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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49화 (249/434)

249화 : 뜨거운 토론 (2)

“아, 하필…….”

“거의 잊혀 가던 저 주제가 나오다니.”

“으으. 극혐.”

45층에 오래 머물며 토론하던 이들은 탄식하거나 앓는 소리를 냈다.

“으아, 어려운 게 걸렸나 봐, 은혁아.”

“그런가?”

은혁은 히죽 웃었다.

사회자 NPC가 7번을 뽑은 건, 은혁이 그렇게 유도했기 때문이다.

은혁은 상자에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다가가서 [그림자 지배]와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썼다.

상당한 경지에 오른 은혁이었기에, 직접 상자 속 내용물을 꺼내지 않아도, 상자 속 주제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런 뒤, 사회자 NPC가 실제로 주제가 적힌 종이를 꺼낼 때는, [그림자 지배] 스킬과 [염동력] 스킬을 이용해, 상자 속 종이를 움직였다.

사회자 NPC는 자신의 자유 의지로 주제가 적힌 종이를 뒤적였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은혁이 이리저리 종이를 옮겨서, 특정 주제가 적힌 종이가 자연스럽게 손에 드리워지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딱 하나인데…….’

문제는, 은혁이 고른 7번 주제가, 은혁이 생각해도 솔직히 어려운 주제라는 점이다.

‘정상적인 논리만 갖고 토론하면 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은혁이 일부러 어려운 주제를 고른 이유는…….

‘예상보다 불리하게 흘러갈 경우를 위해서지.’

쉬운 주제를 고르는 대신 막판에 뒤집을 수단이 없는 경우와 반대로 어려운 주제를 고르는 대신 막판에 뒤집을 수단이 있는 경우.

은혁은 후자를 택했다.

“하하! 두 분 모두 어려운 주제라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 NPC가 분위기를 띄우듯 말했다.

은혁과 디미트리는 서로를 무심히 바라봤다.

무슨 생각 중인지 들키지 않기 위해, 두 사람 모두 필사적이었다.

“논쟁이니까 서로 두 입장 중 하나를 택해야겠군요.”

“어느 쪽을 택하겠나?”

“저는 옳다 쪽을 고르죠.”

“그럼 나는 그르다 쪽이군.”

두 사람은 그제야 히죽 웃었다.

“그나저나 어려운 쪽을 택하셨군, 강은혁 플레이어.”

“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물론일세. 도중에 탈출하는 입장이 옳다는 쪽 아닌가?”

“엄밀히 말하자면 그르지 않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 가깝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지금 갑자기 하나 생각났는데요.”

은혁은 사회자 NPC에게 말했다.

“만약 무승부가 나면 어떻게 됩니까?”

“무승부라…….”

가능성은 낮지만, 100명이 판정을 내리는 것이므로, 50 대 50으로 갈릴 수가 있었다.

사회자 NPC는 무승부가 나는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는 두 플레이어가 결정하라고 했다.

“그럼, 제가 어려운 쪽을 골랐으니, 무승부의 경우 어떻게 할지는 제가 결정해도 되겠지요?”

은혁이 히죽 웃으며 말했고, 디미트리는 움찔했다.

계약 대결을 시작하기 전에 너무 여유를 부린 탓이다.

-추가 조건 : 만약 50대 50으로 무승부가 되는 경우, 제한 시간 3분의 일반적인 계약 대결을 진행한다. 단, 무기의 사용은 금한다.

“어떻습니까?”

“허어! 말로 해서 안 되면 주먹으로 싸우자는 건가?”

“이상할 거 있나요? 100층탑에서는 오히려 이게 정상입니다만.”

“허허. 그럼 그렇게 하세나.”

“잘 부탁합니다.”

“오오, 이쪽이야말로.”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나눴다.

-계약 대결이 체결되었습니다!

-시작까지 5초 전…….

논쟁이 시작되려 했다.

‘흐흐흐. 멍청한 놈.’

디미트리는 속으로 비웃었다.

‘넌 이미 내게 졌어.’

논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인드 배틀에 가깝다.

디미트리는 그런 마인드 배틀에 상당히 강했다.

‘눈만 마주쳐도 내 승리는 확정적이라는 걸 몰랐던 네 패배다. 크크크.’

디미트리의 스킬 중에는 [시선 해석]이라는 스킬이 있었다.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면 마주칠수록, 상대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는 스킬.

