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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20화 (220/434)

220화 : 환몽증 (3)

은혁은 솔직히 감탄했다.

‘트윈스 투의 직업은 회귀자인 나도 정확히는 몰랐거든.’

오히려 트윈스 원의 직업은 정확히 알았다.

트윈스 원의 직업은 ‘지고의 위상을 소환하는 제사장’이었다.

하루에 최대 5회, 지고의 위상, 또는 몰락한 지고의 위상을 소환하는 게 가능한 엄청난 직업.

워잭을 쓰러뜨렸던 피눈물의 성모를 소환한 것도 트윈스 원의 능력이었다.

“흠, 설마 교신 도중에 감염시키다니.”

은혁은 내심 심각하다 생각했다.

‘내가 환몽증에 감염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나와 워잭과 페넬레시아 모두가 전혀 눈치 못 챘다는 게 좀 문제야.’

“후훗. 박병철의 존재는 우리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교신을 나눌 거라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환몽화’를 시켜서 감염 뇌파를 날렸습니다.”

“환몽화……?”

이것도 은혁이 잘 모르는 사실이었다.

‘아, 혹시 그건가?’

은혁은 과거에 박병철이 했던 보고를 떠올렸다.

‘저번에 박병철 면회 갔을 때 보고받기를, 죄수들 중에 자기 몸을 비비 꼬아서 고기 기둥처럼 변했다고 한 적이 있었지. 그거랑 관련이 있는 걸까?’

“워잭, 페넬레시아, 그리고 당신 셋 모두가 환몽증에 감염되길 희망했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되진 않았어요. 교신 도중 워잭과 페넬레시아는 컨디션이 최상이었기에 저항력이 발휘됐거든요.”

“하지만 나만은 테일러와 싸우느라 크게 지친 상태였기에 그대로 감염되었다……라는 거군요.”

“그래요.”

“근데 순순히 다 설명해주시는군요?”

“네. 이제 당신은 내 소유니까요.”

“흠?”

알몸의 은혁은, 설마 그런 쪽이 목적이었느냐는 눈빛으로 트윈스 원을 바라봤다.

“풉. 그런 식의 농담으로 시간을 끌어도 소용 없…….”

할짝…….

“…….”

트윈스 투가 낸 소리였다.

은혁의 알몸을 보며 혀로 입술을 핥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투야? 너 지금 설마?”

“아, 아니에여, 언니…….”

트윈스 투가 꾸물거렸다.

트윈스 원은 자기 여동생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다시 은혁을 바라봤다.

예상대로 은혁은 히죽거리며 웃었다.

“이번에도 여동생 탓으로 돌릴 겁니까? 쌍둥이끼리 뭐 거기서 거기겠죠.”

“……이 상황에서도 이죽거리는군요. 뭐, 상관없어요. 당신은 영원한 악몽 속에서 고통받고, 결국 내게 충성을 맹세하게 될 테니까.”

악몽 속에서는 시간 개념이 뒤틀린다.

실제 시간으로 은혁이 여섯 시간 정도만 자도, 꿈속 공간에서는 60년의 세월을 보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은혁은 하품을 했다.

“저기, 트윈스 투라고 했죠?”

“네……?”

“당신이 환몽증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냥 날 해방시켜 줄 생각 없습니까?”

트윈스 원의 손등에 있는 투를 향해 묻자, 투는 우물쭈물했고, 원은 코웃음을 쳤다.

“풉! 뾰족한 수가 없으니 투를 설득하려는 건가요? 그런 설득이 통할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은혁은 무시하고 투에게 재차 말했다.

“언니가 무서워서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면, 제가 도울 수 있습니다.”

“어, 어떻게요……?”

“그야 당신 언니를 두들겨 패면 그만이죠. 다른 수는 떠오르지 않는군요.”

은혁의 말에, 투가 솔깃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짜악!

“악!”

트윈스 원이 투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트윈스 원은 짜증을 담아서 투의 코를 비틀었다.

“으구국…….”

“투야? 너 혹시 망설인 거니? 응? 이 언니가 맞아도 좋아?”

“아, 아니에여, 언니……!”

“아, 짜증 나.”

우우우웅…….

트윈스 원이 [지고의 위상 강림] 스킬을 발동했다.

-지고의 위상이 곧 강림합니다!

-강림까지 남은 시간 100초…….

-강림까지 남은 시간 99초…….

-강림까지 남은 시간 98초…….

그 순간.

“[광풍돌진권].”

투쾅!!

은혁은 냅다 공격을 갈겼다.

