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 다차원 은행에서의 결전 (2)
“일단 강은혁은 내버려 두고, 놈들의 숫자를 줄여라!!”
곳곳에서 알짱거리는 은혁의 분신은 얄밉게도 무투가의 주먹을 이용한 공격만 가하고 있었다.
바싹 달라붙어서 아군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돕기만 하는 역할.
그런 은혁에게 공격을 퍼붓다가는, 또 묘한 술수에 걸려서 역공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에르고는 염훈과 그가 이끄는 미션 참가자들을 먼저 처리하게 시켰다.
“근거리 병기로 전환합니다!”
안드로이드 용병들이 외치며, 접근전 태세를 갖췄다.
그때였다.
“계획대로 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갑시다!”
염훈이 외치자, 미션 참가자들은 접근전이 가능한 근거리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철컹!
사사삭……!
플레이어들은 아예 무기를 인벤토리창에 던져 넣었다.
용병대와 아주 가까운 대치 상태에서 공격을 하지 않자, 용병대는 멈칫했다.
안드로이드답게, 그들은 프로토콜에 따라 움직이는데, 접근전 가능 거리까지 다가와서는 무방비하게 무기를 인벤토리창에 넣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한 프로토콜이 없었다.
지휘관인 에르고 또한 의아해하는 순간.
털썩!
미션 참가자들은 어느새 무릎을 꿇은 채 꼼짝도 안 했다.
“믿습니다! 염훈 님!”
“으아아아!”
그들이 모든 정신력을 염훈에게만 전송했다.
그리고 염훈 또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빅 썬더와 프리즘 랜스를 쥔 채 퓨전 스킬을 쓰고 있었다.
“[신성한 오러] + [신성한 속박]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신성한 기도의 영역]!!”
화아악……!
원리는 간단했다.
그동안 염훈은 자신의 팻말 미션으로, 참가자들을 인내심을 테스트 명목으로 똑바로 서 있게 했다.
다들 시키는 대로 했다.
일부는 못 참고 떠났지만, 남은 자들은 염훈의 명령에 따라 가만히 있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염훈은 똑바로 서 있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신성한 오러] 스킬과 [광역 축복] 스킬을 퍼부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만 믿으면 됩니다!’
‘여러분은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겁니다!’
세뇌에 가까운……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세뇌 그 자체를 해댔다.
물론, 악의적인 세뇌는 아니고, 순수한 용기를 불어넣고, 지휘관인 염훈 자신과 은혁에 대한 큰 신뢰를 불어넣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탐욕을 신성한 복종 의지로 전환시키는 데 상당 부분 성공했다.
이어 염훈은 프리즘 랜스를 들고 [신성한 지휘] 스킬을 쓰며 외쳤다.
‘여러분! 저를 믿습니까!!’
‘믿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기도!! 라고 외치면, 저를 믿고 오직 미션 성공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모두의 의지력은 프리즘 랜스를 쥔 염훈에게 모였고, 염훈은 [신성한 기도의 영역]을 쓸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
아무리 바깥에서 공격이 가해져도, 기도가 이어지는 이상 아무도 죽지 않는다.
‘문제는 기도가 언제까지 이어지느냐는 건데.’
염훈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프리즘 랜스에 담긴 힘과 염훈의 신성력이 대단해도 오래 이어지진 않을 터.
‘빨리해라, 강은혁!’
사실, 은혁은 이미 했다.
염훈에게서 받은 게이트 미션 1회 면제권을 쓰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얍.”
-게이트 미션이 1회 면제됩니다!
암호가 걸린 게이트가 자동 해제됐다.
“엇차.”
은혁은 가볍게 정문 안으로 들어가서 안뜰에 발을 디뎠다.
그 모습을 본 테일러는 경악했다.
“뭐?! 아니, 뭐?!”
상황을 눈으로 봐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게이트 미션 1회 면제권이라니! 그건 또 언제 얻은 거냐!!’
테일러는 경악했고, 은혁은 가볍게 들어오며 뒤를 돌아봤다.
‘염훈이 잘해주고 있군.’
게이트를 열고 들어오는 중에 테일러가 고용한 적들이 방해할 것이 우려되어서, 염훈에게 미끼 역할을 부탁했다.
다행히 염훈은 잘해 내고 있었다.
그렇게 뒤를 돌아보는 은혁을 향해, 테일러는 힘껏 외쳤다.
“방위 포대를 가동시켜라!!!”
기잉!
철컹! 철컹!
