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 마이크와의 대면 (2)
잔뜩 긴장한 마이크는 격한 반응을 보였고, 은혁은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말투로 설명했다.
“그 왕은 제가 속한 불패불굴 길드의 길드장이며, 왕국을 구하기 위해 신민들을 모두 규합하였습니다. 사람이 모여서 재난을 해결하고자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게 뭐겠습니까?”
“알 게 뭐야.”
“알아야 합니다.”
“알기 싫은데? 너랑 더 말 섞기도 싫어. 당장 나가!”
마이크가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은혁은 내심 마이크의 지능이 꽤 높다는 것을 인정했다.
‘말을 더 섞으면 위험하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군.’
은혁은 물론 퇴거 요청을 무시했다.
“한곳에 모인 사람들이 재난을 해결하려면, 뜨거운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각종 자원이 필요합니다. 뭐, 까놓고 말해 그게 다 돈이죠.”
“당장 나가라고 했는데도 안 나간다면!”
스르르륵.
금속의 벙커 내부가 마치 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네놈을 건물째로 쥐어짠 다음 쫓아내는 수가 있어.”
“과연, 배불뚝이 마이크. 금속을 지배하는 마법사답군요.”
“뭣?! 그걸 어떻게! 아니, 그전에 내 별명은 어떻게 알았지?!”
“비밀.”
“역시 안 되겠어. 네놈은 위험인물이다!”
“설득을 하는 수밖에 없군요.”
은혁은 뱀프릭 체인 소드를 꺼냈다.
‘물론, 검으로 하는 설득이지만.’
* * *
5분 뒤.
“크혀어, 커허헉…….”
배불뚝이 마이크의 배가 홀쭉해졌다.
“휴우, 힘들다. 안 죽이고 제압하려니 너무 힘들다.”
은혁도 땀을 닦았다.
“으으, 어째서냐……!”
배불뚝이 마이크는 쓰러진 채 자신의 패인을 물어보았다.
“싸움 방식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방식을 고집하는 게 패인이었다……라고 해둘까요?”
마이크는 우선 은혁의 무기부터 무력화시키려 했다.
은혁의 무기만 일단 어떻게 하면, 그동안 자신의 로봇 경호원들이 와서 자신을 지켜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금속 파괴] 스킬로 은혁의 뱀프릭 체인 소드만 노렸다.
하지만 은혁의 뱀프릭 체인 소드는 단순 금속이 아니라, 흡혈귀 귀족 브릭스의 힘이 담겨 있는 물건이었다.
피로 만들어진 액체 금속처럼 꾸물텅거리기만 할 뿐, 은혁의 무기는 멀쩡했다.
은혁은 은혁대로 일부러 마이크를 안 죽이고 제압하려 했고, 로봇 경호원들이 몰려왔다.
“뭔 로봇 경호원을 500마리나 쟁여뒀담? 엄청 지치네.”
마이크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숨겨둔 로봇 경호원 500기는 내구도가 엄청났다.
남는 폐자재를 이용해 직접 설계하고 만든 로봇 경호원들은, 은혁에게 맞아서 고장 나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부품을 교환하거나 수리해주면서 버텼다.
“좁은 벙커 안에서 다 부수려니 땀만 잔뜩 흘렸네. 젠장.”
물론, 은혁도 땀만 한 바가지 쏟았을 뿐, 로봇 경호원들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다 처리하고, [광풍돌진권]을 손바닥 형태로, 마이크의 복부에 한 방 갈겼다.
마이크는 충격파를 복부에 맞자마자 심하게 토하며 쓰러졌다.
-무투가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무투가 숙련도 : 9%++.
-무투가 스킬 [광풍충장]을 획득하셨습니다!
“흠. 약하게 쓰면 안 죽이고 무력화시킬 때는 적당하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은혁은 마이크에게 물었다.
“세금 내놔.”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뭐, 뭣……!”
충격받은 마이크는 구토마저 멈췄다.
스윽.
은혁은 마이크에게 공짜로 힐링 포션 하나를 준 뒤 예의를 갖춰 물었다.
“마이크. 돈 좀 다룰 줄 압니까?”
마이크는 꼴깍꼴깍 포션을 마신 뒤 조심스레 말했다.
“자유시장 길드급은 아니지만, 돈을 모으고 쓰는 법은 아는데…….”
“잘됐군요. 취직하십쇼.”
“어느 회사인데?”
“회사는 무슨. 불패불굴 길드죠.”