“꺅!”

트윈스 원은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이런 비겁한……!”

“비겁은 무슨. 이런 곳에 끌고 와 놓고. 그것도 알몸으로.”

은혁은 그렇게 외치며 [강기 질주] 스킬을 썼다.

파바박!

맹렬하게 돌진하는 은혁에게, 트윈스 원은 투에게 명령했다.

“얘! 빨리 [환몽 지배] 스킬을 써서 강은혁을 막아!!”

“아, 알았어여, 언니! [환몽 지배]!”

화아악……!

은혁과 트윈스 원 사이에 무시무시한 가시 장벽이 생성됐다.

“[염열파]!!”

화르르르륵!!

가시 장벽이 모조리 타버렸다.

하지만 트윈스 원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투야! 약화시켜!”

“네! [환몽의 권능 : 약화]!!”

화아악……!

-환몽의 디버프가 강은혁 플레이어의 몸을 잠식합니다!

은혁의 모든 능력치가 극단적으로 약해지기 시작했다.

“으윽.”

“호호호! 이것이 환몽의 힘!”

트윈스 원이 웃었다.

하지만.

“쿠에에엑……!”

트윈스 투는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 투야! 왜 그래?”

“가, 갑자기 몸에서 힘이…….”

-환몽의 디버프가 트윈스 투 플레이어의 몸을 잠식합니다!

“크크크큭.”

은혁이 웃었다.

‘도적 스킬 [그림자 결속]과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스킬 [뇌파 연동]을 융합시킨 퓨전 스킬 [스킬 커넥션]의 또 다른 효과.’

[염열파]로 가시 장벽을 불태운 덕분에, 꽤 넓은 그림자가 은혁과 트윈스 원 사이에 드리웠다.

그래서 [스킬 커넥션]을 쓸 수 있었다.

‘얼마 전에도 썼지만, [스킬 커넥션]은 진짜 사기 스킬이네.’

은혁은 [스킬 커넥션]으로 테일러가 시간을 되감아 과거로 가는 것도 공유한 적이 있다.

반대로, 은혁은 자신에게 걸리는 환몽의 디버프를 트윈스 투에게도 걸었다.

즉, 디버프 효과를 동시에 공유한다.

단, 똑같이 디버프를 받아도, 은혁의 스탯은 이미 여러 직업으로 인해 중첩 보너스를 받는다.

반면에 트윈스 투는 제대로 된 몸 하나 없이 트윈스 원의 손등에 기생한 상태.

그러므로 똑같이 디버프를 받아도 트윈스 투의 손해가 더 크다.

“이, 이런 바보 같은!”

트윈스 원이 당황해하며 트윈스 투를 툭툭 쳤지만, 트윈스 투는 기력이 급속도로 쇠해서 까무룩 한 상태.

-환몽이 서서히 무너져 내립니다!

“큿……!”

트윈스 원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제 와서 트윈스 투를 깨울 수도 없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소환 완료니까.’

-지고의 위상, ‘빙결의 거조’가 나타났습니다!

다른 차원의 신화에 등장하는, 빙하기를 초래해서 멸망시키는 새였다.

울부짖음 한 번에 세상의 기온을 떨어뜨리고, 날갯짓 한 번에 냉기 돌풍을 뿜어내는 존재.

너무나 강력한 존재라서 물질계에는 소환할 수 없지만, 환몽 속에서는 소환이 가능했다.

-쿠웨에에에에……!!

빙결의 거조가 울부짖었다.

그것만으로도 은혁의 체온이 몇 도나 떨어졌다.

“큭……!”

그나마 다행인 건, 빙결의 거조가 아직은 날갯짓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

빙결의 거조가 지닌 특유의 냉기는 너무나 강력해서, 정작 강림한 직후에는 날개가 굳어 있다.

날개가 풀리고, 막상 날아오르기 시작하면 은혁으로서도 속수무책이다.

“이제 당신은 끝이에요! 강은혁!”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호호호! 저는 지고의 위상을 소환한 자! [지고의 위상으로부터 보호] 스킬 정도는 갖고 있……!”

“[스킬 커넥션].”

스킬을 발동하려 했지만.

타탓!

트윈스 원이 먼저 피했다.

“허억, 허억. 그림자가 맞닿아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스킬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쳇.”

[스킬 커넥션] 스킬은 아무래도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스킬인지라, 아무리 은혁이라 해도 쫓아가면서 쓰긴 어렵다.

“이제 당신은 죽으면 되는……!”

“[무기 소환 : 세븐 칼리버].”

