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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61화 (261/434)

261화 : 재난 해결 (4)

“흐음. 우리의 뒤를 쫓는 자들이 있다고?”

폐허가 된 어느 귀족의 저택 응접실.

피가 든 와인 잔을 기울이는 흡혈귀 백작이 있었다.

그 밑에는 고대 혈족의 흡혈귀들이 무릎을 꿇은 채 도열해 있었다.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길드연합국에서 온 플레이어 집단이, 이 지역 시청 직원과 연합한 모양입니다.”

“후, 깜찍한 것들이군.”

흡혈귀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은 왜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피를 바치고 편해질 생각을 왜 못하는 걸까?”

흡혈귀 백작 트윈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한때는 플레이어였다.

46층~49층 통합층에 도전했던 그도 한때는 어려운 이들을 돕던 착한 플레이어였다.

그러다 오염된 유리 조각에 부상을 당했다.

팔뚝 안쪽에 생긴 상처였는데, 트윈터는 자신이 다친 것도 모른 채 남들을 도왔다.

그 탓에 상처가 점점 커져서, 주요 혈관과 신경을 모두 다쳤다.

뒤늦게 후회하며 병원에 입원했다.

이미 여러 번 무너졌다 다시 지어진 병원이었다.

그 병원 응급실 침대에 앉아 힐링 포션을 마시며, 간호사의 치료를 받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무작위 재난이 그를 덮쳤다.

-병원 감염이 발생했습니다! 무작위 질병에 감염됩니다!

응급실에 있던 플레이어 몇 명이 미션을 포기하고 냅다 도망친 탓에, 몇 겹의 재난이 덮쳤다.

일부 환자는 의료 과실로 죽었고, 건물은 흔들렸다.

그때, 지하에 봉인되어 있던 백작급 고대 흡혈귀의 피가 흘러나와 기화되더니, 환기구를 통해 응급실 환풍구로 밀려들었다.

트윈터가 있던 침대는 환기구 바로 옆이었고, 순식간에 트윈터의 몸속으로 흡혈귀의 피가 스며들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태로 인해 트윈터는 흡혈증에 취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애를 쓰던 간호사의 피를 전부 마셨다.

“그리고 그날 깨달았지. 재난이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트윈터가 웃자, 그의 권속 흡혈귀들도 킥킥거리며 웃었다.

“피의 맛을 모른 채 남을 돕기만 하던 나약한 시절의 나. 그런 옛날의 나와 같은 플레이어 놈들을 잡아 죽이는 것은 얼마나 큰 쾌락인가!”

트윈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아, 그럼 주제를 모르는 놈들을 죽이러 가볼…….”

콰콰쾅!!!

갑자기 벽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 광경에 냉철한 흡혈귀들도 가만히 굳어 버렸다.

“……에?”

벽을 뚫고 나타난 이는 [무적 돌진] 스킬을 쓰고 온 염훈이었다.

“정말 여기들 모여 있었군.”

블러드 솔저들이 피 냄새를 맡고, 염훈이 [신성한 오러]로 사악함을 탐지했다.

“길드장이시여. 명령을.”

블러드 솔저들이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염훈은 은혁에게 블러드 솔저들에 대한 지휘권을 얻었고, 사용법도 들었다.

“대빵을 제외한 나머지 흡혈귀를 전부 잡아먹어. 죽이지 말고 잡아먹어야 한다?”

이곳의 고대 혈족 흡혈귀들은 단순 몬스터나 플레이어가 아닌, ‘재난’으로 취급되었다.

단순히 죽이면 새로운 재난이 탄생하지만, 먹어서 흡수해 버리면 새로운 재난이 나타나지 않는다.

“존명…….”

블러드 솔저들이 행동에 나섰다.

“백작님! 이 새끼들은!”

“혈운파 계열 흡혈귀들인가?!”

“근데 왜 인간의 명령을 듣는 거지?”

흡혈귀들이 당황했다.

은혁이 만들어낸 블러드 솔저는 하급 흡혈귀도 아니고 단순 플레이어도 아닌 기묘한 존재.

트윈터와 고대 혈족의 흡혈귀의 눈에는 불쾌한 골짜기를 유발하는 기괴한 존재였다.

“제길! 신경 쓰지 마! 전부 죽여!!”

트윈터가 외쳤고, 염훈도 즉시 외쳤다.

“[신성한 지휘]! [광역 축복]!”

파앗! 파앗!

염훈이 스킬을 쓰자, 트윈터는 웃었다.

“멍청한 성기사 놈! 같은 편을 죽이는구나!”

일반적으로 성기사나 성직자의 버프는, 흡혈귀에게는 독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화악!

블러드 솔저들의 능력치는 급상승했고, 흡혈귀들을 쳐 죽였다.

