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 왕위 찬탈
은혁은 턱을 들고 하늘을 향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방금 당신 입으로 말했잖습니까? 재난은 운명이라면서요?”
“그거랑 네 계획이랑 무슨 상관인가?”
“상관 많지요. 제 계획이 곧 당신 기준에서는 재난일 테니까.”
“이 건방진……!”
“아니, 저를 건방지다고 하셔도 안 됩니다. 당신 주장에 의하면, 닥쳐올 모든 재난이란 곧 운명과도 같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은혁은 뱀프릭 체인 소드를 높이 들었다.
“이 땅에서 당신의 재난을, 마치 닥쳐오는 운명처럼 쓸어버릴 테니, 그 결론을 받아들이십시오.”
“이 오만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놈! 네놈에게 최대의 저주를……!!”
콰악!!
은혁은 검으로 사도의 목을 내리찍었다.
성좌의 기운이 사도를 감싸고 있었기에 잘리지 않았다.
기이이잉……!
카라미타스의 신성력이 목에 모였다.
허옇게 뜬 사도의 눈이 신성력으로 불타올랐다.
“설마 여기서 화신으로 변한다고?!”
은혁이 놀란 목소리를 낸 순간.
-크하하하……!!
사도의 목소리에 신성력이 깃들더니, 완전히 화신 형태로 강림해 버렸다.
꾸욱……!
목에 뱀프릭 체인 소드의 칼날이 닿은 상태인데도 상반신 힘만으로 일어났다.
뚜둑……!
칼을 밀고 있는 은혁의 팔 근육에서 파열음이 났다.
“으음……!”
-이 어리석고 오만한 것. 재난 몇 개 해결했다고 해서 내 힘이 약해졌을 것 같나?
카라미타스의 영향력은 기껏해야 10% 정도 약해졌을 뿐이다.
90%의 힘만 해도 압도적이었다.
휘우우우우!
쿠르릉……!
하늘에서 돌풍이 불고, 뇌운이 몰려들었다.
“엄청난 신성력이군요.”
-후회해도 늦었다!
“제가 할 소린데요.”
-뭐?
“성직자 패시브 스킬 [신성력 감지] + 혈인술사 스킬 [에너지 흡수]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신성력 흡수].”
파앗!
은혁의 성직자 직업은 무등급 직업으로, 숙련도도 매우 낮았다.
하지만 이 순간, 인위적으로 신성력을 감히 흡수함으로써 폭증시켰다.
-성직자 숙련도가 6% 증가했습니다!
-성직자 숙련도가 7% 증가했습니다!
-성직자 숙련도가 8% 증가했습니다!
-성직자 숙련도가 9% 증가했습니다!
-현재 성직자 숙련도 : 66%.
-성직자 스킬 [중급 치유]를 획득하셨습니다!
“오옷! 좋아, 좋아! 이 맛이야!!”
은혁은 신선한 피를 맛본 흡혈귀 귀족처럼 웃었다.
-말도 안 돼! 화신의 신성력을 강제로 흡수한다고?
강제로 에너지를 빨린 카라미타스의 화신은 어이없어했다.
“에너지를 흡수하는 혈인술사인 데다가, 지금 제가 쥔 뱀프릭 체인 소드에 흡수 능력이 내장되어 있어서 말입니다.”
은혁은 히죽 웃었다.
-이노옴……!
쿠르릉!
콰콰쾅!!
보디빌더의 목 굵기보다 굵은 낙뢰 대여섯 가닥이 은혁을 향해 떨어지려 했지만.
“[메탈 스파이크 소환]! [메탈 벙커 소환]!”
콰콰쾅!!!
은혁은 벙커 속에 숨었고, 낙뢰는 사방에 솟아난 삐죽거리는 금속 함정에 꽂혔다.
‘크으! 아프네.’
몸이 찌릿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은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선즈 리볼버를 꺼냈다.
“[연사]!!”
투쾅! 투쾅! 투쾅!
빠른 3연사가 카라미타스의 화신의 몸에 박히고 터졌다.
콰콰쾅!!
화르륵……!!
신성력을 은혁의 검을 통해 빨린 상태였기에, 선즈 리볼버의 사격을 튕겨내진 못했다.
몸에 구멍이 뚫린 화신은 빠르게 판단했다.
-숙주의 몸이 망가졌으니 하는 수 없군. 두고 보자……!!
카라미타스는 사도의 몸에서 떠나갔고, 사도는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그 순간.
