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 평화의 감옥 제압 (4)
조종이 풀린 트윈스 원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미칠 것 같았다.
‘오, 안 돼. 안 돼 안 돼……!’
푸슛, 푸슛.
목이 잘린 트윈스 투의 몸통에서 피가 솟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절망과 죄책감을 느끼며 트윈스 원이 외쳤다.
‘누가! 아무나 좀 도와주세요!’
그때였다.
스르륵.
봉인된 동대문 안쪽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올마스크였다.
‘얼래? 부상자야?’
올마스크는 기묘한 언령의 힘을 지닌 몰락한 지고의 위상을 파괴하고 오는 길이었다.
트윈스 원의 조종이 풀린 것도 그 덕분이다.
단, 완전한 파괴는 아니어서, 동대문 안쪽에는 그 목소리의 메아리만 남게 되지만 그것은 훗날의 일이다.
올마스크는 절망한 트윈스 원과 목이 잘린 투를 발견하고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도대체 뭔 일이래?’
트윈스 원은 울면서 설명했다.
올마스크는 혀를 찼다.
‘어휴, 이놈의 운명치 때문에 반만 쳐 죽이고 가둬야 하는 내 신세가 레전드……라고 장탄식을 할 시간도 없구만.’
그리고 올마스크는 치료용 가면으로 바꿔 쓰더니, 트윈스 원에게 제안했다.
‘이미 목이 잘린 네 여동생은 살리기 힘들다. 하지만 네가 가진 인연의 힘을 이용해서, 신체에 이식하는 거라면 가능한데. 어떻게 할래?’
고민하던 트윈스 원.
그러자 올마스크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네가 저지른 잘못으로 네 여동생이 죽게 생겼는데 망설이는 건가. 재밌군.’
한참 웃던 올마스크는, 트윈스 투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빠직!
그러고는 기묘한 스킬의 힘으로 압착시켰다.
‘손 줘봐.’
파앗!
납작해진 트윈스 투의 머리를, 트윈스 원의 왼손 손등에 강제로 이식시켰다.
그러자 두 사람의 자매로서의 인연과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공포와 불안감이 한데 합쳐져, 마력이 몇 배로 급상승했다.
39층에 단둘이 올 정도로 이미 강했던 자매들은 말 그대로 7대 길드의 부길드장급으로 강해졌다.
그걸 본 올마스크는 흥미로워했다.
‘만약 내가 길드를 창설하게 되면, 너, 정확히는 너희들이 내 부길드장이 되면 좋겠다. 왜냐고? 죄업으로 엮여서 영원히 붙어서 살아야 하는 너희들에게는 구원이 필요할 테니까. 하하하하!!’
그리고 올마스크는 떠났고, 머지않아 구원 길드가 창설된다.
두 사람은 이름을 트윈스 원과 트윈스 투로 바꾸고, 정말로 구원 길드의 부길드장이 된다.
* * *
“저와 언니가 하나로 합쳐진 이후로, 우리는 더 강해졌어여……. 마치 두 직업이 중첩되면서 중첩 보너스가 생긴 것쩌럼…….”
트윈스 투의 말을 은혁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언니는 절 혐오하게 됐어요.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참으로 흉측한…….”
트윈스 투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시각적으로도 기괴하지만, 손등에 달린 투의 모습은 원의 나약함과 망설임을 상징한다.
“그리고 언니는 예언자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죠. 첫째는 저와 언니가 하나로 합쳐지는 게 운명으로 정해진 일인지 알고 싶기 때문에.”
“둘째는?”
“둘째는 길드연합국을 정복하기 위해서. 길드연합국을 정복하면, 그 뒤로 본격적으로 환몽의 세계를 만들 예정이었던 거죠.”
“환몽의 세계?”
“그게 언니의 구원관이에요.”
트윈스 투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투가 한숨을 내쉴 때, 본체인 원의 몸도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길드연합국의 모든 존재를 환몽 속에 빠뜨리는 것. 그리하여 원하는 꿈을 꾸게 하는 것. 그것이 구원.”
