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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54화 (254/434)

254화 : 보석 신청

빌이 전해준 당시 대사의 답변은 상당히 무성의한 답변이다.

워잭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우울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실망하신 저스티스 님께서는 길드 대전의 진정한 책임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단하시고, 스스로를 봉인하셨던 거요. 적어도 길드장인 자신이 한 명이라도 빠지면, 길드 대전이 안 일어나거나 덜 파괴적일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하오.”

워잭이 부연 설명을 마치고 앉았다.

은혁은 헛기침을 작게 한 뒤 말했다.

“어쨌거나, 길드연합국 소속 플레이어가 관리국 측에 소송을 거는 게 가능하긴 하다는 거군요?”

“아닙니다!”

관리국 대사관에서 나온 대리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 사안은 검토 중이며……!”

“솔직히 수십 년은 너무 길지 않나?”

빌이 말을 끊으며 따졌다.

그러자 관리국 대사관 직원은 눈을 좌우로 굴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 그 검토 결과는 오직 저스티스 님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스티스 님은 현재 봉인된 상태이므로, 플레이어가 관리국에 소송을 거는 게 가능한가의 여부는 무기한 연기되어야 마땅합니다.”

“재판장님의 판단 부탁드립니다.”

은혁은 태연히 말했다.

빌은 관리국 대사관 직원을 무심히 바라봤다.

“음. 그래도 무기한은 아닌 게 다행인가?”

“네?”

“방금 그쪽이 다 말했잖아? 일단 저스티스의 관리국을 향한 질문인 ‘플레이어가 관리국을 고소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의 답변 자체는, 관리국 측에 마련된 상황이지? 저스티스가 봉인되어서 그 답변이 무기한 연기 중인 거고. 그렇지?”

“그, 그게,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긴 합니다만.”

“또한 저스티스와 관리국 간의 문의와 답변은, 실제 재판이 아닌 소송이 가능한가에 관한 문답이지만, 그것이 구체화된다면 실제 판결에 준하는 효력을 지닐 수 있겠군. 적어도 길드연합국 기준으로는 말이야.”

길드연합국의 법체계는 성문법과 불문법이 기묘하게 뒤엉킨 상태이며, 7대 길드의 길드장이 지닌 권한이 매우 강하다.

길드장 중 하나인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와 관리국 간의, 소송 범위 및 법 적용에 관한 문답이 확정된다면, 그 자체로 판례에 준하는 효력을 발한다.

“이의 있나?”

빌이 물었고 대사는 쩔쩔맸다.

은혁에 대한 처벌을 마무리 짓기 위해 왔을 뿐, 길드 대전 당시의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와 얽힌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생각이 여러모로 복잡한 모양이네.”

빌은 예상보다 길어진 재판이 피곤한지 이렇게 정리했다.

“본 재판은 일단 보류한다. 저스티스와 관리국 간의 판례가 나오면 그걸 보고 강은혁에 대해서도 판결을 내리겠다. 이것이 판례와 일관성을 중시하는 본 재판장이 내릴 수 있는 가장 공정한 결론인 것 같군. 하나…….”

“잠시만요!”

“하나!”

빌이 관리국 직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도 부적절한 일이며, 정의를 위해 고소한 관리국 측에 대한 역차별로 비칠 우려가 있지. 그러므로.”

빌은 은혁을 보며 말했다.

“정확히 3일간 재판을 보류하겠다.”

“3일입니까?”

은혁이 되물었다.

“왜, 불만 있나?”

“……불만이 있다기보다는, 그 3일이라는 시간의 근거가 뭔지만 가르쳐주시겠습니까?”

“내 마음이다.”

“…….”

“그 3일 이내에 저스티스와 관리국 간의 판례를 확보한 경우, 그 판례를 따른다. 그 외의 경우에는.”

빌은 은혁과 관리국 직원을 번갈아 봤다.

둘 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 상당히 뚜렷했다.

“그 외의 경우에는, 본 재판을 원천 무효로 하고,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할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라니…….”

“그편이 관리국에도 낫지 않아? 관리국 차장 노리도 당사자로 재판에 참석할 수 있고.”

노리의 몸은 이미 관리국에 반환된 상태다.

하지만 아무리 관리국이라 해도, 머리가 통째로 터져 나간 자의 제2의 두뇌를 개화시켜서 복원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큿……!”

관리국 대사관 직원은 빌의 결정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는데, 분해하는 표정과 달리 내심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노리가 직접 이 자리에 나오면 자기 책임은 줄어들 테니까.

