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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10화 (210/434)

210화 : 다차원 은행에서의 결전 (5)

사령술사나 혼돈술사는, 억울하게 죽은 플레이어의 혼을 귀신으로 부리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테일러는 특이하게도, 마법사에서 승급한 연금술사이면서도 귀신을 부리는 법을 알았다.

‘계약의 힘이지.’

테일러는 유망주로 보이는 신규 플레이어를 영입할 때, 특수한 계약서와 수표를 들고 가곤 했다.

물론, 생전에는 최상의 대우를 해주는 대신, 죽으면 귀신이 되어 테일러의 명령을 영원히 듣도록 하는 내용의 계약서이다.

그나마도 돋보기가 필요한 작은 글씨로 숨겨져 있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불공정 계약을 눈치채고 뒤늦게 계약 무효를 주장했지만, 테일러에게는 안 통했다.

그 계약서의 문구는 테일러가 연금술사의 이름을 걸고 공들여 만든 [불공정 계약의 포션]으로 만든 잉크의 힘이 담겨 있기에, 차후에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계약이므로 원천 무효를 주장해도, 정의 길드조차 도와줄 수 없었다.

“크크크. 지금 이 스크롤에는 총 8명의 귀신이 있다.”

“겨우?”

수많은 귀신들이 우르르 덤비는 상황을 각오하고 있던 은혁에게 8명의 귀신은 좀 적어 보였다.

“이런 상황을 위해 특별히 모은 8명의 귀신이다!”

스르륵!

테일러가 스크롤을 펼쳤다.

우우웅……!

강력한 8명의 귀신이 스크롤 하나에 담긴 탓에 발동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쳇!”

은혁은 혀를 차며 선즈 리볼버를 꺼냈다.

‘일단 가볍게 날려볼까.’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여섯 발을 단숨에 쏘았지만.

“[투사체 정지].”

파앗!

날아드는 푸른색 단검 같은 화염탄이 허공에 정지하더니 스스로 꺼졌다.

테일러를 향해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투사형 공격은, 가볍게 한 손으로 완전 정지시키거나 느리게 하는 게 가능했다.

“하하하! 가라! 귀신들이여!”

파앗!

어느새 소환된 8명의 귀신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테일러가 다차원 은행 지하실에 보관하고 있던 여러 귀신들 중 엄선된 8명.

“전부 너의 직업에 맞서기 위해 엄선한 직업을 지닌 자들이다!!”

그랬다.

은혁의 ‘노력하는 전사’에 맞서기 위해 ‘날로 먹는 전사’ 귀신을.

은혁의 ‘화염을 지배하는 마법사’에 맞서기 위해 ‘물을 지배하는 마법사’ 귀신을.

은혁의 ‘그림자를 지배하는 도적’에 맞서기 위해 ‘빛을 지배하는 도적’ 귀신을.

은혁의 ‘돌진하는 무투가’에 맞서기 위해 ‘정지시키는 무투가’ 귀신을.

은혁의 ‘금속 차원의 소환술사’에 맞서기 위해 ‘화염 차원의 소환술사’ 귀신을.

은혁의 ‘돌을 지배하는 드루이드’에 맞서기 위해 ‘숲을 지배하는 드루이드’ 귀신을.

은혁의 ‘도구를 거대화하는 궁술사’에 맞서기 위해 ‘사물을 고정시키는 궁술사’ 귀신을.

은혁의 ‘아직 계약을 하지 않은 성직자’에 맞서기 위해 ‘계약을 강요하는 성직자’ 귀신을.

여기까지 총 8개의 귀신.

예외가 있다면 은혁의 스팀펑크 메카닉에 대응하는 귀신이 없다는 건데, 이는 플레이어가 선택 가능한 기본 12 직업에 포함되지 않는 희귀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꽤 준비를 열심히 했네.’

은혁도 테일러가 귀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귀신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자아, 가라! 강은혁을 죽이면 해방시켜주마!!”

“해방……!”

“흐으으으……!”

슈슈슉!

귀신들은 귀기를 흘리며 은혁에게 달려들었다.

“[메탈 솔저 소환]. [메탈 레인저 소환]. [메탈 스파이크 소환]. [메탈 벙커 소환].”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은혁은 일단 소환수와 방어물, 함정을 연속 소환해서 귀신들의 접근일 일시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귀신들은 반쯤 비물리적인 존재라, 금속 장애물과 소환수는 몇 초 만에 우회할 수 있다.

물론, 은혁에게는 몇 초면 충분했다.