“음…….”
“왜요?”
“거기 힘들다던데…….”
“죽음 너머로 여행 가는 것보단 쉽겠지요?”
“큭…….”
“대답은?”
“하, 한 가지만 묻겠소.”
“뭡니까?”
“왜 날 영입하려는 거지?”
“이래저래 쓸모가 많으니까.”
은혁이 금속 차원의 소환술사이긴 하지만, 완벽하진 않다.
금속을 지배하는 마법사를 부하로 두면 이런저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추가로 두어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얼마 전에 존 키나핀러 왕이, 당신에게 왕가의 고대 유물을 헐값에 팔아 치웠지요?”
“헉, 그건 어떻게……!”
[사이코 메트리] 스킬로 알아냈다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 인간이 영수증을 꼼꼼히 작성했더군요.”
“으음…… 그랬군.”
“우선, 그걸 되사고 싶은데.”
촤르르륵!!
은혁은 왕가의 금고에서 꺼낸 금화의 4분의 1 가까이를 쏟아부었다.
마이크로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돌려줬다.
일단 금전 거래를 한번 트자, 마이크와 은혁은 마음이 조금 통하는 듯싶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거래를 깨끗하게 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면, 길드에 가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크가 마음을 조금 놓으려는 순간.
“이게 다입니까?”
“음? 무슨 뜻이지?”
“국왕이 판 왕가의 보물 전부냐고 물었습니다.”
“아,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우선 모래시계부터 꺼내시죠.”
“그, 그건 또 어떻게?!”
은혁은 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을 되감는 모래시계’는 1회용이긴 하지만 효과는 엄청났다.
마이크는 그걸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테일러와 거의 대등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것까진 팔 수가 없지. 그걸 팔아 버리면…….”
“그걸 팔아 버리면?”
“하여간 안 돼.”
“그걸 못 파는 이유를 제가 말하면, 팔 겁니까?”
“흠…… 내가 못 파는 이유를 정확히 맞히고, 해결책까지 제시해 준다면 헐값에 팔아도 상관없지만.”
“테일러 때문이죠?”
“……!”
마이크의 눈이 커졌다.
그 틈을 노려 은혁은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테일러, 어디 숨었습니까?”
“뭐, 뭣! 그걸 다 어떻게!”
“대충 다 알고 온 겁니다.”
테일러는 46층~49층 구간 어딘가에 숨어 있다.
대략적인 위치는 알지만 마이크를 이용하면 편하게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테일러의 시간 능력에 대항하기 위해 모래시계를 보험 삼아 갖고 싶은 거겠죠? 하지만 저는 오늘 중에 테일러를 박살 낼 생각입니다.”
“후우, 정말로 모르는 게 없군. 모래시계의 능력까지…….”
마이크는 이마를 문질렀다.
“자네는 그런 걸 전부 다 어떻게 아는 거지?”
은혁은 이번에야말로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공개했다.
그 스킬의 힘으로 마이크가 오늘 먹은 음식 종류까지 읊어내자, 마이크는 납득했다.
“그런 희귀 스킬까지 갖고 있었나.”
“그렇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어지간한 건 다 알아낼 수 있습니다.”
“내가 졌네. 하는 수 없지.”
마이크는 10초를 되감는 모래시계를 은혁에게 적당한 값에 팔았다.
-10초를 되감는 모래시계 :
7성급 아이템.
모래시계를 부수는 순간 정확히 10초가 되감겨진다.
1회용 아이템.
그런 뒤, 마이크는 불패불굴 길드에 대한 충성 맹세를 했다.
은혁은 염훈에 대한 충성 맹세를 부길드장 직권으로 대신하여 받아냈다.
그 직후, 조금 더 민감한 질문을 했다.
“혹시 [신살의 권능]에 대해 아십니까?”
은혁은 [사이코 메트리] 스킬로, 마이크가 [신살의 권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했다.
“그게 뭔가? 적어도 아이템은 확실히 아닌 거 같은데.”
“음, 그렇죠.”
이제 은혁은, [신살의 권능]이 아이템일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대신, 키나핀러 왕가가 지닌 무형의 스킬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왕가 전용이라면…… 이건 나중에 염훈에게 맡겨야겠네.’
생각을 정리한 은혁은 마이크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럼 준비하시죠.”
“뭘?”
“제가 금속 차원의 거신을 소환할 테니, 서포트하십시오.”
