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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57화 (257/434)

257화 : 재난의 성좌를 섬기는 왕

마이크는, 옛날 만화에 자주 나오는 전형적인 배불뚝이 사장처럼 생긴 플레이어다.

자유시장 길드에 속해 있진 않지만, 이따금 부길드장 테일러와 점심 식사를 할 정도로 친분이 있고, 돈도 있는 작자다.

‘A+급 직업 금속을 지배하는 마법사.’

고철을 손으로 쪼물딱거려서, 민간용 벙커, 파손된 수도관 복구, 군단병의 방어구를 효율적으로 만들어내고, 돈을 번다.

상대의 약점을 악용하는 자는 아니지만, 마냥 착한 자도 아니다.

“그래, 그 벙커 사장님이 어디 있지?”

은혁은 대충은 알고 있지만, 회귀 전 기억을 분명히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기서 남동쪽으로 쭉 가면요…….”

아이들은 어느새 존댓말을 쓰며 은혁에게 손짓 발짓 해서 알려줬다.

“그래, 고맙다. 존댓말 썼으니 두 배로 주마.”

은혁은 은화를 더 던져줬다.

아이들은 기뻐하며 떠났다.

“무척 선량하시군요, 용사님.”

“시간이 없어서 돈으로 해결했을 뿐입니다.”

“아냐, 아냐, 훌륭해.”

어느새 염훈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물었다.

“재판받고 나오더니, 갑자기 착해지기로 결심한 거?”

“그럴 리가 있겠냐.”

은혁과 염훈은 서로 틱틱거리며 루이사를 따라갔다.

그렇게 쓰레기의 산 틈새의 미로를 통과하자, 거대한 보라색 문이 나타났다.

“정지!!”

어느새 방독면을 쓴 근위병 열 명이 세 사람을 포위했다.

“너희들은 왕궁에 무단으로 침입했다!”

“신원을 밝히지 않으면 처단하겠다!”

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고는 전설의 용사의 증표를 꺼냈다.

근위병들은 입을 떡 벌렸다.

“진짜다……!”

“그냥 용사의 증표가 아니라…… 전설급이라니.”

근위병들은 은혁과 염훈, 루이사를 모두 들여 보내줬다.

* * *

왕의 궁성 내부는 놀랍게도 깨끗했다.

좀 비정상적일 정도로 깨끗했는데, 왕궁에 당연히 있어야 할 가구나 장식물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 소리도 전혀 없네…….”

염훈이 중얼거렸다.

오직 근위병 2인과, 은혁, 염훈, 루이사의 발걸음뿐.

“이쪽입니다. 계단이 가파르니 주의하시길.”

근위병이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통해 지하로 안내했다.

벽면 곳곳에 촛불 걸이가 달려 있는, 고전 어드벤처 게임에 나올 법한, 아주 낡고 깊은, 지하로 가는 나선형 계단.

당연히 알현실로 갈 거라 예상한 염훈은 또 당황했다.

“은혁아. 이거 혹시 함정 같은 거 아닐까?”

염훈은 소곤소곤 말했지만.

“아닙니다.”

귀가 밝은 근위병이 직접 답변했다.

“아래에 지하 예배당이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곳에 계십니다.”

“음…….”

염훈은 납득했지만, 루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께서는 늘 지하 예배당에 머무시나요?”

“그렇습니다, 루이사 시장님.”

“언제부터……?”

“운석 낙하로 시청이 파괴되고, 왕비님께서 돌아가신 날 이후부터…….”

“…….”

그들은 말없이 걸었다.

저벅저벅…….

한참을 걸어 내려갔다.

낡은 석재 나선 계단은, 언제부턴가 티타늄 재질의 금속 계단으로 바뀌었다.

촛불 걸이가 달려 있던 곳에는 마정석 발전기로 일으킨 전기로 작동되는 전등이 달려 있었다.

곳곳에 티타늄 파이프가 설치되어 있었고, 비상 개폐문도 몇 개나 있었다.

염훈은 감탄했다.

“완전 핵전쟁 대비용 벙커 같네.”

“과연 용사님이시군요. 맞습니다.”

근위병은 바로 맞장구쳤다.

