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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35화 (235/434)

235화 : 노숙자 구출

43층 전체가 일시 정지되었다.

쿠폰을 뜯고 다른 층에 도전하려던 플레이어들은 화를 냈다.

“뭐야, 왜 갑자기 막힌 건데?”

“어이! 43층 관리자! 설명 좀 해봐!”

하지만 43층 관리자인 마카론은 입을 다물고 곤혹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43층 히든 룸은 일종의 필요악이었다.

몬스터 사체의 부산물들이 너무 많아지면, 몬스터 룸 청소와 수복에 시간과 마력이 너무 많이 든다.

히든 룸에 거하는 몰락한 지고의 위상, 괴물 박제사는 그런 점에서 쓸모가 있는 존재였다.

이따금 드래곤과 같은 진정한 괴물의 사체를 멋대로 갖고 와서 히든 룸에 진열하는 등의 기행으로 드래곤 컬트의 경고를 듣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긴 했지만, 그래도 43층의 청소부로서는 최고였다.

‘그런데 그걸 통째로 뺏긴다고?’

절반 정도는 43층 관리자의 실수였다.

괴물 박제사에게 과도한 권한을 넘겨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물 박제사는 히든 룸의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괴물 박제사를 죽인다고 해서 히든 룸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

은혁이 괴물 박제사를 통째로 도축해 버렸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뿐.

‘시스템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

43층 관리자도 은혁에 대해서는 들은 바 있었다.

은혁이 28층을 장악하기 위해 피에로 마스터에게서 마스터키를 탈취한 꼼수에 관해, 관리국 요원들에게도 주의 경보가 내려졌다.

그리고 시스템적으로 같은 방법은 쓸 수 없도록 막아뒀다.

하지만 은혁은 새롭게 얻은 직업 스킬들을 조합하여 또다시 꼼수로 43층 히든 룸을 장악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상급자가 오실 겁니다.”

그 순간.

파앗!

정장을 입은 한 동양인 여자가 나타났다.

가슴의 명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관리국 차장 : 노리

“차장님?!”

43층 관리자는 깜짝 놀랐다.

차장급이 현장에 나타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마카론.”

“예, 차장님.”

“꽤 골치 아픈 상황이 되어 버렸네.”

“그렇습니다. 이건…….”

“아아, 변명은 넣어둬. 강은혁이 히든 룸에 정말 갈 줄은 알았어도, 설마 괴물 박제사를 박제해서 모든 소유권을 빼앗을 거라는 것까지는 예상 못 했다…… 라고 말하려는 거지?”

“…….”

“아, 이래서 몰락한 지고의 위상에게 히든 룸 같은 걸 맡기면 안 돼. 맡겨두면 편하긴 해도 가끔 이렇게 사달이 나니까. 그렇지?”

“그, 그렇습니다.”

“하여, 이번에도 강은혁의 꼼수를 인정하기로 했어. 단, 이번에도 박제와 같은 방식으로 특정 권능의 소유권을 뺏는 것은 금지하기로.”

“그렇군요…….”

“너무 침울해하지 마. 딱히 네 잘못은 아니니까. 다만 43층 개편은 이뤄질 예정이고, 너는 다른 층으로 옮겨질 거야. 플레이어들에게도 통보해.”

“저어.”

“뭔데?”

“여기 있는 노숙자들은 어쩌지요?”

“노숙자? 그게 뭔데?”

“아, 실제 노숙자라기보다는…… 아니, 실제 노숙자가 맞긴 하군요.”

마카론은 43층을 떠나지도, 재도전하지도 못하고 갇힌 채, 마음이 꺾이고 추레해진 플레이어들에 대해 설명했다.

“당장 스테이지 개편을 하면, 여기 방치된 노숙자 플레이어들은 갈려 나갈 텐데요.”

“그런 것까지 신경 써 줄 이유는 없지. 이곳에 머무는 게 규칙 위반은 아니지만, 머물다가 죽는 것도 규칙 위반은 아니니까. 3일의 유예를 줄 테니 알아서 떠나라고 해.”

“자, 잠시만요.”

“아, 그러고 보니 그 노숙자들. 여기서 공짜로 먹고 잤던 거 아냐?”

“네? 그야 미션 페널티 비용을 갚을 수 없으니…….”

“그런 것들을 일일이 먹여주고 재워주다니. 쯧.”

노리는 그렇게 말하더니 대뜸 영수증 같은 것을 한 장 휘갈겼다.

“그동안의 숙식비도 전부 내고 가라고 해. 낼 수 없으면 그냥 죽여 버려.”

“잠시만요! 이런 식으로 사후 청구를 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상관의 명령에 거부하는 거야?”

“그, 그게 아니라, 이러다간 관리국의 명성이 떨어질까 우려됩니다.”

“그딴 걸 네가 신경 쓸 위치가 아닐 텐데? 하여간 바빠. 지시대로 해.”

파앗!

관리국의 차장, 노리는 다시 사라졌다.

