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 시리우스와의 재회와 협력
“제길, [확률 조작] 스킬로 추적 스킬이나 아이템은 전부 회피할 수 있는데, 어째서?!”
“그야 여긴 차원의 교차로니까요.”
차원의 낚싯대와 상성이 좋을 수밖에 없다.
좌표를 전혀 모르면 몰라도, [쥐벼룩] 덕분에 좌표를 아는 이상 반드시 낚을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42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다차원 교차로에서 만난 존재와 인연이 성립합니다!
-쌍방의 인연이 해소될 때까지, 일방적으로 떠날 수 없습니다!
“이, 이런 망할?!”
시리우스가 경악했다.
인연이 성립되어 버린 이상, 멋대로 도망치거나 떠날 수 없다.
‘인연의 해소’는 범위가 꽤 넓지만, 깊이가 얕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회귀 전의 나도 김경철과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지.’
가장 좋은 건 이번에도 김경철과 만나는 거다.
하지만 인연의 길에서는 완전히 모든 게 랜덤으로 결정되므로 김경철을 꼭 만난다는 보장이 없다.
최악의 경우, 44층에 사는 흡혈귀와 만날 수도 있고, 까마득히 높은 층에서 화신의 형태로 돌아다니는 성좌와 만날 수도 있다.
‘운에 맡길 수는 없지.’
그래서 시리우스를 낚았다.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의 낚싯바늘을 시리우스의 몸에서 제거해줬다.
“협상합시다, 시리우스 님.”
“협상?”
“제가 원하는 사람 하나만 찾아주시면, 인연 해소에 동의해 드리죠.”
“네놈 생각을 모를 것 같나? 인연 해소 직후에 날 죽일 생각이겠지!”
“…….”
“대, 대답 안 하는 것 봐라!”
“아니, 그게 아니라.”
은혁은 자기 평판이 참 많이 사악한 쪽으로 알려졌구나, 싶었다.
그러자 시리우스는 이번에는 쥐 떼 두목을 규탄했다.
“네놈! 내가 네놈에게 준 돈이 얼만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흠? 그런 식의 말투는 듣기 싫소만. 애초에 계약 조건은 당신을 길드연합국에서 탈출시키고 부활시켜주는 것뿐…….”
“이놈!!”
서로 옥신각신 말다툼이 끝도 없을 것 같았다.
“자자, 싸움은 나중에 하시고. 우선 질문과 답변을 하나씩 번갈아 하면 어떨까요?”
“……좋다. 대신에 내가 먼저 질문하지.”
시리우스가 은혁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노려봤다.
“너, 정말 예언자냐?”
“아닙니다. 그럼 제 질문! 여기에 무슨 목적으로 온 겁니까?”
“음? 다 알고 온 거 같은데?”
“짐작은 가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듣고 싶군요.”
“그건.”
“미리 말씀드리는데, 우린 지금 인연 성립으로 묶여 있습니다. 대충 답변하고 얼버무리면, 시스템이 우리의 인연을 해소해 주지 않을 겁니다.”
“크윽……!”
결국, 시리우스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저 쥐새끼 놈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나는, 3군주 중 하나인 ‘인치’의 부하들과 접선하기로 했다.”
은혁은 쥐 떼 두목에게서 대략 들은 이야기지만, 좀 더 자세히 들어보기로 했다.
“더 구체적으로?”
“……그들과 접촉하는 방식은, 다차원 교차로를 이용하는 거였다. 내 [확률 조작] 스킬로 인치의 부하 중 직업이 혼돈술사인 자와 만나는 거였지.”
시리우스는 이미 42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했기에 인연의 길 효과를 추가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차원의 교차로가 지닌 원활한 차원 이동 효과는 볼 수 있었다.
“원래는 이미 접선했어야 하는데,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접선 연기 통보를 보내왔다.”
“그 이유는?”
“내 차례다. 너는 날 왜 낚은 거냐.”
“[확률 지배] 스킬로 도움 좀 받으려고.”
“무슨 도움?”
“실은 제가 정말로 만나길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운에만 맡기고 싶진 않군요. 그래서 우선 당신을 낚아서 확률을 조작한 뒤, 더 높은 확률로 낚을 예정입니다.”
“허, 도대체 누굴 낚으려는 건데?”
“이젠 제 차례죠. 왜 길드연합국을 배신하고 3군주 쪽으로 붙으려는 겁니까?”
