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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58화 (258/434)

258화 : 재난 해결 (1)

“하하하하!!”

은혁은 크게 웃었다.

“당연히 거절합니다.”

“흥. 그럼 그렇지. 역시 용사라는 것들은 늘 도망칠 길을 마련…….”

“그게 아니라 성공 시 보너스가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폐하.”

“뭣?!”

“재난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고 재난의 신과 거래하는 왕이 들어주는 소원의 수준이라고 해봐야 뻔하겠죠.”

“감히……!”

그때, 염훈이 나섰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폐하.”

“음? 네가 왜 나서냐, 염훈.”

그러자 염훈은 오히려 은혁을 타박했다.

“은혁아. 입장 차이를 생각해야지. 우리야 실패하면 떠날 사람이지만, 여기 있는 왕은 죽든 살든 왕국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잖아?”

“그래서?”

“그러니까 우리보다 훨씬 더 중압감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는 쪽이라고? 꼭 그렇게 평소처럼 틱틱거리는 말투로 말해야겠냐?”

“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은혁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인 뒤 키나핀러 왕 앞에 고개를 숙여 보였다.

“국왕 폐하께 용서를 구합니다.”

“……받아들이겠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스윽.

국왕은 통행권을 내밀었다.

“이 통행권과 용사의 증표가 있으면 왕국 내의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리고 너희의 미션인지 뭔지를 행하라. 가라.”

그때, 염훈이 나섰다.

“그전에 한 가지만 더요.”

염훈은 시장이었던 루이사의 편지를 전달했다.

왕국을 위한 간곡한 마음이 담긴 편지였지만.

찌익! 찌익!

국왕은 받자마자 보란 듯이 찢어 버렸다.

“가라.”

“읽지도 않고 이게 무슨 짓……!”

화가 난 염훈이 뭐라고 소리치려 했지만, 이번에는 은혁이 말렸다.

“말해도 소용없어, 염훈. 일단 물러나자.”

은혁은 염훈을 데리고 일단은 물러났다.

* * *

국왕과의 면담을 마치고 나오고 난 뒤, 염훈은 의외로 빠르게 화를 풀었다.

전반적으로 어이가 없는 일의 연속인지라, 도리어 빠르게 화가 풀린 것이다.

“이번 스테이지도 전반적으로 골 때리네. 왕이고 미션이고…… 허참.”

“아직 다음 미션은 받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의미가 아니라, 보통의 경우에는 왕이 우리한테 재난을 해결해달라고 부탁하지 않냐?”

“보통이라면 그렇지.”

끝없는 재난이 밀어닥친 왕국의 왕이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사에게 애원할 터.

“하지만 염훈, 네가 아까 내게 했던 말이 정답일지도 몰라.”

“그럼 왕은 좀 미쳤다는 거네. 끝없는 재난의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거겠지.”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 함?”

그 순간, 미션창이 떴다.

<47층 메인 미션 : 도시 내부의 재난 해결>

-목표 : 현시점에서 왕국 수도에 발생 중인 다음의 재난급 사건 사고들을, 24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해결할 것.

A. 흡혈귀의 준동.

B. 식수 공급 문제 해결.

C. 연쇄 방화 사태.

D. 원인 불명의 지진 사태.

-성공 시 보너스 : 클리어한 재난의 종류에 따라 다름. 단, 클리어 보상은 전적으로 47층 왕국 수도에 거주하는 NPC들을 위한 것이며, 플레이어를 위한 혜택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 시 페널티 : 거대한 재난이 도시 곳곳에 닥침.

-제한 시간 : 24시간.

미션창을 본 염훈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이 드냐, 염훈.”

“……일단 재난들이 하나같이 막장이네. 24시간 이내에 해결 가능한 재난이 하나도 없지 않냐?”

“현실 세계 기준에서는 절대 불가능이고, 100층탑 기준에서도 많이 어렵지.”

“게다가 플레이어가 실패하면, 그 페널티는 이 도시 사람들이 뒤집어쓰는 거고?”

“그렇지. 운이 좋으면 작은 재난이 하나 터지고 끝이지만, 재수 없으면 큰 재난이 터져.”

“플레이어의 미션 실패로 큰 재난이 터지면, 혹시……?”

“맞아. 재수 없으면 미션에 그대로 추가되지.”

현재는 도시의 재난 종류가 A, B, C, D의 4개다.

하지만 은혁의 회귀 전 기억 중에는, A부터 K까지, 무려 11개의 재난이 닥쳤던 적도 있다.

몇몇 행복 길드의 분탕러들이, 일부러 미션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며 자꾸 실패했기에 벌어진 사달이었다.