파앗!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의 스킬을 발동, 꿈 밖으로부터 무기를 소환하려 했다.

-[무기 소환] 스킬을 감지, 긴급히 저격 모드를 발동!

-사용자에게 날아갑니다!

제인의 목소리를 닮은 시스템 메시지가 연속으로 나오더니.

투쾅!

꿈의 차원을 뚫고 은혁에게 세븐 칼리버가 날아오려 했다.

하지만.

-환몽의 장벽에 의해 저지됩니다!

완전히 안으로 들어오진 못하고, 바깥에서 막혔다.

“훗! 이곳은 꿈의 차원! 허가받지 않은 외부 물질은 절대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흠. 환몽이 약해져서 될 줄 알았더니만 안 되나?”

그 순간.

푸확!

어디선가 날아온 낚싯바늘이 은혁의 손등에 꽂혔다.

“아야야, 역시 아프네.”

“아니, 어떻게?!”

트윈스 원은 경악했지만, 낚싯바늘을 보내는 건 이전에 브라이언과 싸울 때, 고리블린의 차원에서도 통했다.

“[염력 부여].”

우우우우우웅……!

은혁은 자기 손등에 박힌 낚싯바늘에 힘을 부여했고, 그 순간.

투쾅!!

환몽의 벽을 뚫고 차원의 낚싯대가 통째로 끌려왔다.

“읏차!”

타악!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를 잡았다.

“말도 안 돼! 정말로?!”

“뭐, 평소에 세븐 칼리버에 사용자 인식 시스템을 박아두기도 했고……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니까 자기 무기 소환하는 건 쉽죠.”

“큭…….”

“보아하니 테일러랑 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 같군요.”

“같은 실수……?”

“내가 지닌 직업 말입니다. 보아하니 환몽 속으로 끌어들이면 아이템도 못 쓰고, [환몽 디버프]를 걸면 여러 직업을 지닌 것도 무효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판단하에 날 끌고 온 거죠?”

“…….”

“제가 초능력 계열 스킬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면 좀 어려웠겠지만.”

은혁은 세븐 칼리버를 제2형태, 청염백광태도로 바꿨다.

화르르륵!

그것만으로도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은혁은 청염백광태도로 빙결의 거조를 똑바로 겨눴다.

-쿠르르르……!

빙결의 거조가 몸을 움츠렸다.

트윈스 원이 다급하게 외쳤다.

“빙결의 거조여! 계약을 이행하시오! 저 알몸 변태 강은혁을 죽이란 말입니다!”

“누구더러 변태라고 하는 겁니까? 쯧.”

은혁은 혀를 차며 빙결의 거조를 노려봤다.

“빙결의 거조여. 이 검에서 뭘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쿠르르……!

빙결의 거조가 망설이는 이유는 천사 계열의 성스러운 존재와 싸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천사 중에서도 특히 싸움을 좋아하는 이가 미카엘이었으니, 그와 싸운 적도 있다.

성스러운 빛과 화염을 내뿜는 미카엘의 힘은, 빙결의 거조로서도 영 불편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냥 떠날 수도 없었다.

트윈스 원의 소환 계약에 묶여 있으므로.

“1분만 기다려라. 알았냐? 날갯짓 한 번만 해도 사생결단이다.”

-…….

빙결의 거조는 알아들은 것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이, 이 무슨……!”

트윈스 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빙결의 거조가 말을 들었다는 건, 은혁의 현재 전투력이 빙결의 거조를 망설이게 할 정도라는 뜻.

‘강은혁이 그 정도로 강해졌다고?!’

은혁의 빠른 성장성에 대해서는 평화의 감옥 안에서도 들어왔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침착해. 여긴 환몽 속이야.’

아직은 트윈스 원 쪽이 훨씬 유리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지고의 위상 강림]! 연속 발동!”

파앗!

파앗!

파앗!

파앗!

트윈스 원은 하루에 최대 5체의 지고의 위상을 소환할 수 있었다.

빙결의 거조를 이미 소환했기에, 남은 4종의 지고의 위상을 모조리 소환하기로 했다.

-지고의 위상이 곧 강림합니다!

-지고의 위상이 곧 강림합니다!

-지고의 위상이 곧 강림합니다!

-지고의 위상이 곧 강림합니다!

단, 즉각 소환은 아니고 약 100초 뒤에 강림된다.

은혁은 목에서 뚜둑 소리를 낸 뒤 물었다.

“트윈스 원 부길드장. 설마 내 앞에서 100초를 버틸 생각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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