-궁술사 숙련도가 10% 증가했습니다!
-현재 궁술사 숙련도 : 27%+.
-궁술사 스킬 [트릭 샷]을 획득하셨습니다!
“[트릭 샷]이라. 엄청 애매하네.”
[트릭 샷]은 나쁜 스킬은 아니지만, 실전성은 조금 낮다.
몸을 뒤로 돌리면서 쏘거나, 동료의 다리 사이로 사격을 하는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 쓰는 스킬이기 때문이다.
‘뭐, 있어서 나쁠 거 없지.’
-재난 극복!
-D. 원인 불명의 지진 사태의 재난을 해결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지진으로 파괴된 도시의 모든 건축물이 복원됩니다!
곧이어, 47층 메인 미션 클리어 메시지도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47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네 가지 재난을 모두 클리어하는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재난을 해결하는 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재난의 성좌, ‘카라미타스의 성유물’에 대한 이용권을 획득하셨습니다!
“후후.”
카라미타스와 척을 진 상태이므로, 원래는 재난의 성좌의 사도가 쓰던 성유물을 뺏어도 쓸 수가 없다.
염훈을 시켜서 [정화] 시킨 뒤 활용법을 찾을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업적 달성으로 이용권까지 얻네.”
은혁은 일부러 하늘을 올려다봤다.
“잘 쓰겠습니다, 재난의 성좌여.”
물론 반응은 없었지만, 카라미타스의 분노는 느낄 수 있었다.
은혁은 카라미타스의 성유물을 챙겼다.
“[사이코 메트리].”
파앗!
성유물에 얽힌 기억을 읽는 행위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짧게는 수백 년, 어쩌면 수천만 년이나 수십억 년에 얽힌 기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혁은 숙련도 높은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였기에, 최근 기록만 읽는 기법으로 짧게 썼다.
“흠, 그렇군.”
현재 키나핀러 왕인 존 키나핀러와 카라미타스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
스르륵.
성유물이 제거된 순간부터 구름이 서서히 해체되고, 은혁은 지표면으로 떨어졌다.
“읏차, 그럼 떨어지는 김에.”
은혁은 방향을 정하고 사이오닉 런처를 발동했다.
“왕궁으로!”
* * *
존 키나핀러 국왕은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재난이 약해졌어.’
이것은 키나핀러 국왕에게 있어서 절망적인 사태였다.
‘계약이 훼손된다…….’
키나핀러 왕국이 처음부터 재난의 성좌와 밀접한 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무능한 자, 존 키나핀러 대에 이르러서 이렇게 된 것이다.
존 키나핀러는 카라미타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 키나핀러 왕국을 바칠 테니, 키나핀러 왕가를, 재난의 차원의 왕가로 삼아주십시오.’
물질계의 왕국을 통째로 제물로 바쳐서, 성좌의 차원의 왕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아아, 그럴 수만 있다면…….”
영생.
성좌의 차원에 거하는 왕이 된다면, 일단 수명이 다해서 죽는 일은 없어진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메리트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이 성좌가 될 수도…….’
강력한 성좌의 사도가 되면, 훗날 자체적으로 하급 성좌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존 키나핀러의 계획.
‘아버지는 내가 미쳤다고 했었지.’
존 키나핀러의 아버지, 선왕은 재난의 성좌와 맞서 싸워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선왕의 아들, 존 키나핀러는 재난의 성좌에게 굴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선왕에게는 지진 때문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는 ‘재난’이 찾아왔다.
그 후, 존 키나핀러가 왕이 되었다.
그 뒤로는 순조로웠다.
왕이 직접 궁성 지하에서 카라미타스를 숭배하니, 재난의 양이 늘어났다.
하지만 오늘, 불과 1시간 전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놈들이 훼방을 놓고 있어!’
강은혁과 염훈의 등장 때문이다.
그 순간.
콰콰쾅!!!
궁성의 천장을 뚫고 뭔가가 추락했다.
지하 예배당에 있는 국왕도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당황한 존 키나핀러가 근위병을 호출하는 것보다 은혁의 [택티컬 디깅] 스킬이 빨랐다.
콰콰콰콰콰콰!!
드릴로 뚫고 지하 예배당 천장까지 부수며 들어왔다.
콰쾅!!!
후두둑……!
“커헉…….”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키나핀러 국왕은 쓰러졌다.
“읏차.”
은혁은 추락할 때의 속도 거의 그대로 땅을 뚫었다.