‘이미 시선을 마주친 누적 시간은 10초 가까이 된다.’

시선을 10초 이상 마주친 상태에서 [시선 해석] 스킬을 쓰면 이해도는 순식간에 차오른다.

‘그러니 내가 이긴다!’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은혁은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생각했다.

은혁은 디미트리와 악수를 나누면서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썼다.

짧은 순간의 악수만으로도 디미트리가 보유한 스킬과 그동안 어떤 식으로 이겨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모두 발언부터 시작하시죠. 강은혁 플레이어부터.”

사회자 NPC가 말했고, 은혁은 디미트리가 아닌 청중을 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청중 여러분. 저는 100층탑의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는 플레이어, 강은혁입니다.”

은혁은 청중에게 45도로 인사했다.

“저를 비롯한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100층탑의 정복을 향해 노력 중인데, 가장 큰 이유는 100층탑을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100층탑을 정복하면 신이 된다는 소문은 거의 정설처럼 굳어 있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반면에 100층탑을 나가고 싶다면 100층을 정복해야 한다는 사실은, 관리국 측은 물론, 1층의 튜토리얼 등을 통해 수십 차례에 걸쳐 확인된 사실이다.

“즉, 플레이어 대다수의 목적은 100층탑을 나가는 것. 그러므로 100층 꼭대기를 공략하지 않고도 나갈 길이 있다면, 나가는 게 낫습니다. 이상입니다.”

“하하하하!”

디미트리는 의도적으로 크게 웃었다.

도발을 해서 은혁이 자신을 노려보게 하고, 청중들의 이목을 끌어모으기 위함이다.

“내가 뭘 들은 건지 모르겠군. 다들 내가 누군지는 알 테니, 자기소개는 생략하고, 모두 발언과 상대측 발언에 대한 반박을 한 번에 하겠소이다.”

말투 하나하나에 능수능란함이 묻어났다.

“먼저, 플레이어가 100층탑을 완전 공략 하지 않고 바깥에 나가는 것에 관한 논의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오류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지. 첫째, 어차피 불가능하므로. 둘째, 중간 탈출이 가능하더라도 의미가 없으므로.”

“둘째 부분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은혁이 조금 도전적인 어조로 묻자, 디미트리는 은혁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답했다.

“오, 물론일세. 가령 자네가 50층이나 그 언저리에서 100층탑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해 보세나.”

은혁은 내심 흠칫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요?”

“그럼 나가서 뭘 할 건가?”

디미트리가 큭큭 웃으며 청중을 돌아봤다.

“우리가 100층탑을 나가는 건, 100층의 정상을 극복한 다음이어야 의미가 있을 뿐이오. 도중에 나가봤자, 괴물 취급 받거나, 실험체 취급을 하려 들겠지. 그걸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플레이어 VS 지구인이 될 뿐이야.”

“그것과 비슷한 주장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군요.”

평화 길드장 피스메이커 또한, 비슷한 논리로 플레이어가 100층탑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했었다.

“지금 디미트리 님의 논리대로라면, 100층탑을 극복한 이후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니지. 100층탑 정상을 정복한 이후에는 소원을 이룰 수 있잖나.”

“그런 소문이 있긴 하죠. 아직 검증된 가설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가 100층탑 바깥으로 나갔을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상 또한 추측에 불과합니다. 훨씬 밝은 방향으로 일이 추진될 수도 있습니다.”

은혁은, 100층을 완전 공략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중에 나갔을 때 생기는 이점들에 대해 설명했다.

“인류의 최대 장점은 지식을 서로에게 넘겨주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죠. 만약 바깥의 인류에게, 내부에 존재하는 신기한 아이템, 100층탑 내부의 정보, 발전된 제도, 그리고 어쩌면 강력한 힘까지. 이러한 것들을 전달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은혁은 열과 성을 다해 장밋빛 미래를 설명했다.

인류는 똑똑하기에, 100층탑 내부의 문물을 바깥에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바깥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말했다.

그러면 그때마다 디미트리는 인류의 역사를 거론하며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깽판을 놓았다.

“인류는 원자력 기술을 익히면 그걸로 폭탄을 만드는 족속이오. 우리가 가령 스킬의 힘을 바깥 놈들에게 전수해주는 게 가능하다고 치세나. 그럼 스킬을 범죄나 전쟁용으로 이용할 것이 뻔하지 않나.”

