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230화 (230/434)

230화 : 흑백의 미로

은혁은 탐색의 효율을 위해 스킬을 썼다.

“[섀도 코볼트 소환].”

파앗!

다수의 섀도 코볼트를 보내서 구석구석 정찰시켰다.

숨겨진 함정도, 숨겨진 보물도 딱히 감지되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은혁은 ‘섀도 코볼트들의 눈높이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며, 섀도 코볼트들을 소환 해제 한 뒤, 이번에는 메탈 서전트를 소환했다.

그리고 드론 모드로 변환시켜서, 두 사람의 반대편으로 정찰도 보냈다.

그리고 교신 스킬로 질문했다.

‘메탈 서전트! 아무 이상 없나?’

‘없습니다, 주인님.’

‘높은 곳 위주로 봐라. 섀도 코볼트의 눈에 안 닿는 곳 위주로.’

‘현재 조사 중입니다만, 특이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알았다. 사소한 거라도 알아내면 보고하라.’

‘저어…….’

‘무슨 일인가?’

‘기분 탓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듭니다.’

‘익숙한 느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인님.’

‘음. 알았다. 계속 그 부근을 정찰하도록. 교신 종료.’

교신을 마친 직후 염훈이 중얼거렸다.

“각진 미로는 아니네.”

“각진 미로? 무슨 뜻이야?”

“아니, 보통 미로라고 하면, 위에서 봤을 때 사각형인 데다가 길이 여러 갈래 있는 곳이잖아?”

“뭐, 스포츠 신문이나 잡지의 퍼즐로 나오는 미로는 그런 형태지.”

“근데 여긴 좀 갈림길이 그렇게 딱딱 나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부드럽달까, 곡률이 있달까.”

염훈은 뭐라 말하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흠……?”

“아우, 그냥 느낌이 그래.”

“막 사악한 느낌은 아니고?”

“미친 소리 같겠지만, 오히려 나는 너랑 지금 산책하는 기분이야. 막 평화로울 지경…….”

“아……!”

은혁은 그제야 깨달았다.

‘평화의 미궁하고 조금 닮았어!’

그랬다.

메탈 서전트가 익숙한 느낌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다.

사실 메탈 서전트는 평화의 미궁 1층은 가본 적이 없고, 숨겨진 지하층에서만 활약했지만, 그래도 금속 차원의 생명체 특유의 감으로 ‘뭔가 익숙하다’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성기사인 염훈 녀석이 평화로울 지경이라고 말한 것도, 이 미로의 특성을 체감했기 때문이야!’

평화의 미궁의 진짜 정체는 피스메이커의 거처였지만, 표면적으로는 평화 길드원의 번뇌를 덜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 가능성은 두 가지 아니, 세 가지군.’

첫째. 엄청난 우연의 일치로, 평화의 미궁과 흑백의 미로가 닮았다.

둘째. 평화의 미궁 제작자가 흑백의 미로를 모방했다.

셋째. 흑백의 미로 제작자가 평화의 미궁을 모방했다.

‘세 가지 가능성 모두 검증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 방법은 있지.’

아주 확실한 확인법이 정해져 있었다.

“염훈.”

“응?”

“좀 시끄러울 거다.”

은혁은 세븐 칼리버를 드릴 랜스로 변형시켰다.

콰두두두두두!!

평화의 미궁 중심을 찾으러 다닐 때처럼, 은혁은 벽이란 벽은 다 부수면서 중심부로 향했다.

* * *

콰두두두……!!

43층 대기실.

노숙자 플레이어들은 소리를 들으며 목을 움츠렸다.

“저 소린 뭘까?”

“무슨 드릴로 땅 파는 소리 같은데.”

“우리가 쿠폰 맡긴 강은혁이 내는 소리겠지?”

흑백의 미로와 43층 대기실 사이에는 차원의 틈새라는 뜬 공간이 있는데도 진동이 느껴졌다.

과도할 정도로 아낌없이 쏟아붓는 마력이 담긴 진동과 충격이기 때문이다.

그 소리를 43층 관리자 마카론도 듣고 있었다.

어떤 전투음이 들려와도 태평했던 그였지만, 자기도 모르게 안절부절못하고 말았다.

‘곤란한데.’

그는 관리자 자격 덕분에, 은혁과 염훈이 쿠폰을 쓸 때마다, 언제 어떤 몬스터 룸으로 가는 쿠폰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설마 흑백의 미로에 숨겨진 존재를 꺼내려는 건 아니겠지?’

애초에 흑백의 미로가 색상 구별이 어려운 장소로 설정된 것도, 한 성좌의 사도가 요청했기 때문이다.

‘에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완만하게 처리되길 바라는 수밖에.’

* * *

콰두두두두두……!