물론, [사이오닉 필드]로 몸을 감싸는 등 최소한의 보호를 하긴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최소한이었다.
“무슨 짓이냐……!”
“그건 제가 물을 일 아닌가요?”
은혁이 주먹에서 우드득 소리를 냈다.
“아차차, 순서가 있지, 참.”
은혁은 카라미타스의 성유물을 꺼내 들었다.
“그, 그것은!”
“구름 위에 있던 카라미타스의 사도에게서 다 들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이코 메트리] 스킬로 알아낸 정보지만, 이렇게 말하는 게 이해하기 쉬울 터였다.
“으으,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국왕이 오히려 대들었다.
“내가 카라미타스에게 복종한 게 잘못이라는 건가? 어차피 재난은 이길 수 없어! 모두가 플레이어처럼 강한 게 아니란 말이다!”
키나핀러 왕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은혁과 그 부하들은 강력한 직업 스킬의 힘과 레벨의 힘으로 재난의 원인을 하나씩 클리어했다.
하지만 NPC 위주인 키나핀러 왕국의 신민들에게는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왕이 할 소리입니까?”
“크크큭.”
왕은 대답 대신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푸확!!
숨겨 둔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털썩!
“어휴, 가지가지 하시네.”
은혁은 성직자 스킬인 [중급 치유] 스킬을 썼다.
기이이잉…….
피가 흐르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그리고 은혁은 카라미타스의 성유물에 담긴 힘을 끌어모았다.
화아아악……!
성유물에 담긴 힘이, 키나핀러 국왕을 강제로 완치시켰다.
“으윽, 주, 죽여라.”
“누구 좋으라고?”
키나핀러 국왕은 카라미타스에게 협조를 해왔기에, 지금 죽으면 그 영혼이 카라미타스에게 구원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국왕이란 놈이, 자기 왕국을 다 말아먹고, 혼자서 천국 같은 곳으로 떠날 가능성을, 은혁은 인정할 수 없었다.
“성유물 소유권자로서 명령한다.”
파앗!
카라미타스의 성유물에, 은혁의 의지를 부여했다.
-47층의 주요 재난 네 가지를 모두 해결하여, 소유권을 획득했음을 재확인!
-재난의 성좌, 카라미타스의 권능을 일부 구현하거나 차단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카라미타스의 사도가 아니더라도, 일시적으로 사도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땅의 국왕, 존 키나핀러와 카라미타스 사이의 모든 신앙과 단말을 끊는다.”
-그 경우, 존 키나핀러는 카라미타스에 의해 구원받을 수 없게 됩니다!
-정말로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YES/NO
“그야 당연히.”
YES라고 결론을 내리기 직전, 은혁은 국왕을 내려다봤다.
NPC인 국왕은 시스템 메시지를 보지 못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어휴,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하나.’
그때였다.
쾅!
문짝을 부수고 근위대가 몰려왔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국왕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오오! 짐을 구하라!”
은혁은 한숨을 내쉬고 싶은 것을 참았다.
“아, 귀찮네. [그림자 분신 5.0].”
스르륵.
그림자 분신들은 아예 근위대의 그림자 밑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죽이지 말고 다 제압해.”
우드득!
꽈악!
분신들이 근위대를 제압하는 건 2초 정도 걸렸다.
“…….”
상황 파악을 잘 못 하는 키나핀러 국왕조차 입을 다물 정도였다.
“존 키나핀러 국왕. 상황을 설명해 주마.”
은혁은 친절히 설명해줬다.
지금 은혁의 손에 죽으면 카라미타스에게 구원받을 수 없다는 설명을 듣자 기겁했다.
“아, 안 돼! 그럴 순 없어!”
“거참 자기 영혼의 구원은 엄청 신경 쓰네.”
“으으, 원하는 게 뭔가.”
“왕위.”
“……어?”
“키나핀러 왕국의 정당한 지배자인 국왕의 권리를 내놔. 그럼 봐주지.”
은혁이 갑자기 큰 것을 요구하자, 키나핀러 국왕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 지금 뭐라고?”
“왕위를 내놓으라고 했다.”
물론, 은혁은 왕위를 염훈에게 즉시 양도할 생각이었지만, 어쨌거나 왕위를 뺏는 건 뺏는 거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반란이냐!!”
“반란에 해당되진 않지. 난 네 왕국의 신민이 아니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외부인의 침략, 찬탈인데. 여기 시민들도 화내진 않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