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 박제실의 괴물 박제사
“그거면 충분합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맹세]를 한 건 아니지만 다카노라면 언제가 되었건 은혁의 부탁을 한 번은 도와주리라.
“잘 가십시오.”
“잘 있게! 건강하고!”
그리고 다카노는 정신을 집중하더니.
-성좌, 메이즈 마스터의 차원으로 전송됩니다!
파앗!
다카노는 떠났다.
은혁도 다시 지하에서 위로 올라갔다.
“야, 왜 이리 오래 걸렸냐?”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염훈이 물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거든.”
은혁은 다카노와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들려줬다.
“음…… 피스메이커라면 널 감염시켰던 그 평화 길드장 말이지?”
염훈은 피스메이커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들어서 알았다.
“맞아.”
“결국 그자와도 싸워야 하는구나.”
“뭐, 그렇지.”
“어려운 싸움이겠네. 너, 저번에 졌잖아.”
“어?”
은혁은 전혀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되물었고, 염훈도 어리둥절해했다.
“저번에 바이러스 걸려서 죽을 뻔했잖아. 그럼 진 거 아님?”
“아님!”
“아니긴 뭐가 아님?”
“놈의 공격에서 살아남고 백신까지 제작했으니 이긴 거임.”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다음 쿠폰 열 장을 단번에 찢을 준비를 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긴장됐다.
“염훈. 일단 들어봐라.”
은혁은 자신이 회귀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 선에서, 히든 룸에 관한 정보를 말해줬다.
염훈은 긴장한 얼굴로 끄덕였다.
“한 마디로 ‘즉사기’를 가진 적이 있다, 이거지?”
“그거지.”
100층탑의 상층부로 갈수록, 방어구를 무시하고 무조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즉사기를 지닌 적들이 자주 나온다.
‘눈이 마주치면 무조건 즉사’ 같은 식이다.
‘[죽음의 광선]을 쏘는 적이지.’
그러자 염훈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즉사기 같은 건 좀 쫄리는데. [2초 무적]이 통해?”
“아마도 통할 거라 생각하긴 하는데…….”
은혁도 확신이 없었다.
‘아마 십중팔구는 통하겠지만.’
100%가 아니라는 점이 은혁을 긴장시켰다.
“하여간, 가자마자 습격당할 수 있으니까, 미리 버프 좀 걸어줄래?”
“음, 그러자.”
사실, 은혁이 던전 같은 곳에 갈 때 미리 버프를 걸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였다.
염훈은 자신과 은혁에게 각종 버프를 잔뜩 걸었다.
“좋아, 가자!”
찌익! 찌익!
은혁은 노숙자 플레이어들에게서 받은 쿠폰을 모조리 찢어 버렸다.
그 순간.
-히든 룸으로의 전송 조건을 확인!
-정말로 히든 룸으로 전송되길 원하십니까?
-YES/NO
“YES다!”
파앗!
두 사람은 전송됐다.
* * *
-43층 히든 룸 : 박제실
우우웅…….
은혁과 염훈이 전송되자마자 느낀 것은 중력이 다소 약하다는 점이었다.
100층탑 대부분의 지역 중력이 10이라면, 대략 8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히든 룸인 박제실의 특성 때문이다.
히든 룸은 43층 곳곳에 위치한 몬스터룸 사이의 차원을 부드럽게 이동해야 했고, 일종의 차원 우주선 같은 역할을 했다.
즉, 히든 룸의 주인이 마음만 먹으면 43층의 다른 몬스터 룸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43층보다 차원 준위가 낮은 곳으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윽, 이 냄새는 뭐지……?”
염훈이 투덜거렸다.
히든 룸은 박제 전문가의 작업실을 연상시키는 곳이었기에, 특유의 몬스터 사체의 냄새가 났다.
거대한 변종 흑곰, 붉은 비늘의 어인, 차갑게 식어 버린 불사조, 심지어는 거대한 드래곤의 뼈까지.
온갖 몬스터들의 사체가 박제되고 보존되어 있었다.
그 박제품들 중심에는 빈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 박제사가 있었다.
검은색 짙은 선글라스에, 검은색 턱수염이 짙은 중년 사내처럼 보였다.
“허어, 새롭게 박제되고 싶은 것들이 또 왔구만?”
