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 비밀 도박장으로 끌려오다
은혁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안드로이드 직원 아비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은혁은 쥐 떼 두목을 자리에 남겨 둔 뒤, 염훈에게 [텔레파시]로 말했다.
‘잠깐 5층에 다녀올게. 여기서 부하들 통솔하고 있어 줘.’
‘오케이.’
그리고 은혁은 시리우스를 불렀다.
“자아, 같이 갑시다. 평화의 감옥으로!”
“……그러든가 말든가.”
[정신 묶기]를 당한 그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두 사람은 재빨리 게이트를 타고 5층으로 내려갔다.
* * *
은혁과 시리우스는 5층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 있던 이들은 은혁과 시리우스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저, 저거.”
“도망쳤던 시리우스다……!”
“근데 강은혁이랑 같이 있네?”
“둘이 안 싸우나?”
“이미 둘 다 심하게 싸운 몰골인데?”
수군거리는 소리들을 뒤로한 채, 은혁은 길드 연합국 중앙은행으로 가서, 불패불굴 길드원들이 수거한 금화 총액의 80%에 해당하는 수표를 한 장 끊었다.
“시리우스? 알아서 평화의 감옥으로 들어갈 준비는 됐죠?”
“감옥이건 아니건 상관없지. 이미 [정신 묶기]를 당했으니, 허무함만 가득하다…….”
“그럼 믿고 갑니다?”
“좋을 대로 해라…….”
그리고 다시 게이트를 타고 40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꼼짝 마라!”
사사삭!
행복 길드의 암살팀이 나타났다.
상승 길드의 브라이언을 추적, 암살하도록 명령을 받은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음? 너희들은…… 내 부하 아닌가……?”
시리우스가 졸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암살팀은 듣지도 않고 진형을 짜더니 연합 스킬을 썼다.
“[암살 공간 전송]!!”
은혁과 시리우스가 암살 공간으로 전송됐다.
* * *
암살 공간은 비밀 도박장의 지하실이었다.
회귀 초반에, 은혁은 시리우스의 비밀 도박장 초대를 받은 적 있다.
그때 은혁은 수상쩍다며 안 갔었는데, 만약 레벨이 약했던 시절 갔다가 도박에서 이기기라도 했다면, 이 지하실로 끌려왔을 터.
비밀 도박장의 지하실은 암살팀의 본부이며, [암살 공간 전송] 스킬의 도착점이었다.
‘요상하게 끌려오게 됐군. 실제로 안에 들어온 건 처음인데.’
“강은혁. 이곳은…….”
시리우스가 입을 열어 경고하려 한 순간.
“말 안 해도 압니다.”
스윽…….
은혁은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스킬을 썼다.
“[메탈 워리어 소환]. [메탈 레인저 소환]. [그림자 분신 4.0].”
파앗! 파앗!
스르륵.
은혁의 주변에 수호병들이 득시글거리게 됐다.
“웃…….”
“뭔 스킬 발동이 저렇게 빠르지?”
정작 매복한 이들이 놀라서 주춤거렸다.
지하실에는 암살팀 전원이 있었다.
“흠? 매복 맞나?”
은혁은 야간 시야 렌즈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이미 훤히 다 보였다.
“그렇다! 매복이다!”
암살팀의 팀장, 샤오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소년의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브라이언 암살 임무를 맡았을 정도의 실력자다.
“네가 책임자인가 보군. 암살팀장이었지?”
“우리는 더 이상 행복 길드의 암살팀이 아니다!”
“그럼?”
“우리는 ‘행복 길드를 재건하려는 모임’, 행재모다!”
“우왓, 그게 공식 명칭이냐?”
은혁은 극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보다 행복 길드 아직 안 망했는데? 뭐가 재건이라는 거야? 알아서 숨죽이고 있는 일반 길드원들도 많고, 여기 부길드장도 멀쩡히 있고.”
행복 길드가 완전히 망하지 않도록, 나름 주의해서 박살 낸 은혁으로서는 좀 억울한 이야기였다.
물론, 정말 억울한 건 시리우스였다.
[정신 묶기]를 당해서 욕망과 이상이 많이 감퇴된 상태였으므로.
“……멀쩡히는 아니지 않나. 내 꼴을 보라고.”
시리우스가 멍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암살팀은 슬퍼하기보다는 발끈했다.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시리우스! 그는 더 이상 우리의 부길드장이 아니야!”
샤오류가 외쳤다.
