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 몬스터 룸 연속 공략 (2)
사실 은혁이 43층에서 죽인 건 일반 거미라기보다는 거미 인간들로 구성된 거미 신도들이었다.
하지만 거미의 신이 잠든 곳에서 저지른 학살이었기에 엄청난 도발이었다.
“캬아아아아!!”
-거미 여왕이 [광란] 상태에 빠집니다!
-거미 여왕이 [거대화] 스킬을 씁니다!
-거미 여왕이 [돌진] 스킬을 씁니다!
‘좋아. 예상대로다.’
“[메탈 바이크 소환].”
파앗!
은혁이 평소에는 쓰지 않는 메탈 바이크를 소환했다.
은혁은 탑승해서 자동 운행 버튼을 누른 뒤 선즈 리볼버를 꺼냈다.
“가자!”
“부웅!”
은혁은 도주하면서 조준했다.
“사격과 동시에 총탄을 [거대화]!”
파앗!
투쾅! 투쾅!
투쾅! 투쾅!
청염백광단검의 칼날을 연상시키는, 폭발하는 칼날 크기의 화염탄이 발사됐다.
발사된 직후, 단검 크기의 화염탄은 투창 크기로 커졌고.
퍼버버벅!
명중탄 하나하나가 거미 여왕의 몸에 깊이 박혔다.
그 직후.
콰쾅!!
콰콰쾅!!
화염탄이 모조리 폭발했다.
“쿠오오오오……!!”
거미 여왕의 다리에 박힌 화염탄은 통째로 다리를 잘라 버렸고, 몸통에 박힌 화염탄은 거미 여왕의 내장을 터뜨리고 태웠다.
쿠쿠쿵……!
달려들던 거미 여왕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엥?”
-거미 여왕을 처치하셨습니다!
“……이거 사기네.”
은혁은 선즈 리볼버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격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쏴도 트롤 대여섯 마리는 가볍게 죽일 정도의 위력이다.
그걸 궁술사 직업을 지닌 은혁이, 화염탄을 [거대화]시키면서 쏘아댔으니 위력이 급증할 수밖에.
‘소환수랑 함정은 괜히 깔아뒀군.’
-궁술사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현재 궁술사 숙련도 : 10%+.
궁술사 숙련도만 증가하고, 다른 직업 숙련도는 오르지도 않았다.
실제 전투에 별 도움이 안 된 탓이기도 하고, 이미 숙련도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축하드립니다! 난이도 2의 몬스터 룸, 거미 여왕의 정원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5,500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최단 시간으로 거미 여왕을 처치하는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거미 여왕 사냥꾼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지고의 위상, 플레인 스파이더가 선물을 보내옵니다!
펑!
작은 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플레인 스파이더라.’
플레인 스파이더는 거미의 신은 아니다.
차원과 차원 사이를 차원의 거미줄로 넘나드는 존재.
성좌가 아니면서도 성좌처럼 플레이어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선물을 보내온다.
정작 거미의 신은 잠들어 있는데, 거미 형상의 지고의 위상은 다차원 성계를 자유로이 돌아다니기에 둘이 무슨 관계인가 의심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존재가 갑자기 내게 보상을 준다고?’
거미 여왕을 처치한 행위에 대해 흥미를 보였다는 뜻.
찰칵!
선물 상자를 여는 순간 아이템이 나타났다.
-차원의 거미줄 :
5성급 아이템.
플레인 스파이더가 직접 자아낸 거미줄.
물질계에서는 그 길이가 최대 10km까지 늘어나며, 물질계가 아닌 곳에서는 그 차원의 성질과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탄성과 점성 또한 소유자가 조작 가능.
단, 강력한 정신력이 없다면, 오히려 거미줄에 휘감겨 죽고 만다.
초능력자 전용 아이템.
“호오.”
차원의 거미줄은 전투용으로 쓰긴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일단 갖고 있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뭐야, 벌써 이긴 거냐.”
[신성한 날개]를 발동한 염훈이 날아와서는 허무하다는 듯이 말했다.
“생각보다 쉽네. 역시 별 2개까진 쉬운가 봐.”
-본 몬스터 룸은 완전히 클리어되었습니다.
-대기실로 돌아가시겠습니까?
-YES/NO
이번에도 은혁은 NO를 골랐다.
그러더니 거미 여왕의 사체로 가서 [도축] 스킬을 발동, 냅다 거미 여왕의 마정석을 획득했다.