“너무 인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시는군요. 디미트리 님 말씀대로라면 100층탑 내부에 어떻게 길드연합국이 존재한단 말입니까? 살상 스킬이 넘쳐나는 세계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우리 인류가 인간성이나 사회성을 모두 저버리진 않았습니다.”

“흠. 그건 일리가 있는 지적이군. 하지만 반쪽짜리요. 강은혁 플레이어 말대로라면 3군주 세력은 어찌 설명할 거요?”

3군주 세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만으로 구축된 세력이다.

“3군주 세력의 거점은 길드연합국 세력의 거점보다 훨씬 높소. 그리고……!”

“아,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사회자 NPC가 끼어들었다.

“두 분의 논쟁이 과열되다 보니, 어느새 논쟁의 관점이 인간이란 어떤 족속인가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경향을 보입니다. 본래 논제인, ‘100층탑의 정상을 정복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는 게 과연 옳은가, 그른가’ 부분으로 다시 돌아와 주시겠습니까?”

사회자가 적절히 끼어들자, 두 사람은 잠시 심호흡을 하거나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진정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한 걸음만 더 가까이 오면 되는 건데.’

‘쉽게 도발에 안 넘어오는군.’

은혁과 디미트리는 서로 아쉬워했다.

디미트리는 은혁에게 [시선 해석] 스킬을 써서 은혁의 생각을 파헤치려 했다.

반면에 은혁은 혈인술사 스킬 [광란의 시선] 스킬로 디미트리의 정신을 헤집어 놓으려 했다.

하지만 서로의 의지력이 높았기에, 두 스킬은 서로 상쇄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일반적인 논쟁을 이어나가는 한편, 서로 근접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은혁은 [소매치기] +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융합한 퓨전 스킬, [전략 훔치기]를 발동하려 했다.

하지만 디미트리는 낌새를 눈치채고 [가상 두뇌 설계] 스킬로 진짜 전략을 보호하고, 가짜 전략이 담긴 가상 두뇌만 넘겨줬다.

그 탓에 두 사람 모두 일시적인 혼란을 겪었고, 논쟁 주제가 인간 본질에 관한 것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이제 어쩐다?’

‘설마 나랑 같은 전략을 짜다니.’

은혁과 디미트리 두 사람 모두 정상적인 논쟁으로 이길 생각은 없고, 상대 정신을 파괴해서 이길 생각만 했다.

그 뒤로도 토론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은혁은 일부러 격정적으로 외치며 [그림자 결속]과 [사이코 메트리] 범위 속으로 디미트리를 끌어들였다.

디미트리도 굴하지 않고 은혁에게 다가가며 [반박 설계]로 따박따박 반박했다.

사회자 NPC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정말 치열한 논쟁이군요. 두 분의 실리적, 윤리적 차원에서의 견해는 그야말로 호각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자 NPC가 말하자 청중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제한 시간이 5분 정도 남았으니, 마지막 발언 진행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디미트리 님께서 먼저.”

“허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좋소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소.”

디미트리는 은혁을 향해 결정타를 날렸다.

“아까 언급한 첫째 부분에 대한 대답을 지금 요청하오. 잊어버렸을지 모르니 다시 묻지. 나는 아까, ‘어차피 불가능하므로’ 100층탑을 중도에 나가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했었소. 여기에 대해 반박해보시겠소?”

“아, 그건 참 쉽네요. 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은혁은 사회자 NPC를 돌아봤다.

“디미트리 님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건 쉽지만, 이 사실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100층탑 전체에 큰 혼란이 찾아올까 두렵습니다.”

“도대체 무슨 방식의 반박이기에 그러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강은혁 플레이어. 혹시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한 반박이라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청중분들이 제 반박에 사용된 증거에 대해,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줘야겠습니다.”

사회자 NPC는 곤혹스러워했다.

웅성웅성…….

판정을 내릴 청중 100인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도대체 뭣 땜에 저러는 거야?”

“설마 폭탄 같은 거 꺼내서 협박하려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허참,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더니만. 하플링도 궁금해서 죽겠네요.”

결국, 그들의 호기심이 이겼다.

플레이어들과 NPC 모두 각자의 명예를 걸고 맹세했다.

은혁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인벤토리창에 손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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