“우리는 부길드장이 정신적인 좀비처럼 변해서 네놈에게 복속당했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다!”
“흠. 소식 빠르네. 40층에 나름 첩자를 심어뒀나 봐?”
샤오류는 은혁의 비아냥을 무시했다.
“하여, 우리는 행동에 나섰다!”
스윽.
그들 모두가 상의를 내려서, 목에 난 상처를 드러내 보였다.
목에는 길게 찢은 상처가 있었는데, 몸 속에 박힌 ‘배신자 처벌 프로토콜’을 스스로 제거한 흔적이었다.
“우리는 행복 길드의 부활을 위해, 기존의 부길드장과 네놈을 모두 죽이고, 새로운 부길드장을 선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언제?”
“어?”
“언제 그랬냐고.”
은혁은 어째서 그랬냐고 묻는 대신, 시간대의 모순에 대해 물었다.
“여기 있는 시리우스가 정신적으로 복속당한 건 맞는데, 그게 불과 몇 시간 전이거든? 그런데 너희 머릿수가 많다는 점, 멍청한 공식 명칭까지 지은 점 등등을 고려할 때, 부길드장 시리우스를 죽이겠다는 계획을 꼭 오래전부터 세운 것처럼 여겨져서 말이다.”
“……부정하진 않겠다. 우리는 꽤 예전부터 조직돼 왔다.”
시리우스는 여러 개의 특수팀을 만들어 뒀고, 그중에 암살팀이 가장 강했다.
시리우스는 특수팀들이 서로를 견제하길 원했지만, 암살팀의 샤오류는 영악했다.
실제로, 몸속에 심겨 있던 배신자 처벌 프로토콜의 발생 장치를 찾아서 제거한 팀은 이들이 유일했다.
이들은 훨씬 이전부터 시리우스를 치겠다고 다짐했었다.
“알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언을 암살하라는, 무리한 임무를 맡겼던 거지.”
“그게 어리석다는 거다! 이 무능한 부길드장이여! 처음부터 내게 강은혁 암살을 맡겼으면 그런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됐을 거 아닌가!”
“결과론적으로 사실이라 반박하기 어렵군.”
애초에 시리우스는 별로 반박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러자 샤오류는 기가 살았다.
“하! 시리우스 부길드장! 마침내 당신의 밑천을 드러내는군! 그게 당신의 한계야! 욕망을 잃어버린 존재가 부길드장일 수는 없지! 그러니 우리의 쿠데타는 매우 정당하다!”
그러자 은혁이 풉, 하고 웃었다.
“정당성 겁나 따지네. 그러고도 행복 길드냐? 쾌락의 총량이 더 크면 저지르는 거지, 뭘 그리 변명하느라 말이 많냐?”
“허나 이 경우의 특수성은……!”
“허이구, 쿠데타가 비정상적인 줄은 아나 봐? 꼭 명분 없는 쿠데타 일으키는 것들이 상황의 특수성을 엄청 따지면서 주변 눈치 보더라.”
“닥쳐라! 네놈이 그 특수한 상황의 원인이잖나!!”
“구체적으로?”
“시리우스 부길드장을 실각시키고 정신까지 억압한 네놈이 사실상 모든 책임의……!”
“허이구, 쿠데타는 너네가 하는데 책임은 왜 나한테 뒤집어씌우냐? 직접 시리우스한테 물어볼까?”
은혁은 시리우스에게, 현 상황의 책임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시리우스는 번아웃 증후군에 빠진 벤처 기업 사장처럼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책임 소재 따질 힘도 없군. 좋을 대로 생각해라. 단, 나를 명분 삼아 이리저리 휘두르진 말았으면 좋겠군.”
“들었냐, 행복 길드의 잔당 놈들아? 너네는 예전부터 저지르고 싶었던 쿠데타를 멋대로 저지르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특히 너, 암살팀장? 시리우스의 명령대로 암살을 저질러 온 네놈이 명분을 따지고 책임을 나와 시리우스에게 전가한다? 그거 좀 웃기지 않냐?”
“큭, 그건……!”
“거봐. 바로 대답 못 하지?”
“거, 말 좀 끊지 마라! 그러나!”
“뭐가 그러나야? 보아하니 내 지적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신 반박하기 좋은 부분부터 떠들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 좋을 대로 떠들기 전에 네 주장의 모순부터 살펴보지 그러냐.”
“뭐, 뭣?!”
