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 재난 해결 (2)
“[메탈 서전트 소환]. [메탈 워커 소환].”
파앗! 파앗!
배불뚝이 마이크와 교섭하러 갔던 메탈 서전트는 다시 은혁의 앞에 소환되었다.
은혁의 예상대로, 메탈 서전트는 배불뚝이 마이크와의 교섭이 잘되었다고 보고했다.
“수고했다. 수리하고, 청소해라.”
“네, 주인님!”
“삐비빗!”
메탈 서전트는 확성기를 즉시 수리하기 시작했고, 추가 소환된 메탈 워커들은 공터를 청소했다.
-소환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소환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소환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소환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소환술사 숙련도 : 34%+.
메탈 워커에게, 재난으로 인해 복구가 덜 된 시청을 청소시키자 빠르게 숙련도가 올랐다.
“주인님. 확성기는 완전히 녹이 슬어서 부서진 부분이 많습니다. 정교한 부품이 여러 개 필요합니다.”
메탈 서전트가 고장 난 확성기를 보며 말했다.
메탈 서전트가 마음만 먹으면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가전 제품도 수리가 가능했으나, 필수 부품이 아예 녹이 슬어 파괴되었다면 도리가 없었다.
그러자 은혁이 직접 나섰다.
“그래? 그럼 내가 수리해야겠네.”
“외람되오나, 재료 자체가 부족한 것이기에, 전능에 가까우신 주인님이라고 하셔도 수리는 조금…….”
“녀석. 전능이란 단어는 쉽게 쓰는 게 아니다. 그리고 직접 봐라.”
은혁은 절간에서 동자승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노승처럼, 메탈 서전트의 차갑고 매끄러운 금속 머리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어줬다.
메탈 서전트는 부끄러워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긴급 수리] + [기계 수리]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은혁은 스팀펑크 메카닉의 스킬인 [긴급 수리]와 금속 차원의 소환술사 스킬인 [기계 수리]를 융합시켰다.
“퓨전 스킬 [긴급 기계 회복].”
파앗!!
금속으로 이뤄진 확성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부서지고 고장 난 금속 부품과 재료를 통째로 ‘회복’시키는 일은, 고레벨 연금술사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소환술사 숙련도가 6% 증가했습니다!
-현재 소환술사 숙련도 : 40%+.
“간단하군.”
여자 공무원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못 했고, 은혁과 염훈은 어느새 가위바위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가위!”
“바위!!”
“보!!!”
은혁이 이겼다.
“하하! 확성기는 내가 쓴다?”
“칫.”
염훈이 물러나자, 은혁은 일부러 자랑하듯 확성기를 훅훅 불었다.
“훅훅,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둘셋, 셋둘하나.”
“테스트는 그쯤하고 빨리 본론이나 말해.”
“가만있어 봐. 생각 좀 정리하고.”
“못하겠으면 확성기 이리 내놔.”
“거참 마이크 욕심부리긴.”
은혁은 얼른 게시판을 들여다보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는 강은혁, 제 동료는 염훈입니다. 일단 ‘전설의 용사의 증표’를 지닌 플레이어들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최근 도시 내부에서의 흡혈귀, 도시 바깥에서의 늑대인간 때문에 아주 괴로우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24시간 이내에 저와 염훈이 싹 다 해결할 테니까. 그러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 이상입니다.”
콰직!!
말을 마친 은혁이 확성기를 움켜쥐어서 파괴했다.
“야!”
“이봐요!”
염훈과 여성 공무원이 동시에 소리쳤지만.
“확성기 붙들고 있을 때가 아냐. 재난과 맞서 싸울 때다!”
은혁은 평소답게 혼자 멋있는 척했다.
* * *
“엄청나군요.”
“그러게요.”
평화 길드와 구원 길드의 1군 소속 길드원들은 방송을 듣고 어이없어했다.
은혁의 성격이 대찬 편이라는 것은 들어왔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 순간.
화악!
그림자를 뚫고 은혁과 염훈이 나타났다.
“자자, 바로 역할 분담 갑시다!”
은혁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반인 구조는 여러분 몫! 나머지 재난의 원인은 전부 나와 염훈이 뿌리 뽑겠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질문했다.
“엥? 어떻게?”
그 누군가는 염훈이었다.
재난의 원인을 뿌리 뽑아야 할 당사자 중 한 명이 질문하자, 그 자리에 있던 나머지 모두가 당황했다.