“네가 할 소리냐!!!”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시리우스는 시뻘게진 얼굴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분노를 터뜨렸다.
“길드연합국 내에서 나를 몰락시킨 건 네놈이잖아!!”
“거, 자업자득이죠. 까놓고 말해서 마약이나 다름없는 행복 포션을 조직적으로 제작 유통한 게 누굽니까?”
“그건……!”
“NPC 등짝에 노예 낙인찍고 괴롭히는 쇼를 돈 받고 보여주는 길드가 어느 길드입니까? 자유시장 길드의 창고를 털어서 장물을 팔아 치운 길드가 어느 길드입니까? 전부 행복 길드 아닙니까?”
“…….”
“작은 길드도 아니고, 무려 7대 길드 중 하나이면서 수많은 범죄로 이득을 본 주제에, 제 탓으로 돌리는 겁니까? 제가 없었어도 행복 길드의 파멸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어요.”
“아니! 거기에는 동의하기 어렵군! 행복 길드도 나름의 역할을 했어!”
“거, 진짜 못 들어주겠군요. 그게 행복 길드가 할 소립니까?”
“무슨 소리냐! 그런 게 100층탑이잖나! 세속 윤리로 우리를 평가하려 든다면……!
“그래서, 행복합니까?”
“……!!”
“멋대로 살아놓고, 몰락한 다음 징징거리는 지금은 행복하냐고 물었습니다.”
“…….”
사실, 시리우스는 반반이었다.
몰락해서 도망치는 처지에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절박감이 묘한 쾌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 복잡한 쾌감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다면, 행복 길드의 사상적 관점에서 봤을 때 시리우스는 오히려 훌륭한 상태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축되어 우울한 것도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당신도 상승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던 브라이언과 닮았습니다.”
“뭐……!”
“브라이언은, 자신의 전부를 100층탑 정상 공략에 걸었으니 어느 정도의 비윤리는 있을 수밖에 없다~ 라는 식의 태도를 지닌 자였죠. 하지만 실제로는 100층탑 정상에 도전하는 자신의 모습에 취한 채, 부하들로부터 경외 받는 걸 즐겼을 뿐입니다.”
은혁은 시리우스를 가리켰다.
“당신도, 타인의 인권이나 파멸보다 나 자신의 행복이 중요함~ 도덕과 윤리 따윈 부정할 거임~ 같은 식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막상 지금 자기가 실각하고 위기에 처하니까 추레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랬다.
배신이 주는 쾌락의 총량이 더 크다면 배신은 정당하다 여기던 시리우스는, 막상 자신이 쥐 떼 두목에게 배신당하자 화내고 징징거렸다.
자신이 부길드장 지위를 잃고 파멸할 지경에 이르자, 모든 걸 버리고 도망쳐서는 3군주와의 접선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뿐만 아니라, 부길드장급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실력이 탄탄할 때는 자기 길드의 사상을 어렵지 않게 설파합니다. 하지만 막상 부길드장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는 시점이 오면, 좀 어이없다 싶을 정도로 쉽게 나락에 처박힙니다.”
은혁은 자기 분석이 타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십시오. 지금의 당신의 변명은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의 변명이 아니라, 나락에 떨어지느냐 재기에 성공하느냐 사이에서 주변 눈치를 살피는 일반인의 변명에 가깝습니다.”
“크윽……!”
“이렇게까지 말해도 납득하기 어려우시다면.”
철컹!
은혁은 듀얼 체인 소드를 준비했다.
“100층탑의 플레이어들답게 대결로 결착을 짓는 것도 좋겠죠.”
은혁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내심 쾌재를 불렀다.
‘됐다! 자연스럽게 대결로 이어졌다!’
도박장에서 시리우스를 마주했던 그 순간부터, 은혁은 이 상황을 기대해왔다.
‘크으, 승률을 차곡차곡 쌓느라 참 힘들었지.’
확률을 지배하는 마검사인 시리우스와의 대결은 근성이나 순발력 대결이 아니다.
승률을 얼마나 다양한 조각으로 쌓아 왔느냐의 대결이다.
‘시리우스와 싸울 때는, 한 방에 일발역전 같은 큰 승리의 가능성보다, 자잘한 승리의 가능성을 여러 개 쌓는 게 중요해.’
그래서 은혁은 그렇게 했다.
‘무려 다섯 가지 이유에서 내가 유리하군.’
심리적 우위.
지형적 우위.
인연 성립 상태.
은혁의 다양한 직업.
