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 평화의 감옥 제압 (3)
투확!!
회전하는 은혁을 중심으로, 염력의 검기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큿!”
“아악!!”
묵검제야 공격이 실패로 돌아갈 뿐이었지만, 지그하르트의 상황은 심각했다.
‘등 뒤’를 잡아야 하는데, 하필 염력을 방사하는 회전 공격을 가했으니 스킬 실패의 페널티가 더 컸다.
촤악!
지그하르트는 듀얼 체인 소드의 이중 톱날에 찢긴 채 바닥을 굴러야 했다.
물론, 은혁은 그냥 구르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그림자 지배] + [돌 부수기]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그림자 무덤]!!”
쩌적!
스륵……!!
지그하르트는 더 구르기는커녕,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갇혀 버렸다.
“뭣……!”
묵검제는 은혁의 스킬 활용도와 응용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실, 은혁이 [그림자 무덤]을 발동하는 순간, 묵검제 또한 [그림자 지배]의 영향력을 발동해서 훼방을 놓았다면 스킬은 실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묵검제는 깊은 감옥 속에 있는 동안, 적의 다양한 공격 기법에 대처하는 능력이 많이 뒤처졌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랭킹 20위권이냐? 아무리 죄수의 목걸이를 차고, 아무런 아이템 하나 없는 맨손인 걸 감안해도 약한데?”
은혁이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길드연합국 랭킹은 시스템이 판정하는데, 아마도 평화의 감옥에 들어오기 이전의 악명에 상당한 가산점이 부과되었기 때문이리라.
광범위하게 끼친 피해 때문에, 여전히 피해자들이 괴로워하고 있었으므로.
“네놈에게 무시당할 정도라면! 묵검제로 이름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건 뭔 쓸데없는 자존심이냐.”
“죽어라! [무극묵검칠연격]!!!”
일곱 자루의 그림자 칼날이 허공에 생성되고, 묵검제는 그것들을 번갈아 쥐면서 연속 공격을 펼쳤지만.
“해제.”
은혁은 [그림자 무덤]으로 가둔 지그하르트를 갑자기 해제해 버렸다.
데굴데굴 구르던 상태의 지그하르트가 갑자기 해방된 순간.
“앗?!”
“어억!”
푸확! 촤악!
콰드득!
잔혹한 연속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죽어 버렸다.
물론, 묵검제도 냉혹한 죄수였기에 겨우 그런 걸로 정신이 위축되진 않았다.
하지만 짧은 경직만은 어쩔 수 없었는데, 은혁은 그동안 바닥에 떨어진 돌에 [원기 부여]와 [화염 지배] 스킬을 쓰고 있었다.
“[라바 블래스트]!!”
투쾅!!
소형차 크기로 뭉쳐진 끈적한 용암 덩어리 서너 개가 묵검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파앗!
묵검제는 [그림자 도약]으로 회피했지만.
“대충 이쯤일 줄 알았다.”
위치를 예상한 은혁이 냅다 달려들며 [블레이징 러시]를 먹였다.
콰콰콰쾅!!
화르르르르르륵!!
“……!!”
맞는 순간 벽에 날아가 박히고, 그대로 타서 죽었다.
“끝.”
은혁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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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충 이 정도인가.”
은혁은 셋 다 박살 낸 뒤 아벨을 돌아봤다.
“하여간 결과는 이런데. 할 말은?”
“……!”
아벨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말이 안 나온다는 듯이 입을 뻐끔거렸다.
은혁이 잠시 기다려준 순간.
“아니! 뭔 짓을 한 겁니까!”
“정당방위.”
“정당방위라뇨! 당신을 기습 공격한 건 그린 주스 한 사람이잖습니까!”
“애초에 이들의 신분은 탈옥 폭동을 일으킨 자들이지. 그들 중 하나가 기습 공격을 강행한 경우, 나머지도 처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계약 대결을 하기로! 그, 규칙까지 다 정했으면서!”
“그건 네 불명예지. 규칙 다시 살펴봐라. 3 대 3으로, 한 명씩 지명해서 싸우게 하기로 해놓고선, 멋대로 우리 중 한 명을 기습했잖냐. 그럼 계약 대결이 파탄 나는 거지.”
“다, 당신. 일부러 이 상황을 예상하고 일부러 계약 조건을 빡빡하게……!”
은혁은 히죽 웃었다.