“잘!”
은혁은 그렇게만 말하고, 라벨리아와 로널드를 찾았다.
두 사람이 얼른 앞으로 나오자, 은혁은 두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빠르게 설명드리죠.”
은혁이 말하고 두 사람은 경청했다.
“저와 염훈이 나서서 재난의 원인을 제거할 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왠지 평소보다 재난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러면 당황하지 말고 알아서 잘 대처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할 말을 다 한 은혁은, 염훈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라벨리아와 로널드는 입을 떡 벌렸다.
“과연.”
“소문대로네요.”
“엄청 제멋대로군요.”
“그러게요.”
불안하면서도, 뭔가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 * *
“은혁아.”
“왜?”
“우리 47층 메인 미션 깨려는 거 아니었어?”
염훈이 질문한 이유는, 은혁이 도시 바깥으로 나가려 했기 때문이다.
“어, 한꺼번에 할 거야.”
“한꺼번에?”
“일단 도시 밖으로 나가자고.”
도시 바깥부터는 48층 구역이다.
나가는 길은 남쪽에 있는 남문뿐이었다.
나머지 문은 도시 방위를 위해 아예 막아 버린 상태.
“왜 그렇게 꽁꽁 막아 둔 거지?”
염훈이 의아해했고, 은혁은 설명했다.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막 몰려든 적이 있거든.”
도시 내부에서는 재난이 독버섯처럼 생겨나고, 외부에서는 외적이 침입하니, 아예 문을 하나 빼고 다 막은 것이다.
저벅저벅…….
남문으로 가니, 수도방위군단이 막고 있었다.
“거기 플레이어 둘! 정지!”
“플레이어는 이 밖으로 나갈 수 없소!”
중갑옷을 입은 군단병들이 막아섰다.
스윽.
은혁과 염훈은 말없이 전설의 용사의 증표를 꺼내 보였다.
“……통과.”
두 사람은 남문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미션창이 떴다.
<48층 메인 미션 : 도시 외부의 재난 해결>
-목표 : 왕국 수도를 제외한 전역을 위협하는 재난 웨이브를 극복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재난의 질과 양에 따라 다름.)
-실패 시 페널티 : ???.(재난의 질과 양에 따라 다름.)
-제한 시간 : ???.(재난의 질과 양에 따라 다름.)
미션창 다음으로 추가 시스템창이 떴다.
-현재 다른 플레이어의 몬스터 웨이브가 진행 중입니다!
-중도 참가가 가능하나, 클리어는 불가능합니다.
-메인 미션을 진행하시려면 다음 웨이브에 참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음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 : 1시간 10분.
“재난…… 웨이브인가.”
염훈은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몬스터 웨이브 같은 건가?”
“그것도 포함.”
“그것도 포함?!”
“뭐, 몬스터 웨이브라는 형태의 재난도 있고, 별별 재난이 다 닥치겠지.”
“허참. 난이도 메시지를 보니까 1단계라던데…….”
염훈은 걱정스러워했다.
그때, 저편에서 비명을 지르는 중소 규모의 길드 하나가 보였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도망쳐!!”
그들이 상대하는 재난 웨이브는 ‘맹독의 모기떼’였다.
피를 빨면서 독을 쑤셔 넣는 악랄한 맹독의 모기들.
47층에 도전할 정도면 어지간한 몬스터는 학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플레이어들일 것이다.
하지만 ‘재난’ 형태로 몰려드는 벌레들은, 길드 단위로도 상대하기가 다소 버겁다.
‘정말 어려운 건 2단계지.’
2단계부터는 늑대인간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그것도, 그냥 늑대인간이 아니다.
은혁은 회귀 전 기억을 더듬었다.
‘타락한 검은 늑대 부족이었지.’
골치 아픈 건, 단순 몬스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타락한 검은 늑대 부족’은, 정확히 누군지 모를 3군주 중 누군가가, 실험을 통해 개조해서 만든 존재다.
즉, 48층은 3군주 세력 중 하나가 만든 실험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타락한 검은 늑대의 수장인 ‘헬로이’는…….
‘강하다. 엄청 강해.’
김경철 바로 위 수준으로 강하다.
일대일 전투 실력만 해도 그 정도인데, 수많은 늑대인간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했다.
은혁도 방심하면 죽을 수 있다.
‘그런 놈에게도 약점은 있지.’
스스로를 몬스터로 위장해서 머무르고 있다는 점.