“그리고 강은혁? 넌 그 3일간 원칙적으로 구류다.”

빌은 페넬레시아를 돌아봤다.

페넬레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말했다.

“보석금은 50만 골드로 책정하겠습니다. 보석금을 지불한 순간부터 다음번 재판까지 강은혁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내겠습니다.”

은혁은 바로 대답하고 수표를 [그림자 도약]시켜서 페넬레시아에게 던졌다.

페넬레시아는 액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길드연합국의 지배자인 길드장의 대리인이자 재판관 중 한 명으로서의 권능을 발동했다.

-남은 시간 : 71시간 59분 59초…….

-남은 시간 : 71시간 59분 58초…….

-남은 시간 : 71시간 59분 57초…….

“보석금이 지불된 현 순간부터 3일간 강은혁은 자유이며, 관리국은 어떤 방식으로도 강은혁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길드연합국 재판부의 결정이며,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페넬레시아는 평화적인 표현을 고르고 골랐다.

“평화롭지 못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통보합니다.”

페넬레시아가 자리에 앉았고, 옆에 있던 워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빌은 마지막으로 은혁과 대리에게 질문했다.

“그 외에 각자 할 말 있나?”

관리국 대사관에서 온 대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만 지을 뿐 한마디도 못 했다.

말단 직원으로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반면에 은혁은 평소 말투로 말했다.

“이의 제기는 아닙니다만 좀 어렵군요. 그러니까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 님을 저보고 3일 이내에 깨워 보든가 해봐라~ 이거 아닙니까?”

“그런 셈이지. 관리국 고소가 가능한가 아닌가에 관한 판례를 얻고자 한다면 말이야.”

“하지만 제가 알기로, 저스티스 길드장님은 같은 길드장이 깨우는 게 아닌 한 절대 봉인에서 해제되지 않도록 했잖습니까.”

“응. 그래서?”

“그럼 빌 길드장님이 대신 깨워주시면……?”

“그래야 할 의리는 없지. 난 나와 같은 길드장을 존중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오프 더 레코드.”

빌은 선언하더니.

성큼성큼.

은혁의 바로 앞으로 걸어갔다.

“이 상황도 전부 네놈 계획대로…… 라는 거겠지.”

“글쎄요.”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냅다 관리국 차장 노리의 머리를 터뜨린 것부터, 재판에서 물고 늘어지는 것 하며…… 이런저런 이득을 고구마 줄기 엮듯이 날로 먹을 작정인 것 같은데, 난 너무 날로 먹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빌 길드장님에게 손해가 갈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걸 예상하기에 참고 있는 거다.”

빌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졸린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이 깽판을 쳐놓고 어떻게 날로 먹겠다는 건지 궁금하긴 하군. 3일이다. 당장 움직이지?”

* * *

은혁은 황금 궁전 밖으로 나왔다.

번쩍! 번쩍!

순간 브라이언의 뇌격이라도 날아오나 싶어서 흠칫 놀랐다.

번쩍! 번쩍!

정체는 카메라 플래시였다.

“강은혁 플레이어!”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동안 은혁에 대한 관심을 거두었던 기자들은 어디서 소문을 들은 건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는 기자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헛소문을 가지고 질문했다.

“관리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연구 길드장 빌이 공범이라는 말도 있던데 사실입니까!”

“관리국 차장이란 사람은 정체가 누구이고, 도대체 왜 죽인 겁니까?!”

“관리국 요원을 죽이면 100층탑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요, 강은혁 플레이어! 한 말씀만!!”

헛소문의 수위는 은혁 기준에서도 무지막지했다.

‘이럴 때 보면 기자들이 진짜 무섭다니깐.’

은혁은 불패불굴 길드 전용 언론보도팀을 마련하지 않은 게 아쉽다고 생각하며 손을 내저었다.

“전부 사실이 아닙니다. 비켜주십쇼.”

스윽.

은혁은 평소처럼 밀고 지나가려 했다.

예전에는 은혁이 정중하게, 조금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밀려났던 기자였지만.

“[삼전 서기]!”

“[나무뿌리 내리기]!”

“[천근추]!”

기자들은 못 보던 사이에 파워업(?)을 했는지, 아니면 관리국 관련 이슈가 워낙 특종이라 그런지 밀려나지 않았다.

“이건 정말 답해주셔야 합니다!”

“강은혁 플레이어!”

“강……!”

콰콰쾅!!!

그때, 갑자기 울려 퍼지는 [홀리 썬더]의 굉음.