혼자 남은 마카론은 곤혹스러워했다.

“어쩌지…….”

“크흠.”

“으왓?!”

어느새 은혁이 뒤에 와서 헛기침을 했다.

“미션 다 깨고 왔습니다만.”

43층 대기실로 복귀하여 보고한 순간, 클리어 보상 메시지가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43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74.

“아, 그러셨군요.”

마카론은 조금 경계하는 눈으로 은혁을 돌아봤다.

은혁이 뭔가 말하려는데 마카론이 먼저 말했다.

“히든 룸을 얻으셨더군요.”

“네. 아, 악용할 의도는 없습니다. 조금 다른 용도로 쓸 생각이긴 하지만.”

“다른 생각이라면?”

“노숙자 플레이어들 때문에 골치 아프셨죠?”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앞으로가 좀 걱정이긴 합니다…….”

마카론은, 관리국 차장 노리와 있었던 이야기를 고민 끝에 들려줬다.

은혁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관리국 소속이라도 사람마다 다 천차만별이군요.”

비교적 선량한 마카론 같은 자도 있는가 하면, 성마른 노리 같은 자도 있다.

마카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혁은 노숙자들을 어떻게 구할 건지에 앞서, 중요한 이야기를 먼저 했다.

“우선, 히든 룸의 소유권은 제게 있는 게 맞지요?”

“그렇습니다. 43층이 개편되더라도 43층 히든 룸의 소유권은 유지됩니다.”

원래는 쿠폰을 뜯어야만 입장이 가능하지만, 이제는 은혁과 염훈의 소유다.

완전히 자유자재로 들락날락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리고 히든 룸에서는 43층 이하의 다른 층으로 이동이 가능하죠?”

“이론상 가능하지만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또한, 5층 미만으로는 갈 수 없도록 설계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마카론은 히든 룸의 한계와 멋대로 사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주의사항에 대해 말했지만, 은혁은 잘 듣지도 않고 중얼중얼했다.

“5층 이상, 43층 이하까지만 이용이 가능…… 좋아…… 좋았어……!”

“뭐가 그리 좋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용건은 끝났습니까?”

“아차, 이 말 하려고 했는데. 노숙자들은 제게 맡기십시오.”

“43층을 떠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돈이 없습니다.”

은혁과 파티를 맺은 노숙자들은 미션 클리어 판정을 받았다.

단, 은혁이 오기 전에 이미 생긴 크고 작은 미션 실패 페널티에 따른 돈을 내야 했다.

물론, 은혁은 이미 노숙자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주었으므로 미션 페널티 관련 벌금은 전부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노리가 휘갈겨 쓰고 간 영수증에는 악의적인 거액의 액수가 적혀 있었다.

예상치 못할 돌발 상황임에도, 은혁은 피식 웃었다.

“그것도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잘됐군요. 안 그래도 실험해 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네?”

“일단 이렇게 합니다.”

-히든 룸의 외부인 입장 조건을 변환하였습니다!

-강은혁과 염훈의 허락을 받은 플레이어 및 NPC는 추가 조건 없이 이용 가능합니다!

은혁은 히든 룸의 설정을 건드렸다.

원래는 별 1개, 2개, 3개짜리 몬스터 룸을 전부 클리어하고 쿠폰을 10장 이상 찢어야 하지만, 그런 조건을 없앴다.

염훈과는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이제, 노숙자들을 히든 룸에 옮길 겁니다. 그리고 저와 염훈은 5층으로 되돌아간 뒤, 그들을 다시 꺼냅니다.”

“하지만 그건…….”

“벌금 안 내고 구출하는 꼼수죠. 맞습니다.”

“그런 꼼수를 43층 관리자인 제가 눈감아 줄 수는…….”

“어차피 43층은 크게 개편될 거 아닙니까. 그리고 저 노숙자 플레이어들은 충분히 고통받았고 교훈도 얻었을 겁니다.”

“…….”

마카론의 고뇌는 짧았다.

‘그렇게 하자.’

만약 43층을 개편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면 모른 척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노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짜증스럽게 청구한 숙박비 같은 것은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요구였다.

마카론은 노숙자 플레이어들이 모두 갈려 나가 죽게 둘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히든 룸을 떠올린 마카론은, 은혁을 보며 감탄했다.

“과연……. 당신은 처음부터 모두를 구할 생각이었던 거군요.”

마카론은 내심 은혁을 다시 봤다.

‘개인적인 이기심 때문에 히든 룸에 들어가서 꼼수를 부리고 깽판 친 게 아니었어. 여기 갇힌 노숙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히든 룸의 소유권을 뺏었던 거야.’

물론, 마카론의 감탄과는 별개로, 은혁은 목적을 달성했다.

노숙자들 구조는 일종의 추가 실험이다.

‘히든 룸 엘리베이터 테스트.’

이미 은혁에게는 [그림자 터널]이라는 희대의 사기 스킬이 있기에, 부하들을 자유자재로 끌어 올릴 수 있다.

