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 아벨의 기억 (1)
‘으음……!’
비틀!
은혁은 옆으로 쓰러질 뻔했다.
“앗! 괜찮으세요?!”
아벨이 놀라서 묻는 소리, 1초 뒤 염훈이 달려오는 소리…….
은혁은 겨우 정신을 유지한 채 말했다.
“마,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네. 왜 감옥에 되돌아가려고 하지?”
“그야…….”
말하려던 아벨은 당황해했다.
기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은혁은 과거의 기억을 보게 되었다.
은혁의 예상보다, 한참 이전의 과거였다.
* * *
100층탑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먼 과거.
최초의 플레이어들이 100층탑의 1층으로 전송되었다.
그 숫자는 겨우 100명.
100층탑의 관리국장이 최초의 플레이어를 100명만 선출했기 때문이다.
그 100명은 각각 군인, 예술가, 건축가, 과학자 등등.
지구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 또는 100층탑에 들어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100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엄선된 존재들이다.
이 당시의 100층탑은, ‘입장권’을 지닌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100인을 관리국장이 1층에서 직접 맞이해줬다.
이때는 튜토리얼도 없었고 오리도 없었다.
“100층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가면을 쓴 관리국장은 호들갑스럽게 인사했다.
관리국장의 가면은 마치 구원 길드장 올마스크의 것과 비슷해 보였다.
“여러분은 70억 지구인 중에서 최초로, 입장권을 이용하여 100층탑에 온 영광스러운 최초의 100인입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인종의 여러분은……!”
연설을 하려는데,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무척 졸린 표정을 한, 한국어가 유창한 미국인 청년.
훗날의 연구 길드장, 빌이었다.
“질문 있는데요.”
“음, 하시지요.”
“어떻게 나갑니까?”
“하하. 들어오자마자 나가는 법을 물어보시는 건가요? 나가는 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관리국장이 천장을 가리켜 보였다.
“100층탑의 꼭대기인 100층까지 전부 클리어하는 것.”
“어떻게 올라갑니까?”
“크크큭. 차차 알게 될 겁니다. 다만, 쉽지는 않을 거라고만 해두죠.”
“망했군.”
빌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빌 옆에 선 여자는 팔꿈치로 빌을 찌르며 화를 냈다.
은혁은 그 여자가, 과거 ‘100층탑 강림 사건’ 관련 기억 속에 나왔던 여자 연구원임을 확인했다.
“당신 미쳤어?! 왜 그리 무례해?”
“대조군으로서 의미가 있을 텐데요.”
“뭐?!”
“실험을 하려면 비교대조군이 필요하죠. 당신은 희망을 품고 100층탑의 지배자에게 알랑거리는 역할. 나는 반대로 비관적으로 투덜거리는 역할.”
빌이 대놓고 말하자, 빌에게 화를 내던 여자는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었다.
관리국장은 빌을 보고 오히려 껄껄 웃었다.
“재미있는 분들이 많이 오신 것 같군요. 물론, 찬물을 끼얹으려는 재미없는 분도 있지만.”
관리국장의 말에 여자 연구원은 흠칫했다.
하지만 관리국장이 겨냥한 자는 그녀가 아니었다.
관리국장의 시선이 꽂힌 곳에는 두 청년이 있었다.
청년들은 형제로 보였는데, 그중 어린 쪽이 갑자기 관리국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인류 만세!!!”
지구에는 100층탑의 강림을 인류의 위협으로 보는 조직이 있었다.
그런 조직은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이 사내도 그런 조직 중 하나에 속해 있었으며, 조끼형 자폭 장치를 품속에 품고 있었다.
조끼에 싸구려 파이프 폭탄을 두르고, 그 위에 또 TNT 폭탄을 여러 개 장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폭 조끼의 무게는 가장 무거운 수준으로, 무려 25kg.
폭탄 조끼치고는 너무 무거워서 입고 뛰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사내는 초인적인 의지력으로 달려들었다.
“으악?!”
“미친! 자폭 테러냐!”
“다 피해!!”
모두가 어지러이 도망치는 순간, 유난히 냉철한 눈을 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자폭 장치를 착용한 자의 형이었다.
그 형은 뒤로 몸을 날리면서, 주머니 속에 든 버튼을 눌렀다.
찰칵!
번쩍!!
섬광이 일어났다.
콰콰쾅!!!
당연히 막대한 폭발도 일어났다.
하지만.
슈오오오오……!
폭발은 작은 테니스공 크기로 압축되더니, 관리국장의 손가락 위에 맺혔다.
“훅!”