미션 실패 횟수가 늘어나자, 자잘한 재난이 연쇄적으로 이어졌고, 메인 미션에 등록되는 재난도 늘어났다.

‘결국, 국왕도 죽었지, 아마?’

소문대로라면, 구원 길드의 길드장 올마스크가, 일종의 안락사 차원에서 국왕을 죽이고, 그 영혼을 봉인했다고 한다.

도시 내부의 큰 재난만 10개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플레이어가 클리어하기에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국왕이 죽고, 그 영혼이 봉인된 순간 이 왕국은 완전히 멸망하고, 100층탑으로부터 해방된다.

남아 있던 최소한의 생존자 NPC와 라벨리아, 로널드 등의 플레이어는 5층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실의에 빠진 채 5층 광장에 널브러져 있는 라벨리아와 로널드를 염훈이 위로하고, 동료로 영입할 수 있었지.’

그 뒤로 46층~49층은 완전히 다른 미션으로 개변하게 된다.

은혁은 회상을 그만뒀다.

회귀 전이건 지금이건, 미션 수준은 막장이다.

“국왕이랑 꼬마 녀석들이 용사들을 싫어할 만하네.”

사실, 플레이어에게는 미션 실패 시 페널티가 없다.

실패하면 재도전하거나 5층으로 가는 게이트 타고 도망치면 된다.

그러나 도시는 다르다.

실패는 플레이어가 해도, 그 모든 재난을 46층~49층 통합 스테이지에 사는 이들이 뒤집어쓴다.

‘양심적으로 이곳에 남아 NPC들을 돕는 플레이어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소수지.’

이런 상황이니, 이 지역에 사는 이들은 플레이어들을 미워했다.

“게다가 성공 시 보너스도 엄청 열악한데?”

NPC들에게 희망을 줄 뿐, 플레이어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없다.

플레이어에게 동기 부여를 할 만한 보너스를 주지 않는 것이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레벨업을 시켜주는 것도 아니네.”

즉, 46층~49층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후후후.’

물론, 은혁에게는 계획이 있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득을 얻을 계산도 끝내뒀다.

은혁의 표정을 살핀 염훈은 의욕에 차서 물었다.

“보아하니 재난들을 단숨에 척척 해결해 내겠다는 표정이군!”

“아닌데.”

“어? 아님?”

“아님.”

“그럼 우리 뭐 함?”

“청소.”

“……썩어빠진 왕국의 귀족들을 다 죽여서 청소하겠다 뭐, 그런 거냐?”

“뭔 소리야. 왕궁 앞 광장 말이야.”

무수히 많은 쓰레기의 산.

“광장 청소부터 해보자고.”

은혁은 떠났던 루이사를 찾았다.

루이사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어떠셨나요? 폐하는? 제 편지도 전해주셨습니까?”

희망에 가득 찬 루이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은혁은 거짓으로 적당히 답해줬다.

심신이 지쳐있던 루이사는 은혁의 답변에 크게 기뻐했고, 삶의 의욕을 얻었다.

“일단은 이곳에서 피하십시오. 본격적으로 재난과 싸울 생각이니까요.”

은혁은 루이사에게는 금화를 준 뒤, 떠돌이 꼬마들과 다른 곳에 피해 있으라 시켰다.

그다음 은혁은 쓰레기 산을 정찰하는 근위병들에게도 금화를 내밀었다.

“국왕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쓰레기의 산을 치우겠습니다.”

물론, 은혁은 통행증만 받았을 뿐이지만, 전설의 용사의 증표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근위병들은 별로 의심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은혁은 [메탈 워커 소환] 스킬을 바로 썼다.

“자아, 메탈 워커들아! 일하자!”

“삐빗, 삐비빗!”

그리고 [메탈 서전트 소환] 스킬을 썼다.

“메탈 서전트. 이 도시에는 배불뚝이 마이크라는 고물상이 있다. 그곳에 가서, 광장의 쓰레기 산에 존재하는 모든 고철을 공짜로 주겠다고 전하라.”

“그냥 공짜로 말입니까?”

“그렇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배불뚝이 마이크로부터 답변을 얻어와야 합니까?”

“그렇다. 고철을 그냥 공짜로 줄 테니 동의하냐고만 물어라. 가라.”

그리고 은혁은 쓰레기의 산이 치워지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왕궁의 코앞에 이런 큰 쓰레기의 산이 있다니. 이건 왕국의 불명예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염훈?”

“뭐, 비정상적이긴 하지.”

“청소에 불만 있음?”

“내 말은, 우리 왕국도 아니고 남의 왕국 청소를 네가 왜 하냐는 거지.”

염훈은 이곳의 국왕, 존 키나핀러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중압감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왕의 모습은 안타까워 보였다.