은혁의 다양한 무기.
‘일단 심리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건 당연한 거고, 결정적으로 지형이 내게 유리하다.’
[확률 지배]가 무섭긴 해도, 이곳은 인연의 길이다.
주변 지형지물이랄 게 따로 없는, 곧게 뻗은 차원의 길.
[확률 지배]가 진짜 힘을 발휘하려면 주변에 상호작용 가능한 사물이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긴 인연의 길이므로 그런 게 없다.
‘결정적으로, 시리우스는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 없다.’
인연 성립으로 묶여 있는 상태이므로, 시리우스는 싸우다가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다.
그밖에도, 은혁은 직업과 무기가 다양하다.
세븐 칼리버에 [확률 지배]가 걸려서 명중률이 낮아져도, 무기를 변신시키거나 다른 무기로 교체해서 싸우면 된다.
직업의 경우도 마찬가지.
‘마지막으로, 나는 회귀 지식도 갖고 있지. 놈이 어떤 패턴으로 싸우는지도 안다. 종합적으로 보면 내 승률이 75% 정도는 되겠지.’
계산을 마친 은혁이 승리를 확신한 순간.
“개자식. 엄청 싸움을 기대하는 표정이군.”
“네?”
“아닌 척하지 마라. 설득이 안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척, 발연기를 해대는군.”
시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털썩!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버렸다.
“내가 졌다! 네 승리다.”
“…….”
은혁은 내심 싱겁게 이겼다고 생각했다.
“저기, 그래도 싸우면 그쪽이 이길지도 모르는데요.”
“흥, 그쪽 숙련도 높여주는 역할 따윈 사양이다. 좋을 대로 해라. 날 죽이든 살리든.”
“…….”
은혁은 일이 싱겁게 풀려서 내심 아쉬웠다.
‘확률 조작 능력자랑 싸워보고 싶었는데, 아쉽군.’
그래도 항복한 자를 억지로 공격하는 것도 부적절한 일이고, 무엇보다 시간이 4시간 30분 정도밖에 안 남았다.
“그럼 도와주시죠.”
“그래. 네놈이 원하는 사람이 누구냐? 찾는 일에 도움을 주겠다.”
“제가 원하는 사람의 이름은…….”
“단!”
시리우스가 단서를 달았다.
“네 부탁을 들어준 다음에는 나를 놓아주시오.”
“흐음. 여길 떠나서 어쩔 겁니까?”
대답 여하에 따라 은혁의 결정이 달라질 터였다.
“길드장님을, 해피 님을 찾아 떠날 생각이다.”
“으음……!”
차원을 떠돌아다니며 멋대로 깽판을 치는 존재다.
아마 길드연합국 플레이어 중에 해피처럼 멋대로 구는 플레이어도 드물 터.
아직까지는 만날 일이 다행히 없었지만…….
“이렇게 하죠. 해피를 만나게 되면, 제게 편지라도 한 통 보내주십시오.”
“편지라.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지.”
“좋습니다. 이제 [맹세]를 하면 믿겠습니다.”
“[맹세]한다.”
-[맹세]가 성립되었습니다!
은혁은 쥐 떼 두목을 내려다봤다.
“이걸로 모든 은원은 청산한 걸로 했으면 합니다.”
“뭐, 시리우스의 탈출을 돈 받고 도와줄 때 이미 반쯤 용서했으니까.”
그리고 은혁과 시리우스는 본론에 들어갔다.
“제가 원하는 사람은 김경철이라는 플레이어입니다. 위치는…….”
“몰라도 돼.”
“그럼 시작하죠.”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를 들었다.
철컹!
저격 모드로 전환한 뒤.
“으럅!!”
부웅!!
은혁은 낚싯대를 휘둘렀다.
휘익!!
낚싯바늘이 차원의 길 어디론가 날아갔다.
“우왓?!”
“이봐! 조심 좀 해!”
지나가던 몇몇 NPC들이 화를 냈지만, 은혁은 무시했다.
‘차원의 낚싯대 + [초월 명상]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명상 낚시]!!’
우우우우웅……!!
은혁은 본능적으로 낚싯대에 정신을 맡겼다.
“슬슬 내 차례군.”
시리우스가 뒤이어 힘을 빌려줬다.
“[확률 지배].”
우우우웅……!
원래라면 차원의 낚싯대에 낚일 리가 없는 존재가, 인연의 길 저편에서 느껴졌다.
-경고! 인과율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