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 환몽증 (2)
웃기게도, 박병철의 부하들은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 대신 박병철만 악몽에 시달렸다.
그가 늑대인간들의 알파 즉, ‘팩 리더’였기 때문이다.
부하들의 정신은 오직 팩 리더에게만 열려 있고 다른 쪽에는 닫혀 있는 덕분에 환몽증에 거의 면역이다.
단, 팩 리더인 박병철의 정신은 열려 있는 탓에 잠을 잘 못 잤다.
“크아아악!!!”
콰쾅!!!
박병철이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특유의 악바리 정신으로 견뎌왔고, 앞으로도 더 견딜 수 있었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헉! 참으십쇼!”
“그러다 벌점 쌓이면 4등급 감옥으로 끌려갑니다!”
부하들이 간수가 오나 안 오나 걱정하며 돌아보는 순간.
“무슨 일이지?”
피로에 찌든 간수가 물었다.
“발광 중이다! 왜!! 꼽냐!!!”
박병철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건 또 뭐냐!”
“평화 길드의 부길드장, 페넬레시아 님께서 보내신 편지다.”
“뭐?!”
박병철의 눈이 크게 뜨였다.
사면이나 가석방의 폭이 매우 좁은 평화의 감옥이었지만, 평화 길드의 부길드장에게는 특별한 권능이 있었다.
‘평화의 사면.’
봉사 활동을 조건으로, 1년에 몇 명의 죄수를 풀어주는 게 가능했다.
박병철은 허겁지겁 쪽지를 받아 펼쳤다.
-양방향 화상 통신이 실행됩니다!
쪽지에는 통신 관련 스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설렜냐?
화면 반대편의 은혁이 실실 웃으며 물었다.
“네놈……!”
-어허! 네놈이라니. 부길드장님이라고 안 부르냐?
“닥쳐, 이 미친놈아! 지금 여기가 어떤 상황인데……!”
-그러게 어떤 상황인지 미리미리 보고하는 편지를 써서 올렸어야지?
“크윽……!”
-됐고, 여기 옆에 평화 길드의 페넬레시아 부길드장님과 정의 길드의 워잭 부길드장님이 있으니, 보고나 해봐.
박병철은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대부분 아는 내용들이었다.
새로운 정보는 감옥 구역의 1등급 구역부터 5등급 구역까지 환몽증이 퍼졌으며, 6등급까지 퍼지는 것을 간신히 막은 상태라는 것뿐.
“하여간 다 돌았어! 서서히 미쳐가고 있다고!”
-흐음. 너랑 네가 만든 부하들은?
“아직은 멀쩡하지! 사실, 내 덕이 크지.”
그나마 환몽증이 5등급 구역까지만 퍼진 것도, 5등급 구역의 박병철이 많은 이들을 늑대인간으로 감염시켰기 때문이다.
-시리우스를 보낼 거다. 그와 협력해. 자세한 지령은 그를 통해 보낼 테니까.
은혁은 페넬레시아, 워잭과 협의한 내용을 말해줬다.
박병철은 지원군이 온다는 생각에 조금 부담이 덜해졌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표정 관리를 했다.
“흠흠, 거기, 페넬레시아 님이라고 했나?”
-네. 말씀하시길.
“내가 일을 제대로 하면, 가석방이 아니라 완전 사면해 주는 건가?”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째서지?!”
-일단 존댓말 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을 사면해 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존댓말 쓰는 법부터 배우신 다음에 사면을 입에 올리시면 어떨까요?
“…….”
빠드득.
박병철은 늑대의 송곳니가 드러나도록 이를 갈았다.
하지만 아쉬운 건 그쪽이었다.
“일 처리 잘하면, 사면해 줄 겁니까?”
-후훗. 물론입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폭동 사태나 환몽증 사태를 모두 잘 처리하면, 길드연합국 차원에서 훈장까지 수여해 줄 수 있어요.
“음. 그럼 여기 있는 내 부하들도 사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차후에 또.
그리고 교신이 끝났다.
교신을 마치자 박병철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형님.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박병철은 히죽 웃었다.
“일단 머릿수를 더 늘려야 하니. 별점 좀 벌어야겠다. 협조 좀 해라?”
