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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53화 (253/434)

253화 : 총체적 난국의 재판 (2)

다시 은혁이 손을 들고 대리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관리국 요원의 경우, 제2의 두뇌가 남아 있는 한, 완전히 죽은 게 아닙니다. 노리 차장님은 저의 사이오닉 런처를 이용한 정당방위에 의해 절반가량 기능이 정지한 상태였을 뿐, 죽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일반적으로라고요? 그럼 묻겠습니다. 여기 계신.”

은혁은 빌을 흘깃 본 다음 말을 이었다.

“연구 길드장님은 잘 아시겠지만, ‘죽은 척하기 알약’이라는 게 있습니다. 연구 길드가 만든 건데요, 그걸 먹는다고 해서 ‘실제로’ 죽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호흡과 심박수는 정말로 정지한 것에 가까운 상태로 가까스로 생명이 유지되지요. 100층탑의 그 누구도, ‘일반적으로’ 그것을 정말 죽었다고 정의 내리진 않습니다. 죽은 것으로 착각할 뿐. 하여!”

척!

은혁은 대리 쪽을 가리켰다.

“노리 차장님의 죽음은 실제 죽음이 아니라, 기능 정지이며, 오히려 그것이 100층탑 기준에서는 일반적인 해석일 것이다…… 라는 게 저의 변호입니다.”

“아니, 사이오닉 런처라는 게, 보통 무기가 아닌 것으로 판명……!”

“이상입니다, 재판장님. 소명은 마쳤으며, 더 이상 발언하지 않겠습니다.”

척.

은혁은 다시 자리에 앉아 버렸다.

관리국 대사관 쪽 대리는 항의하려 했지만.

“빨리 결론으로 가지. 재판관들? 잠시 뒤쪽으로.”

재판장과 배심원이 뒤죽박죽 섞인, 중립성이나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재판이었다.

수군수군…….

자기들끼리 대화를 3분가량 나눴다.

“자, 심의 끝.”

우르르…….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평결 내리자고. 강은혁이 유죄라고 생각하는 자 거수.”

“…….”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물론, 은혁이 자신을 체포한 빌을 통해 그들을 위한 ‘떡고물’을 미리 세팅해 둔 덕분이다.

평화 길드의 페넬리시아를 설득하기 위해 ‘노숙자 안식처’를 마련했다.

정의 길드의 워잭을 설득하기 위해 흡혈증 치료에 적극 도움을 줬다.

연구 길드의 빌을 위해 피스메이커에 관한 정보 제공과 생포 약조를 맺었다.

행복 길드의 시리우스의 경우에는 딱히 원하는 게 없는 성격이 되어 버렸기에, 달리 추가 혜택을 줄 필요는 없었다.

즉, 은혁은 이곳에 있는 재판관들의 가치관을 충족시킬 작은 선물을 하나씩 미리 세팅해 두고 있는 셈이다.

‘침착하자.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100% 승리를 하면 안 돼.’

“보아하니 강은혁을 무죄로 해서 이 귀찮은 일을 끝내고 싶다는 쪽으로 만장일치가 나온 것 같군. 그럼 판결을 내리겠다.”

빌은 긴장한 은혁과 체념하는 관리국 대사관 측을 번갈아 보며 판결을 내렸다.

“강은혁 일부 유죄. 계획 살인 부분에서는 무죄이나, 과잉 방어 및 시체 운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빌은 평소답지 않게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법정모독죄가 추가된다.”

“엥?”

“네?”

은혁과 관리국 대사관 직원 모두가 놀랐다.

빌은 은혁을 노려봤다.

“본 사건의 피의자 강은혁은,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때는 28.5층은 5층 길드연합국의 범위가 아니라고 했으나, 또 불리한 증언을 할 때는 28.5층 또한 길드연합국의 황금 궁전에서 허가를 받은 5층의 연장임을 주장했다. 이는 명백한 이중잣대이며, 궤변을 이용한 법정 모독이다.”

“흠.”