관리국장은 마스크를 쓴 채로 가볍게 입김을 불었다.
파앗!
폭발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허허. 아주 막 나가는군요. 암살 시도라.”
관리국장은 웃었다.
“어, 어째서……!”
폭탄의 버튼을 누른 청년은 당황해했다.
모처럼 동생을 희생시켜가면서 관리국장을 죽이려 했건만, 정작 그 관리국장은 가볍게 폭발을 축소시켰다.
“당신들은 ‘아카데미’ 소속이었죠, 아마? 100층탑의 존재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저를 암살하려 한 거 같은데, 그리 지혜롭진 않군요.”
관리국장은 가볍게 웃었다.
“100층탑이 어떤 곳인지 알려드리죠.”
관리국장이 청년을 가리킨 순간.
-축하드립니다! 100층탑 최초의 친족 살인 확인!
-최초의 친족 살인자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상으로 수명이 1,000살로 증가합니다!
-업적 달성 보상으로 막대한 양의 레벨이 증가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40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41.
수명이 급증하고, 1층에서부터 레벨이 41에 도달했다.
1층의 플레이어들은 경악과 부러움 때문에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청년은 기뻐하지 않았다.
“아니야……!”
청년은 부들부들 떨었다.
“난! 동생을 죽인 게 아니야!”
청년의 외침에 관리국장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죽인 겁니다.”
“아니야! 이건, 내 동생과는 합의가 되어 있었어!”
그랬다.
두 형제 중 동생 쪽은 자폭 조끼를 입고, 형 쪽은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자폭 조끼는 최대한 무겁게 만들어졌기에 뛰어들면서 버튼을 누르기가 의외로 힘들다.
또한, 동생 쪽이 마지막 순간 과감하게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서 형이 누르기로 했다.
“그래도 당신이 죽인 겁니다. 실제로, 당신은 몸을 뒤로 날리면서 버튼을 눌렀죠?”
“……!!”
“당신 동생은 잿더미도 안 남았는데, 당신은 폭발 범위 밖으로 조금이나마 몸을 더 날리면서 버튼을 누르려고 했잖습니까? 그럼 당신이 죽인 거죠, 뭐.”
털썩.
청년은 무릎을 꿇었다.
“100층탑 내에서 플레이어에 대한 관리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왜냐하면 시스템 관리 권한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차차 배워나가시길. 그리고…….”
관리국장은 잿더미조차 남지 않은, 자폭 조끼를 입은 동생을 부활시켜주기로 했다.
“불쌍하니까 살려줍시다, 라기보다는 튜토리얼 같은 게 필요하겠군요. 다음 기수부터는 튜토리얼을 넣어줘야지. 일단…….”
관리국장이 중얼거리면서 동생 쪽을 부활시켜줬다.
파앗!
“아……?”
즉시 부활한 동생은 혼란스러워했다.
죽었다가 되살아난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혼란스러운 점은…….
“혼란스럽죠? 그래서 사태 파악하시라고, 당신이 죽은 동안 내가 당신 형과 나눈 대화도 당신 기억 속에 저장해서 부활시켜줬습니다.”
관리국 국장의 과잉 친절이 동생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최초로 죽은 플레이어니까, 당신도 업적 달성이 필요하겠죠?”
-축하드립니다! 100층탑의 플레이어 중 최초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최초로 죽은 자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상으로 수명이 1,000살로 증가합니다!
-업적 달성 보상으로, ‘관리국 인턴 자격증’을 획득하셨습니다!
“무, 무슨 일이……?”
동생 쪽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여전히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몸과 함께 옷도 다 수복되었는데, 폭탄 조끼는 사라지고, 대신 목걸이 형태의 인턴 자격증만 목에 걸려 있었다.
“대단하군……!”
빌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생명 부활, 에너지의 소멸, 물질의 생성 등.
과학 법칙을 모조리 부정하는 관리국장의 모습은 빌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관리국장은 싱긋 웃었다.
“정규 튜토리얼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소개해서 미안합니다. 저희도 처음이라서요. 어차피 뒤죽박죽인 거, 그냥 멋대로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바깥 세계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관리국장이 자살 폭탄 테러를 시도했던 형제를 돌아봤다.
“모처럼이니까 이 두 사람 이름은 제가 지어드리죠.”
관리국장은 시스템에 간섭하여 멋대로 이름을 지었다.
“형의 이름은 카인. 동생의 이름은 아벨. 참 좋은 이름이죠?”
그렇게 두 형제의 이름은 카인과 아벨이 되었다.
그 순간.
“이 멍청한 개자식!”
뻐억!
갑자기 카인이 아벨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쳤다.
