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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15화 (215/434)

215화 : 겉과 속

“……에?”

“뭐?”

“아니, 우린 은행 안에도 못 들어갔는데 뭔 소리?”

의문에 답하듯, 뭔가가 튕겨 나왔다.

후두두둑!

촤르르륵……!!

“으악, 뭐야!”

“설마?!”

“이, 이건!!”

금화였다.

무수히 많은 금화가, 다차원 은행의 금고 쪽에서 팝콘처럼 튕겨 나온 것이다.

“뭐……!”

안드로이드 용병대장 에르고마저도 처음 보는 현상에 기가 막혔다.

금화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서 있던 불패불굴 길드원들이 외쳤다.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중요하다면 중요한 사실은, 이 불패불굴 길드원들은 팻말 미션에 참가하진 않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화를 챙길 수 있었다.

“금화다!”

“오! 정말 쏟아지네?!”

“최대한 많이 챙겨!”

“반드시 바닥에 떨어진 것만 챙겨야 한다!”

“한 가지 더! 사리사욕의 마음을 버리고 유실물을 임시로 챙겨둔다는 마음으로 챙겨라! 잘 안 되면 염훈 길드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정신을 정화해!”

착한 건지 실리적인 건지 묘한 기합을 내지르며 금화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팻말 미션에 참가한 300명은 앉은 채 멍하니 바라보며, 이해 안 가는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때, 강은혁의 팻말 미션에 참가한 이들에게 메시지가 나타났다.

-성공 시 보너스가 곧 지급됩니다!

-참가자 300명 전원이 클리어하셨기에, 성공 시 보상인, ‘다차원 은행 금고에 예치되어 있는 불패불굴 길드의 종합 자본금 전부’가 인원수에 맞춰 지급됩니다!

-계산 중…….

파앗!

튕겨 나간 금화들 중, 은혁이 예치한 자본금 전액이 미션 참가자들에게 N분의 1로 지급됐다.

“우왓?!”

“정말로?!”

“기, 기쁘긴 한데 어째서 우리가 클리어한 걸로 나오는 건데?”

“그, 그러게요. 우린 포로로 잡힌 다음에는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인데.”

당황하기로는 에르고 또한 마찬가지.

그때, 은혁과 염훈이 다가왔다.

“자자, 다 끝났습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세요.”

은혁이 손을 훠이훠이 내저으며 말했다.

안드로이드 용병대에 포로로 잡힌 플레이어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고, 에르고는 은혁에게 말을 걸었다.

“……설명을 부탁하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40층을 금고로 만들었죠.”

“뭐……?”

그것은 약 1분 전의 일이다.

“별거 아닙니다만 갑자기 결론만 들으면 혼란스러울 테니 단계별로 설명해드리죠. 일단 제 목표는, 이 사람들을 금고 내부에 들여보내는 거였습니다. 그래야 팻말 미션이 클리어되니까요.”

은혁 자신이 금고에 들어가야 클리어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 포로로 잡힌 이들이 금고 속에 들어가야 클리어된다.

“그, 그 점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맞아요! 우린 금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미션 클리어 판정이 뜨게 된 겁니까?”

포로로 잡힌 이들이 소리치자, 은혁이 엄하게 고개를 저었다.

“거, 설명할 겁니다. 끼어들면 더 늦어지니 가만히 계시길.”

그러자 다들 입을 막았다.

“그리고 금고 속에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첫째. 물리적인 방법으로 무식하게 금고를 부순다. 둘째. 테일러에게서 금고의 비밀번호와 열쇠를 몰래 훔치거나 대놓고 뺏는다.”

세부적으로는 다른 방법들이 있을지 몰라도, 크게 나누면 둘 중 하나다.

“첫째 방법은 편리하고 통쾌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전력을 다해도 수십 분은 걸리겠죠. 그것도 테일러의 방해가 없다는 조건하에서만 말입니다.”

그 말에 에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둘째 방법을 택했겠군?”

“그것도 계획 중 하나였지만, 아닙니다. 그건 불가능에 가깝죠.”

“어째서 그런 거요? 첫째 방법이 더 불가능해 보이던데. 다차원 은행 금고는 난공불락이라 할 정도로 두껍고 단단하고, 천장이나 바닥에도 빈틈이 없소만.”

“맞습니다. 딱히 약점이 없었죠. 그래서 그냥 무식하게 약점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은혁은 드릴 랜스로 힘들게 작은 구멍을 뚫고, [돌 생성]과 [돌 생장]으로 금고를 괴롭혔다.

