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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32화 (232/434)

232화 : 사람이란 무엇인가 (1)

“글쎄, 사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 않겠소? 뭐, 남들 아는 만큼은 알고 있소만.”

“그렇지. 사전마다 인간을 정의 내릴 때의 뉘앙스는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겹치는 점은 다음과 같다네.”

피스메이커는 네 가지를 열거했다.

생각하는 생물인가?

언어를 사용하는가?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 가능한가?

사회를 이루어 사는가?

이 밖에도 사전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인류의 진화생물학 분류 체계 내에서의 고등 생물인가 아닌가, 문화를 만들고 사유 가능한가, 이족 보행이 가능한가 등등을 따지는 경우도 있지만, 위의 요소들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동의하나?”

“동의하오. 저 네 가지는 사람의 기본 속성이 맞소.”

“인간은 저 네 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네. 그럼 그 역은 어떤가?”

“저 네 가지 요소를 갖고 있는 존재라면 다 인간이라 불러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오?”

“그렇다네.”

“흐음…….”

다카노는 잠시 고민했다.

“뭐, 그렇지 않을까? 사실 고민해본 적이 없소만. 아마도 그럴 거요.”

“하지만 저 사전적 의미는 100층탑이 존재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지.”

“…….”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회복이 가능하고, 손에서 화염이나 냉기를 뿜고, 초능력으로 물건을 옮기고, 스킬의 힘으로 물건을 훔치고…….”

열거하던 피스메이커는 끝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게 가능한 우리가 인간일 리가 없지.”

“글쎄, 우리가 기존 인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것에는 동의하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아닌 것이라고 결론짓는 건 성급하오.”

“인간이지만 단지 특출날 뿐이다, 라는 건가?”

“바로 그거요.”

“플레이어는 일반 인간보다 조금 더 특출한 존재일 뿐, 여전히 인간이긴 하다?”

“반복해서 물어도, 그렇소!”

“그렇다면 길드연합국에 상주하는 NPC도 인간이군.”

“아……?”

“길드연합국 NPC 말일세.”

NPC는 매우 범위가 큰 용어다.

다른 차원에서 온 생명체부터, 100층탑에서 만들어낸 존재까지.

몬스터나 인공 지능 생명체도 넓은 의미에서는 NPC로 포함된다.

그리하여 피스메이커는 길드연합국 소속의 NPC에 한정하여 말했다.

다카노는 반박했다.

“아니, NPC는 인간이 아니지.”

“왜 아닌가? 방금 열거한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리고 그 역에 대한 명제에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동의하지 않았던가?”

“그야…….”

반박하려던 다카노는, 5층 길드연합국에 있는 NPC들이 위의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분명히 차이점도 있었다.

“그런 NPC들은 그냥…… 그냥 스테이지를 위해, 시스템에 의해 창조되잖소. 인간은 지구에서 출생되어, 생장하고, 그리고 100층탑으로 소환되는 거고.”

“그런 차이가 있긴 하지.”

피스메이커가 인정하자, 다카노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피스메이커의 말에 다카노는 또다시 당황하게 되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소환과 NPC의 창조는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어.”

“무슨 소리요?”

“우린 우리의 의지로 100층탑에 들어온 게 아니라 소환된 거지. 그 사실을 더 깊게 생각해보게.”

“……시스템에 의해 창조되어 플레이어들의 편의를 돕는 NPC나, 소환된 플레이어나 결국,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100층탑의 구성원으로 끌려온 것이니 그게 그거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네.”

“헛소리!”

다카노는 화를 내며 길드연합국 소속 NPC들과 플레이어의 차이점을 열거했다.

플레이어만이 얻을 수 있는 모험가 직업, 레벨, 스탯창의 유무, 탑을 주체적으로 오르는 의지, 게이트를 자유롭게 활용할 권리, 메인 미션의 유무, 바깥세상에 대한 기억 등등…….

다카노는 평소에 안 쓰던 목이 아플 정도로 말했다.

하지만 피스메이커는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화가 난 다카노는 단정 지어 말했다.

“하여간 우리는 NPC가 아니오!”