먼저 말 꺼낸 염훈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최하층에 도달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문이 나타났다.

삐비빅.

근위병이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국왕 폐하의 근위병입니다.”

“용건은?”

“전설의 용사의 증표를 지닌 두 용사분과, 루이사 시장을 모셔왔습니다.”

“……용사들은 들여보내도 좋다. 그러나 시장은 돌려보내라.”

그러자 루이사가 스피커 앞에 달라붙었다.

“폐하! 이 늙은 시장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한 번만 뵙고 간언하게 해주십시오.”

치지직.

스피커의 연결은 이미 끊겨 있었다.

근위병은 엄한 표정으로 루이사에게 말했다.

“돌아가 주십시오, 시장님.”

“하지만!”

“이러시면 강제로 모셔다 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

노파의 모습을 한 루이사는 몇 년 더 늙은 것처럼 염훈을 돌아봤다.

염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대신 전해드리죠.”

“고마워요, 용사님.”

루이사는 미리 편지를 준비했었는지, 까맣게 때가 탄 종이쪽지를 염훈에게 넘겼다.

타박타박…….

루이사는 힘없이 걸어 올라갔고, 근위병은 문을 열었다.

“들어가십시오.”

근위병도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은혁과 염훈은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하고 장엄한 예배당은 어두침침했다.

그 끝에 수십 개의 촛불이 타오르는 재단이 있었고, 그 앞에 무릎 꿇은 한 중년 남자가 있었다.

“…….”

그는 기도를 멈추고, 고개만 높이 들었다.

“말해보게. 자네들은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나?”

왕이 말하는 ‘여기’는 46층~49층 구간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30분 조금 넘었을 겁니다.”

그러자 왕은 희미한 마력을 발산했다.

“나는 왕이 된 지 23년째일세.”

왕의 목소리에는 우울함이 잔뜩 묻어났다.

“내 아버지, 선왕께서는 성군이셨지. 병든 이를 손수 치유하고, 궂은일에 직접 손을 더럽히셨지. 좋은 지식은 권하고, 바르지 못한 율법은 폐지하셨지.”

추억에 젖어 말하던 왕은 곧 냉소했다.

“하지만 내 아버지가 성군이었던 건 재난이 없었기 때문이야.”

스으윽.

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에는 흡혈귀가 아이들을 납치, 점심에는 강물에 독충이 들끓고, 저녁에는 절망에 미쳐 버린 성직자들이 악마를 소환……. 하루에만 몇 번씩 재앙이 일어났다.”

왕은 아득히 천장을 바라보며, 자신이 즉위한 이후 경험한 재난들을 떠올렸다.

“병원을 지으면 병원에서 좀비들이, 경비대를 더 뽑으면 마교 숭배 파벌이, 언데드 퇴치를 위해 은으로 무기를 만들려고 광산을 열면, 잠들어 있던 몬스터가 몰려나왔지. 손을 쓰면 쓸수록 재난이 커졌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해결하려 노력해도 재난이 커졌다.

“그때, 관리자라는 존재들이 나타났다. 절망한 나는 그들과 계약했고, 이 세계는…… ‘스테이지’가 되었다.”

찰싹!!

왕이 갑자기 자기 뺨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대범한 염훈도 움찔할 만큼 사정없는 따귀였다.

“관리자가 설치한 게이트에서 용사들이 처음 왔을 때, 나는 구원받았다고 믿었지. 참으로 순진하게도 말이야. 흐흐, 흐하하. 흐하하하하!!”

절규 같은 웃음이 예배당을 채웠다.

-재난의 성좌, 카라미타스가 축복을 내립니다!

파앗!

신성한 힘이 왕의 몸과 마음을 보듬어줬다.

재난에 의해 심신이 피폐해진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축복이었지만, 신성하고 강력했다.

휙.

국왕은 망토를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뒷모습만 보인 채 절망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잘 와주었네, 용사들이여. 내가 이 재난의 왕국, 키나핀러의 지배자, 존 키나핀러일세.”

그 순간, 미션 클리어 메시지가 떴다.

-축하드립니다! 46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77.

클리어 판정으로 레벨이 1 올랐다.

30분간 버티는 미션을 마침 타이밍 좋게 완수한 덕분이다.