다차원 은행 곳곳에 숨겨져 있던 요격 포대와 함정이 가동했다.
110mm 강선포급 위력에, 명중률이 99%에 달하는 강력한 방위 포대가 오직 은혁 한 사람만을 겨눴다.
“준비가 되는 대로 발사!!”
테일러가 집무실에서 외친 순간.
“[그림자 터널].”
은혁은 스킬을 썼다.
파앗!
파앗!
은혁이 지정한 곳에서 시리우스와 김경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어 시설을 무력화시켜라!”
타앗! 타앗!
시리우스와 김경철이 크게 도약했다.
“[혼돈의 역장]이여, 막아라……!”
패배감에 절은 시리우스는 은혁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뚜두두두둑!
은혁을 겨누던 방위 포대가 무작위적으로 각도를 틀더니.
콰콰쾅!!
콰콰콰콰쾅!!
사방으로 무작위 포격을 가했다.
“으악!”
“꺄아악!”
다차원 은행 내부 경비를 서던 이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다른 함정들도 전부 가동시켜!!”
테일러가 명령했다.
단순한 가시 함정부터 염산 분사기까지.
온갖 흉악한 함정이 정문에서 현관까지의 공간에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경철은 귀찮다는 듯이 행동에 나섰다.
“[사이오닉 싸이클론]!!”
콰아아아아!!
염동력의 소용돌이가 공간을 휘젓는 순간.
투타탕!
콰오오오……!
함정이 염동력에 반응해서 멋대로 작동하거나 하늘로 튕겨 나갔다.
‘안 되겠군.’
테일러는 직접 병력을 지휘하기로 했다.
인벤토리창에서 막대한 금화를 소모하더니.
“[황금의 시간].”
파앗!
자유시장 길드의 핵심 전투원으로 구성된, 다차원 은행 최종 방위대가 극도로 가속된 상태로 돌격했다.
“다수의 적이 몰려옵니다!”
“[삼라만상의 봉인]을 해제해라!”
은혁이 외치자, 김경철은 시키는 대로 했다.
“[삼라만상의 봉인] 해제!”
파앗!
시리우스의 [가능성의 소용돌이]와, 은혁의 [인페르노 볼텍스]가 결합된 무언가가 풀려났다.
콰오오오오오오!!!
그걸 본 테일러가 경악했다.
“미친놈! 전부 다 부술 생각인가!!”
테일러는 직접 집무실 밖으로 뛰쳐 나갔다.
부하들이 학살당하고 있었다.
“끄아아악! 뜨거워!!”
“말도 안 돼! 버프와 방어가 전부 안 통하다니!”
“냉기 스킬도 안 통합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은혁의 [인페르노 볼텍스]만 해도 무지막지한 위력인데, 시리우스가 마력을 집중해서 만든 [가능성의 소용돌이]가 하나로 합쳐졌다.
그것을 김경철이 억지로 봉인시켰다가 한 번에 풀어낸 것이 현 상황.
너무나도 거대하고 이질적인 현상이라 합체기 판정은커녕, 퓨전 스킬 판정조차 뜨지 않았다.
“[황금의 시간]!! [감속]!!!”
테일러는 개인 자금을 소모해가며, 소용돌이의 속력 자체를 억지로 늦췄다.
휘오오오……!
테일러가 부하들을 돕는 동안, 은혁은 자신의 부하들을 불러오기로 했다.
“그럼.”
은혁은 게이트를 겸하는 은행 정문 안의 넓은 뜰로 향했다.
“읏차.”
바닥에 그림자 풀을 몇 포기 심더니, 바로 퓨전 스킬을 썼다.
“[팽창 생장] + [그림자 터널] 융합.”
은혁은 드루이드 스킬과 고유 도적 스킬을 합쳤다.
[팽창 생장]은 콩나무를 급속도로 자라나게 할 때 썼던 스킬로서, 무언가를 강하고 안정적으로 자라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림자 풀이 심겨 있는, 은혁의 그림자가 있는 곳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확장된 그림자 터널]!!”
파앗!
은혁은 [확장된 그림자 터널]에 명령했다.
“불패불굴 길드원이여! 이 안으로 소환되어라!!”
슈우우욱.
은혁이 엄선한 50여 명의 불패불굴 길드원들이 이곳으로 나타났다.
“우왓?!”
“뭐, 뭐야!”
소환된 불패불굴 길드원들은 크게 놀랐다.
사전에 설명을 듣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뭐, 뭔가 실전 같은데?”
“허참, 여기가 어디람?”