금고의 방어 시스템이 그 돌에만 신경 쓰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시리우스를 불렀다.

“그리고?”

에르고가 재촉했다.

은혁은 단계별로 설명했다.

1. 금고에 생긴 작은 구멍에 [사이오닉 필드]를 걸어서 금고가 다시 재생되는 것을 막는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금고에는 구멍이 생겼지만, 금고가 파괴된 상태는 아니다. 자기 수복 기능이 있기에, [사이오닉 필드]를 해제하는 순간 즉시 금고의 기능을 하므로.

2. 은혁은, 겉과 속을 뒤집는 마법사 퍼플과 불패불굴의 성기사 염훈을 데리고, 원통형 금고의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3. 강은혁은 두 사람의 스킬을 [스킬 트랜스미션]의 힘으로 빌린 뒤, 합친다.

4. 그렇게 퍼플의 [리얼 인버전]과 염훈의 [2초 무적]의 힘을 합친 스킬, [무적 까뒤집기]를 발동시킨다.

5. 금고는 겉과 속이 뒤집힌다. 스킬이 발동된 지점을 기준으로 하며, 반대편에 미리 뚫어 둔 구멍부터 펼쳐지기 시작한다. 금속의 금고를 통째로, 강제로 까뒤집는 격렬한 과정 속에서 내부의 금화는 바깥으로 튕겨 나간다.

6. 스킬이 완료되는 순간 강은혁, 염훈, 퍼플은 금고의 외벽에 갇힌다. 그리고 은혁은 [사이오닉 필드]를 해제하여, 금고의 자동 수복 기능을 되살린다. 그 순간부터 그들이 갇힌 그곳은 금고의 외부가 되고, 나머지 바깥세상 즉, 40층 전체가 금고의 내부가 된다.

7. 미션 클리어 판정까지 확인한 뒤, 금고를 부수고 나온다. 클리어 판정을 확인한 뒤 나오는 게 중요한 이유는, 금고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유지한 채 겉과 속의 위치만 까뒤집는 것임을 미션으로부터 판정받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금 복잡하게 들리는데, 이게 다입니다. 여러분이 들으신 파열음과 금화가 바깥으로 튕겨 나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죠.”

대다수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이해를 잘 못했다.

은혁은 뒤통수를 긁적였는데, 뭔가에 비유를 해서 들려주고 싶어도, 딱히 와닿는 비유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충 이해했소.”

에르고가 말했다.

“금고를 까뒤집어서 내부가 외부로 되고, 외부가 내부로 되었으니, 외부에 있던 바로 이들이 모두 내부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 클리어다~ 이거 아니오?”

“그렇습니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데.”

“어느 부분 말입니까?”

“금고라는 건 금품을,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요. 하지만 그 금고의 내부가 바깥세상 즉, 40층으로 펼쳐지면서 금화가 다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그걸 금고라고 할 수 있겠소?”

“40층은 바깥처럼 보이지만, 그게 바로 금고 내부입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이 궤변으로 보인다는 거요.”

“글쎄요. 그 부분은 관점에 따라 논쟁의 여지가 조금 있겠군요. 하지만 저의 팻말 미션에 참가한 플레이어와 미션 판정 기준에서는 40층을 금고 내부로 명명해도 인정될 여지가 큽니다.”

왜냐하면 40층은 다차원 은행 기준에서는 ‘바깥’이지만, 100층탑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내부’이기 때문이다.

“또한, 금고가 아예 ‘파괴’된 거라면 용병대장님의 지적도 일리가 있습니다. 허나, 저는 금고를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금고는 여전히 존재했다.

겉과 속이 강제로 까뒤집어지긴 했지만, 바닥, 천장, 외벽 모두 존재했다.

“하여, 저는 금고 자체를 파괴하지 않은 상태로, 미션의 목적에 따라, 금고의 보안에 대해 테스트했습니다.”

“허참. 정작 미션 클리어 판정이 나버렸다니…….”

에르고가 말을 더 하지 못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이번 미션 클리어 판정은 관리국의 아이리스가 면밀히 살펴보고 결정을 내리도록 합의를 본 상태.

은혁은, 자신이 무리한 방식으로 미션을 클리어해도, 아이리스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테일러는 아이리스가 주관하는 중재 과정에서, 아이리스의 미움을 샀다.’