“네가 어중간한 거리에서 인류 만세 같은 소리를 외치니까! 저 관리국장이 미리 대비를 한 거 아니냐!!”
뻐억! 뻐억!
“이렇게 된 건 전부 네 책임이다!!”
누가 봐도 괜히 카인이 아벨 탓을 하는 것이다.
아벨은 맞으면서 해명했다.
“아, 아니야, 형! 나는 맹세대로 했어! 최대한 접근해서, 인류 만세라고 외쳐서 형한테 신호를 주겠다고 미리 약속……!”
“닥쳐! 닥쳐!”
그 순간.
파앗!
-허락받지 않은 폭력이 감지되었습니다!
-폭력을 휘두른 자에게 저주를!
퍼버벅!
그동안 카인이 아벨에게 가한 폭력이, 몇 배로 증폭되어 카인에게 돌아왔다.
“으악……!”
“하하하하!”
관리국장은 웃었다.
“선포하지요. 지금 이 순간부로 아벨을 향해 허락 없이 폭력을 휘두르면, 몇 배로 증폭되어 되돌아 갈 겁니다.”
관리국장은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했다.
“가장 먼저 죽은 자이니, 그 정도의 히든 보너스는 있어야지요? 반대로, 가장 먼저 살인을 저지른 카인에게는…….”
관리국장은 허공에 손짓을 가하여, 카인을 향한 히든 페널티를 부여했다.
오직 관리국장과 카인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페널티였는데, 카인은 자신의 페널티를 확인하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자, 서로를 미워할 기회는 앞으로도 많이 있을 겁니다. 폭력은 이제 그만두시고……. 슬슬 미션과 직업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겠군요.”
<1층 메인 미션(베타 버전) : 직업 확인>
-목표 : 제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각자 자신의 직업이 적힌 종이를 확인한 뒤 들고 있을 것.
-성공 시 보너스 : 스탯창과 인벤토리창의 개방.
-실패 시 페널티 : 죽음.
-제한 시간 : 5분.
관리국장이 자신의 인벤토리창에서 종이를 100장 꺼냈다.
파라락!
종이를 허공에 흩뿌리자, 각 종이는 플레이어들에게 한 장씩 나뉘어 날아갔다.
“여러분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드릴까 했는데, 여러분은 최초의 플레이어들이자 일종의 테스터이므로, 제가 임의로 정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각 종이에는 각자의 직업이 적혀 있었다.
빌은 졸린 눈으로 종이를 읽었다.
‘A급 직업 원자를 지배하는 마법사.’
훗날 승급하여, 원자를 지배하는 사이오닉 메이지가 된다.
그때였다.
“이봐요! 잠시만요!”
빌과 함께 온 여자 연구원이 화를 냈다.
그녀는 무례하게 행동한 빌을 나무랐던 것도 잊은 채, 종이를 관리국장에게 들이밀었다.
“이 직업은 뭐죠?!”
“적혀 있는 그대로입니다만.”
“그러니까! ‘E-급 직업 술을 잘 흡수하는 전사’라니요! 이게 뭔……!”
“그게 당신 직업입니다.”
“납득 못 해요! 저는 과학자입니다. 술은 살면서 한 잔도 못 마셔봤고요! 그런데 술을 잘 흡수한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제부터 새롭게 살아보시죠. 아니면 주체적으로 직업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보시든가.”
“바꿔 주세요!”
그때였다.
“어이. 그럼 나랑 바꿀래?”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군복을 매우 불량하게 입은 남자였다.
그 남자의 직업은 ‘D-급 직업 허무를 배격하는 혼돈술사’였다.
“직업이 너무 난해해서 원. 차라리 술 잘 먹으면 좋지, 뭐. 서로 바꾸자고?”
“아, 네! 그게 낫겠네요.”
여자 연구원이 자신의 종이를 내민 순간.
타앗!
남자는 그냥 종이를 뺏어 버렸다.
“무, 무슨 짓이죠?”
“이런 짓.”
찌익! 찌익!
종이 두 개를 멋대로 반씩 찢어 버렸다.
그러더니 대충 두 개를 멋대로 이어붙였다.
‘A+급 허무를 흡수하는 혼돈 전사.’
종이를 멋대로 찢고, 구기고, 붙여서 E-와 D-를 A+로 만들었다.
“읏차. 인정?”
남자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관리국장에게 물었다.
관리국장은 웃으며 인정했다.
“아무래도 당신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행복해 보이는군요. 이름을 해피라고 지어도 되겠습니다.”
“그럴까? 그러지, 뭐.”
해피는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