“봐라. 너네가 쿠데타를 일으킨 책임이 나랑 시리우스에게 있다고 했지? 그 주장의 모순은 지적했으니 넘어가자. 진짜 문제는 네 이전 주장이다. 너희들, 쿠데타의 목적은 행복 길드의 재건과 부흥이라고 했지? 근데 어쩌냐? 그것도 모순인데.”
“어째서냐!”
“그야 불패불굴 길드의 존재 때문이지. 네가 시리우스와 나를 죽이고, 새로운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이 되면? 불패불굴 길드가 가만히 있겠냐? 불패불굴 길드는 복수할 거다.”
“훗! 그것도 생각해 뒀다! 첫째. 너희의 죽음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고했는데?”
“어?”
“너 이 말 하려고 했지? 여기, 도박장 지하는 외부와 차단된 곳이라, [텔레파시] 계열의 스킬로 도움을 청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라고.”
“그, 그렇다!”
은혁은 피식 웃었다.
‘이미 정의 길드에 신고 들어갔다.’
은혁은 [암살 공간 전송]에 당하기 직전, 광장의 여러 그림자들과 [그림자 결속]을 시전 해 둔 상태.
그리고 소환수들을 만들 때, [그림자 분신 4.0] 하나를, 광장의 그림자로 내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도박장 지하가 차단된 곳이라 분신에게 명령을 내리기 어렵다 해도, 은혁은 이미 [그림자 터널] + [텔레파시]의 퓨전 스킬인 [그림자 통신]을 쓸 수 있었다.
외부와의 차단이나 통신 관련 스킬에 대한 카운터 스킬이다.
은혁은 [그림자 통신]을 활성화시킨 상태에서, 그 분신을 정의 길드 본부로 뛰어가게 했다.
은혁은 그걸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아까 다 생각해뒀다면서. 첫째에 대해 말했는데, 둘째는 뭐냐?”
“둘째! 우린 3군주 측과 연계하여……!”
샤오류가 기다렸다는 듯이 더 말하려는데, 그의 동료들이 얼른 입을 막았다.
그러자 샤오류도 아차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은혁은 히죽 웃었다.
“어휴, 부길드장이고 너네고 마찬가지네. 너네 힘으로 직접 뭘 해내는 대신, 꼭 외부의 강대한 세력이랑 손을 잡으려고 하냐? 행복 길드가 아니라 기둥서방 길드 아니냐?”
“다, 닥쳐라! 닥쳐!!”
“야, 솔직히 너 자신 없지? 쿠데타니 뭐니 떠드는 주제에 왜 당장 우릴 안 죽이는 거냐?”
물론, 은혁의 주변 곳곳에 소환수가 있기 때문이긴 했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너무 미적대고 있었다.
“제길! 네놈이 말이 너무 많아서 이제야 본론에 들어갈 수 있게 됐군! 돈 내놔!!”
“풉! 역시 이 수표가 진짜 목표였나.”
쿠데타니 암살이니 떠들어서 겁주더니 결국, 수표를 뺏는 게 이들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거 주면 우리 내보내 줄 건가?”
“그, 그렇다!”
“싫음.”
“이 개새끼야!!!”
샤오류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소리를 질러댔다.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상태.
콰콰쾅!!!
실제로 천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으악?!”
“끄아!!”
천장이 뚫리고 떨어진 것은 육중한 갑주와 초음속의 돌진력을 지닌 정의 길드의 부길드장.
워잭이었다.
그리고 한 명 더 내려왔다.
휙.
사뿐한 몸놀림으로 내려온 이는 페넬레시아였다.
“흠, 정말이었군.”
워잭은 은혁과 시리우스, 그리고 행복 길드의 잔당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체포를 시작하죠.”
페넬레시아가 말했다.
워잭과 페넬레시아는 연합 스킬을 발동했다.
-히든 이펙트 발동!
“[초고속 포박]!!”
파바바박!
대다수의 암살팀은 순식간에 포박됐다.
하지만 단 한 명, 암살팀장만은 그 범위 밖으로 도망쳤다.
“크윽! 이렇게 된 이상!”
암살팀장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시리우스에게 달려들었다.
“행복 길드 몰락의 책임! 각오하라!”
“각오라.”
시리우스는 허허로운 표정을 지으며 암살팀장에게 마주 달려들었다.
암살팀장은 시리우스의 반격을 각오했으나, 시리우스는 맨손이었다.
푸확!
암살팀장의 단검은 시리우스의 몸에 꽂혔다.
그 순간.
“[확률 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