깐깐한 태도는 협상 과정에서 필수라고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테일러는 사사건건 조건을 붙이고, 불리하다 싶으면 시간을 대놓고 되감으면서까지 중재를 유리하게 끌어가려 했다.

이는 중재에 참가한 은혁의 관점에서도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거지만, 중재자인 아이리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이기도 하다.

‘둘째. 테일러는 여기 없다.’

즉,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까탈스러운 테일러가 와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면 클리어 판정을 빨리 내려서 끝내는 게 낫다.

그래서 은혁의 미션에 참가한 이들이 순식간에 클리어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제, 이들을 풀어주시죠.”

은혁이 요구했다.

하지만 에르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들은 내 포로다.”

“아니요. 테일러는 도망쳤습니다. 당신의 고용주가 계약을 유지하지 못하고 도망쳤는데, 어째서 이들이 당신의 포로가 되겠습니까?”

“…….”

화를 내려던 에르고는 인정해야 했다.

싸워 봐야 이득은 없고, 테일러를 꺾은 인간과의 싸움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므로.

“……철수한다.”

철컥.

저벅저벅저벅……!

안드로이드 용병들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차원 교차로 방향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은혁은 포로였던 플레이어들에게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버림받은 줄 알았죠?”

“아……?!”

포로였던, 강은혁의 팻말 미션을 클리어한 참가자들이 깨달았다.

“설마 처음부터 우리를 이렇게 사용하려고……?”

“우리를 버린 게 아니라?”

누군가가 묻자 은혁은 피식 웃었다.

‘플랜 A가 테일러에게서 비밀번호와 열쇠를 강탈한 뒤, 이들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면, 플랜 B는 통째로 금고를 까뒤집어서 바깥에 포로로 잡힌 이들로 클리어시키는 것.’

그밖에도 몇 가지 구상이 더 있었지만, 가장 성공률이 높은 작전은 그 2개였고, 플랜 B가 통했을 뿐이다.

물론, 그걸 다 말해줄 필요는 없을 터.

“여러분.”

은혁이 말했다.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느라 정말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제 제가 만든 팻말 미션의 클리어 보상까지 완전히 끝이 났으니, 여러분은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참, 그리고.”

은혁이 혹시나 하는 말투로 덧붙였다.

“혹여 여러분 중에 이번 미션을 통해 재미를 느끼셨다면, 불패불굴 길드에 정식으로 가입해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가입을 원하신다면, 저곳에 있는 길드장 염훈에게 가시길. 그럼.”

은혁은 어디론가 걸어갔고, 남은 수백 명의 플레이어들은 서로를 돌아봤다.

“어, 어쩌지?”

“…….”

그들은 클리어 보상으로 받은 금화를 만지작거렸다.

그 금화는 불패불굴 길드의 자본금 전체였다.

“그나저나 우리가 생각한 보상이랑은 좀 다르지?”

“그러게.”

그들은 금고 안에 직접 들어가서, 자기들 몫의 금화를 따로 챙길 것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은혁은 금고를 까뒤집어서, 바깥에 포로로 잡혀 있던 그들에게 금고 내부를 펼쳐줬다.

그리하여 앉은 채로 합법적인 클리어 보상금을 받게 해줬다.

“……나는 불패불굴 길드에 가입하겠어.”

“괜찮겠냐?”

“음…… 어차피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갈 실력은 아니고, 뭐랄까, 재미는 있었거든.”

“그건 나도 그렇긴 한데.”

“게다가 이 돈을 들고 가서 돌려준다고 하면, 길드장 염훈이 우릴 좋게 봐주지 않을까?”

“그것도 그러네.”

“맞아. 그리고 난 저 강은혁이라는 사람도 꽤 마음에 들어.”

“그, 그러게. 막 악명 높은 인간인 줄 알았는데…….”

“좋아, 그럼 다 같이 가자!”

“그래! 불패불굴 길드로!”

그렇게 미션 참가자 300명은 모두 염훈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불패불굴 길드에 가입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입하도록 유도된 거나 다름없었다.

은혁과 염훈의 팻말 미션에 모두 참가한 자들이기에, 그리고 예상 밖의 클리어 과정을 체험했기에, 두 팻말 미션을 만든 은혁과 염훈에 대한 호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저벅저벅…….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염훈은 지휘하느라 바빴다.

“자자, 빨리! 더 빨리! 쥐 떼 두목도! 일해야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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