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 혈인술사 직업을 얻다
당시 교황제는 46층~49층에 터를 잡고 있었다.
교황제는 스스로를 최초의 황제로 칭했지만, 엄밀히 말해 그의 길드는 제국이라 부르기에는 애매한 수준이었다.
그 상태에서 5층의 7대 길드는 느슨한 연합민주정 형태의 길드연합국을 만들려 했고, 3군주 세력은 더 높은 곳을 장악하는 중이었다.
하여, 교황제와 그의 재상, 대장군, 대사제는 머리를 맞대어, 기이한 계획을 세운다.
‘심연 장악.’
복잡한 계획이지만, 요약하자면 심연을 장악한 뒤, 단숨에 100층탑을 다시 재정복한다는 계획.
실제로 가능한 계획인지 아닌지는 그들로서도 알 수 없었기에,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하는 수밖에 없다.’
교황제의 결단은 빨랐다.
그리고 불안해하는 브릭스, 찰스, 데니얼에게 말했다.
‘다들 불안해하는 거 안다. 너희들 중 일부는 내 계획에 따라오지 못하고 실패하는 자도 있겠지. 하지만 너희들 중, 이 불안을 극복하고 살아남는 최후의 1인에게 내 모든 게 담긴 검을 주겠다.’
이 당시의 교황제는 이미 자신의 영혼 절반을 뚝 잘라내어 ‘교황제의 검’에 넣어두고 있었다.
이 교황제의 검을 받는다는 것은 교황제의 모든 걸 계승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내일부터는 결전의 날이 연속으로 펼쳐질 거다. 최후까지 살아남는 후계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
때로는 교묘하게, 때로는 대놓고 부하들을 경쟁시키는 교황제.
브릭스, 찰스, 데니얼은 화가 났지만 교황제의 검을 물려받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컸다.
그 간절한 마음이 이는 동시에 신물이 난 브릭스는, 갑갑한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몰래 한 편의 드라마 대본을 작성해서 31층의 관리자에게 맡긴 것.
그것이 브릭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었던 셈이다.
다음날.
교황제는 부하들이 지닌 마력과 스킬, 각종 마정석을 소모하여, 흑룡파의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교황제 세력이 하필 흑룡파를 노렸던 이유는, 흑룡파가 가장 전투적이었기에, 차원의 문 개방이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로 드래곤의 차원을 습격한 덕분일까.
기습 효과 덕분에 진격은 순조로웠고, 여세를 모아 블랙 드래곤뿐만 아니라 다른 차원의 드래곤들도 학살했다.
교황제를 은근히 미워하던 부하들, 브릭스, 찰스, 데니얼은, 그때만큼은 교황제의 용력에 순수하게 감탄할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 만에, 교황제는 공식적으로 100층탑에서 가장 많은 드래곤을 죽인 플레이어가 되었다.
드래곤 컬트에 최악의 불명예를 안겨준 교황제의 앞에, 최악의 블랙 드래곤, 헬카리우스가 나타난다.
교황제는 부하들에게, 군주로서의 최후의 [명령]을 내리고, 계획대로 헬카리우스와 혈전을 벌였다.
교묘하게 패배를 당하기로 마음먹은 교황제였지만 대충 싸우진 않았다.
최강의 드래곤 슬레이어답게 헬카리우스에게도 치명상을 입힌 것이다.
그 직후, 교황제는 패배하고 죽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장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현장에는 교황제의 검만 남았다.
헬카리우스는 교황제의 검을 파괴하려 했지만, 교황제의 막대한 힘이 담긴 물건이었기에 불가능했다.
만약 ‘군주’의 자격을 가진 누군가가 교황제의 검을 쥐게 되는 경우, 교황제의 힘을 이어받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기에, 헬카리우스는 반드시 그것을 처리해야 했다.
심각한 부상으로 공들여 봉인하는 것이 어려웠기에, 헬카리우스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심연의 깊은 곳 어딘가를 향해 교황제의 검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헬카리우스 자신도 회복을 위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100층탑 최초의 제국과 드래곤들과의 격렬한 전쟁은 막이 내렸고, 교황제의 제국도 빠르게 몰락했다.
제국의 빠른 몰락은 이미 교황제와 합의된 사항이다.
교황제의 잔당들은 죽거나, 3군주 세력에 흡수되거나, 어딘가로 은둔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제의 최측근인 브릭스, 찰스, 데니얼은 교황제가 남긴 최후의 명령을 수행했다…….
* * *
‘그 명령이란?’
은혁이 묻자 브릭스는 한숨 쉬듯 말했다.
‘보면 모르나? 교황제의 차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스스로를 봉인하고 은둔하라는 명령이었다. 나는 고대 흡혈귀의 피와 관을 이용해서 나 자신을 흡혈귀로 만들고 봉인했지.’