“아니지. 아까 했던 말을 기억하게.”

피스메이커는 오른손을 살짝 들어 보인 채 말했다.

“아까 내가, ‘플레이어는 일반 인간보다 조금 더 특출한 존재일 뿐, 여전히 인간이긴 하다?’라고 물었을 때, 자네는 매우 확신에 찬 어조로 그렇다고 대답했지. 그 논리대로라면…….”

이번에는 왼손도 살짝 들어 보였다.

“지금 내가, ‘NPC는 일반 인간보다 조금 더 부족하다는 한계점을 지닌 존재일 뿐, 여전히 인간이긴 하다?’라고 물었을 때도 그렇다고 대답해야 해. 차이점은 약간의 특출함과 약간의 한계점뿐이고,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인간의 요소는 모두 공통되니까.”

“아니, 그건….”

다카노는 NPC를 혐오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NPC를 동일한 인간이라 칭하려니, 뭐라 말하기 힘든 거부감이 들었다.

“거부감이 느껴지지? 나는 그 거부감을 공정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보네.”

피스메이커는 손을 뻗어, 100층탑 바깥을 향했다.

“100층탑 바깥의 진정한 인류와 비교하면, 우리 플레이어와 NPC는 양쪽 모두가 인간이 아니야. 자네가 NPC를 인간이라 여기지 않는 만큼, 나는 플레이어도 인간이라 여기지 않아. 결국,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 짓는 것은 100층탑이라는 공간 자체라고도 할 수 있지.”

100층탑에 플레이어로서 소환되건 NPC로서 창조되건, 100층탑 내부에 있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며, 그러므로 100층탑 내부의 인류는 이미 멸종했다…… 라는 게 피스메이커의 논리였다.

“다카노. 자네는 아까 나보고 인류 학살에 대해 반성을 했느냐 어쨌느냐 물었지.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반성하지 않아. 나는 인류를 학살한 바가 없으므로.”

플레이어는 인간이 아니다, 라는 관점이 참이라면, 피스메이커의 과격한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게 된다.

“그런, 그건 아닐 거요. 내가 이런 식의 토론을 잘 못해서 반박은 못 하지만…….”

“아직 내 말 안 끝났네. 진짜 결론은 더 심각하거든.”

“무슨, 아직도 더 남았다고?”

다카노는 더 듣기도 싫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어지는 피스메이커의 말 때문에 더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길드연합국 플레이어들을 학살한 이유랑 어느 정도 관련된 거야.”

“……듣겠소.”

“생각해보게. 우리 중 누군가가 정말로 100층탑의 정상을 정복한 뒤의 미래를. 그러면 그 플레이어는 엄청난 힘을 갖고 바깥 세계, 지구로 돌아갈 걸세.”

“그래.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무섭지 않나?”

“에?”

“100층탑은 미쳤다네.”

“미친 작자가 말하니 참 와닿는군.”

“100층탑의 정상을 정복한 자는, 광기와 막강한 힘을 모두 지닌 존재일 거야. 하지만 앞서 논증했듯, 인간은 아니지. 그런 자가 바깥 세계로 나가면?”

“광기와 스킬의 힘으로 지구를 지배할 거다?”

“단순히 지배자가 된다면 오히려 다행이지. 더 안 좋은 경우, 인류 멸망에 이를 수도 있지.”

“그건 진짜 최악이군.”

“최악? 만약 그 정도 가지고 최악이라 할 정도면, 자네 수준은 그 정도인 게야.”

“지구상의 인류 멸망보다 더한 게 있다고?”

“죽지도 못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게.”

지금의 피스메이커는, 바이러스의 힘으로 인간 수만 명을 ‘죽’처럼 만들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그중 절반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 바이러스 덩어리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피스메이커는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제 내 목적 중 하나를 말해도 될까?”

“설마 당신의 목적은…….”

“플레이어가 100층탑 정상에 도달하여 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는 100층탑, 특히 5층 길드연합국 내부의 인구수를 줄여야 하네. 플레이어가 인간도 아닌데 인구라고 표현하는 게 좀 어폐가 있지만.”

그제야 다카노는 깨달았다.