-몰락한 지고의 위상, 괴물 박제사가 나타났습니다!
각종 몬스터의 사체를 박제하는 것 자체가 취미이기에, 인간의 형상으로 스스로를 몰락시킨 존재.
그는 43층 몬스터 룸에 존재하는 몬스터나, 다른 차원에서 겁 없이 도전하는 적들을 ‘상처 하나 없이’ 죽이고 박제하곤 했다.
“크크큭. 숨겨진 이곳을 찾아올 정도면, 너희들도 충분히 괴물들이지, 안 그런가?”
괴물 박제사가 히죽 웃었다.
호의적인 웃음처럼 보였지만, 은혁과 염훈은 방심하지 않았다.
“안 잡아먹는다, 너희들. 적어도 통성명이라도 하지?”
괴물 박제사의 양손이 자기 허리를 짚은 순간.
즉, 두 손이 선글라스로부터 멀어진 그 순간에 은혁은 [텔레파시]를 보냈다.
‘작전대로 가자!’
‘그래!’
타앗!
두 사람은 좌우로 갈라져 기습 공격에 들어갔다.
“흠?”
괴물 박제사는 그 움직임만 보고도 두 사람의 의도를 눈치챘다.
‘놈들이 내 즉사기를 경계하고 좌우로 나뉘어서 기습하려 하는군.’
괴물 박제사는, 자신의 특기를 두 인간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림자 분신 4.0]! [섀도 코볼트 소환]!!”
“[영수 소환]!!”
파앗!
파앗!
은혁은 소환수들로 방벽을 세우다시피 했고, 염훈은 [영수 소환]을 발동한 채 고속 기동에 치중했다.
좌우의 속도가 달라지며 자연히 엇박으로 기습이 가해졌다.
괴물 박제사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성기사 놈이 더 가까이 오는군. 놈을 향해 스킬을 쓰길 바라는 것 같군.’
그때였다.
“[신성한 날개]!!”
파앗!
염훈은 가속 중인 폭포 유니콘의 등을 박차고, 비행 스킬로 추가 가속했다.
이 순간만은 괴물 박제사도 놀랐다.
즉각 선글라스를 벗으며 스킬을 썼다.
“[100년을 빼앗는 시야]!”
번쩍!
단순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염훈의 수명 100년을 감소시켰다.
딱히 눈을 마주치거나 할 필요 없이, 상대의 얼굴만 보면 스킬은 적중한 걸로 판정받는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라도 수명 100년이 한 번에 줄어들면, 좋든 싫든 즉사할 수밖에 없다.
염훈과 괴물 박제사의 눈에만 시스템 메시지가 보였다.
-플레이어 염훈의 수명이 100년 감소하였습니다!
우당탕!
염훈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추락했다.
“다음은 너다.”
괴물 박제사가 은혁을 돌아봤다.
[100년을 빼앗는 시야]의 쿨타임은 30초 정도였다.
괴물 박제사는 자신의 박제품들 사이로 몸을 숨긴 채 시간을 끌려 했지만.
빠악!!
염훈의 빅 썬더가 괴물 박제사의 머리를 갈겼다.
“뭐……!”
괴물 박제사는 비틀거렸다.
괴물 박제사는 몰랐지만 염훈에게는 이런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로 떠 있었다.
-플레이어 염훈의 수명이 200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랬다.
기존 염훈의 수명이 300년으로 이미 연장된 상태였기에, 이번에 100년이 깎여도 여전히 200년이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괴물 박제사는 허둥거렸고.
“[홀리 썬더]! 최대 위력으로!!”
빠악!!!
추가타에 의해 머리가 터졌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답게, 이 정도의 치명상에도 즉사는 하지 않았다.
“잘했다, 염훈!”
은혁은 청염백광단검을 쥔 채 달려갔다.
“[도축] + [그림자 귀속] + [사이오닉 필드]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무려, 스팀펑크 메카닉, 그림자를 지배하는 도적,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의 3중 퓨전 스킬이었다.
“퓨전 스킬 [영원 박제]!!”
번쩍!!
섬광과 함께 괴물 박제사의 몸이 강제로 박제되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인간인 척하던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 탐욕스러운 괴물의 형상으로 재구성됐다.
