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 스칼란과의 대결 (2)
-미확인 반지 :
식별을 어렵게 하는 주문, 또는 저주에 의해 식별되지 않은 반지.
섣불리 착용하다간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으니, 미확인 아이템 감정 능력이 있는 플레이어 또는 NPC, 성좌 등을 찾을 것.
-무게 조절 벨트 :
3성급 아이템.
무게 조절 다이얼이 달린 튼튼한 금속 벨트.
착용자의 몸무게를 30% 증가시키거나, 반대로 30% 감소시킬 수 있다.
갑옷을 착용한 자가 사용할 때 특히 효율적이며, 돌진할 때, 또는 방어할 때 번갈아 쓸 수 있다.
아이템을 확인한 염훈은 즉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은혁아!”
휙!
염훈은 미확인 반지를 은혁에게 던졌다.
“엥?”
“어차피 난 그거 쓸 줄도 모르고 해주할 줄도 모르니까 너 가져!”
염훈은 그렇게 말하고 무게 조절 벨트를 착용했다.
철컥!
소소한 능력을 가진 벨트지만, 비행 능력을 지닌 염훈이라면 자잘한 이득을 볼 수 있을 터.
“고맙다! 일단 할 일부터 하자고!”
“할 일? 저놈 죽이는 거?”
“아니! 일단 하급 흡혈귀들의 지배권을 넘길게. 그들을 인솔해서 부상당한 플레이어들을 모두 구출해.”
“너는?”
“그동안 싸워야지.”
사실, 해가 떴으니 게이트를 찾아서 탈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스칼란은 어딘가에 숨어서 [태양 광선]으로 그들을 노리는 상태.
“너와 내가 나뉘면, 놈은 날 노릴 거다. 그러니 네가 플레이어들을 구출하는 게 나아.”
기이이이잉……!
또다시 [태양 광선]의 힘이 모이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가!”
“쳇, 알았다! 조심해라!”
염훈은 은혁에게서 떨어졌다.
“[질주].”
타앗!
은혁은 저택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어리석은 놈! 건물 밖으로 나가면 더욱 쉬운 표적…….
비웃으려던 스칼란이 멈칫했다.
우르르르……!
건물 밖으로 나온 은혁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림자 분신 4.0] + [피의 지배]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그림자 분신 5.0]을 연속 발동한다!’
은혁은 속마음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이쯤 되면 그림자 분신도 아니고, 사실 그냥 분신이지.’
외모만 비슷한 게 아니라, 기능성도 다양해지고, 미션과 상호 작용도 가능하고, 이제는 피까지 흐른다.
이제는 [그림자 분신 5.0]이 파괴되는 경우, 그냥 그림자처럼 흩어지는 게 아니라 핏물을 흩뿌리며 소멸한다.
“[질주]!”
“[질주]!”
“[질주]!”
“[질주]!”
수많은 강은혁이 사방으로 [질주]했다.
“하하하! 어느 게 진짜인지는 흡혈귀의 눈으로 봐도 모를 거다!”
그랬다.
고위 흡혈귀는 흘깃 보는 것만으로도 피와 살로 이뤄진 존재를 빠르게 간파할 수 있다.
단, 은혁이 만든 [그림자 분신 5.0]은 본체와 완전히 똑같았기에, 구분이 불가능했다.
-크윽! 모조리 죽여 버리면 돼!
저택과 그 인근 부지에 스칼란의 사악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사악한 외침과는 어울리지 않게 환한 태양 빛의 기둥이 여러 개 생겨났다.
태양 빛의 기둥이 스무 개가량 생성되었다.
각 태양 빛의 기둥은 하나하나의 지름이 10미터 정도 되었으며, 빛이 점점 더 밝아졌다.
키이이잉……!
-태양 빛의 기둥이여! 싹 쓸어버려라!
번쩍!!
슈와아아아악……!!
말 그대로 소각의 빛.
화악……!
퍼석!!
[그림자 분신 5.0]은 사방으로 회피했지만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태양 빛의 기둥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디 숨었는지 찾았다.’
은혁은 스칼란이 태양 빛을 무기로 쓴다는 사실을 회귀 전에 얻은 정보로 알고 있었다.
배경 지식이 없었다면, ‘흡혈귀가 태양 빛을 무기로 쓴다고?!’ 하면서 조금 놀랐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것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저택 건물과 동화되었군.’
저택 건물 내에는 혈관 형태의 파이프들이 있다.
그중에는 스칼란이 타고 다닐 정도로 넉넉한 굵기의 큰 파이프도 있을 터.