스칼란이 이 관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대장군이었던 찰스는 고대의 늑대인간으로 변해서 야성에 모든 걸 맡긴 채 사라졌으며, 대사제였던 데니얼은 아귀와 트롤의 차원인 헝거 플레인으로 스스로를 던져 버렸지.’
‘……!’
상당히 철저한 방식의 은둔이며, 동시에 봉인이기도 하다.
저렇게까지 했다면, 브릭스, 찰스, 데니얼 중 그 누구도 교황제가 귀환하기 전에는 멋대로 제국을 계승할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자발적으로 한 일이지만, 사실은 교황제가 우리 셋을 교묘하게 조종한 거야. 교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교황제의 후계자 자격이 영구히 박탈되도록 [맹세]가 된 상태였거든. 교황제는 우리의 주군이지만 정말 제멋대로인 개자식이야. 그러니 치세 기간이 짧았던 거지.’
‘허…….’
위대한 교황제 전설을 이렇게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내 밑천을 다 드러낸 건지 모르겠군.’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으셨던 거 아닙니까?’
‘그런 거겠지. 이제, 어쩔 셈인가?’
‘우선, 당신의 목적부터 말해보죠.’
‘맞춰봐.’
‘교황제의 검을 얻는 것.’
‘잘 아는군.’
‘그 드라마 대본을 클리어했으니까요.’
은혁이 클리어한 미스터리 극장은 위대한 요리사의 레시피 북을 두고 벌어지는 살인극이었다.
거기에는 레시피 북으로 묘사가 되었지만, 그 레시피 북이 지칭하는 것은 교황제의 검이다.
‘교황제의 검은 단순히 강력한 마검이 아니죠?’
‘그렇다. 엄밀히 말해 교황제의 권위, 제국의 지배자로서의 권위, 제국에 명령을 내릴 권한 등의 시스템이 담긴 것이다.’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황제의 검을 찾아드리겠습니다. 그 대가로…….’
‘따르겠다.’
‘대가로 뭘 요구하는지 듣지도 않고서 말입니까?’
‘그 정도로 갖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리 내게 선택지가 있나?’
‘사실, 없네요. 제 제안을 거부하면 당신은 죽을 테니까.’
‘흐흐흐. 오만한 자로군. 그 정도의 각오가 없다면 심연을 각오할 수도 없겠지만.’
‘그럼 계약을 맺……기 전에.’
‘또 뭐냐?’
‘막상 교황제의 검을 찾았는데, 브릭스 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는 경우에는 어쩌시겠습니까?’
‘허, 그럴 가능성도 분명히 있긴 하지.’
의심 많은 교황제라면, 자신의 검을 부하들에게 물려줄 것처럼 해놓고, 부하 중 누군가가 획득하려 하면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놨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저에게 양도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뭐라고? 교황제의 검은 내 목표 그 자체다! 그걸 달라는 건가!’
‘어차피 이대로는 평생 가지실 수 없습니다. 사용하실 수도 없고요. 차라리 저희에게 협조해서 그 힘의 일부를 양도받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희라니? 무슨 뜻이지?’
‘실은 제 동료 중에 엄청난 성기사가 있는데…….’
은혁은 염훈에 대해 설명한 뒤, 간곡한 어조로 설득했다.
은혁 자신도 모르게, 거의 쓸 일이 없던 성직자 패시브 스킬 [설득의 태도]의 힘이 발현되었다.
‘사실, 브릭스 님께서 원하시는 건 교황제에게 한 방 먹이는 것 아닙니까? 여봐란듯이 교황제에게서 검을 뺏어서 휘두르는 게 보고 싶으실 뿐, 반드시 브릭스 님이 소유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게다가, 염훈에 교황제의 검을 지니게 된다면, 찰스 님이나 데니얼 님은 물론, 교황제 본인이 찾아와도 절대 뺏기지 않을 것입니다.’
은혁은 필사적으로 설득하며,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태도로 퓨전 스킬을 썼다.
‘성직자 패시브 스킬 [설득의 태도] +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스킬 [염상 부여].’
-히든 이펙트 발동!
그렇게 퓨전 스킬 [염상 설득]이 발동되었다.
지금의 브릭스와 은혁은 마음으로 대화하는 상태인 데다가, 은혁이 자신도 모를 정도의 무의식중에 발동한 [염상 설득]이었기에, 그 효과는 엄청났다.
‘……확실히 내 욕심만 내세울 때는 아니군. 지금의 나는 봉인되다시피 한 상태로,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으니.’
브릭스는 설득되었다.