다만 마력 소모는 꽤 큰 편이고, 오직 은혁의 스킬에만 의존하는 일이므로 제약이 조금 있다.

‘만약 히든 룸의 이용 권한을 불패불굴 길드의 팀장급들에게 나눠 준다면? 그리고 엘리베이터 쓰듯이 이용하게 해준다면? 그 경우 히든 룸에 들어온 플레이어는 메인 미션의 클리어 여부와 무관하게 이동이 가능할 것인가?’

히든 룸의 이용법에 대해서는 은혁도 회귀 지식으로 아는 바가 없으므로 안전성 테스트를 해야 한다.

‘99%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노숙자 여러분? 여러분이 함께 실험에 탑승해줘야겠어.’

* * *

실험 결과는, 당연히 성공적이었다.

은혁, 염훈, 노숙자 플레이어들은 메인 미션 실패의 벌금을 내지 않고, 히든 룸을 경유하여 5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단, 노숙자 플레이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떴다.

-비정상적인 방식의 이동 감지 확인!

-같은 방식의 이동은 금지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관리국과 상담하세요!

반면에 은혁과 염훈에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아하. 정상적으로 미션을 클리어하고 히든 룸을 이용하는 나와 염훈은 문제가 없지만, 노숙자들은 미션 실패 벌금을 안 내고 꼼수로 내려왔기에 저런 메시지가 뜨는구나.’

즉, 미션을 클리어하지 않고도, 1회에 한하여 히든 룸을 엘리베이터처럼 써서 이동하거나 도망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그 방식은 1회에 한정되며, 관리국에 통보된다.

결국, 정상적으로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며 탑을 오르는 게 낫다는 소리다.

‘그래도 이미 클리어한 층을 급히 오가거나, 여차할 때 긴급 탈출용으로는 쓸 수 있겠는데?’

은혁이 정리한 순간.

“고맙네. 정말 고마워.”

사무엘레가 다가와서 연신 감사를 표했다.

“별거 아닙니다. 그보다 이제부터가 어렵지요.”

노숙자 생활을 오래 해온 플레이어들은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레벨이 낮은 이들도 아니지만, 43층에 갇혀 무력감 속에 있던 시기가 길었던 탓이다.

43층 메인 미션에 실패하고 나락에 떨어졌던 이들인지라, 다시 탑을 오르려면 개편된 43층부터 재도전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으리라.

“그래도 고맙네. 정말로. 이 은혜를 어찌 갚지?”

“그럼 복지 사업에 임해주시죠.”

은혁은 금화와 수표를 사무엘레에게 내밀었다.

“이, 이건?”

“노인과 노숙자들을 위한 복지원 하나 차리시죠.”

은혁은 사실 고민을 좀 했다.

‘길드로 끌어들이기에는 쓸모가 없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것이 딱 사무엘레와 노숙자 플레이어들의 가치였다.

불패불굴 길드원이 되려면 최소한의 실력을 갖춘 것뿐만 아니라, 염훈을 흠모하거나, 100층탑 오르기에 의욕을 품은 자들이어야 한다.

이들은 레벨은 높아도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진 상태다.

일일이 길드로 끌어안은 채 보듬어 주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지. 그리고…….’

은혁은 지금까지는 단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계획을 주로 세웠지만, 이제부터는 장기적으로 길드연합국 전체를 위한 계획도 조금씩 세울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복지원 프로젝트’는 그런 계획 뿌리기 중 하나였다.

“지금 제가 구출한 노숙자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5층 길드연합국에 머물고 있는, 도움 받지 못하는 모든 노숙자들도 전부 찾아서 돕는 일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으음……!”

사무엘레는 강한 책임감과 의욕을 동시에 느꼈다.

“정기적으로 28.5층으로 오십쇼. 복지원 기금과 쌀을 드릴 테니. 단, 기금 사용 내역은 투명하게 정리해서 길드 본부 지배인에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흐흑, 흐흐흑…….”

사무엘레는 갑자기 울었다.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은혁은 사무엘레에게 몇 가지를 추가 당부했다.

구원 길드나 평화 길드 측에서 가입을 권유하면 하지 말 것.

꼭 노숙자가 아니더라도 힘들어 보이는 노약자가 있다면 그들도 모두 보호할 것.

사무엘레는 그러겠다고 맹세했다.

사무엘레는 의욕을 잃은 노숙자 플레이어들을 인솔하여 이동했다.

‘후후후. 선행은 미리미리 해둬야 하는 법.’

사무엘레와 노숙자, 그리고 기타 노약자들은, 은혁의 길드연합국 장악을 위한 큰 한 걸음이 되어줄 터였다.

‘길드연합국 장악이 가시권이 들어오기 이전인 지금! 미리미리 선행을 베풀어 둬야 한다!’

길드연합국 장악이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뒤늦게 사람들 돕는다고 나서면 민심에 좋지 않으므로.

“착한 일 하니 기분이 좋군. 그렇지 않냐, 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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