“[그림자 터널]…….”

은혁이 말하자 테일러가 비웃었다.

“하하하! 멍청한 놈! 보나 마나 성기사 염훈을 불러서 도움을 청하려는 거겠지! 하지만 그건 차단됐다!”

그랬다.

은혁의 드릴 랜스와 [돌 부수기]에 부서지는 은행 건물이지만, 그래도 그림자 관련 스킬에 대해서만큼은 충분히 대비를 해뒀다.

‘라고 생각했겠지만.’

은혁은 자기가 생각해도 사악하다고 생각하며 히죽 웃었다.

“도적 스킬 [그림자 터널] + 초능력자 스킬 [뇌파 연동]!!”

은혁은 도적 스킬만 쓴 게 아니라, ‘초능력자 스킬’까지 썼다.

“뭐?”

테일러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했다.

“말도 안 돼! 저놈이 언제 초능력자 직업까지 얻었단 말인가!”

테일러가 놀라건 말건, 은혁은 스킬을 발동했다.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스킬 트랜스미션 : 홀리 썬더]!!”

은혁은 염훈의 스킬을 빌려 썼다.

즉, 이미 사기나 다름 없던 은혁의 스킬 범용성이, 아예 천장을 뚫은 것이다.

자신과 마음이 맞는 동료나 부하의 스킬을 통째로 빌려 쓰는 스킬이 바로 [스킬 트랜스미션]이기 때문이다.

꽈르릉!!

콰콰콰쾅!!!

신성한 충격파가 귀신들에게 뿜어져 나갔다.

“크악!”

“아아악……!”

은혁의 여러 직업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귀신들이었지만, 약점을 제대로 찔렸다.

은혁에게 설마 초능력자 스킬까지 있을 거라는 예상을 못 한 테일러의 판단력이 첫 번째 약점.

귀신에게 상극인 성직자 스킬이 갑자기 방출되었다는 점이 두 번째 약점이다.

물론, 귀신들이 일격에 쓸려 나가진 않았지만, 모두가 신성력과 전기 에너지에 의해 경직되었고, 은혁은 청염백광태도를 승화시켰다.

“[강타] + [무아연환격]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무아연환강타]!!!”

콰콰콰콰콰콱……!!

빛과 화염의 검이 귀신들을 마구 후려쳤다.

가히 폭발에 가까운 연속 썰기가 무아지경으로 펼쳐졌다.

“쿠와아아악……!”

“허어어어……!!”

은혁이 [스킬 트랜스미션]으로 전송받아 쓴 [홀리 썬더]의 후유증 때문에, 귀신들은 피하지도 막지도 못한 채 공격에 당해야 했다.

테일러가 뒤늦게 [황금의 시간] 스킬을 발동, 귀신들의 속도를 향상시켜 주려 했지만.

“초능력자 스킬 [캔슬]!”

은혁은 [무아연환강타]를 스스로 취소했다.

한번 발동하면 도중에 끊기 어려운 스킬인 [무아연환격]의 연장선에 있는 스킬이니만큼 보통은 스스로 취소할 수 없으나, 지금의 은혁은 가능했다.

“하앗!! [파이어월]! 연속 발동!!!”

화르륵!!

화르륵!!

화르륵!!

넓고 두꺼운 화염의 장벽이 3방향으로 에워쌌다.

이미 타격을 입은 귀신들의 속도가 향상되어 봤자, 화염의 장벽에 막혀 도망치기도 어려웠다.

화염은 신성력만큼은 아니더라도 귀신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혁은 화염에 갇힌 적들에게 막타를 날렸다.

“[네이팜 스트라이크]!!”

화륵!

콰콰콰쾅!!!

몸에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 네이팜의 폭격.

건물 내부에서는 결코 터뜨려서는 안 되는 위험한 네이팜이지만, 은혁은 ‘어차피 내 건물도 아닌데, 뭐’ 하는 심정으로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아아……!”

테일러는 오렌지빛 화염의 열기에 밀려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물러나야 했다.

모처럼 은혁에게 맞춰서 귀신들을 준비한 테일러였지만, 보람이 없었다.

“콜록, 콜록! 스프링클러가 없으니 좀 아쉽네요.”

아무리 [화염 지배] 능력을 지닌 은혁이라 해도 네이팜의 연기가 기관지에 들어가니 조금 괴로웠다.

“정말 그렇군.”

두 사람은 연기 속에서, 목을 씻어내리듯 포션을 한 병씩 마셨다.

“한 가지만 묻자, 강은혁.”