‘이래서 [계약 대결]이 위험한 거야.’
[계약 대결]은 계약 조건을 만든 직후 해야 한다.
지금처럼 ‘어느 지점으로 간 다음 3 대 3으로 싸우자’라는 식으로 하는 경우, 이동 도중 또는 도착한 직후에 돌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그 돌발 사태의 귀책사유를 떠넘기는 게 가능하다.
은혁은 회귀 전 지식으로 그린 주스의 성격을 알았고, 일부러 그런 계약을 만든 것이다.
‘뭐, 이 세 놈은 반드시 죽였어야 했으니까.’
제2차 길드 대전이 발발하면, 감옥이 파괴되고 죄수들이 모두 뛰쳐나온다.
묵검제, 지그하르트, 그린 주스는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다.
‘이유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죽여야 할 놈들이었어. 겸사겸사 잘 죽였군.’
은혁은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마저 말했다.
“뭐, 귀책사유가 너에게 있다고 해서, 딱히 뭘 어떻게 배상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지. 하지만…… 우선 사과는 들어야겠는데.”
만약 시리우스가 그린 주스의 기습을 막아내지 않았다면, 가만히 있던 박병철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는 수 없군요. 미안합니다. 3 대 3 대결을 먼저 제안했으면서, 정작 그 대결이 치러지기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사과는 받아들이지. 그럼 가자고.”
은혁은 추가로 뭘 요구하는 대신, 바로 트윈스 원에게 가자고 했다.
사과를 빌미로 더 뭔가를 우려먹을 것이라고 걱정했던 아벨은 내심 안도했다.
“이쪽입니다.”
트윈스 원과 투의 개인실을 향해 안내하려는 순간.
쾅!!
벽을 부수고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그것도, 무척 기이한 포즈로 걸어 나왔다.
“이런 시발?!”
“저, 저게 도대체 뭐지……!”
대범한 박병철과 허무주의에 빠진 시리우스마저도 경악할 사태였다.
‘꼭 페이스 허거에게 얼굴을 붙잡힌 사람 같군.’
벽을 부수고 나온 여자는 왼손을 활짝 펼쳐, 자신의 얼굴을 꽉 움켜쥔 상태였다.
문제는 손가락이었다.
소지와 엄지는 뺨을, 검지와 약지는 눈알을 파고들었고, 중지는 이마를 뚫고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손등에는 얼굴이 있었다.
“어쩔 수 없었쩌요, 여러분…….”
살짝 어눌한 목소리에는 해방감이 가득했다.
“쩌는! 환몽구원교의 새로운 교주이며, 구원 길드의 새로운 부길드장 트윈스 투입니따!”
그걸 본 아벨은 벽에 손을 짚고 토하기 시작했다.
은혁만이 히죽 웃었다.
‘트윈스 투가, 트윈스 원의 얼굴과 뇌를 뺏었군.’
* * *
그로테스크한 첫인상과 달리, 트윈스 투와의 대화는 썩 온건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트윈스 투는 자신이 어째서, 어떻게 트윈스 원의 몸을 뺏었는지 설명했다.
“어쩔 수가 없었쪄요…….”
처음에 트윈스 투는, 자기 언니인 트윈스 원의 정신을 회복시키려 했었다.
뇌 자체를 단기 리셋시키는 기법이었다.
“오류로 뻗은 컴퓨터를 리부트시켜서 복구하려고 한 거군요?”
은혁이 묻자 트윈스 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등 부위에 트윈스 투의 얼굴이 달린 손을, 트윈스 원의 얼굴에 파묻은 상태로 끄덕이는 것이라 무척 그로테스크해 보였다.
“지고의 위상들이 남긴 지식과 제가 쓸 수 있는 [환몽 지배] 스킬로, 저는 언니의 뇌에 직접 간섭하기로 했어요.”
인간을 괴롭히길 좋아하는 지고의 위상들이니만큼 뇌 자체를 건드려서 광기에 빠트리거나, 혹은 그 반대로 만드는 방법도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트윈스 투는 자신의 손(?)을 이용해서 트윈스 원의 뇌에 직접 간섭했다.
차라리 트윈스 원이 계속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다면, 트윈스 투는 트윈스 원의 정신을 회복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윈스 원의 정신이 절반쯤 정상화되었을 때, 트윈스 원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안 돼! 내 몸을 뺏으려는 거지! 절대 안 돼! 안 돼!!’