‘지금, 100층탑을 클리어하는 플레이어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확률 자체를 낮추기 위해 플레이어의 개체 수 자체를 줄이려 했다는 건가!’

다카노는 기가 막혔다.

“겨우 그런 망상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건가!”

“오해하지 말게. 그건 한 가지 이유일 뿐이야. 내가 전쟁을 일으킨 궁극적인 이유는 평화니까.”

피스메이커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앞서 다카노에게 설명한 이유.

다른 하나는, 힘으로 길드연합국을 대통합시킴으로써, 그나마 현실적인 평화를 이루는 것.

하지만.

“도중에 생각이 바뀌었지.”

피스메이커는 씨익 웃었다.

누가 봐도 광기 가득한 웃음이다.

“나도 완전히 비현실적인 자는 아닐세. 길드연합국 창건의 책임이 있는 자이니, 그나마 현실적인 평화를 지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점점 생각이 바뀌게 되더군.”

절멸.

이 끔찍한 100층탑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줄 최후의 수단은 모든 플레이어의 절멸…… 이라는 괴상한 사상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미쳤군! 정말 미친놈은 네놈 하나뿐이야!!”

참다못한 다카노가 외치자, 피스메이커는 반박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멋쩍게 웃었다.

“사실, 그 가능성도 꽤 높다네.”

“뭐, 뭣?! 바로 수긍하는 건가?”

“인정하긴 싫지만, 내가 미쳤을 가능성…… 결코 낮지 않아. 미치지 않았다면, 갑자기 모두의 절멸이라는 결론에 치닫는 걸 설명할 수 없지.”

피스메이커가 멋쩍게 인정하니, 다카노는 그게 또 기가 막혔다.

“그래서 부탁하러 온 걸세.”

“이제야 본론으로 돌아온 것 같군. 그놈의 부탁이 뭔가? 제기랄, 뭔 부탁인지 몰라도 그냥 들어주고 말지, 이런 미친 소리만은 더 못 들어주겠네!”

“내 부탁은, 이런 미궁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거네.”

“미궁 제작을 요청하는 건가.”

“그렇지.”

“왜?”

“나 자신을 가두기 위해.”

그 뒤로는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됐다.

피스메이커가 미궁의 깊은 밑바닥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카노는 물론, 피스메이커 본인도 크게 인정했으므로.

“나를 가둘 미궁의 이름은 ‘평화의 미궁’이면 적당하겠지.”

다카노는 피스메이커의 뻔뻔함에 혀를 차면서도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평화 길드의 부길드장이 장악하고 있는 25층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다카노는 43층의 관리자 마카론을 통해, 관리국의 젊은 요원, 아이리스와도 이야기를 마쳤다.

아이리스는 피스메이커가 자신을 가둔다는 사실에 반색하며 협조했다.

그리하여 평화의 미궁이 만들어졌다.

피스메이커는 깐깐한 집주인처럼, 다카노와 아이리스를 인테리어업자 다루듯이 부려 먹었다.

“다 좋은데, 특수 제작한 스피커도 설치해주게. 그래야만 25층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겠지.”

그리고 아이리스가 건네준 수갑도 착용했다.

피스메이커의 힘을 절반 정도로 제한하는 특수한 수갑이었다.

피스메이커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착용했다.

“다 됐군. 고마웠네.”

피스메이커는 다카노에게 악수를 청했고, 다카노는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악수는 생략합시다.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요.”

“섭섭하군. 난 정말 자네를 친구로 여기고 있는데.”

“친구라고?”

“그래.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게 진정한 친구라지?”

그러고 보면, 피스메이커가 가장 어려운 현재 그를 도와준 이는 다카노뿐이다.

다카노는 달콤씁쓸한 기분으로 피스메이커의 손을 마주 잡아줬다.

“고맙네.”

피스메이커는 다카노와 악수를 하면서 작은 쪽지를 건넸다.

다카노는 또 무슨 장난질인가 싶으면서도, 더 말도 섞기 싫었기에 쪽지를 받아줬다.

그리고 아이리스의 도움을 받아, 다카노는 본래 자신이 있던 흑백의 미로 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편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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