“흐음.”
은혁은 잠시 그 목적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때, 조용히 있던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의외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군.”
시리우스는 사실상 마약이나 다름없는 행복 포션을 잔뜩 만든 존재다.
은혁이 미심쩍은 눈으로 돌아봤다.
“과거에 저지를 잘못에 대해 변호할 생각입니까?”
“아니.”
“그럼요?”
“내가 과거에 하려 한 일은 애초에 잘못조차 아니다.”
의욕을 잃고 있던 시리우스가 모처럼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은혁은 일단 변호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나는 행복 포션으로 모두를 중독시키고, 모조리 지배하려 했다.”
“그게 잘못이 아니란 말입니까?”
“끝까지 들어봐라.”
시리우스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잠시 고민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강은혁. 네 말이 맞군. 일단 변명이긴 하다. 왜냐하면 실패했으니까.”
“그래도 해보시죠.”
“행복 포션으로 모두를 중독시키려 한 게 범죄인 것은, 역설적이지만 모두를 중독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마약이 사회에서 범죄로 인정되는 이유는, 모두가 중독된 게 아니라, 일부만 중독됐기 때문이야.”
“하?”
“모두가 미친 세상에서는 미친 게 미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보통 손이 3개인 사람을 보면 변종이라 하지. 하지만 모든 인간의 손이 3개인 세계 속이라면?”
“…….”
“후후. 더 말할 것도 없겠지. 그래, 손이 2개인 쪽이 오히려 비정상 취급 당한다.”
그러자 박병철이 끼어들었다.
“뭔 개소리야? 그럼 다 행복 포션에 중독되면 누가 일하는데? 다 굶어 죽자고? 아편 전쟁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첫째. 그건 100층탑 바깥의 이야기다. 100층탑 내부와는 다르지. 그리고 둘째. 나는 행복 포션을 마신 적 없다. 그리고 돈만 주면 관리해 줄 존재가 있지.”
그러자 은혁이 말을 받았다.
“다크 마켓의 쥐 떼들 말이군요.”
“그렇다. 그들은 돈만 주면 뭐든 하고, 엄밀히 말해 플레이어와 작은 설치류 동물의 중간쯤 되는 존재지.”
실제로 다크 마켓의 입장에서 시리우스는 원수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들은 시리우스에게서 돈을 받고 탈출을 도왔다.
“즉, 길드연합국 내의 모든 플레이어를 행복 포션에 중독시키고 다크 마켓의 쥐 떼들에게 모든 걸 맡긴다면, 적어도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 이것이, 내 계획 중 하나였다.”
시리우스는 속이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박병철은 미친놈이라며 욕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박병철이 비난하건 말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듣고 보니 저희 언니의 계획도 비씃한 발상이네여…….”
트윈스 투가 말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은혁도 인정했다.
행복 포션에 모두를 중독시키느냐, 환몽증에 모두를 감염시키느냐의 차이일 뿐…….
비슷한 지점이 많았다.
‘부길드장들이란, 쯧쯧.’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어이가 없다면 어이가 없다.
‘인간이 비정상인 걸까? 아니면 100층탑이 인간을 비정상으로 인도하는 걸까?’
아마 둘 다라고 봐야 할 것이다.
관리국이 100층탑을 그토록 교묘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어쩌면, 내 최종적인 적들은 성좌나 지고의 위상, 드래곤 컬트가 아니라 관리국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에 대해 생각하자면 끝이 없어지므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구원자를 요구하셨지만,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만약 그런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는 꼭 알려드리겠다……라는 것까지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여. 일딴은 그껄로 만족할께여.”
손등에 붙은 트윈스 투는, 여전히 본체의 얼굴에 기생한 채로 손과 함께 끄덕였다.
그렇게, 평화의 감옥 내부에서 할 일은 일단락되었다.
* * *
“이봐. 자네 들었나?”
“또 뭔 소문이야?”