‘오해예영, 언니! 저는 언니를 도와쭈려꼬…….’
‘닥쳐! 이 더러운 것! 기생충 년! 올마스크 길드장님만 아니었어도 너 따위는 진작 잘라 버렸을 거야!’
트윈스 원은 혐오감 속에서 본심을 드러냈다.
그렇게 트윈스 원이 발광할 때마다 뇌에 손상이 가해졌고…….
“이대로 두면 언니와 나 둘 다 죽는다, 차라리 내까 언니의 몸을 장악해야겠따…… 그렇게 생각했쪄요……. 그리고, 그리고…….”
트윈스 투가 솔직하게 고백했다.
“솔찌키, 저도 화가 많이 났었어요오……. 언니가 이렇게까지 날 무시하는데, 한 번 통째로 뺏어서 내가 조종해볼까, 하고…….”
슬프면서도 소름 끼치는 고백이었다.
“그럼 트윈스 원은 죽은 겁니까?”
은혁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트윈스 원의 얼굴을 덮은 손, 트윈스 투가 머리와 함께 손등을 가로로 저었다.
“두뇌 기능은 절반 정도 살아 있고, 그 절반도 현재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예요. 달콤한 환몽증에 빠져서…….”
“뭐, 안 죽였으면 됐습니다.”
은혁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트윈스 원이 어떤 꼴이 되건, 죽지만 않았다면 상관없다.
“일단 당신이 부길드장이긴 한 거죠?”
“네…….”
평소에도 51 대 49 정도의 지분으로 부길드장 지위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 경우에는 트윈스 투가 9, 무의식 상태에 빠진 트윈스 원이 1 정도이리라.
은혁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이 되었다.
“제 목표가 7대 길드 장악임은 아실 겁니다. 저를 지지해 주시겠습니까?”
만약 트윈스 투가 지지하지 않는다면, 부길드장을 꺾고 길드장 도전권을 얻어야 한다……만, 꼭 그럴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구원 길드장 올마스크에 대한 도전권은 이미 얻었거든.’
그것도 4인 파티를 모두 모아서, 아무 때나 도전해도 된다고, 구원 길드장이 직접 승인했다.
기분 좋은 예외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트윈스 투로부터 지지해 줄 것을 바라는 이유는, 나중에 뒤통수 맞는 일을 예방하고, 제2차 길드 대전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제 와서 트윈스 투가 날 공격해서 얻을 이득도 없고.’
은혁이 그런 고려 하에, 진지한 눈빛으로 요청하니, 트윈스 투는 평소처럼 꾸물거리는 말투로 답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조건부로 지지할께여…….”
“그 조건이란?”
“구원자를 찾아주세요.”
“구원자라.”
구원 길드의 구원자에 대한 개념은 좀 복잡하다.
100층탑으로부터 모두를 구원하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줄 위대한 존재.
그것이 구원자다.
구원 길드원들 중에는, 구원자는 오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고 믿는 자들이 다수이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었다.
“언니는 너무 오래 구원자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미쳐 버렸어요.”
트윈스 투는 흑흑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트윈스 원의 오른손이 들어 올려지더니 트윈스 투가 있는 왼손 손등을 살살 쓰다듬어줬다.
그걸 본 은혁이 놀라서 물었다.
“앗! 지금 오른손이! 트윈스 원 님이 정신을 회복한 겁니까?!”
“아, 아뇨. 이건 그냥 제가 직접 조종해서 한 거예여…….”
“……헷갈리게 하시긴.”
은혁은 말 나온 김에 한 가지 묻기로 했다.
“도대체 당신은 어쩌다가 손등에 기생하게 된 겁니까?”
무례한 질문이지만, 상황도 상황이고 하니 그냥 대놓고 묻기로 했다.
“그건…….”
* * *
먼 과거의 어느 날.
트윈스 투의 목이 잘린 장소는 39층인 어둠의 동굴이다.
구원 길드가 생겨나기 이전, 트윈스 원과 투는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고, 그때는 서로 힘을 합쳐 100층탑을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의 동굴에서 기이한 언령의 힘을 지닌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 트윈스 원을 조종했다.
그리고 조종당한 트윈스 원은, 자신을 걱정하는 자매, 트윈스 투의 목을 무기로 쳐서 날리게 됐다.
조종당하던 트윈스 원이었지만, 그 충격은 엄청났다.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