은혁은 벽과 부수고 중심부를 찾았다.

그리고 중심부의 바닥을 다시 뚫기 시작했다.

“은혁아. 엄청 많이 팠는데, 더 파려고?”

“아직 멀었어!”

은혁은 확신했다.

벽과 바닥의 재질, 두께, 단단함 등.

모두 평화의 미궁의 것과 99% 동일했다.

차이가 있다면 바닥의 두께가 더 깊다는 것.

그래서 은혁은 자신의 마력을 드릴 랜스에 아낌없이 쏟아 부으며 땅을 팠다.

“은혁아. 네 말대로 이 밑에 뭔가가 있다면, 이렇게 부숴도 괜찮을까?”

“물론! 이 밑에 뭔가는 분명히 있을 거야! 확실해!”

“내 말은, 그 뭔가가 위험하지는 않을까 물어본 건데.”

“위험하건 말건.”

“엥?”

사실, 은혁은 특유의 악바리 정신만큼이나 호기심도 꽤 강한 편이었다.

단순 전사로 시작한 회귀자가 100층탑의 온갖 지식을 갖고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정신 때문이다.

“수상쩍은 게 있으면 파헤치는 게 인간 본성 아니냐?”

“어휴, 네가 무슨 코난이냐?”

염훈은 핀잔을 줬지만, 그래도 은혁이 땅을 파는 것을 도와줬다.

콰두두두……!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해~.”

어느새 염훈은 코난의 한국판 오프닝곡까지 부르며 은혁을 도왔다.

그리고 그 순간.

투두둑……!

바닥에 구멍이 뚫리고, 빈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인공적인 조명 빛이 위로 올라왔다.

“허, 진짜 뭔가 있나 보네.”

“음.”

은혁은 드릴 랜스를 차원의 낚싯대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낚싯바늘을 오키니움의 건틀릿을 착용한 손으로 꽉 쥐고, 낚싯대 부분을 염훈에게 던져줬다.

“염훈. 너는 저 위로 올라가 있어. 내가 30분 이내에 올라오지 않거나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나를 끌어 올려.”

“오, 오케이…….”

준비를 마친 은혁은 바닥을 더 부순 뒤, 반대쪽 손에 선즈 리볼버를 쥐고, [사이오닉 필드] 스킬로 자신을 감싼 뒤 구멍 아래로 뛰어내리려 했다.

그 순간.

“아, 안 돼! 오지 마시오! 도망가시오!”

안쪽에서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다만 소리가 멀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래의 텅 빈 공간은 상당히 크고 깊은 듯했다.

“거기 누구십니까!”

은혁이 큰 소리로 묻자, 목소리는 더 크게 외쳤다.

“오지 말라고! 바이러스요! 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소!”

“으아, 은혁아. 바이러스래. 어쩌냐?”

염훈은 불패불굴의 성기사답지 않게 조마조마해했다.

지금의 염훈은 3차 각성을 한 상태인 데다가, 환골탈퇴 나노 강화제도 맞았고, 수명 연장의 포션으로 더욱 강해진 상태다.

그런데도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염훈마저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은혁은 냉철하게 생각했다.

‘바이러스라고?’

평화의 미궁을 닮은 이곳에서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온다면…….

“혹시 평화 길드장 피스메이커가 만든 바이러스에 감염된 겁니까?”

“그, 그걸 어떻게?”

“아, 그거 저는 면역입니다. 치료하러 갈 테니 기다리세요.”

“아, 안 돼! 위험……!”

휙!

은혁은 낚싯바늘을 붙잡은 채 냅다 뛰어내렸다.

띠리리리릭……!

차원의 낚싯대와 연결된 낚싯줄이 적당히 풀리며, 은혁은 적당한 빠르기로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허참. 여기도 흑백 공간이네.’

은혁은 [염화 환염]을 사방에 흩뿌리며 계속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 더 내려가는 도중.

-흑백의 미로에 진입하셨습니다!

-경고! 이곳은 강력한 존재가 의도적으로 숨긴 비밀의 공간입니다!

-히든 미션은 존재하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심각한 불이익만 당하실 수도 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경고를 해왔다.

‘알아, 알아.’

여기서 말하는 강력한 존재는 아마도 피스메이커일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심각한 불이익은 바이러스이리라.

‘근데 그거 다 이미 극복했거나 대처법 마련하고 오는 거거든.’

이미 항체도 있고, 인벤토리창에는 샘플용 백신이 여러 개 있었다.

“아아, 들어오지 말라니깐……!”

체념한 목소리.

하지만 선량한 목소리다.

타탁.

은혁은 바닥에 도달했고, [염화 환염] 스킬을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잔뜩 뿌렸다.

화악……!