은혁은 이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

보아하니 워잭과 페넬레시아도, 은혁의 과잉 방어보다는, 은혁이 자기만의 논리로 빠져나가려는 행위에 대한 괘씸죄 혐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비록 본 법정에 적용되는 규칙이 매우 허술하고 느슨하다고는 하나, 법정에서 사용되는 논리와 존중의 수준은 높아야 할 것이다. 이의 있나, 강은혁?”

“없습니다.”

“이에 적용되는 형벌은…….”

빌이 워잭과 페넬레시아를 돌아봤다.

워잭이 나섰다.

“이 경우에는 길드연합국 기준으로 시체 유기 및 운반으로 7년 이하의 징역이고, 과잉 방어는 폭행으로 해석되니, 폭행치사상해죄로 10년 이하의 징역인 데다가…….”

워잭은 도중에 침음성을 흘렸다.

“법정모독죄는 벌금형뿐이군. 20만 골드다.”

“전부 인정합니다.”

“본 재판장은, 피고 강은혁에게 벌금형 20만 골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합니다.”

땅땅땅!

망치가 내리쳐졌다.

하지만 은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의라도 있나, 강은혁?”

“저에 대한 재판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다만?”

“관리국 측은요?”

“음?”

“관리국 측은 이 일에 대해 책임 안 집니까?”

은혁은 관리국 측 대리를 노려봤다.

“관리국 측이 절 고소하는 건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제 쪽에서도 관리국 측을 고소하고 싶습니다.”

“잠시만요, 강은혁 플레이어. 그건 안 됩니다.”

관리국 대사관 대리가 당황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강은혁의 잘못에 대한 재판이어야 할 이 장소에서 갑자기 ‘관리국에 대한 고소’ 이야기가 나오면 곤란했다.

하지만 빌은 공평했다.

“모든 피고인은 발언할 권리가 있어. 그러니 끼어들지 좀 말지?”

인간의 입장에 대해서는 아주 공평하게 무심한 연구자가 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재판장에 어울리기도 했다.

“큭…….”

대리는 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관리국의 저를 향한 고소가 허용된다면, 저의 관리국을 향한 고소는 어떻습니까? 마찬가지로 허용되어야지요?”

“흠. 그게 공평하게 들리긴 하는데.”

재판장 빌은 다른 재판관들을 돌아봤다.

“큭.”

대리가 못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제가 알기로 플레이어가 관리국을 상대로 고소를 한 일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알았으니 진정하고 앉아. 나도 고민되니까. 이 자리에 모인 부길드장들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군.”

대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어때? ‘관리국이 강은혁을 상대로 고소할 권리가 인정되는 경우, 강은혁 또한 동일한 수준에서 관리국을 상대로 고소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게 현 쟁점인데. 의견 내놔 봐.”

재판관인 워잭, 페넬레시아, 시리우스가 순서대로 의견을 냈다.

“물론이오. 관리국의 권위를 존중하지만, 면책 특권이 있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지. 그러니 원칙적으로 강은혁 또한 관리국을 상대로 고소할 수 있어야 하오.”

이어서 페넬레시아가 말했다.

“동의합니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여긴 길드연합국이니까요. 관리국 측에서 이 재판이 열리는 장소를 길드연합국으로 하는 데 동의했으니,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마지막으로 시리우스가 말했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시리우스는 심드렁한 표정이었고, 워잭과 페넬레시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게, 워잭, 페넬레시아, 시리우스는 동의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걸 본 은혁은 각오했다.

‘지금부터 내가 말빨로 치는 깽판의 결과가 어느 쪽으로 굴러가건…… 쉬운 길은 없다!’

은혁은 선언했다.

“저는 관리국 차장에 대한 과도한 정당방위로 고소되었습니다. 단, 그건 관리국 측 일방의 주장이죠. 그럼에도 저는 재판을 존중하기에 결과를 인정하려 했습니다……만.”

은혁은 손가락을 척 세웠다.