퍼버벅!

“뭣?!”

“블러드 솔저들은 그냥 흡혈귀가 아니란다~.”

염훈이 웃으며 빅 썬더로 트윈터의 머리를 갈겼다.

빠각!!!

단 일격에 트윈터의 머리는 터졌다.

하지만 트윈터는 죽지 않았다.

슈우우…….

[안개화] 되었다.

백작급 이상의 고대 혈족 흡혈귀 귀족이라면 자연스럽게 익히는 기술로, 육신이 파괴되면 안전한 곳으로 안개로 변해서 이동한다.

언데드이면서 동시에 자연적인 상태이기에, 어지간한 물리 공격에는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홀리 썬더].”

콰콰쾅!!!

신성력을 머금은 충격파는 견딜 수 없었다.

-커컥……!!

순식간에 빈사지경에 이른 트윈터는, 블러드 솔저와 싸우는 부하 흡혈귀 하나를 통째로 잡아먹었다.

콰지직!

콰직!!

“허억, 허억.”

부하 흡혈귀의 몸을 잡아먹어서 회복한 트윈터는 숨을 몰아쉬었다.

염훈은 마지막 일격을 먹이기 전에 물었다.

“죽이기 전에 한 가지만 물을까?”

“뭐가 궁금한가?”

“왜 이 도시에 흡혈증을 퍼뜨린 거지?”

“부하들이 늘어나야 흡혈귀 귀족으로서의 내 격이 늘어나니까.”

“겨우 그런 이유로?”

“달리 뭐가 있겠나.”

“그동안 몇 명 죽였지?”

“모른다.”

“후회나 죄책감도 전혀 없나?”

“흠…….”

트윈터는 처음으로 망설이는 듯했다.

하지만 염훈은 실망했다.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 후회하는 척하는 거라면, 빤히 보인다.”

“흐흐흐. 들켰군.”

스르르륵……!

트윈터의 손바닥에서 피가 뭉치더니, 하나의 정육면체로 변했다.

트윈터의 인간 시절 직업은 ‘주사위를 만드는 혼돈술사’였다.

은혁의 부하 중 한 명인 다이스맨의 직업은 ‘주사위를 굴리는 혼돈술사’인데, 거의 동일한 직업이었다.

그러나 다이스맨과 달리 지금의 트윈터는 자신의 피로 주사위를 만들고 주사위의 눈을 조작할 수 있었다.

슈르륵, 슈르륵.

주사위는 순식간에 팽창하더니, 사과 크기로 커졌다.

“혼돈술사의 힘을 보여주마!”

“응, 안 돼.”

목소리는 혼돈술사의 그림자 속에서 들려왔다.

“어?”

슈콱!!

은혁이 [그림자 암습]을, 뱀프릭 체인 소드로 갈겼다.

콰직!!

피의 톱날이 트윈터의 목을 찍었고.

“[피의 포식].”

콰직!

피의 톱날 형태의 칼날의 일부가 거대한 흡혈귀의 이빨 모양으로 변하더니.

콰직!

콰드드득……!!

“컥, 커컥……!!”

트윈터는 강제로 피가 빨려 죽었다.

-뱀프릭 체인 소드가 흡혈귀의 피를 흡수하였습니다!

-위력과 내구도가 강화되었습니다!

-[흡혈귀 사냥 숙련] 패시브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오오.”

은혁이 뱀프릭 체인 소드를 보며 감탄했다.

“흡혈귀를 죽이면 그 흡혈귀를 통째로 흡수할 수 있는 거구나?”

이제, 은혁의 뱀프릭 체인 소드는 대충 휘둘러도 적의 목에 꽂히는 [명중 보정] 스킬을 껐다 켰다 할 수 있었다.

[필중의 일격] 스킬과 연계하면 어떨지 궁금해한 순간.

-재난 극복!

-A. 흡혈귀의 준동 재난을 해결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도시 내의 모든 NPC의 용기와 희망이 회복되었습니다!

“좋았어!”

은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염훈은 은혁의 등장을 예상했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아앗!”

“막타 뺏겼어!”

“서, 설마?!”

경악하는 길드원들에게 은혁은 환하게 웃어줬다.

“클리어 판정은 내게 먼저 떴으니, 이 재난을 클리어한 사람은 나다! 즉, 약속한 클리어 보상금은 줄 수 없다!”

그러자 길드원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심지어는 음울한 인상의 블러드 솔저들도 화를 냈다.

“약았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 냐아!!!”

은혁은 부하들의 반응을 보고 웃었다.

“걱정 마라. 클리어 보상금은 줄 수 없지만 수고비는 따로 챙겨주마.”

쩔그렁!

은혁은 금화가 든 묵직한 자루를 눈앞에 떨어뜨렸다.