“풉! 말도 안 되는 소리. [금속 차원의 거신 소환] 스킬이라도 있나?”
“비슷한 건 있습니다. [금속 차원의 거신 면담 요청] 스킬이지요.”
은혁이 그린 드래곤 살라키오스를 쓰러뜨리고 얻은 스킬 중 하나다.
“면담 요청이니만큼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없도록 마이크 님께서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끼를 잘 제시해야죠.”
“미끼라면…….”
“당신이 모은 고철 전부.”
“야!! 그게 얼만데!!”
“대신에 세금은 면제해드리겠습니다.”
“안 해! 이건 완전 삥 뜯는 거잖아!! 불패불굴 길드가 이런 곳이었냐!!”
화를 내자 은혁의 표정이 굳었다.
“덜 처맞으셨나…….”
“뭐, 뭣?!”
“재난 속에서 파괴된 도시의 잔해며 물건들을 팔면서 꿀 빤 게 얼만데, 고작 금속 내놓으라는 걸로 억울하다고 소리를 치십니까?”
“그, 그건…….”
“이 자리에 염훈이 있었으면, 저한테만 맞는 게 아니라 염훈한테도 뒈지게 처맞았습니다.”
그러자 마이크가 흠칫했다.
그가 듣기로, 염훈은 은혁에 비해 무척 착하다고 했다.
하지만 은혁의 말대로라면, 마이크는 두 배로 맞아야 했다.
“어떻게, 정말로 염훈한테 보고할까요? 내 방침이 마음에 안 들면 길드장인 염훈한테 가서 따지시든가.”
“아, 아니야. 내가 잘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마음(?)이 되어 금속 차원의 거신을 부를 준비를 했다.
* * *
시간이 흘렀다.
염훈은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모두를 이끌고 방어군을 편성했다.
다행히 불패불굴 길드원들 중에는 다재다능한 이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구원 길드의 1군 감독인 로널드와 평화 길드 1군 감독 라벨리아가 큰 도움이 되었다.
“설마, 이런 방법으로 방비를 다 할 줄은 몰랐어요.”
라벨리아가 감탄했고, 로널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강은혁과 염훈은 발상이 좋습니다.”
대다수 플레이어들은 48층 메인 미션을, 48층 지역인 도시 바깥 평원 지대에서 해결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대부분 실패하고, 그 재난은 47층의 도시가 뒤집어쓴다.
하지만 은혁과 염훈은 달랐다.
첫째. 47층 메인 미션을 전부 클리어하여, 도시를 강화시킨다.
둘째. 그다음 48층 메인 미션의 2단계 웨이브를 맞이한다.
평야에서는 늑대인간들을 상대로 싸우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는 플레이어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도시를 끼고 싸우기에는 도시 상태도 재난 그 자체다……라는 게 기존의 상식.
그 상식부터 뒤엎은 것이다.
“활을 쏠 줄 아는 자들은 전면부 망루로!”
“돌을 던질 수 있는 자들도 다 올라오시오!”
도시를 지키겠다는 의욕을 가진 경비대원 NPC들은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장비를 지니고 호령했다.
스스로 자원한 남녀노소의 시민 NPC들은 결의에 찬 얼굴로 성벽 위에 올랐다.
“어쩌면 정말로 48층 메인 미션을 완료할 수 있을지도…….”
라벨리아와 로널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휘자인 염훈을 돌아봤다.
그런 염훈도 어째선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은혁이 녀석은 또 어디 간 거야?’
중요한 할 일이 있으니 간 것이겠지만, 막상 안 보이니 조금 불안했다.
-2단계 시작까지 3초…….
-2단계 시작까지 2초…….
-2단계 시작까지 1초…….
-웨이브 2단계가 시작됩니다!
그 순간.
투확!!
저 멀리 지평선에서, 작고 검은 폭풍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저건……!’
염훈이 자세히 보니 단 하나의 늑대인간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달려오는 속도는 맹렬하기가 마치 음속을 돌파한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음속을 돌파한 거 같은데?’
콰콰콰콰콰콰……!!
대지를 박차고 달려올 때마다 흙먼지는 후방 50미터 너머로 튀겼다.
지금 보이고 있는 저 돌진만으로도 어지간한 도시는 초토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읏……!”
“헬로이가 직접 나서는 건가?!”
“평소에는 뒤에서 부하들만 조종하더니…….”
경험이 많은 라벨리아와 로널드가 불안한 어조로 중얼거렸다.