“만약 플레이어가 관리국 측에 대해서도 고소할 수 없다면, 이 재판의 공정성은 매우 훼손된 상태로 진행된 것이겠지요. 즉, 무효이며 불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혁은 악법도 법이다 같은 소리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만약 악법이 실제 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다면, 개가 짖는 개소리도 사람의 것과 같은 법적 효력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은혁의 지론이었다.

요약하자면, 악법은 개소리와 같다가 된다.

“흐음.”

빌은 턱을 문질렀다.

“아, 진짜 모르겠네. 잠시만 기다려봐.”

파앗!

빌은 홀로그램 형식의 가상 두뇌를 펼치더니, 길드연합국 운영에 관한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초창기 고발 기록을…… 보관했었는데…… 흐음…….”

빌은 플레이어가 관리국 측을 고소한 판례가 있는지 확인했다.

“어? 놀랍게도, 딱 1회 있군.”

빌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언제, 누가 한 겁니까?”

은혁이 질문했다.

열심히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모르는 척을 해야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을 것이므로.

빌은 가상 두뇌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가 관리국을 향해 관리 책임 미이행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고소한 적이 있군. 잊을 뻔했는데, 길드 대전이 끝난 직후인데?”

그러자 워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맙소사! 그게 사실이었단 말인가!”

“음? 뭔가 아는 게 있나? 싹 다 털어놔 봐.”

“그, 저도 예전에 저스티스 님으로부터 지나가듯 들은 이야기오만.”

워잭은 지금도 두꺼운 투구를 썼기에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표정이 어둡다는 것은 자명했다.

“저스티스 길드장님은 길드 대전의 책임이 7대 길드 모두에 있음을 인정하셨소. 하나, 관리국 또한 그것을 방조한 책임이 있고, 원천적인 책임이 있다고 하셨소.”

워잭이 탄식하듯 말했다.

“하지만 설마, 정말로 관리국을 향해 고소를 한 적이 있었을 줄은……!”

아마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의 관리국을 향한 고소는 직속 부하인 워잭마저도 모른 채로 진행된 모양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관리국 대사관의 대리가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저희 관리국은 자유방임을 기본 원칙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원천적인 책임이라뇨?”

그러자 워잭이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내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군. 우리들 플레이어는 지구에서 강제로 소환된 존재들이오. 강제로 끌고 와서 자유방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소.”

“…….”

“아마 저스티스 길드장님이 말씀하신 원천적인 책임은, ‘애초에 강제로 끌고 온 것’에 대한 것일 거요.”

그 말에는 관리국 대사관 직원도 할 말이 없었다.

‘대사님이 직접 오셨어야 하는데!’

관리국 대사가 불참하고 대신 대리가 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리국은 어느 정도 플레이어와 거리를 둬야 한다.

그래야만 간접적인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돌발 상황 즉, 강은혁 처벌에 관한 재판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 직접 법정에서 이익 다툼을 하는 집단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모처럼 말단 직원을 대리로 보냈지만…….

“크크큭…….”

은혁이 못 참고 웃음을 조금 흘렸다.

대리가 은혁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은혁은 언제 웃었냐는 듯이 무표정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기록을 살펴보던 빌이 마저 설명했다.

“흠. 막상 찾아보니 알기 쉽군. 저스티스가 관리국을 상대로 고소했을 때, 관리국은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만 하고 답변이 없었어. 고소가 성립이 되는지에 대한 답조차 하지 않은 거야. 관리국 측에서는 민감한 부분을 마냥 미뤄두기로 결정한 거지.”

순간, 은혁은 관리국 입장도 이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플레이어가 관리국을 쉽게 고소할 수 있다면, 거의 모든 플레이어가 ‘무단 납치에 대해 고소합니다!’라고 나설 테니까.

“그리고 당시 관리국의 대사였던 ‘블랙 데우스’는 저스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군. ‘해당 사안을 검토하고 답을 주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릴 겁니다.’라고. 그래서 저스티스가 정확히 얼마나 걸릴 거냐고 묻자, 최소한 수십 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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