“헉?!”

“저게 얼마야?”

“금화로만 꽉 찬 거면 3만 골드는 되겠는데?”

원화로 10억을 우습게 넘는 돈이다.

“돈 챙겼으면, 도시 밖으로 가라. 가서 박병철을 도와라. 훨씬 더 많은 수고비를 추가로 챙겨줄 테니까.”

“오옷!”

불패불굴 길드원들과 블러드 솔저는 다시 열광하기 시작했다.

염훈만이 걱정스럽게 다가왔다.

“은혁아. 괜찮겠냐? 아무리 너라지만…….”

“걱정 마. 그보다 얼른 얘네들 다 데리고 가서 박병철이나 도와줘. 너무 발광하는 거 같으면 말리고.”

“알았다.”

대화를 마친 직후, 섀도 코볼트 하나가 다가왔다.

“주인이시여…….”

“오, 보고해라.”

은혁은 섀도 코볼트를 도시의 곳곳에 파견시켜뒀다.

그때그때 지원 병력으로 쓸 수도 있고, 도청용으로 쓸 수도 있었다.

은혁이 A조를 도우러 와서 막타만 빼먹은 것도 그 덕분이다.

“현재 C조가 연쇄 방화 사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 가지, 뭐.”

은혁은 C조 근방에 있는 섀도 코볼트의 위치를 판별한 뒤, 바로 [그림자 도약]을 썼다.

* * *

방화범의 정체는 최상급 화염의 정령이었다.

“이게 말이 돼?!”

“물질계에는 최상급 정령이 나오면 안 되는 거잖앗!!”

C조에 속한 불패불굴 길드원들은 퇴각하기 바빴다.

C조 조장인 도적, 케넬로스가 도적 스킬을 이용해 방화범 집단의 은거지를 추적한 것까진 좋았다.

놈들은 감히 폐허가 된 하플링 공동체의 교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플링들을 가호하는 신, ‘머쉬맨쉬’의 성물을 부수고, 욕보이며 불쏘시개로 쓰고 있었다.

C조는, ‘잡았다 요놈들!’ 하는 심정으로 거칠게 들이닥쳤다.

문제는, 방화범 놈들을 생포하려는 순간 놈들이 갑자기 자살하면서, 자신들의 몸을 화염의 차원의 통로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화아아아악!!!

그 통로에서는 무수히 많은 까불이 불꽃이 나타났다.

“젠장! 골치 아픈 것들이 튀어나오는군!”

까불이 불꽃은, 강력한 화염의 정령들에 비해 약했지만, 숫자가 무척 많았다.

게다가 최대한 혼란을 퍼뜨리는 것 자체가 목적인 소악마형 정령인지라 대처가 더욱 까다로웠다.

“캬르륵!”

“캬아!”

까불이 불꽃들은 사방으로 튀어 나가며, 힘겹게 살고 있는 하플링들을 노리고 달려갔다.

“악!”

“막아!”

까불이 불꽃들은 크기가 워낙 작아서 죽일 수가 없었다.

“으아!”

“우, 우리가 이런 민폐를!”

C조가 일 처리 하러 나선 탓에, 오히려 큰 화재가 일어나는 중이었다.

“일단 저 화염의 통로부터 막……!”

화아아악!!

최상급 화염의 정령이 화염의 통로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몸으로 화염 차원의 통로를 막아섰다.

“이, 이럴 수가.”

“망했다……!”

최상급 화염의 정령은 아직 몸을 완전히 꺼내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잠시 뒤면 자유롭게 날뛸 수 있으리라.

최상급 화염의 정령이 몸을 뒤틀기만 해도 사방에 불꽃이 퍼져 나갈 터였다.

-크하하하하!! 어리석은 필멸자들아! 포기하라!

일반 정령과 달리, 최상급 화염의 정령이면 자의식을 지닌 준신급 존재다.

재난의 스테이지였고, 이 세계의 주민들은 끝없는 화재에 체념한 상태였기에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닥쳐라!”

“우린 불패불굴 길드다!”

“재난 따위에 굴복하기에는 길드명이 아깝다!”

불패불굴 길드원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바락바락 소리를 쳤다.

-어리석은 것들아! 화재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다!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최상급 화염의 정령은 플레이어들을 약 올렸다.

4대 원소 중 하나인 화염의 정령이기에, 어느 정도 중립을 지켜야 하는 최상급 화염의 정령이지만, 재난의 스테이지에 완전히 동화되고 있었다.

-크하하! 너희들을 땔감으로 삼아, 더욱 강해지리라!

모든 것을 태우는 화염의 정령이 본성을 드러내려는 순간.

“그렇게는 안 됨.”

-뭣?!

등 뒤에는 청염백광단검을 쥔 은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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