“초능력자 직업은 언제 얻은 거냐고요?”

“그렇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방금 전 은혁은 자연스럽게 초능력자 스킬을 썼다.

테일러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고, 은혁은 대답해줬다.

“좋은 제자 덕분이죠.”

은혁은 태연히 설명하며, 인벤토리창에 넣어 둔 두 자루의 검을 꺼냈다.

“각각 삼라참검과 만상참도 라고 하는 건데요. 제 제자가 목숨처럼 여기는 물건이죠.”

은혁은 자기가 설명하면서도, ‘아, 내가 정말 독식하는 자이긴 하구나’ 싶었다.

“여기에 제 제자, 김경철의 힘을 모두 복사시켰습니다. 그리고 담아서 받았습니다.”

은혁은 그때 그 일을 떠올렸다.

‘솔직히 위험했지. 그런 미친 짓을 실제로 성공시키다니.’

은혁이 자기 계획을 미쳤다고 할 정도로, 실제로 많이 미친 계획이었다.

“이제 저는 그냥 초능력자도 아니고, 그 승급직인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입니다.”

* * *

1시간 전.

42층 다차원 교차로의 한켠.

[정신 묶기]를 당하고 우울하게 서 있는 시리우스.

그 시리우스의 옆에서는 잔뜩 지친 은혁과 김경철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테일러의 부하들이 멀리서 감시하고 있음을 느꼈기에 목소리는 크게 하지 않았다.

“좋아, 김경철. 지금부터 1시간 이내에 나를 초능력자로 만들어줘야겠다. 그것도 감시자들에게 안 들키게.”

“그런……!”

“난이도가 높긴 하지만 해야 한다.”

“난이도의 문제가 아닐 텐데요. 플레이어 1인당 직업 1개는 절대적인 규칙인데…….”

“그 규칙의 예외가 바로 나다. 나랑 싸워 봤으니 알 텐데.”

“음…….”

김경철은 새삼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간 없다. 납득했나?”

“그 부분은 납득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또 뭔데?”

“보통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런데 초능력자 제자인 제가 스승님을 가르쳐야 한다고요?”

“꼽냐?”

“……아니, 꼽다기 보다는.”

“허허, 제자야. 대신에 나는 네게 인생을 가르쳐 주지 않았더냐?”

“…….”

“일단은 닥치고 해라. 그게 인연의 길이니.”

“하아, 이런 곳인 줄 왜 몰랐을까.”

김경철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대부분 플레이어들이 42층 메인 미션을 우습게 알고 지나가지만, 사실 이곳은 엄청난 잠재력이 담긴 길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자기 이익이 되도록 써먹기는 어려운데, 은혁은 시리우스의 [확률 지배]와 차원의 낚싯대 콤보를 적절히 이용해서 그 잠재력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다.

우우우웅……!

김경철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초능력자 스킬과 사이오닉 블레이더로서의 묘수를 두 자루의 검에 담았다.

“받으십시오.”

“후우, 긴장되네.”

받는 순간, 엄청난 지식의 격류가 쏟아져 들어올 터였다.

까딱 잘못하면 뇌가 타버릴지도 모른다.

“서포트 잘해라.”

“네?”

“[텔레파시] 스킬로 내가 미치지 않게 하라고.”

“…….”

김경철은 순간 배신의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접었다.

‘승부의 결과에는 승복해야 한다.’

그걸 부정하고 여기서 은혁을 배신하면, 사이오닉 블레이더로서의 자신도 영원히 잃게 됨을 직감했다.

“……물론 돕긴 도울 겁니다만.”

“아, 그리고 첩자들이 지금 우릴 지켜보고 있으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척을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

은혁은 삼라참검과 만상참도를, 양손으로 하나씩 콱 쥐었다.

그 순간.

-초능력자 스킬과 숙련도가 강제로 주입됩니다!

-경고! 직업이 초능력자가 아닌 플레이어에게는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은혁의 눈에만 시스템 메시지가 경고를 보내왔다.

‘할 수 있다.’

부작용 경고에도 불구하고 은혁이 자신이 있었던 이유는, ‘모든 직업의 가능성’ 때문이다.

‘죽음의 위기에 가까울수록, 인연이 깊을수록 직업 습득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과거에 내 스승이었던 김경철을, 역으로 내 제자로 만들었으니 인연의 깊이는 두 배! 게다가 죽을 위험이 있으니, 모든 직업의 가능성은 그 가능성을 개화할 터!’

은혁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연신 경고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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