“질문을 하나…….”

“질문이…….”

놀랍게도 은혁과 염훈이 동시에 질문을 하려 했다.

국왕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근소한 차이로 빨랐던 염훈에게 먼저 물었다.

“무엇인가, 성기사여?”

“이 땅에는 왜 이리 많은 재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요?”

“그야 재난의 성좌 마음이지.”

국왕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어, 어음, 그럼 재난의 성좌보고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해보면 어떨까요?”

염훈의 질문에 국왕은 별 모자란 놈 다 보겠다는 듯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언젠가 재난의 성좌께 직접 질문한 적도 있었으나, 그분께서도 모호한 답변만 주셨다. 됐나?”

왕은 더 많은 것을 알면서도, 재난의 이유에 대해 답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다음으로 은혁이 질문했다.

“왜 이곳에 계시고, 왜 플레이어들의 접근을 거부하시는 것인지요?”

“아, 그것 말인가.”

재난 상황이라면, 강력한 스킬을 지닌 용사 즉, 플레이어들과 협력하는 게 최선이다.

그럼에도 왕이 플레이어들을 만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재난의 성좌와의 계약이었네.”

“계약 말씀입니까?”

“큰 재난과 작은 재난 중 뭐가 나은가?”

“둘 다 없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일반적으로 작은 재난이 더 낫습니다.”

“바로 그걸세. 이 세상에는 원인 불명의 큰 재난이 연속해서 일어나지. 플레이어가 미션을 성공하면 오히려 더욱 큰 재난이 일어나곤 한다네.”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충전과도 같다고 하면 이해가 되겠나?”

그랬다.

플레이어가 46층~49층의 메인 미션을 받는 순간부터 크고 작은 재난은 시작된다.

플레이어가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면 재난은 해결된다.

하지만 46층~49층 구간의 모든 미션을 클리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보통은 중간에 실패한다.

그럼 어중간하게 클리어한 플레이어들이 ‘충전’시킨 재난이 모여서 더 크게 터진다.

“하여, 나는 결심했다네. 아예 플레이어들을 만나지 않아서 큰 재난의 싹이 피어오르지 않도록 하겠다고.”

“그래도 여전히 재난은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끊임없이 기도하는 이유는 큰 재난이 아닌 작은 재난이 터지게 하기 위함이네. 재난의 성좌, 카라미타스께서는 내 정성을 봐주신다네.”

재난의 성좌는 재난을 먹고 산다.

성좌가 실제로 식사를 하는 건 아니지만, 스테이지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재난의 차원에서 감상하는 것이 재난의 성좌가 먹고 사는 방법이다.

그리고 재난의 왕국의 왕은 ‘내가 예배당에서 기도드릴 테니, 큰 재난 말고 작은 재난만 터지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지금도 카라미타스는 막대한 운명치를 획득하고 있을 터.

그러자 염훈이 어이없어하며 발언권을 얻었다.

“폐하. 외람된 소린 줄 압니다만 완전 말이 안 되는데요.”

“허허. 대담한 성기사여.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건가?”

“용사, 즉 플레이어들과 힘을 합쳐 재난의 성좌를 물리치든 어쩌든, 하여간 재난의 원인까지 모두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거 아닙니까? 큰 재난이 두려워서 작은 재난이 일어나도록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다니요. 그것이 왕의 책무입니까?”

“책임지지 않는 자의 오만한 소리로다!!”

키나핀러 왕이 발칵 화를 냈다.

“네가 왕이냐?! 왕 노릇을 해본 적도 없는 놈이 무슨!!”

존 키나핀러 국왕은 재난 속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답게 감정 기복이 심했다.

“대답해보라! 그렇다면 너희들이 모든 재난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순간, 히든 미션창이 뜨고, 그 위에 수락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함께 떴다.

-존 키나핀러 왕이 히든 미션을 제안합니다!

-불가능한 난이도 확인!

-미션을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46층~49층 통합 히든 미션 : 국왕의 명령>

-목표 : 46층~49층 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재난을 해결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존 키나핀러 왕은, 자신의 능력을 초월하지 않는 선에서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

-실패 시 페널티 : 공개 처형.

-제한 시간 : 24시간.

-히든 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YES/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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