“평화의 감옥에서 엄청난 폭동 사태가 일어났었다던데?”
“평화의 감옥이 뭔데?”
“…….”
길드연합국은 의외로 평화로웠다.
놀랍게도, 꽤 많은 플레이어들이 평화의 감옥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 20층 이상 진출한 플레이어들 정도만이, 좋든 싫든 길드 단위의 문제에 휘말릴 수밖에 없기에 평화의 감옥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플레이어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몬스터와의 전투가 일상이 된 플레이어들의 감수성은, ‘감옥에 가는 거? 뭐, 죽는 것보단 낫겠지. 사실 정말 감옥에 가야 하는 거물들은 거의 안 들어가잖아?’ 하는 수준이었고, 관심의 대부분은 보다 높은 층을 향하고 있다.
게다가 평화의 감옥은 기자들의 취재가 극도로 제한된 곳이다.
그러다 보니 평화의 감옥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길드연합국의 일반 플레이어들의 관심은, 전반적으로 심심했다.
덕분에 워잭과 페넬레시아가 일을 마무리하기 편했다.
두 사람은 평화 길드 본부 근처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이번에도 강은혁 부길드장 덕분에 일이 빨리 마무리되었군.”
“정말 아찔한 일이었어요.”
워잭과 페넬레시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화의 감옥에서 일어난 폭동이 성공해서 대규모 폭동으로 비화됐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환몽증 격리에 실패해서 빠르게 확산됐다면?
위의 둘 중 한 가지 일만 벌어졌어도 길드연합국의 치안은 극도로 나빠졌을 터.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두 부길드장만이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안도한 것이다.
“이제는 그를 인정해야겠지…….”
“네. 성격은 마음에 안 들지만요.”
두 사람은, 어느새 강은혁을 올려다보게 되었는지 반추해 보았다.
‘돌이켜 보면, 정말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정교하군.’
워잭은 최근 들어, ‘강은혁 예언자 가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그 순간.
“박병철에 대한 사면을 요청합니다.”
불쑥 목소리가 들려와서 돌아보니 은혁이 있었다.
“흠흠, 언제부터 있었소?”
“그야 물론, ‘이번에도 강은혁 부길드장 덕분에 일이 빨리 마무리되었군.’ 하는 부분부터죠.”
지금의 은혁은 굳이 [은신] 스킬을 쓰지 않아도, [그림자 지배] 효율이 워낙 높아져서 조용히 한켠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지우는 게 가능했다.
무려, 두 명의 부길드장들도 한참 만에 눈치챌 정도로.
“박병철이 다 해결한 건 아니지만, 환몽증이 퍼져 나가는 걸 막는 역할은 잘 해줬죠. 박병철 없이 처음부터 일 처리를 하려고 했으면, 대규모 진압군을 투입해야 했을 겁니다.”
정의 길드와 평화 길드의 연합군을 진압군으로 투입했어도 어떻게든 트윈스 원을 저지하는 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 자체가 길드연합국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일이며, 최악의 경우 제2차 길드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뭐,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제가 환몽 속에서 트윈스 원을 두들겨 팬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군요. 허허허.”
은혁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 좋게 웃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부길드장 한 명의 정신을 박살 내고 PTSD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약속은 지켜질 거예요, 강은혁 부길드장.”
페넬레시아가 말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아, 시리우스는 당분간 평화의 감옥 속에 남겠다더군요.”
시리우스는, 트윈스 투와 대화를 나누고, 트윈스 원의 진짜 목적을 들었다.
그 이후로 트윈스 원과 자신을 심정적으로 동일시하고 있었다.
부길드장으로서 실패했다는 점, 정신이 상당 부분 파괴되어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점 등등…….
그리하여 시리우스는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 자격을 지닌 채로 감옥에 머무르기로 한 것이다.
그는 그 결정을 내린 직후 은혁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맙다, 강은혁. 네놈이 내 정신을 망가뜨려서 모든 의욕을 없애 준 덕분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리우스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