“다차원 은행 같은데?”
이 50명은 어떻게든 40층~42층 통합층에 도달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다.
게다가 사전에 지옥 훈련을 받아서인지 빠르게 사태를 파악했다.
미션과 무관하게 소환된 이들이었기에 직접적인 미션 클리어 혜택은 받을 수 없지만, 길드장과 부길드장을 돕는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나설 이유는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염훈!”
휘익!
은혁은 바깥의 염훈도 [그림자 터널]을 이용해 소환해 버렸다.
“우왓?!”
“자, 메탈 서전트! 게이트를 닫아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은혁은 빠르게 소환한 메탈 서전트를 드론 모드로 날려서 게이트 미션 1회 면제권을 해제, 게이트를 재가동시켰다.
-게이트가 다시 재활성화됩니다!
-단, 기존에 걸려 있던 암호는 전부 무효화됩니다!
-새로운 게이트 미션을 설정하시려면 관리자와 상담하세요!
게이트 미션 1회 면제권은 사용자의 게이트 미션 권한만을 1회 면제해주는 것으로, 나머지 플레이어나 NPC들은 여전히 그 게이트 미션을 깨야 했다.
하지만 테일러가 이런저런 조작을 가한 것을 은혁이 게이트 미션 1회 면제권으로 해제했기에, 게이트는 활성화되었지만 딱히 게이트 미션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즉, 게이트는 닫혀 있었지만 누구나 쉽게 여닫을 수 있는 상태.
단, 안쪽에서만.
“뭐, 뭐라고?!”
집무실의 테일러는 경악했다.
외부의 침입자들로부터 단절하기 위해 일부러 게이트 미션을 만들었는데, 놈들은 쉽게 들어왔고, 도리어 같은 편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후후.”
은혁은 웃었고, 게이트 바깥은 크게 혼란스러워졌다.
“아니, 우리는?!”
“염훈 님! 저희도 데리고 가셔야죠!”
염훈과 은혁의 팻말 미션에 참가했던 이들이 당황해하며 소리쳤고, 은혁은 그들에게 외쳐줬다.
“아, 님들! 그냥 안드로이드 용병들한테 항복하세요! 항복하면 안 죽습니다!”
애초에 은혁은 41층에서 급조한 이들로 다차원 은행 안쪽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야! 그래도 저들을 그냥 버리고 갈 수는!”
염훈이 뭐라 하려 했지만 은혁이 고개를 저었다.
“버리는 게 아니라, 저게 확실한 수단이다.”
“뭐라고?!”
“저 사람들은 네 팻말 미션과 내 팻말 미션에 모두 참가한 이들이야. 저들을 다차원 은행 ‘바깥’에 둬야만 안드로이드들이 저들을 감시하느라 이 안쪽에 개입하지 못해.”
안드로이드 용병 대장은 게이트를 무시하고 차원을 넘어 덤벼들 가능성이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은혁의 팻말 미션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을 바깥에 두고 와야 했다.
또한, 안드로이드 용병들은 인질을 잡아서 몸값을 받거나, 고용주로부터 추가 성과급을 받는 게 목적이기에, 저 미션 참가자들을 죽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저 미션 참가자들이 금고 내부에 들어가야만 미션 클리어지만, 은혁은 당장 저들을 불러오는 일은 급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 작전은 말하지 말자.’
하여간 은혁이 만든 팻말 미션 참가자 중에, 은혁 근처에 있는 이는 염훈뿐이다.
테일러로 하여금, 그렇게 믿도록 해야 한다.
“항복하면 적어도 죽진 않으니까. 저들이 바깥에 남겨진 건, 저들의 역할이야. 버리거나 하는 게 아니라고 약속한다, 염훈.”
“으음…….”
염훈은 자기 밑에 들어오려는 이들을 버리게 된 것 같아 여전히 속이 켕겼지만.
“염훈! 넌 불패불굴 길드의 길드장이다. 그걸 명심해.”
진짜 지휘를 받아야 할 불패불굴 길드원들 다수가 이곳에 있었다.
“아, 알았어.”
염훈도 각오를 다졌다.
“좋아! 여기서부턴 정면 대결이다!”
은혁이 청염백광태도를 높이 쳐들었다.
“들어라, 불패불굴 길드원들이여!”
모두가 은혁에게 집중했다.
“그동안의 수련 성과를 보여줄 때가 왔다! 7대 길드이니 뭐니 잘난 척하던 놈들에게 진짜 실력자가 누군지 가르쳐 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