그리고 스칼란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자기 자신의 피를 그 파이프에 먹여두고 길들여두는 세팅을 해뒀을 것이다.
그 안에서 은혁을 노리고 있을 터.
‘그 파이프 위치도 알아냈다.’
저택에는 유난히 두꺼운 건물 외벽이 있었다.
큼직한 파이프가 있을 만한 곳은 그곳뿐이었는데, 은혁은 그림자 분신들이 당하는 동안 메탈 서전트를 소환해서 벽면에 바싹 붙여뒀다.
‘메탈 서전트를 통해 [사이코메트리]를 쓴다.’
우우우웅……!
그러자 은혁은 핏물이 흐르는 수도관을 기괴할 정도로 몸을 좁게 한 채로 빠르게 이동하는 스칼란의 이동 경로 기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을 기반으로 이동 경로를 찾을 수 있었다.
은혁에게는 늘 그렇듯 두 개의 플랜이 있었다.
A. 스칼란만 꺼낸다.
B. 저택을 모조리 박살 낸 다음 스칼란을 꺼낸다.
평소 은혁 성격대로라면 B를 선호하겠지만, 염훈이 저택 안에 있고, 태양 광선의 공격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기에 A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우선 [텔레파시] 스킬로 염훈에게 물었다.
‘염훈! 구출은 끝났냐!’
‘다 끝났다! 근데 부상 수준이 워낙 심한 데다가 언데드라 그런가 치료가 잘 안 되는데?!’
‘일단은 그거면 돼! 나중에 치료하면 되니까! 커튼 따위로 직사광선에 안 닿게 가리기만 해줘.’
은혁의 피를 받아 블러드 솔저가 된 하급 흡혈귀들이므로, 직사광선이 그리 치명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커튼으로 가리지 않으면 무척 괴로울 터.
은혁은 염훈보고 먼저 탈출하라고 말하려 했으나, 염훈이 선수 치듯 물었다.
‘도움 필요하지 않냐?’
‘…….’
‘흡혈귀랑 싸우는 건데 나보고 빠지라고 하면, 그게 말이 더 안 되지?’
‘젠장. 그럼 이렇게 하자.’
은혁은 일단은 염훈에게 빠지라고 한 뒤, 작전을 설명했다.
‘상황이 그렇게 된다고?’
‘네 역할은 히든 카드다, 염훈. 일단 시키는 대로 해.’
‘쳇. 알았다!’
그리고 은혁은 심호흡을 했다.
“좋아, 그럼 해볼까!”
은혁은 미리 선즈 리볼버를 분신 중 하나에게 건네 둔 상태.
“[영거리 사격]!”
그 분신이 은혁의 목소리로 외치며, 저택의 한 부분을 근접해서 공격했다.
콰쾅!
화염탄이 벽을 부쉈지만.
파앗!
화르륵!
태양 빛의 기둥이 그 분신을 집어삼켰다.
그동안 진짜 본체인 은혁은 [은신] 스킬을 쓴 채 세븐 칼리버를 꺼냈다.
“차원의 낚싯대. 저격 모드.”
철컹!
저격 모드가 되면, 낚싯바늘만 보내서 차원의 벽을 넘어서 공격하는 것도 가능했다.
“[거대화]!”
파앗!
은혁은 낚싯바늘의 크기만 두 배로 키워서 날렸다.
“하앗!”
파앗!
커다란 낚싯바늘이 벽을 뚫었다.
퍼억!
그리고 스칼란의 몸에 꽂혔다.
“나와라.”
화악!
차원의 낚싯대가 생성한 작은 차원의 구멍을 통해, 핏물에 푹 젖은 스칼란이 끌려 나왔다.
“크아악!”
갑자기 태양광 밖으로 끌려 나온 스칼란은 괴로워하며 비명을 질렀다.
흡혈귀라면 피할 수 없는 태양광의 저주 때문이다.
“아악! 크와아악……!”
몸에서 연기까지 흩날리며 바닥을 굴렀다.
‘근데 난 안 속는다.’
스칼란은 [여명 지배]의 힘으로 태양광의 저주를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었다.
스칼란이 태양광에 피부 통증을 느끼긴 해도, 치명적이진 않은 것이다.
“크으으윽.”
실제로 지금도 몸부림을 치는 척하더니.
“캬악!”
냅다 은혁의 허점을 노리고 몸을 날렸다.
정확히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송곳니였지만.
“흡!”
은혁은 차원의 낚싯대를 뱀프릭 체인 소드로 전환시키며 [패링]을 썼다.
콰카칵!
터텅!
아슬아슬하게 [패링]이 통했다.