벌점과 달리, 별점은 선행을 하면 얻을 수 있었다.
별점을 많이 얻으면 낮은 등급의 구역으로 이감이 가능했다.
‘6등급, 7등급 구역에도 늑대인간 감염증을 퍼뜨려야겠군.’
이이제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박병철의 계획이 그런 식이었다.
* * *
은혁은 다시 40층으로 돌아갔다.
“왜 이리 오래 걸렸냐?”
염훈이 핀잔을 줘서, 은혁은 간단히 설명했다.
“트윈스 원이라…… 왼쪽 손에 여동생을 달고 있는 이상한 여자 말이지?”
“맞아.”
“그래서 기존에 감옥 속에 심어 둔 박병철과 새로 보내는 시리우스 부길드장을 이용해 맞불을 놓고, 트윈스 원 세력이 약해지길 기다린다?”
“요약 잘하네.”
그리고 은혁은 다차원 은행의 안드로이드 아비프에게 수표를 건네어 일을 마무리했다.
“은행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그러긴 어려울 것 같네요.”
다차원 은행의 불패 신화가 깨졌다.
그 누구도 다차원 은행을 털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여겨졌기에, 다른 차원과 연결된 매우 개방된 입지에서도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은혁이 부순 것이다.
은혁은 히죽 웃었다.
‘그러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5층에 은행을 열었어야지.’
하지만 그 경우에는 막대한 세금을 내야하고, 자금 유통이 어려웠으리라.
더군다나 테일러의 진정한 목적인, 금고 타임 머신 제작 계획을 몰래 진행하기 어려웠을 터.
결국, 테일러는 리스크를 안고 다차원 은행을 운영했고, 은혁에게 패퇴당했다.
“조언을 해도 될까요?”
“뭔가요? 용병을 더 고용하라는 조언만 아니길 바라요.”
안드로이드 용병대는 깽판을 치고 떠났다.
추가 보상금을 기대했건만 보상금은커녕, 선금을 제외하면 잔여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다 못 해 강제로 까뒤집어지면서 튕겨 나온 금화라도 회수하고 싶었지만, 불패불굴 길드원들이 미리 빠르게 다 회수한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화를 내며 테일러를 직접 찾아 나서겠다며 떠났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주니 고맙네.’
물론, 은혁은 테일러의 위치를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그걸 미리 알려줄 의리는 없었다.
어차피 은혁은 테일러를 만나려면 더 높은 층으로 가야 했다.
“그보다, 조언은?”
안드로이드 직원 아비프가 재촉했다.
“예. 다크 마켓의 쥐 떼 두목과 제휴를 하시길 권합니다.”
“제휴……?”
“말씀하신 대로, 현재 다차원 은행은 정상 운영이 어렵죠.”
다차원 은행장인 테일러가 실종된 상태고, 그의 부하들은 상당수가 부상당했다.
부길드장이 실종된 상태면 지휘권은 1군 감독에게 이양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필 1군 감독은 39층의 하드록이다.
평소의 테일러는 그를 1군 감독관 자리에 앉혀뒀음에도 크게 신임하지 않았고, 정작 하드록 자신도 자신의 역량에 한계를 느끼고 그 지휘권을 이양받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렇게 되면 1군 부감독의 차례인데…….
‘인연이라는 게 참, 웃기네.’
자유시장 길드의 1군 부감독은 현재 올리버였다.
‘가브리엘을 섬기는 성직자 올리버.’
은혁과 9층에서 경쟁하고 싸운 적 있는 그 올리버다.
은혁에게 패배당하고, 가브리엘 [강신] 스킬을 써야 했던 그 시점에서는 사실 1군에서 물러난 상태.
하지만 은혁에게 대패한 뒤, 1군 부감독으로 복귀한 상태다.
올리버가 자유시장 길드의 지휘권을 즉각 받지 않은 이유는, 다차원 은행을 박살 낸 이가 은혁이기 때문일 터.
그렇다고 1군 부감독의 직위를 버린 것도 아니므로, 자유시장 길드의 고위직들이 모두 우왕좌왕하는 상태.
“그러니 다크 마켓의 쥐 떼 두목과 연계해서, 병력을 지원받으십시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다차원 마켓’으로 전환하라는 게 은혁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아비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큰일을 저 혼자의 힘으로 결정할 순 없죠.”