하지만 무능하고 괴팍한 것은 아무리 봐도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왕이라면 직접 자기 왕국, 자기 수도를 챙겨야 한다.

그런데 자기 왕궁 코앞에 쓰레기의 산이 쌓이도록 두다니.

“이것도 그 재난의 성좌가 왕에게 시킨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지.”

“에잇, 짜증 나.”

“너무 짜증 부리지 마, 염훈. 이 왕궁이 네 것이라고 생각해 봐.”

“그럴 리가 있냐. 누가 줘도 안 가져.”

“네가 안 가지면 왕국이 멸망한다고 생각해봐. 그래도 안 가질 거냐?”

“그런 경우라면 뭐…….”

“아, 저길 봐. 연단이 드러났다.”

쓰레기를 치우자 연설용 연단이 드러났다.

“삐빗, 삐빗!”

“삐비빗!”

메탈 워커들은 쓰레기를 어디로 치워야 하느냐고 묻듯이 은혁의 곁에 왔다.

“아, 저쪽 방향이다. 메탈 서전트가 날아간 방향.”

그곳에 배불뚝이 마이크가 있을 것이다.

아직 메탈 서전트로부터, 배불뚝이 마이크의 동의를 얻었다는 답신이 돌아오기 이전이지만, 미리미리 보내두기로 했다.

“애들 일하게 두고, 우린 이동하자.”

“어디로?”

“시청으로.”

* * *

시청은 2년 전에 파괴되었고, 시청 앞 광장은 척박한 평지로 변해 있었다.

시장이었던 여인은 반쯤 정신을 놓고, 어린아이들을 돕는 노파 행세를 했다.

남은 시청 직원들 중 절반 정도는 죽었거나 자신들의 역할을 포기했다.

나머지 절반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시정 활동을 했다.

열심히 일하는 한 공무원이, 광장 게시판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재난 게시판을 교체하는 것뿐이네.’

머리를 아주 짧게 깎은 여자 공무원이었다.

경비대는 바쁘고, 소방서도 파괴되었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재난에 대해 알리는 것뿐.

찌익.

오래된 재난 게시물을 찢어 버린 뒤, 새 종이를 게시판에 붙였다.

“크흠, 아아.”

재난 게시판 옆 확성기를 들고, 공무원은 마이크 테스트를 했다.

“하나둘셋넷, 넷셋둘하나.”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지만, 노력에 비해 목소리는 그저 그랬다.

여자 공무원은 대신 큰 소리로 외치기로 했다.

“현재 재난 순위를 알려드립니다!”

그 순간.

뚜둑.

오래된 확성기가 결국 고장 났다.

“세상에, 말도 안 돼.”

탁탁!

확성기를 손으로 두들기며 수리(?)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러면 사람들한테 경고를 해줄 수가 없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있기에 도시가 완전히 무너지진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기적인 경고 방송을 해줄 수가 없다면, 당장 그들이 재난에 직접 피해를 안 입더라도 경고 방송이 끊겼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커질 것이다.

“아아, 어쩌지…….”

울상을 짓고 쪼그려 앉은 공무원.

그런 그녀의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히익?!”

은혁과 염훈이었다.

“은혁아. 신기하다. 확성기가 다 있네?”

“인간, 엘프, 드워프, 하플링 NPC들이 모여 사는 도시니까. 기술도 빠르게 발전한 모양이지.”

“근데 고장 난 모양인데?”

“그러게.”

은혁과 염훈은 여자 공무원을 도와줄 생각은커녕, 분석하느라 바빴다.

“저기요!”

여자 공무원이 못 참고 소리쳤다.

“어우, 깜짝이야.”

“왜 소리칩니까?”

은혁과 염훈이 어이없어하자, 여자 공무원은 화를 냈다.

“지금 태연하게 고장 난 거 구경할 때예요?! 긴급 사태라고요!”

“뭐, 재난은 거의 일상이라던데.”

염훈이 말하자 여자 공무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봐요!! 그걸 내가 모를 것 같차타녀려요!! 아아악!!!”

너무 화가 나서 말이 꼬였다.

그녀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과 같다.

‘재난이 일상이라는 걸 제가 모르겠어요? 정말 큰 문제는, 재난 발생 사실을 다른 시민들에게 알려주지 못한다는 거라구요!’

평소라면 똑바로 말했겠지만,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였기에, 그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순간.

“[정화].”

파앗!

염훈은 강제로 그녀의 마음속 혼란을 치유해줬다.

“에……?”

시원하게 울음을 쏟아내기도 전에, 시원하게 운 직후 찾아오는 카타르시스를 즉석으로 맞이했다.

감정의 혼란 때문에 여자 공무원이 허둥거리는 순간, 은혁도 스킬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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