“요즘 [도축] 스킬을 쓸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이런 좋은 마정석을 얻어도 크게 기쁘지가 않네. 감흥이 많이 무뎌졌어.”
“배부른 소리 하긴. 필요 없으면 나 주든가.”
“……그건 안 됨.”
은혁은 얼른 인벤토리창에 거미 여왕의 마정석을 넣었다.
“자아, 그럼 바로 별 3개짜리로 가볼까. 준비됐냐, 염훈.”
“다 좋은데, 다음 몬스터 룸에 있는 보스는 나한테 좀 맡겨. 나도 막타 좀 치자.”
“그러지.”
은혁은 쿠폰을 찢었다.
30번 몬스터 룸의 정보는 다음과 같다.
-목표 : 제한 시간 이내에 미로를 탈출하거나, 흑백의 주인을 처치할 것.
-쿠폰 가격 : 5,000 골드.
-성공 시 보너스 : 7,500 골드.
-실패 시 페널티 : 벌금으로 8,000 골드를 관리자에게 지불해야 한다.
-제한 시간 : 30분.
-난이도 : ★★★
* * *
-흑백의 미로에 도착하셨습니다!
“우왓……?”
염훈은 흠칫 놀랐다.
흑백 만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모든 게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은혁은 별로 당황하지 않고 스킬을 썼다.
“[플레어].”
파앗!
빛을 내뿜는 불꽃이 발사됐지만, 그 불빛도 평소의 밝은 불꽃 색깔이 아니라, 흰색으로만 표현됐다.
-크하하하! 여긴 내 영역! 너희가 알던 색상은 의미를 잃는다!
흑백의 주인이 비웃었다.
스르르륵.
벽의 그림자를 타고 흑백의 주인이 다가왔다.
“은혁아! 뭔가 온다!”
염훈이 외치며, 벽을 향해 [홀리 썬더]를 날렀다.
콰콰쾅!!
-크아악!!
그것만으로도 흑백의 주인의 몸 절반이 터져 나갔고, 도망치느라 바빴다.
“……내가 이긴 거임?”
염훈이 어이없어서 확인 삼아 물었다.
“어어, 반쯤?”
은혁도 어이가 없었다.
흑백의 주인은 네임드 몬스터로, 스펙터의 일종이다.
그림자 괴물에 가까운 스펙터는, 이 기묘한 몬스터 룸에 적응하여 네임드 몬스터가 됐다.
물론, 몰락한 지고의 위상에 비하면 한없이 약하지만, 흑백의 공간에서는 자유롭게 벽, 천장, 바닥을 가리지 않고 표면을 타며 이동하는 강력한 존재…….
‘……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회귀 전 기억과 현재의 괴리가 또 느껴졌다.
‘쉬워! 솔직히 너무 쉬워!’
별 3개 난이도면 43층에 어울리는 고난도 미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쉽다니. 나와 염훈 모두, 회귀 전 이 시점에 비해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뜻이겠지.’
은혁은 자칫 긴장감이 풀릴까 봐 걱정이 됐다.
“추격해서 죽일까?”
“그냥 죽이면 너무 쉬우니까 확실히 마정석까지 꺼내자.”
그냥 염훈을 시켜서 흑백의 주인을 죽이면 마정석을 꺼내기 어렵다.
은혁은 [플레어] 스킬을 더 여러 개 띄웠다.
“염훈.”
“응?”
“내가 놈을 드러나게 할 테니, 너는 막타를 쳐.”
“뭔가 한석봉 어머니 같은 말투네.”
“[화염 지배] + [염상 부여]!”
파앗!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염화 환염]!”
파앗!
[염화 환염] 스킬을 발동하는 동안, 흑백의 불빛에 강제로 색상을 부여했다.
화아아악……!
서서히, 하지만 빠르게 다양한 색깔이 입혀졌다.
흑백의 주인에게 억울하게 죽은 플레이어들의 피가 묻은 벽.
하얗게 변한 뼈가 쌓인 복도의 구석.
천장 조명의 본래 색깔인 노란 불빛.
그리고 도망치는 흑백의 주인이 남기는 검은색 발자국까지.
“염훈! 프리즘 랜스를 꺼내!”
“알았어!”
평소 염훈은 자신의 신성력을 프리즘 랜스에 담아 쓰곤 했다.