-괴물 박제사를 박제하여, 영원히 소유하셨습니다!
“좋았어!”
이전에 26층~29층 구간에서 피에로 마스터를 [그림자의 꼭두각시]와 [강탈] 스킬로 처리했던 방법은 관리국에 의해 엄중히 금지되었기에, 은혁은 아예 통째로 박제시켜서 소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축하드립니다! 43층 히든 룸을 클리어하셨습니다!
-43층 히든 룸의 새로운 주인이 되셨습니다!
“좋아! 잘했다, 염훈! 몸은 어때?”
은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미리 염훈의 수명을 연장시켜 둔 은혁이었지만, 내심 조마조마했다.
“어우, 기분이 묘하네.”
염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차피 300살까지 사는 거였다가 깎인 거긴 한데, 와, 솔직히 오싹하더라.”
그 순간.
-축하드립니다! 성기사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4차 각성 선택지를 선택해 주십시오!
-A. 직업의 등급을 올린다.
-B. 직업을 승급한다.
“어느새 4차 각성이네.”
“축하한다, 염훈. 일단 여기까지는 등급을 올리고, 5차 각성이나, 늦어도 6차 각성 즈음에 승급을 선택하도록 해.”
“지금 승급해도 되지 않아?”
“그래도 되긴 되는데, 너도 알다시피 한번 승급하면 성장 속도가 꽤 느려지거든. 그리고 승급을 선택한 시점의 명성과 등급에 따라 승급 선택지가 변하는데, 지금 바로 승급하기보다는 천천히 하길 권하고 싶어.”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축하드립니다! 4차 각성하셨습니다!
-4차 각성 선택지로, 등급을 올리셨습니다!
-SS-급 직업 불패불굴의 성기사 → SS급 직업 불패불굴의 성기사
-모든 스탯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모든 스킬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근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근력 : A → A+
-축하드립니다! 의지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의지력 : A- → A
-현재 성기사 숙련도 : 0%+++.
-성기사 패시브 스킬 [한서불침]을 획득하셨습니다!
-성기사 패시브 스킬 [수명 확장]을 획득하셨습니다!
-성기사 스킬 [언데드 파괴]를 획득하셨습니다!
-성기사 스킬 [광역 질병 치유]를 획득하셨습니다!
4차 각성으로 등급을 올린 염훈의 패시브 스킬이 자동 발현됐다.
-[수명 확장] 패시브 스킬에 의해, 수명이 자동 연장됩니다!
-기존에 연장된 200년 치 수명 확인!
-수명을 2배로 연장합니다!
-플레이어 염훈의 수명이 400년으로 증가하였습니다!
“허참.”
염훈은 기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얼마 전에 수명이 300살로 연장됐다가 방금 200살로 줄었고, 다시 400살이 되었으므로.
염훈이 그 사실을 말하자 은혁은 웃었다.
“축하한다. 수명 늘었네?”
“이건 뭐 수명이 고무줄도 아니고.”
“너라면 영생도 아주 불가능은 아닐 거다.”
실제로 3군주나 7대 길드의 길드장들 대부분은 수명이 극단적으로 길거나, 거의 영생에 가까운 자들이다.
‘이번 생은 정말로 오래 살게 만들어주마, 염훈.’
은혁은 내심 다짐했다.
‘근데 회귀 전보다 약간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데 그건 용서해라.’
은혁이 묘한 다짐을 하는 동안 염훈은 박제된 몬스터 사체들을 관람했다.
“은혁아 이거 봐봐라. 여긴 거의 박물관 수준인데?”
“그걸 노리고 온 거야.”
이제 이 히든 룸은 은혁과 염훈의 공동 소유다.
그리고 히든 룸에는…….
“뭐 일부러 찾아 나설 것도 없네. 잔뜩 있구나!”
거대한 드래곤의 사체들도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갑옷 제작용 재료 수급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완전히 새롭게 제작하는 갑옷이기에 시행착오가 우려됐다.
하지만 재료가 이토록 많으니 시행착오 걱정 없이 일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염훈. 일단 드래곤 사체들부터 옮기고 싶은데 도와줄래?”
“전부? 좀 빡셀 거 같은데?”
“4차 각성한 성기사의 저력을 보여달라고. 자, 인벤토리창에 조금씩 나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