은혁과 브릭스는 스탯창 [맹세]의 기법으로 계약을 맺었다.
<브릭스와 강은혁의 계약>
-강은혁은 심연에 존재하는 교황제의 검을 찾아 나선다. 단, 기한은 100년 이내로 한다.
-심연에서 발견된 교황제의 검 자체는 강은혁 및 염훈의 공동 소유이나, 교황제의 검 속에 담긴 제국 지배권, 교황제의 권위, 교황제가 지닌 비밀 등에 대한 열람권은 브릭스 또한 3순위자로서 이용이 가능하다.
-그 대신, 브릭스는 자신의 지위와 영혼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강은혁에게 바친다.
‘대충 이 정도군요.’
은혁 입장에서 극도로 유리하게 짜인 계약이었다.
하지만 설득된 브릭스는 크게 불쾌해하지 않았다.
‘그럼 나는 내 영혼을 제외한 모든 것을 지금 이 순간 바치겠다. 나는 흡혈귀의 차원에 있을 것이며, 네가 교황제의 검을 발견한 순간부터 다시 너와 함께할 것이다.’
그 순간, 브릭스가 지닌 모든 지식과 직업과 스킬이 은혁의 영혼에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지식과 경험의 홍수와 같았다.
‘큭!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직업을 얻을 때와 비슷하군!’
그 순간, 시간이 극도로 느려졌다.
‘아, 이 느낌은!’
-축하드립니다! ‘모든 직업의 가능성’이 새로운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새로운 직업 카드를 뽑아주십시오!
여느 때처럼 12장의 카드가 떠오르는가 싶더니.
슈와아악!
브릭스의 몸에서 핏빛 안개가 몰려나와 하나의 카드로 변했다.
‘윽, 어질어질한데?’
피로 만들어진 브릭스의 직업 카드에 담긴 힘의 용량이 얼마나 높은지,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울 정도였다.
파창!
그리고 그 핏빛 직업 카드가 기존의 은혁이 지닌 직업 카드 한 장과 충돌하면서 공개됐다.
-모든 직업의 가능성이 선택권을 제시합니다!
-본래 갖고 있던 사령술사의 가능성과 지금 쓰러뜨린 플레이어가 지니고 있던 사령술사의 가능성 중 원하는 것을 고르십시오!
A. F+급 직업 ‘헌혈할 때 빈혈이 예방되는 사령술사’.
(본래 지니고 있던 가능성)
B. SS-급 직업 ‘에너지를 흡수하는 혈인술사’.
(브릭스와의 계약을 통해 전달받은 가능성)
‘일단 내가 본래 갖고 있던 가능성은 역대급 막장 직업이네.’
헌혈할 때 빈혈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좋은 것 같지만, 사령술사로서의 메리트나 시너지가 전혀 안 보인다.
‘힐링 포션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뭔 헌혈이야!’
은혁은 A 선택지는 아예 기억에서 지워 버리기로 했다.
‘문제는 B 선택지인데.’
일단 ‘혈인술사’라는 직업은 사령술사의 승급직이다.
피를 이용한 술법이나 피의 저주에 특화된 사령술사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이해하기 쉽다.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게 뭘 의미하는 건지?’
너무 광범위한 이야기라 딱 와닿지 않았다.
‘일단 직업을 얻으면 이해도가 오르겠지.’
은혁은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직업을 얻었을 때를 떠올리고 각오했다.
‘B를 고른다!’
-축하드립니다! SS-급 직업 ‘에너지를 흡수하는 혈인술사’를 선택하셨습니다!
-에너지를 흡수하는 혈인술사 숙련도가 14% 증가했습니다!
-현재 에너지를 흡수하는 혈인술사 숙련도 : 14%+++.
‘뭣?!’
브릭스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다 보니, 무려 4차 각성한 자의 힘이 통째로 들어왔다.
-혈인술사 고유 스킬 [에너지 흡수]를 획득하셨습니다!
-혈인술사 스킬 [피의 포식]을 획득하셨습니다!
-혈인술사 스킬 [피의 재생]을 획득하셨습니다!
-혈인술사 스킬 [피의 지배]를 획득하셨습니다!
-혈인술사 스킬 [피의 저주]를 획득하셨습니다!
-혈인술사 스킬 [블러드 스피어]를 획득하셨습니다!
……
……
-혈인술사 스킬 [블러드 솔저 소환]을 획득하셨습니다!
-혈인술사 스킬 [흡혈증 치료]를 획득하셨습니다!
-혈인술사 패시브 스킬 [광기 면역]을 획득하셨습니다!
-혈인술사 패시브 스킬 [위압의 영기]를 획득하셨습니다!
-혈인술사 패시브 스킬 [광란의 시선]을 획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