이번에는 염훈의 신성력과 더불어, 프리즘 랜스에 은혁이 생성한 [염화 환염]의 빛을 모았다.
기이이이잉……!
서서히 퍼져 나가던 [염화 환염]의 빛이 염훈에게 집중됐다.
그 집중된 빛은 도망치는 흑백의 주인의 뒤를 가리켰다.
-아아아……!
흑백의 세상 속에서만 강함을 유지하는 흑백의 주인은, 은혁과 염훈이 발하는 빛에 닿은 것만으로도 죽어 갔다.
몸에 강제로 색깔이 입혀지자 몸이 구체화되며,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합체기! [신성환염섬]!!”
번쩍!!
물질, 비물질, 심지어는 초능력 기반의 적까지 모조리 찌르는 날카로운 섬격.
화악……!!
찌르기의 궤적은 미로 전체를 따라 퍼져 나가며 밝은 색깔을 입혔고, 그 과정에서 흑백의 주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소멸했다.
-축하드립니다! 난이도 3의 몬스터 룸, 흑백의 미로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7,500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흑백의 미로에 우중충한 흑백 빛깔이 사라지고, 본래 색깔이 완전히 돌아왔다.
-축하드립니다! 흑백의 세상에 다양한 색깔을 불러오는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다양한 색깔을 불러온 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차원의 망원경’을 획득하셨습니다!
펑! 펑!
은혁과 염훈의 앞에 차원의 망원경 아이템이 각각 하나씩 드롭됐다.
-차원의 망원경 :
4성급 아이템.
인접한 차원 너머를 관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마정석을 필요로 한다.
“뭔가 애매한 아이템이네.”
염훈은 차원의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런 거지. 필요 없으면 나한테 팔래?”
“그냥 공짜로 가져. 근데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건 그닥 쓸모가 없을 거 같은데.”
“정찰용으로 쓰면 좋지. 가령 콩나무 본부 꼭대기에 장착한 다음,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나 드래곤이 쳐들어오나 안 오나 감시할 때라든가.”
“헐. 그런 일이 실제로 있어?”
염훈은 콩나무 본부의 방비를, 주로 다른 길드의 습격을 상정하여 해두었다.
하지만 높은 층의 고차원적인 존재가 공격해오지 않는다는 법은 없었다.
“여간해서는 그런 일이 없지. 하지만 우리가 클리어했던 11층~14층 콩나무 미션 구간을 떠올려봐.”
“그러고 보니 그때도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 있었지.”
콩나무 꼭대기에서 클라우드 자이언트를 학살하던 ‘잭’이라는 존재도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었다.
“2개 중의 하나는 길드 본부에 설치하고, 다른 1개는 내가 개인용도로 쓸게. 괜찮지?”
“물론!”
“좋아. 그럼 [도축]만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은혁은 [도축] 스킬을 흑백의 주인에게 썼다.
본래 흑백의 주인은 스테이지와 동화된 존재이므로 마정석을 도축할 수 없으나, 은혁과 염훈이 강제로 [신성환영섬]으로 색깔을 입혀서 처치한 상태이므로 [도축]이 가능했다.
콰직!
‘흑백의 주인의 마정석도 얻었겠다, 바로 다음으로 갈까? 아니면….’
-대기실로 돌아가시겠습니까?
-YES/NO
은혁을 재촉하듯 메시지가 떴다.
“NO.”
하지만 바로 쿠폰을 뜯지도 않았다.
“어? 은혁아. 다 깼으니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원래는 시간 낭비 없이 바로 가는 게 맞긴 한데.”
은혁은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시스템 메시지가 하나 빠졌어.’
그랬다.
이전의 별 1개와 2개의 몬스터 룸을 클리어했을 때와는 조금 다르다.
그때는 대기실로 돌아가겠냐고 묻기 전에, ‘본 몬스터 룸은 완전히 클리어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곤 했다.
그 한 문장이 빠졌다.
‘즉, 클리어하긴 했지만 완전히 클리어는 아직 안 됐다는 뜻.’
“염훈. 좀 더 살펴보자.”
“뭐, 그러고 싶다면 그래야지.”
은혁과 염훈은 만일을 대비해 함께 걸었다.
저벅저벅…….
두 사람의 발소리가 미궁에 울려 퍼졌다.
숨어 있는 몬스터 따위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야. 이 장소에는 뭔가가 있어. 분명해.’
은혁은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