“그러니 표면적으로는 다크 마켓에게 점령당하는 형식이어야겠지요.”
“…….”
“쥐 떼 두목도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부자인 데다가, 본래 자유시장 길드 소유였던 건물을 장악한다는 사실에 만족할 테니까요.”
사실, 은혁은 이 순간에도 [텔레파시] 스킬로 쥐 떼 두목과 대화 중이었다.
쥐 떼 두목은 별 이의가 없는 듯했다.
아비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은행장님……. 당분간 돌아오진 않으시겠죠?”
“네. 어쩌면 영원히.”
“그 조언을 받아들일게요.”
그렇게, 다차원 은행 관련 일은 일단락되었다.
은혁과 염훈은 새롭게 불패불굴 길드원이 된 이들을 28.5층의 콩나무 길드 본부로 데리고 갔다.
그곳 입구에서 은혁은 편집증 환자처럼, [뇌파 연동] 스킬로 거짓말쟁이나 배신자가 있는지 확인했고, 별문제가 없었기에 모두 받아들였다.
그리고 김경철에게 말했다.
“김경철. 나의 신뢰하는 제자여.”
“또 무슨 이상한 일을 시키려고 부릅니까?”
“넌 문지기다.”
“뭐요?”
“자랑스러운 불패불굴 길드의 본부를 지키는 문지기란 말이다.”
“하아…….”
“다 이유가 있어서 시키는 거다.”
실제로, 김경철의 초능력은 검술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적의 심리를 간파하는 데에도 이점이 있다.
악의를 숨기고 들어오는 스파이를 감지하는 능력자인 데다가, 자체 전투력도 높으니, 전속 문지기로 삼기 좋다.
* * *
“어이구, 피곤하다.”
“그러게.”
은혁과 염훈은 콩나무 본부의 휴게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염훈은 기진맥진해 있었고, 은혁은 자판기 속에 설치된 테일러의 도청기를 찾아 적당히 처리했다.
“그럼, 이제 어쩌지?”
염훈이 묻자, 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쩌냐니?”
“테일러 말이야. 도망쳐 버렸잖아?”
“뭐, 잡으러 가면 되지.”
“어딨는 줄 알고?”
“그야 더 높은 층 어딘가에 있겠지.”
어차피 오를 층이다.
‘층을 오르는 김에 테일러도 처리하면 된다.’
“쿠울…….”
은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초능력자 계열 직업을 억지로 머릿속에 욱여넣고, 테일러와 싸우느라 크게 지친 탓이다.
* * *
은혁이 꿈속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왜냐하면 꿈 자체를 잘 안 꾸기도 하고, 꿈을 꾸더라도, ‘이거 꿈이네. 빨리 깨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가능한 특이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깰 수가 없었다.
“당신은 환몽증에 감염되었어요. 강은혁 플레이어.”
아름답고 얄미운 목소리.
트윈스 원의 목소리였다.
“흠?”
그곳을 돌아보니 죄수복을 입은 트윈스 원과 손등에 붙어 있는 트윈스 투가 있었다.
“여어, 오랜만입니다.”
“태연한 척하시는군요.”
“음? 당황해야 하는 상황입니까? 아, 이런. 맞네.”
은혁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알몸인 걸 확인했다.
“인벤토리창.”
여분의 옷을 꺼내려 했지만.
“소용없어요. 환몽증은 내가 지배하는 영역이니까.”
인벤토리창은 물론이고, 평소에 은혁이 장비하던 아이템들도 쓸 수 없었다.
“정말 환몽증인가 보네.”
“이제야 믿는군요.”
“믿기지 않아서요. 환몽증에 감염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후후. 바로 어제, 감옥 속에 있는 사람과 교신을 하신 모양이더군요.”
“아? 아아, 박병철하고 교신했었지.”
페넬레시아의 도움으로 했었다.
“그때 나한테 무슨 스킬을 썼나 보군요.”
“그래요. ‘악몽을 전염시키는 혼돈술사’가 바로 내 여동생, 투의 직업이랍니다.”
트윈스 원이 왼손을 우아하게 뻗었다.
왼손 손등에 붙은 트윈스 투가 수줍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