘해골 군단을 지배하는 사령술사’의 도전.

둘째. 3군주가 쳐들어왔다고 거짓말을 해서 혼란에 빠뜨린 ‘사기 치는 도적’의 도전.

셋째. 완전 무작위 혼돈술에 모든 걸 걸었던 도박에 미쳐 버린 혼돈술사의 도전.

넷째. 7년 동안 자유시장 길드에 충성을 바치는 척하면서 은행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했던 ‘마음의 소리를 듣는 초능력자’의 도전.

다섯째. 테일러의 모습으로 변장해서 금고에 침입하려 했던 ‘사람을 복제하는 도적’의 도전.

“그들 다섯 모두 실패했지.”

“으음.”

“이번 강은혁도 실패할 거야.”

“어? 어째서?”

“몰라서 물어? 강은혁은 이번 미션에 직접 개입할 수가 없잖아.”

“간접적으로 지휘를 해서 엄청난 일을 해낼 수도 있잖아?”

“아니. 강은혁의 강함은 위험을 무릅쓰고 막 돌진하고 적진 한가운데에 그림자로 튀어 나가고 하는 거잖나. 그런데 멀찍이서 지휘만 한다? 글쎄.”

다수의 NPC들은 은혁의 실패를 점쳤다.

반면에 플레이어들은…….

“할까?”

“아니, 성공이고 실패고를 떠나서, 이 미션에 참가하면 자유시장 길드를 적으로 돌리는 게 되는데?”

“야, 미션 성공한 다음 불패불굴 길드에 가입하면 되지!”

“아……!”

정작 이번 미션에는 은혁이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어렵지만, 미션 성공에 도움을 준다면 은혁이 그 플레이어를 영입할 것임은 자명하다.

“그치만 너무 위험해서.”

“위험이고 나발이고 시발, 그래도 돈이 얼만데!”

“어, 얼만데?”

“모르지! 도대체 돈이 얼마나 저장되어 있는지 아무도 몰라! 그게 핵심이라고!”

“와, 시발. 듣고 보니 그러네. 다차원 은행 금고에는 도대체 얼마가 든 거야?”

“듣자 하니 전부 쌩 금화라는데.”

“채권이나 수표나 다이아 같은 건 없고?”

“없대. 금화로만 꽉 차 있대.”

“그걸 넌 어떻게 알아?”

“내 친구의 친구의 선배가 혼돈술사인데, 여기 금고 털려다가 실패해서 5층 평화의 감옥에 있거든? 은행 강도 실패자 중 유일하게 금고 내부를 확인한 그 사람이 체포되기 전에 말했대.”

“뭐라고?”

“‘금화가 너무 많아서 겁에 질릴 정도였다’라고.”

“와씨, 쩐다!!”

“해보자!!”

41층까지 온 플레이어들은 도박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우르르르……!

저벅저벅저벅……!

모험심 가득한 플레이어들이 팻말에 모였고, 그곳에는 염훈이 있었다.

은혁은 염훈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고는 먼저 42층으로 떠났다.

“아, 어서들 오십쇼.”

염훈이 꾸벅 인사했다.

“우와, 염훈이다.”

“불패불굴 길드장……!”

“저 사람도 우리와 함께 하는 건가.”

그때, 염훈이 팻말을 꽂았다.

“엇차.”

염훈의 미션 팻말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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