그리하여 미션에 얽매인 상태라는 점이 약점이다.
‘기습 공격을 당할 걱정은 덜었군.’
그때, 피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휘오오오…….
도시 내부와 달리 안개는 없었기에, 탁 트인 평야는 멀리까지 보였다.
“……은혁아.”
“응.”
두 사람은 살기를 느꼈다.
‘지켜보고 있군.’
평야 저편, 그보다 더 먼 곳에서 검은 늑대인간은 은혁과 염훈을 감시하고 있었다.
납작 엎드린 그들의 모습은 일반인의 육안에는 절대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의 은혁과 염훈은 그 정도의 살기는 가볍게 느낄 수 있었다.
은혁은 씨익 웃은 뒤, 늑대인간들이 은신한 방향으로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염훈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더 정찰 같은 거 안 하고?”
“안 해도 돼. 다시 가서 일단 쓰레기부터 마저 치우자.”
은혁의 머릿속에는, 차후에 있을 늑대인간들과의 대결에 대한 전략이 들어 있었다.
‘티격태격 싸우면 피해가 커진다. 단 한 번에 쓸어버려야 한다.’
* * *
왕궁의 예배당.
국왕은 여전히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으으, 성좌 카라미타스시여! 제발! 제발 오늘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게 해주소서.”
존 키나핀러 국왕의 기도는 평소보다 더 간절했다.
은혁, 염훈과의 면담 이후로 겁이 덜컥 났다.
‘놈들 때문에 성좌깨서 더 분노하시면 어쩌나?’
그때였다.
슈우우욱……!
보랏빛 포탈이 생성되더니, 카라미타스의 사도가 그곳에서 걸어 나왔다.
사도는 구름 같은 새하얀 색의 로브를 몸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충직한 국왕이여. 카라미타스의 전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오……!”
키나핀러 국왕은 체통도 무시하고 넙죽 엎드렸다.
사도는 성좌의 의지를 전달했다.
“지금 즉시 성지를 파괴하라고 하셨습니다.”
“카라미타스 님의 성지를 말입니까?”
이곳 예배당 말고도, 카라미타스의 성지는 따로 존재했다.
49층으로 규정되어 있는, 평야 너머의 선산이다.
그 선산에는 왕가의 대장간이라고도 불리는 ‘엘더 포지’가 있었다.
엘더 포지는 키나핀러 왕국의 건국 신화와도 맞닿아 있는 장소였으나, 카라미타스의 성직자들은 현재 국왕인 존 키나핀러 왕의 협력하에 그 엘더 포지를 부수었다.
그리고 엘더 포지의 잔해 위에 ‘카라미타스의 성지’를 만들어 두었다.
그 성지에는 카라미타스의 강력한 성유물도 숨겨져 있으며, 성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륙의 재난 발생률이 250% 이상 증가했다.
사도는 그곳을 파괴하라 지시했다.
“그렇습니다.”
“어째서 그분의 성지를 파괴하라고 하시는지요?”
키나핀러 왕은 사도를 미심쩍게 바라봤다.
카라미타스를 섬기는 사도가, 정작 그 카라미타스의 성지를 파괴하라고 하니 믿기지 않는 것이다.
“물론, 강은혁과 염훈 때문입니다.”
“역시 그놈들이……? 아니, 그놈들이 구체적으로 뭘 하려는 겁니까?”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카라미타스 님께서, 그놈들이 일으킬 재난이, 카라미타스 님께 끼칠 피해를 계산하셨습니다.”
여기서 카라미타스의 이기적인 면모가 드러났다.
재난의 성좌답게, 다른 존재가 일으킨 재난이 자기 자신에게 입힐 피해를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그 말씀은, 강은혁과 염훈이 그 성지에 숨겨진 아티팩트를 악용하려 들 것이다, 이 말씀인지요?”
“설명은 끝났습니다. 일을 수행하시오.”
“으음, 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소…….”
사도는 휙 뒤돌아서 다시 떠나려 했고, 국왕은 얼른 다시 말을 걸었다.
“잠깐!”
“또 뭡니까?”
“그러고 보니 당신도 아티팩트를 하나 갖고 있지 않소? 그것도 파괴해야 하는 거 아닌지……?”
그랬다.
카라미타스의 사도 또한 작은 크기의 성유물을 하나 더 갖고 있었다.
국왕이 그것도 미리 파괴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사도는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