염훈이었다.

위엄과 분노가 가득한 일격이 바닥을 찍었을 뿐인데, 그 충격파는 기자들의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뒤흔들었다.

“……다 비켜라.”

염훈이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우르르……!

대다수의 기자들은 재빨리 도망쳤다.

“오, 염훈. 어서 오고.”

휙!!

염훈은 뭔가를 은혁의 얼굴에 내던졌다.

타악!!

은혁이 아슬아슬하게 잡았다.

편의점에서 산, ‘청양고추 두부’였다.

“거, 보통 두부로 사오든가…… 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은혁은 교도소에 갇혀 있다 나온 게 아니므로 두부를 먹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 멍청아!! 무슨 짓을 한 거얏!!”

염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은혁은 깜짝 놀랐다.

염훈은 꽤 진지하게 화가 난 것 같았다.

“무슨 짓이냐면.”

은혁은 아주 조금 기죽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설명을 들어도 염훈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야, 은혁아. 일단 앉아서 들어봐.”

“응.”

두 사람은 황금 궁전 앞 공터 바닥에 털썩 앉았다.

“네 입장에서는 내가 괜히 화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가 화내는 건 네가 미워서가 아니다.”

“감동적이군.”

“빈정거리지 말고 들어!!”

쾅!!

빅 썬더가 다시 한번 바닥을 찍었고, 큼직한 구멍이 또 생겼다.

길드연합국의 공동 도로 관리부 직원들 등골 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우선, 너도 알게 모르게 내로남불 요소가 좀 있는데…….”

염훈은 미주알고주알, 조목조목 화를 내려고 했다.

보아하니 그동안 은혁에게 맞춰주느라 쌓인 것들이 꽤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선 이거 먼저 봐라.”

은혁은 손을 들어 보였다.

“뭔데?”

“네 설교가 내게 반성의 시간을 줄 것임은 명백하지만, 내게 남은 제한 시간이 얼마 없어서. 미뤄도 될까?”

“잉? 무슨 제한 시간?”

은혁은 시스템창을 띄웠다.

-남은 시간 : 71시간 49분 7초…….

-남은 시간 : 71시간 49분 6초…….

은혁은 다시 재판이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이라고 설명해줬고, 염훈은 펄쩍 뛰었다.

“어?! 야! 너 완전히 풀려난 거 아니었어?!”

은혁은 피식 웃었다.

“방금 설명했잖아. 듣긴 한 거냐.”

“당연히 제대로 안 들었지! 너한테 설교할 생각이었으니까!”

염훈은 솔직히 말하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은혁아, 너 어떡하냐? 71시간 있다가 또 끌려가면 그땐…… 왠지 못 나올 거 같은데?!”

“뭐, 그렇겠지.”

“야! 네 일인데 왜 이리 태평하냐! 얼른 일어나!”

은혁에게 화를 내던 염훈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자기 일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그걸 본 은혁은 웃음을 참으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앉아, 염훈. 길드장인 너에게 우선 사과해야지.”

은혁은 잘못을 저지르고 물러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같은 말투로 말했다.

염훈은 더 다급함을 느꼈다.

“야야, 사과는 무슨! 일단 본부로 가서 대책부터 마련해야지?”

“……내 혈기로 인해 콩나무 길드 본부에 큰 손상을 끼친 점을 우선 사과할게.”

“야!! 길드장의 명령이다!!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네 일부터 해결해야지!”

“흠, 그래? 공식적으로 사과는 면제받은 거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럼 돌아가서 파괴된 길드 본부 복구부터 하러 가자.”

* * *

은혁은 길드 본부 복구에 앞서, 길드원들에게 사과 공지를 출력해서 길드 본부 곳곳에 붙였다.

‘누구보다 길드 본부의 안전을 더 신경 써야 할 부길드장으로서, 이번 불미스러운 사태를 일으킨 점, 사과드립니다.’

시간상의 이유로 은혁은 공지 사항만 남기고, 직접 사과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발은 없었다.

오히려 은혁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관리국에서 멋대로 침입해 오더니 제인을 공격했다며?”

“헐. 관리국 놈들 선 넘네.”

“아니, 평소에는 플레이어랑 선을 긋더니, 왜 갑자기 온 거래?”

“무슨 차장이라는 자가 독단으로 저지른 일이래.”

“워낙 드문 일이라 뭐라고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은혁과 염훈은 제인을 보살피러 갔다.

제인은 자기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 생각에, 몹시 미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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