정상적인 색채가 담긴 빛이 뿌려지며, 쇠사슬에 묶인 채 숨을 헐떡이는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목소리에 어울리는, 선량해 보이는 외모를 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위험하다니까 왜 들어온 거요?”

“중요한 질문이니까 대답해 주시죠. 피스메이커 때문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인 게 정말 확실하죠?”

“으으, 그렇소. 그런데 그건 왜 자꾸 묻는 거요?! 아아, 나와 대화하는 동안 당신도 이미 감염되었을 거요.”

사내는 갑자기 입을 틀어막으며 물러나려 했다.

은혁은 실소를 참으며 말했다.

“너무 예상대로라 좀 싱겁지만, 하여간 받으시죠.”

휙.

은혁은 백신을 인벤토리창에서 꺼내서 던져줬다.

백신 제작의 핵심 발안자로서, 무료 샘플 백신 패키지를 10개 이상 인벤토리창에 넣어두고 있었다.

패키지를 뜯으면 주사기와 일체형인 백신이 들어 있었다.

백신은 원래 감염 전에 맞아야 효과가 있지만, 성좌 나이팅게일과 연구 길드의 지혜를 합쳐 만든 이 백신은 감염 이후에 맞아도 쓸모가 있었다.

일단 백신을 놓은 뒤 회복 스킬을 쓰면 빠르게 호전되고, 그 과정 속에서 자체적인 면역력이 생성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나, 나는 너무 오래 이 흑백의 공간에 있었소. 몸에 힘이 전혀…….”

“하는 수 없군요.”

은혁은 직접 백신을 놔주었다.

“[하급 치유].”

파앗!

-성직자 숙련도가 5% 증가했습니다!

-현재 성직자 숙련도 : 36%.

은혁이 현재 갖고 있는 성직자 직업은 무등급 성직자 직업이지만, 최소한의 치유 스킬은 갖고 있었다.

“으으으…….”

청년은 곧 회복됐다.

“고맙소. 바이러스를 치료해 주다니.”

그렇게 말한 청년은 추가로 자기 자신에게 회복 스킬을 썼다.

파앗!

은혁이 써준 [하급 치유]보다 훨씬 우수했다.

“바이러스 때문에, 서서히 약해져서 죽어가던 중이었소. 그쪽 덕분에 살았군.”

“돕고 살아야죠. 그보다 당신은 누굽니까?”

“음? 내가 누군지 모르면서 구하러 온 거요?”

“선량한 플레이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은혁이 모처럼 착한 소리를 하자, 사내는 은혁의 말을 믿기로 했다.

“나는 미궁의 성좌, 메이즈 마스터…….”

“뭣?!”

은혁은 깜짝 놀랐다.

이런 곳에서 성좌의 본체를, 그것도 이토록 나약한 모습으로 보게 되다니.

“……의 사도, 다카노 유타카라고 하오.”

“……아, 네.”

어쩐지 성좌치곤 너무 약해 보였다.

“플레이어입니까?”

“그렇소. 100층탑의 2기 플레이어지.”

다카노는 조금 우쭐한 듯이 말했다.

요즘은 기수 같은 걸 따지지 않지만, 100층탑 초기 플레이어들은 1기, 2기, 3기 하는 식으로 기수를 따지며, 먼저 들어온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럼 보기보다 나이가 상당히 많겠군.’

다카노가 ‘2기’라는 게 사실이라면, 그는 1999년 하반기, 또는 2000년 상반기에 100층탑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상당히 젊어 보였다.

“42층 아시오? 다차원 교차로 말이오. 지금도 42층이 다차원 교차로가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물론입니다. 스테이지도, 미션도 동일합니다.”

“아, 그럼 이야기가 빠르군. 당시 내 직업은 ‘미로를 간파하는 초능력자’였소. 다차원 교차로의 복잡함에 푹 빠져서, 나름 분석해보기로 하고 도전했었는데, 아 글쎄, 미궁의 성좌이신 메이즈 마스터 님의 관심을 끌었지 뭐요? 그래서…….”

“그분의 사도가 되었다?”

“요약하자면 그렇소. 지금의 나는 ‘미궁의 주인을 섬기는 초능력자’이지. 내가 나이를 잘 먹지 않는 것도 그분의 가호요.”

“상당히 특이한 직업 수식어군요.”

“그 또한 그분의 축복 덕분이오. 사실상 나는 성직자와 초능력자의 스킬을 모두, 부작용이나 페널티 없이 쓰는 진정한 하이브리드 플레이어인 셈이오!”

다카노는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나는 현재 직업만 10개이고, 다 자유롭게 쓰고 있는데.’

은혁은 말할까 하다가 자랑하는 것 같아서 그냥 말하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갇히게 된 겁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