흡혈귀의 턱은 평소에는 인간 같아도 목을 노릴 때는 사람 머리통 크기보다 더 크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넓은 톱날 형태의 칼날로 [패링]하지 않고 맨손 [패링]을 했다면 통째로 팔이 씹혔을지도 모른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비했는데도 식겁한 은혁은 냅다 한 방 크게 갈겼다.
“[블레이징 러시]!!”
투쾅!!
콰콰콰쾅!!!
“……!!!”
스칼란의 복부에 꽂힌 화염과 돌진의 일격.
입을 크게 벌린 스칼란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뒷걸음질 쳤고.
“쿨럭!!”
몇 걸음 뒤에야 스칼란은 입에서 피를 토했는데, 그렇게 흘린 피의 온도가 40도를 넘겼다.
“역시 생명력이 끈질기군.”
이제 은혁은 뱀프릭 체인 소드로 마무리 일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혈운파의 수장, 쥬빌레 대공이시여……!”
스칼란은 무대 위의 비극의 연기자처럼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피구름 속의 송곳니로부터 간택 받은 자, 쥬빌레 드 오스트리아가 강림합니다!
슈구르르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피구름이 생성되었다.
‘죽여주는군.’
공기에서 피 냄새가 났다.
은혁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특유의 철분 맛이 느껴지는 듯했다.
송글송글……!
비가 그친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처럼, 피부에 좁쌀만 한 핏방울이 맺혔다.
주르륵.
피구름 속에서, 길고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의 나신이 몸을 드러냈다.
“후우…….”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나타난 그녀가 바로 쥬빌레였다.
쥬빌레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은혁과 스칼란을 번갈아 가며 봤는데, 스칼란은 부상당한 몸으로도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하려고 필사적이었으며, 은혁도 몸이 조금 떨렸다.
주르륵…….
‘큭.’
몸에 맺힌 핏방울이 쥬빌레를 향해 움직였고, 심지어는 은혁의 몸속에 든 혈액까지 쥬빌레를 향하려 했다.
‘[피의 지배]로 견딘다.’
만약 은혁이 [피의 지배] 스킬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어떤 식으로든 악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쥬빌레는 빙긋 웃었다.
주변의 핏방울을 그러모아 붉은 드레스를 만들어 입었다.
“상황은 대충 파악했어. 네가 강은혁이구나?”
“그렇습니다.”
은혁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
왜냐하면 쥬빌레는 지고의 위상이며 혈운파 흡혈귀의 조상인 피구름의 송곳니로부터 간택 받은 최고위 흡혈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3군주 카인의 측근 중 하나지.’
즉, 은혁은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3군주 측 세력과 접선한 셈이다.
“서로 곤란하게 됐다. 그치? 위대한 불패불굴 길드의 부길드장 씨?”
쥬빌레가 놀리듯 말했다.
은혁에 대한 정보를 이미 상당 부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자 스칼란이 비틀거리며 말했다.
“아뢰옵니다, 대공 각하. 저자는……!”
“닥쳐.”
푸확!!!
스칼란은 오래된 토마토처럼 터져 버렸다.
“그거, 제 사냥감이었는데요.”
“그 사냥감이 날 부른 거야, 강은혁 부길드장. 넌 지금 되게 심각한 상황이야.”
“왜요?”
“흡혈귀 사회는 혈운파건 고대혈족파건, 묘하게 봉건 사회라서. 하급 귀족이 도움을 청하면 상급 귀족이 도와줘야 하거든.”
“그건 아는데, 왜 당신이 온 겁니까?”
“아하, 남작이 도움을 청하면 자작이나 백작이 와야지, 왜 갑자기 대공이 튀어나오느냐고 따지는 거니?”
“따진다기보다는 궁금해서요.”
“얘한테 그 시험을 맡긴 게 나거든.”
쥬빌레가 은혁의 무기를 눈빛으로 쓸어봤다.
“보아하니 이 멍청한 애는 자기 임무를 너한테 맡기고, 그 보상까지 통째로 다 뺏긴 모양이네.”
“그 관속에 든 게 누군지 알고 계셨습니까?”
“먼 옛날 교황제의 측근 셋 중의 하나였지?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뭐, 거물인지 아닌지 살짝 애매한 녀석이었던가?”
쥬빌레는 대수롭잖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지금 쥬빌레의 전투력은 브릭스보다 높았다.
“그 정도면 다 알고 계신 것 같군요.”
“그리고 너는 너무 많이 알아. 이제 슬슬 죽어줘야겠…….”
말하려던 쥬빌레는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휴, 큰일 날 뻔했네. 카인 님이 먼저 전쟁 걸지는 말라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